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글, 사진 등의 저작물에 대한 무단복제를 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들메로 가는 길 - 279 조회 : 1,051




더러는 한낮에 내리쬐는 햇살이 따끔해도 해질녘이면 온몸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니 계절의 문턱에 초가을이 가까이 와 닿은 듯했다.

추녀 밑에 둥지를 틀고 여름내 한식구처럼 살던 제비들이 먼 강남땅으로 날아가려고 벌써 부터 차비를 서둘고 있었다. 안마당 빨랫줄엔 다 자라난 어린 제비들이 원행(遠行)을 앞두고 어미를 따라 떠올랐다 내리기를 끝없이 반복했다. 다소 소란스런 재잘거림으로 적적한 초가집의 고요를 깨며 생기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름 땡볕에 잘 익어 누르스름한 호박의 등 언저리에 이슬이 송골송골하게 맺혀 아침 햇살에 오채영롱한 빛을 발해 참으로 청정(淸淨)하게 보였다. 앞 들녘 밭엔 탱글탱글하게 알이 들어차 누릇해져 가는 콩 이파리와 고구마 잎사귀 위에도 구술 같은 아침이슬이 맺혀 그 또한 담결하게 보였다.

아침 이슬에 촉촉하게 젖어 있는 층을 이룬 계단식 밭 자락을 지나 얼마쯤 걸어가면 빨간색 지붕의 우체국건물이 소담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무심코 눈길을 마을로 돌려보니 눈에 익은 집 한 채가 눈에 띄어 갑작스레 마음이 울먹여졌다. 이곳 산골짜기로 이사 오기 전에 한 때나마 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알콩달콩 살았던 집이었다. 동네 우물가에 있던 초가집을 외할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에 종구네 집에서 얻어 쓴 장리 빚에 쪼들려 하는 수 없이 살던 집을 남에 손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집을 내어 주고 오갈 데 없었던 우리에게 등뫼산 밑에 홀로 사시던 노인 한 분이 오랫동안 홀로 살다 버리고 떠난 움막집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우리 모자가 쫓겨나다시피 이곳 산 밑으로 이사를 오고 말았다.

선득선득한 초겨울 날에 동네 어른들이 뜻을 모아 작달막하게 추녀가 한쪽으로 잔뜩 기울어진 움막집을 수리를 해주셔 그런대로 거처를 정할 수 있었다. 처음 한두 해는 이것저것 모르고 그럭저럭 살만했지만 그동안 몇 해가 지나자 군데군데 허물어진 벽 틈사이로 흙가루가 자꾸만 쏟아져 내렸다. 흙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벽체를 세우려고 가로세로로 얽어 놓았던 갈대줄기와 볏짚들이 밖으로 흉하게 드러나 보였다.

눈에 잘 보이질 않는 방 안에 벽은 그렇다 치더라도, 듬성듬성 흙이 떨어져나간 쪽마루 벽은 남들 보기에 남우세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여름을 그럭저럭 넘기고 초가을쯤에 날을 잡아 어머니와 함께 틈새가 벌어진 벽을 고르게 바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어머니와 내가 연무대에 있는 외삼촌댁에 다녀오는 사이에 부지런하신 순덕이 어머니가 그 더위에 앞산에서 싸리 삼태기로 몇 차례 흙을 퍼 날라 황토에 볏짚을 썰어 넣고 발로 고루 이겨 곱게 발라 놓으셨다.

그나마 벽을 바르는 흙손 하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임시변통으로 군용 반합뚜껑으로 문대어 발랐다. 그런 후 얼마쯤 시간이 지나 서서히 흙벽이 마르기 시작하여 꾸들꾸들해지자 가는 황토 입자(粒子)를 물에 타서 부엌 빗자루로 척척 발라 새롭게 변해버린 불그레한 흙벽이 산뜻하게 보였다. 더욱이 적당히 손때가 묻어난 마루 기둥에 알이 실하게 찬 옥수수를 골라 껍질을 벗겨 손으로 꼬아 걸어놓은 모습이 참으로 앙증맞게 보였다.

‘남에게 갚아야 할 빚이 한 짐이면 두 다리를 쭉 펴지 못하고 잔다.’하였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셨던 어머니가 그동안 몇몇 집에서 빌려다 먹은 양식을 갚으시려고 어제 늦저녁까지 동네를 돌아다니셨다.

그동안 동네에서 빌려다 먹은 양식 값을 갚으신 어머니가 모처럼 만에 홀가분하신 모습으로 그동안 쉬었던 장사를 다시 하시려고 사립짝을 나서려는데 옥순이 어머니께서 기현이네 집 앞 철길 건널목을 건너 손을 흔드시며 집 앞으로 걸어오셔 어젯밤에 두 분이 함께 읍내에 가기로 서로 선약을 하신 듯해 보였다.

검은 머리를 곱게 빗어 동백기름을 발라 쪽을 져 비녀를 꽂으셨는지 멀리서도 햇살에 비친 머리가 반지름하게 보였다. 그리고 옥순이 어머니가 그동안 그런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계신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언제 장만을 하셨나? 궁금키만 한 제법 값이 비싸다는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를 말쑥하게 차려입고 계셨다.

사람들이 흔히 즐겨 쓰는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화사하게 잘 차려입으시고 머리까지 곱게 단장을 하신 옥순이 어머니가 여느 날 보다는 더욱 멋스럽게 보였다. 어쩌면 내 어머니가 입고 계신 땀내 찌든 무명 홑저고리에 젓갈 비린내 나는 검정 몸뻬 바지가 그리 큰 차이가 나게 비교가 되어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시는 사립짝 앞에 닿으신 옥순이 어머니가 앞산을 한 바퀴 휙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에이구, 뭔 놈의 날씨가 여름이 다가도록 수구러들 줄 모르구 이리두 덥기만 허다냐? 날 한질라 되게 덥구 번거로울 거 같아 그냥 넘겨볼려구 했는디, 어찌됐던지 간에 내일이 그년 귀빠진 날이라 그냥 넘길려구 허닌께, 맴이 자꾸만 걸려서 미역 한 꼭지라두 사다 미역국이라두 끓여줘야 쓰것더라구.”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옥순이가 나보다 생일이 한 달 정도 빠른 늦여름이라 내일이 옥순이 생일이 맞는 것 같았다.

물러설 줄 모르는 늦더위 속에 갈참나무 우듬지에 새하얀 솜털구름이 여유롭게 머무적거리는 서낭당 고갯마루에 어머니와 옥순이 어머니가 오르셨다. 풍상(風霜)의 세월 속에 무거운 짐을 홀로 지시고 살아오셔 통한(痛恨)의 아픔과 굴곡진 삶에 고통으로 점철(點綴)되신 내 어머니의 시름 찬 뒷모습이 그날따라 너무도 작고 초라하게 보여 애잔함이 번져났다.
그런 탓에 켜켜이 아픔만 번져나고 아픔이 도래(到來)될 때마다 언제나 그랬듯이 가슴속살이 예리한 칼날에 베이듯 아려왔고, 그럴 적마다 마음은 이 지긋한 가난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헤어나고 싶었다.

연무대 외삼촌댁을 다녀온 뒤로 내년 봄쯤에 고향을 떠나 그곳 연무대로 이사를 하려고 계획을 잡으니 내 주위에 모든 것들이 이별을 앞두고 벌써 부터 안쓰럽게만 보였다. 막상 그곳으로 이사를 하여 삶의 터가 뒤바뀐다 하여도 불투명한 앞날을 예단(豫斷)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허나 그 결과가 어찌 되더라도 무엇인가? 서서히 실마리가 풀릴 것처럼 보여 혹시나 지금의 궁박한 가난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을까? 하는 설렘을 가져 보았다. 그런 실낱같은 기대심리가 마냥 서글퍼지려 하는 마음을 작게라도 달래주었다.

이제 알찬 네 살을 먹어가는 순덕이도 두 단어 이상을 연결하는 대화는 못할 지라도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게 떠듬떠듬 의사를 표현하려 했다. 아무런 탈 없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모습이 그리 귀엽기만 했다.

순덕이 어머니는 틈나는 대로 잘게 썰어놓은 호박고지와 가지나물 그리고 토란 대도 싸리채반에 담아 텃밭 가에 있는 펑퍼짐한 바위 위에 널어 햇볕에 말리셨다. 꽁꽁 눌러 뭉친 보리밥 누룽지를 손에 꼭 쥐고 뛰어온 순덕이가 저도 바위에 앉고 싶은지 방긋하게 웃으며 내 곁에 다가섰다.

서편 들녘 멀리 펼쳐진 생동(生動)이 넘쳐나는 파란 하늘엔 손으로 쥐어 보고 싶을 만큼 탐스럽게 피어오르는 뽀얀 구름이 너무도 아름답게 펼쳐 있었다.

『구름이 구름이 하늘에다 그림을, 그림을 그립니다. 토끼도 그려놓고, 노루도 그려놓고, 동생하고 나란히 풀밭에 앉아, 펴오르는 구름을 바라봅니다, 바라봅니다.』

국민학교에 다녔을 적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치시는 풍금소리에 맞춰 불렀던 노래가 문득 떠올랐다.

어머니와 함께 강경 읍내로 볼일을 보러 가신 옥순이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시려면 아마도 점심 무렵은 훨씬 넘겨야 할 것 같았다. 그전처럼 혼자서 집을 보고 있을 옥순이에게 어차피 언젠가는 한번 풀어야 할 마음에 숙제가 있어 한번 찾아가보려고 마음먹었다.

이삼일 후에 개학을 한다고 하여도 옥순이가 내가 말을 걸 틈을 좀처럼 주질 않고 한사코 외면하려 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학교로 가는 길목에서 억지로 붙들고 말을 하기도 어색하고 모두들 서두르는 통학 길의 그 짧은 시간에 자세한 말을 나눌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옥순이네 집으로 찾아가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바윗돌에서 일어나 순덕이 어머니에게 아랫동네에 내려간다는 뜻을 손짓으로 표현하고 언덕배기로 향했다.

둥글둥글 파르스름한 잎을 치켜세우고 줄을 이뤄 서 있는 기현이네 텃밭에는 김장배추가 이제 겨우 제 모습을 갖춰 성글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마당에 풀어놓은 닭들이 풀숲에 다가서 메뚜기와 방아깨비를 잡으려 목을 잔뜩 곧추세워 먹이를 노렸다.

방죽가에 민출하게 뻗어난 두 그루 미루나무는 언제나 아랫마을로 내려서는 내 모습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방죽가엔 올곧게 내리쬐는 햇살에 반사되어 더욱 검푸르게 보이는 갈대가 덥수룩하게 자란 틈 사이를 가뿐하게 비집고 나온 아직은 조금 덜 자란 논병아리들이 줄을 맞추듯이 촐랑촐랑 몸을 흔들며 어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방죽 건너편 사람들 손길이 닿기 어려운 벼랑에는 물총새들이 뚫어놓은 깊숙하게 파놓은 굴처럼 생긴 새집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굴 턱 언저리에 살며시 나온 청록색과 갈색이 잘 어울려 앞가슴에 흰색 무늬가 너무도 곱살한 어미 물총새가 이리저리 주위를 조심스레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날개를 활짝 펼치고 새집이 잘 바라보이는 맞은편 버드나무 가지에 살포시 내려앉아 꼬리가 짧은 엉덩이를 촐싹대며 계속 울어대었다. 그러자 곧바로 작은 새끼 물총새들이 굴 밖으로 나와 어미처럼 엉덩이를 촐싹거리며 두서너 번 멈칫거리다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푸덕여 어미가 있는 근처 나뭇가지에 어렵게 내려앉았다. 그런 모습을 반복하듯 다른 어린 물총새들도 차례대로 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제비들처럼 이제 머지않아 따뜻한 남쪽으로 원행을 떠나려고 비행연습을 하고 있는 듯했다.

새로운 삶의 터를 찾아 떠나려 하는 새들처럼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어쩌면 내년 봄쯤이 나도 어머니를 따라 전혀 낯선 또 다른 삶의 둥지를 찾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항상 묵묵하게 마을을 바라다보고 있는 느티나무는 언제나 듬직한 모습으로 동네 사람들을 그늘 밑으로 불러 모아 동네어른들 서너 분이 평상에 앉아 정담을 나누시고 계셨다. 그런데 기성이형은 아들 자랑이라도 하는 듯 아랫도리에 광목 귀저기 하나만 달랑 차고 있는 아기를 두 팔로 보듬고 있어 이제는 온갖 시련을 다 넘겨 늦게라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래서 기성이형을 바라보고 눈인사를 하니 기성이형도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점차 밤의 길이가 길어진다는 추분까지는 별다른 농사일이 없어 마을이 조금은 한가롭게 보였다. 고샅길 토담 위에는 집집마다 누런 호박들이 덩그렇게 배를 내밀고 헛간 초가지붕 위에도 하얀 박들이 듬직하게 자리를 잡아 풍요의 가을을 만끽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모습들 하나하나가 한 치도 꾸밈이 없는 내 고향의 진솔한 면모이기에 한적하면서도 평온하게만 느껴졌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노는 연자방앗간 공터에는 작년 봄에 한번 다녀간 적이 있는 땜장이 노인이 꽹과리를 치면서 동네 고샅길을 돌아 몇몇 집에서 땜질을 하시려고 걷어온 양은솥과 냄비들을 앞에 펼쳐놓으셨다. 말똥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긴 조개탄에 불이 잘 달아오르게 하려고 뜨거운 햇볕 아래 광목수건으로 얼굴에 땀을 훔치시며 화덕에 풀무질을 하셨다. 동네 아이들은 빙 둘러 서 있어 진귀한 구경꺼리라도 만난 것처럼 눈을 모아 바라보고 있었다.

좁다란 고샅길을 거슬러 우물터에 닿으니 한낮이라 그런지 우물터에 동네 사람 단 한 사람도 보이질 않아 썰렁하게 보였다. 녹슨 양철대문이 바라보이는 옥순이네 집 대문 앞에는 감나무에 누른빛이 드문드문 돌아 알차게 보이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지가 휘어 내렸다.

반쯤 트여진 대문짝 안으로 바라보이는 마당가에는 채 피어나지도 못한 송이가 당글당글하게 매달린 노란 국화가 바라보였다. 그 옆자리엔 철이 조금은 늦은 듯싶은 꽈리가 익을 대로 익어 곧 터질 것처럼 붉은빛을 양껏 내비쳤다.

막상 대문 앞에 닿았지만 왠지 모르게 예전처럼 흉허물 없이 쑥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괜스레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마당으로 들어서도 안쪽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잠시 마당에 선 채로 집안 안쪽을 살펴보아도 옥순이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더는 궁금한 마음에 참을 수 없었고 그런 모습으로 계속 서 있기가 멋쩍어 ‘옥순아!’ 하고 용기를 내어 불러보았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혹시 뒤뜰 장독대에 있나 싶어 다시 한 번 조금 큰소리로 불러보아도 역시 대답이 없어 근처 동네 이웃집에 잠깐 놀러간 듯싶었다.

그래서 주인 없는 빈집에 있기가 껄끄러운 생각이 들어, 집밖으로 나와 옥순이가 오기를 기다리려고 대문 밖으로 나오려 했다. 그런데 그 때 집안으로 들어오던 옥순이가 나를 보았는지 먼저 말을 건넸다.

“워메! 주인두 읍는 넘네 집에 무신 일루다가 그냥 들어와서 기웃거리는가? 참말루 모르것네.”

조금은 뿌루퉁한 얼굴로 빈정거리듯이 덥석 말을 던졌다. 그리고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마당 안으로 냉정하게 들어선 탓에 참으로 무안하기만 했다.
목록으로

 

Copyrigt By 들메로 가는 길 All right reserved.
Webpage Administrator dooris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