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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81 조회 : 1,176




모진 삶을 살아온 민초들에 인고의 흔적처럼 동네 고샅길 땅바닥이 반질반질하게 굳어져 있었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마을 사람들 모두는 은혜로운 땅의 흙을 손과 발에 묻히며 그 흙냄새와 더불어 살았다.

오붓하게 머릴 맞댄 나직나직한 초가지붕 너머로 앞산 비선봉이 듬직한 모습으로 높다랗게 바라보였다. 태어나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눈이 아프도록 보아 온 마을 앞산의 모습들이 때론 지루하다 못해 진부하지 않게도 보였다. 그러나 차분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한 번 더 둘러보면 전보다는 전혀 색다른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먼동이 터오를 무렵부터 달빛이 쇠잔해질 때까지 산자락 구석구석 어느 곳이라도 자연의 오묘함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런 꾸밈없는 삶의 굴레 속에서 숨을 내쉬며 살아가는 내 자신이 감사드려야할 부분이 너무도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나 저 산은 나에게 눈앞에 보이는 작은 것에만 급급치 말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두루 살펴 살라고 가르쳐주는 듯했다.

앞산 산릉선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에 버름한 마루 벽기둥에 앙증맞게 매달린 뒤웅박이 가볍게 흔들렸다. 뙤약볕이 드세게 내리쪼이는 텃밭 한 구석엔 숙수그레하게 자라난 대파가 앙칼스런 늦더위를 버티려 목을 길게 빼 내밀었다.

참으로 요상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촌스럽기는 마찬가지라서 뭐라고 할 말이 없지만 솔직히 촌스럽게 보이는 옥순이보다는 석란이에게 관심이 더 많이 갔다. 그것은 석란이가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윤곽이 또렷한 얼굴의 생김새나 세련되어 보이는 옷차림 그리고 학업성적도 옥순이보다는 월등하게 뛰어난 점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옥순이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공통적인 피해 의식을 느낄 수 있었고 아픔 또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애잔함이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무엇인가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듯싶으면서도 그리 미쁘게만 보이던 석란이에게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가슴 뭉클해져 오는 동질감이 진부하게 생겨났다. 그런 쪽으로 생각이 굳어져 가는 탓인지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려 애면글면하는 옥순이가 아귀차게도 보였다.

문득 추녀 끝을 바라보니 거미줄에 잿빛 잠자리 한 마리가 재숫머리 없게 걸려들고 말았다. 제 몸뚱이에 끈적거리게 들러붙는 거미줄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바동거릴수록 더욱 감겨지는 거미줄에 조이고 또 조여 끝내는 숨을 멈추고 말았다.
그런 모습 하나가 피폐해진 인성에 종속되어 사는 뭇사람들 눈에는 그저 하잘것없이 보일 수도 있었다. 허나! 감성이 극히 여렸던 어린 나이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진한 연대감을 느끼게 했다.

삶의 미로 속에 펼쳐지는 일들 하나하나가 전혀 예기치 못한 쪽으로 전개되었다. 고뇌하는 옥순이 모습이 무척이나 안쓰러워도 앞에 나서 사리를 구분하여 가름할 힘조차 없었다. 단내가 폴폴 나는 까칠한 입을 트고 나오는 나 혼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힘겨운 소리는 그저 허공에 맴돌 뿐이었다.

“그려! 니나 내나 복이라구는 바늘구멍맨큼두 읍어 지리두 가난하게 태어난 것두 억울헌디, 난리 통에 날벼락을 맞듯 멀쩡했던 아부지를 잃어버려 이저리 등 떠밀려 눈먼 송아지매냥 살아온 내 꼬라지나 니 꼬라지가 어쩜! 그리 한 치두 다를 배 읍다냐? 그러니 너두 이제는 억울해서 더는 당하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는 아픔일 꺼여.”

한동안 말문을 닫은 옥순이가 그늘진 마루기둥에 몸을 기대어 늘쩍지근한 한낮 늦더위에 푹 처진 모습을 보였다.

열기로 이글거리는 앞마당엔 빨간 고추잠자리가 천연덕스레 졸고 있는 해바라기 주위를 맴돌며 안마당을 독차지한 듯 떼를 지어 허공에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옥순이의 단발머리 아래로 드러나는 하얀 귓불을 힐끔 쳐다보았다. 마치 지난날 먼발치에서 교회로 가는 석란이를 바라볼 때처럼 이상하게 얼굴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져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흙 담벼락 너머 우물터에서 귀에 익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북새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잘됐다 싶은 생각에 얼른 대문 밖을 나서 우물가터에 가 보니 동네 어른들이 고샅길로 나오셔 수군덕거렸다.

오늘 이른 새벽녘에 대추나무집 상두네 어머니가 온다 간다는 말 한 자리 없이 그만 집을 뛰쳐나가 어디론가 떠나버렸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상두 아버지 때문이었다.

지난 난리 속에 상두네 아버지가 강제로 인민군에게 강제징병을 당해 끌려갔었다. 그러자 상두네 어머니가 상두 아버지를 구출해 보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면소재지 인민위원회의 부위원장 자리에 앉아 붉은 완장을 팔뚝에 차고 기세등등하게 설쳐대는 종구네 삼촌에게 어쩔 수 없이 찾아갔었다.
상두네 어머니가 결혼을 하시기 전 처녀 때부터 흠모를 해왔던 종구네 삼촌은 그 일을 빌미 삼아 상두 어머니를 그리 쉽고 허무하게 겁간할 수 있었고 상황이 절실하게 긴박했던 상두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야수 같은 종구 삼촌의 강압에 못 이겨 몸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상두네 아버지는 위기를 넘겨 놈들의 손에 끌려가지 않고 겨우 풀려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얼떨결에 풀려나온 상두 아버지가 그 일에 대하여 차마 상두 어머니에게 대놓고 직설적으로 물어볼 수도 없어 그저 어림짐작으로 늘 꺼림칙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두네 아버지와 종구네 삼촌이 한마을에서 형님동생 하면서 살아왔던 처지이고 보니 뜬소문을 들어 종구네 삼촌이 총각 시절부터 자기 처인 상두 어머니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더욱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유로 세월이 이만큼 흐르는 동안 동네 사람들 알게 모르게 그토록 들볶아대며 심적인 고통을 주어 지칠 대로 지쳐 결국은 견디다 못해 동네 사람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 한자리 남기질 않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밤사이 상두 어머니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자 상두 아버지가 혹시나 친정집으로 갔나 싶어 이른 아침댓바람에 허겁지겁 상두네 외갓집이 있는 앞 들녘 논길 건너 장화리 마을에 가 보았지만 그곳 처갓집에는 단 한 번 다녀간 일이 없다고 하여 십리길 들녘 논둑을 걸어 허탈한 심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발끈 치솟은 상두네 아버지가 이른 아침부터 동네 주막 삼식이네 집에서 빈속에 오전 내 술을 마셔 만취하신 몸으로 담벼락 너머 비좁은 고샅길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치셨다.

“더러운 놈의 세상. 기새라 이리 돼버린 거 더는 살 필요두 읍으닌께. 나 못살게 요로콤시루 맹글어버린 그 원수 놈의 집구석에다 불이라두 확 싸질러번지구, 눈에 띄는 대루 다 죽여버리구 나두 목숨 끊을 꺼구먼.”

분노에 가득 차 헛간 추녀 밑에 꼽아 두었었던 날이 시퍼렇게 선 낫을 손에 움켜쥐고 종구네 집으로 가려고 살기가 가득 서린 눈을 무섭게 희번덕거리며 사립짝을 나섰다.

그러자 고샅길에 모여 있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깜짝 놀라 한쪽으로 우르르 물러서 저마다 안절부절못하셨다. 일이 그리 긴박해 지자 머리가 허연 동네 이장 댁 할머니가 모여 있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바라보시며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니! 다덜 이러구덜 있을 게 아니라 얼른 동네 두루두루덜 알려가지구, 젊은 청년들이 나서 말려야 안되것는감? 울 애기 아범두 내동 집에 있다 하필이면 오늘따라 면사무소에 볼일을 보러 가구 읍네 그려. 아이구 나는 저 양반 살기가 돌은 눈에 날이 시퍼런 낫을 들구 가는 걸 보닌게 시방두 다리가 후들거려 죽것네.”
“왜 아니래유. 지두 다리가 후들거리는구만유. 아참 나 좀 봐! 시방 이러구 있을 게 아니라 얼른 가서 마루에 낮잠이랍시구 노루잠 자고 있는 울 애기 아빠를 깨워야 쓰것구먼유.”

고샅길 건너 사시는 병수 아저씨네 아주머니가 말씀을 하시며 서둘러 집으로 향하셨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우물가 인식이네 어머니는 유난스레 냉정하신 얼굴로 말씀하셨다.

“이게 다 천벌을 받느라구 그러는 거지 뭐. 암! 지놈들이 지은 죗값은 달게 받아야지 멀쩡한 생사람 잡아다 죽이구 그것두 모자라서 세상망종(亡種)중에 그런 망종 없더라구 한동네 사는 넘 지집을 겁탈하구서두 온전헐 줄 알었던감? 맬간 하늘이 다 내려다보구 있는디 저질러 놓은 짓을 생각허면 천번만번 죽어야 마땅하지 뭐 안 그런감?”

고샅길이 온통 소란스러워지자 뒤늦게 문밖으로 나오신 순아네 할머니가 한 말씀 덧붙이셨다.

“그러게나 말여. 그렇게 새벽참에 고향을 버리구 내뺀져버린 상두 에미를 다덜 어떻게 생각헐련지는 모르것지만 그새중간에 상두 애비 헌티 을매나 보대겼으면 두 눈 새까맣게 뜨구 있는 지 자식 냉정허게 버리구 도망갔것는감?”

그러자 이번에 면 의회 의장 사모님이 되신 병수네 어머니는 지난 일에 대한 잘못이 종구네 집에 있더라도 동네에서 또다시 그런 큰 불상사가 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우려스런 얼굴로 조심스레 노인 분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집 미워허는 것이사 내남 헐 것 없이 모다덜 다 똑같다구 허지만 더 큰일이 일어나서는 절대루 안되지유. 그러닌게 어찌됐던 간에 무신 일이 있어두 상두네 아버지가 그 집으루 못 가게 가루막아야지유. 그러다가 참말루 큰일이라두 벌어지면 으짤 건디유. 그래두 힘이 쎈 경수 양반이 이내 뒤를 따라 갈 꺼닌게 쪼까 맴이 놓이긴 허지만 뭐시냐? 둥구나무 밑에 동네 사람들이라두 많이 모여 있으닌께 빨랑 말렸으면 좋것네유.”

동네 아주머니 모두들 애를 태우시는 모습으로 걱정을 하고 계셔 궁금한 마음에 얼른 상두 아버지 뒤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

우물터를 벗어나면서 옥순이네 집 쪽을 슬쩍 바라보니 옥순이가 담벼락에 다가서 깨금발로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있었다.

나 혼자의 생각일지는 몰라도 동네 아주머니들이 주고받으시는 이야기의 초점이 종구네 집이다 보니 혹시라도 자기 어머니와 연관성 있는 얘기가 나올까 싶어 더욱 조심스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싶었다.

높낮이가 거의 비슷한 초가지붕 너머로 앞산 멧부리가 가직하게 바라보이는 고샅길을 성급하게 뛰어 어귀에 닿았다. 동구 밖 둥구나무 밑에 동네 어른들에게 빙 둘러Tk인 상두 아버지가 두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한 손엔 날이 시퍼런 낫을 거머쥐시고 입 가장자리에 허옇게 침 자욱이 묻어난 채 숨 가쁘게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진작부터 짐작은 했지만 차마 밖으루 말을 못하고 살아 더러운 놈의l 세상 진작 죽었쓰야 허는디. 그러지두 못허구 목숨 붙이고 사는 죄루 여태껏 저 인간 같지두 않은 것덜헌티 무녀리 취급당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왕지사 내 집 구석 절단 나버린 거 더 살구 싶은 미련두 없구 이참에 저 씨알머리덜 다 죽여버릴라구 허닌게 제발 길 가로막지덜 말구 다덜 비키라구유. 시방 내가 미쳐버릴 거 같으닌께유.”

상두 아버지가 햇살에 반사되어 더욱 시퍼렇게 보여 섬뜩한 낫을 거머쥐고 손을 부르르 떠시고 술에 취해 극도로 흥분되어 있는 상태였다.

동네 어른들은 혹여 실수로 다칠까 싶어 바짝 다가서지도 못했다. 그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상두 아버지 주위를 빙 둘러서 저마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참으라고 사정을 하면서 어떻게라도 상두네 아버지의 격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애를 쓰고 계셨다.

그렇게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상두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서로 대치를 하면서 몇몇 어른들은 은연중에 몸을 사리고 계셨다.

그러자 상두네 아버지 뒤를 따라왔던 경수아저씨가 앞으로 나서며 말씀하셨다.

“기천이 성님! 증말루 내말두 안 들을라유? 동네 사람덜 너나 헐 것 읍시 성님 속 타는 거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혀두 애간장 녹아내리는 거 왜 몰르것시유? 시방 성님 눈에 뭐가 안 보이것지만 그라두 으쩌것시유. 어린 상두란 놈을 봐서라두 참구 살아야 하지 않는감유? 그러닌께 제발 그 낫일랑은 땅바닥에 내려놓구 속 시원허게 말을 혀 보자구유.”

경수 아저씨가 그리 통사정을 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었으면 될 것을 막상 앞으로 나설 용기도 없으면서 내동 뒷전에서 눈치나 살피던 방앗간 순태아저씨가, 나이가 거의 비슷해 평소 친구처럼 지내는 상두 아버지를 향해 말을 하셨다.

“어이! 기천이 지발 화 좀 풀구서 경수 동상 말대루 혀. 자네 심정이야 오죽허것는가마는 그래두 참으야지. 승질대루 허면 쓰것는가? 막말루 그러다가 무신 일이라두 벌어지면 그 뒷갈망을 어찌 헐려구 그러는가? 그러니 지발 자네가 분을 삭이구 참게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두네 아버지가 순태아저씨를 눈이 뚫어지게 노려보셨다.

“야! 너는 내 일에 끼어들지 말구 지발 너나 잘허구 살아라. 글구 단디 말해 두는디 그 인간 앞에서 갈지자행세 하는 너까장 보기 싫으닌께. 제발 더 이상 내 앞에 눈 거칠게 굴지 말구 으디루 싸게 읍어져라. 사람이 읍으면 읍는데루 살면 되는 건디 저 쳐 죽일 놈에 인간헌티 추잡스럽게 성님성님 허면서 간사스럽게 빌붙어 떼거지 짓 허들 말구 똑바루 살다 죽으라구. 에이! 씨부럴.”

상두 아버지가 입 안에 한가득 고여 있던 침을 밖으로 힘껏 내뱉으시고 다시 종구네 집 쪽으로 나서려 하셨다.

바로 그때였다.
동네에서 제일 연로하신 진식이네 할아버지가 긴 장죽을 입에 무시고 깊은 생각을 하시는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계시다 장죽을 입에서 빼내시더니 좀처럼 분을 풀지 못하고 계신 상두 아버지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어이! 기천이. 자네 아무리 화가 머리끝까지 났어두 나 알아볼 수 있지? 내가 장급마을 사는 자네 장인 허구 호형호제하고 지내는 지간이라 더욱 넘 같지 않아 이 늙은이가 주제넘게 한 마디 헐 틴게 분을 좀 삭이구 차분허게 내 말을 들어 보게나. 자네 집사람 일에 대해서 아직까장은 자네헌티 속 얘기를 안 들어봐서 자상허게는 모르것네만, 일이 이 지경까장 되번졌으니 누가 뭔 말인들 헌다구 자네 귀에 똑바루 들리것는가만은 여기 있는 사람들 모다 자네 보구 참으러구 허는 건 자네 속마음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거 다 아는지라 참말루 자네를 생각혀서 허는 말이구. 아까부터 저 구석쟁이에서 눈만 껌뻑거리면서 혹시 자네가 잘못될까 봐 애 태우고 있는 저 어린게 이 모진 세상 태어난 죄밖에 무신 죄가 더 있겠는가? 세상 이치가 죄지은 놈은 언젠가는 꼭 하늘이 벌을 내리는 법이닌께 서운허게 듣지 말구 자네가 한발 물러서 참고 살게나.”

상두 아버지가 그제야 동네 어른들 틈새에 끼어 울고 있는 상두를 한차례 바라보시더니 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시더니 땅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내리치시며 울부짖듯 말씀하셨다.

“내가 죽기 전에는 니 놈덜헌티 어떻게든 꼭 되갚구 말 틴께. 두 눈 똑바루 뜨구서 넌더리나게 날 지켜보구 살라구.”

멈출 줄 모르고 흐느껴 울며 손에 들고 있던 낫을 땅에 내려놓으시자 경수아저씨가 옆에 서 계시던 삼식이 아버지에게 얼른 치우라는 손짓을 하시며 건네주셨다. 동네 사람들이 가깝게 다가서 서로 손을 붙들어주기도 하고 쉴 새 없이 들먹거리는 어깨를 쓰다듬어주시며 위로의 말들을 건네셨다.

평상 위에 앉아 물부리를 입에 물고 계시던 우현이 아버지께서 그렇게 울부짖는 상두네 아버지 속마음을 헤아리시는 듯 평상에 앉자 계신 동근이 아버지를 은근 슬쩍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참말루! 동섭이 지 눈에는 바른말 허는 나가 눈엣가시처럼 보이겠지만, 지 동생 놈 지은 죄가 많아 붙들려가서 콩밥을 먹구 있지만 그놈이 짐승의 탈을 썼지 어디 인간이던감? 천하에 인륜을 저버린 쳐 죽일 놈이지, 안 그런가? 내 눈에는 그놈이나 그놈 형이라는 저 인간이나 허는 짓거리가 다 똑같지 뭐. 면소재지를 오가다 보면 들리는 말이 저 앞 들녘 땅덩어리가 다 지 것처럼 으스대구 다니는 모양인디, 지아무리 저 잘났다구 그래 봤자 우물 안에 개구리지 뭐.”

그러자 옆자리에 비켜서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바른말 잘하시는 삼식이 아버지가 우현이 아버지 말씀에 끼어드셨다.

“원칸 읍시 사는 동네라 자기가 아주 잘나 보이는 것 같지만 가참한 읍내만 나가보라구. 지보다 훨씬 잘사는 부자들 수두룩뻑쩍허닌께. 그래서 허는 말이지만 어디 붕어 입주딩이에 수염 나는 거 본 사람 있는감? 붕어가 지아무리 컸다구 날뛰어봤자 붕어는 붕어지 수염 달린 잉어는 못되는 법이닌께.”

평소부터 그다지 곱살한 눈으로 보지 않던 종구네 아버지를 사정없이 몰아붙이시는 우현이 아버지와 삼식이 아버지 말씀에 몇몇 동네 분들은 공감을 하시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런데도 나름대로 종구 아버지와 친하신 동근이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만 계셨다.

마을 앞 냇가에서는 엇부루기 우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기성이형과 병막 터에 사는 정섭이형이 이제 며칠 후면 함께 군대에 입대를 하기 때문에 떠나기 전 고향의 흙내음과 풍취를 조금이라도 몸에 더 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냇가에서 싸리나무로 둥그렇게 엮어 만든 통발로 물고기를 잡고 있던 형들이 둥구나무 밑에서 시끄럽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는지 물고기를 잡다 말아 종아리에 흙이 묻은 채 냇둑 위로 올라서 맨발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냇물이 동네 앞을 지나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개어귀에는 하얀 백로 몇 마리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한두 차례 주위를 빙그레 돌다 순번대로 사뿟거리게 내려앉는 모습이 그리도 평온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런 시름 저런 시름 달래주려나, 극심하게 변덕스런 여름 날씨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주는 듯 낮 동안 그리도 화창했던 날씨가 정오쯤으로 접어들자 한차례 여우비를 뿌리며 누릇누릇 알차게 알이 여물어가는 벼이삭을 가볍게 적시며 스쳐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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