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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88 조회 : 1,961




겨울을 재촉하듯 산마루터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지없이 냉랭(冷冷)하기만 했다. 이제 혹한(酷寒)의 추위가 턱밑까지 찾아든 것 같은 예감에 몸과 마음이 한껏 을씨년스러웠다. 한껏 스산한 바람은 대나무를 쪼개어 얼기설기 얽어 놓은 방문의 문풍지를 제법 세게 울렸다. 그나마 남쪽으로 트여진 봉창에 아침 햇살이 살갑게 찾아들어 덜 적적했다.

늘 습관처럼 맡아 온 흙내음이 뒤섞인 방문을 열고 버릇처럼 뜨락에 나서 움츠렸던 가슴을 활짝 펴고 앞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크고 작은 산들이 계절의 변화에 청록(靑綠)의 운치를 잃은 지 오래되어 온통 담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로 인해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그 틈사이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있는 부연 운해 속에 소나무들이 짙푸른 모습으로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바라보기에 덜 외로웠다. 그리고 산자락 군데군데 듬직하게 자리를 잡은 검회색 바위들이 눈앞에 생동감 있게 다가섰다. 그런 풍광이 마치! 섬세한 솜씨로 심력(心力)을 다해 그려 놓은 수려(秀麗)한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그렇게 내 작은 초가집을 포근히 감싸고 있던 산자락에 냉기와 더불어 쓸쓸함이 산자락 곳곳에 촘촘히 배어나 나도 모르게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동네 고샅길을 걷다보면 비릿하면서도 감칠맛이 도는 김장 젓갈 다리는 냄새가 솔솔 배어나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일 년에 한번 있는 김장철 젓갈 장사로 다소 이른 아침부터 서두셨다. 아침밥상을 일찍 물리고 손잡이가 달린 손거울을 바라보시며 머리를 매만지셨다. 그러면서 감기에 걸려 기침을 심하게 하는 순덕이 얼굴을 안쓰러우신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니! 뭔 놈에 고뿔이 염병맞게 찾아와서 저 어린거시 밤에 잠두 못 자게 그리 들볶아 대는지 모르것다. 그리 기침을 심하게 해서 새벽녘에 살펴보닌께 애가 열이 보통이 아니던구먼 그려. 안되것다. 오늘일랑은 읍내 나가기 무섭게 열 일 제쳐두고 양약방에 가서 내 새끼 약이라두 져올 틴께, 순덕이 에밀랑은 애 입성 따습게 입히구 절대루 바깥 찬바람 안 쐬게 혀. 괜히 호미루 막을 거 가래로 막게 허지 말구.”

그런데 순덕이 어머니께서 감기를 치유하는데 좋다는 것을 어디서 배우셨는지 무에 둥그렇게 구멍을 내어 꿀을 넣고 밥솥에 쪄 달챙이수저(모지랑숟가락)로 긁어 순덕이 입에 떠 넣어 주고 계셨다.

어머니께서 순덕이 어머니에게 손짓으로 자세히 표현을 하셔 단단히 당부를 하시고 마루에 놓인 옹기동이와 똬리를 챙겨 마루를 내려서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에이구 이 놈에 새비젓(새우젓) 장사두 올 겨울 김장철까장만 허면 끝이 날란가? 어쩔랑가? 모르긋다. 근디 날이 자꾸 싼득싼득해지는 거 보닌께 곧 추위가 올 것 같은디, 아무래도 더 추워지기 전에 하루 날 잡아 순덕이 에미허구 이불껍떼기라도 벗겨 빨아야 쓰것다. 그건 그렇구 이놈에 여편네는 내둥 읍내에 하냥 가자구 혀 놓구서는 뭣 허느라고 안즉까장 안오고 꾸물거리는지 모르것네 그려. 가뜩이나 바뻐서 죽것구먼. 싸게싸게 오질 않구.”

늦게 오시는 옥순이 어머니가 못마땅하신지 떨떠름하신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야트막한 밭두둑 앙상한 가지 끝에 까치밥으로 달랑 하나를 남겨놓은 홍시를 매단 채 쓸쓸히 서있는 감나무 사이로 트여진 소릿길을 빤히 바라보고 계셨다.

이번에 개가를 하시는 옥순이 어머니와 종구네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치레로 국수라도 내려고 날을 잡았는데 그 날짜가 바로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저 번잡스럽지 않게 단출하게 치르려는 동네잔치지만 옥순이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았다. 손님들 앞에 잘 보이고 싶어 머리에 파마를 하시려고 어머니와 함께 읍내에 가기로 미리 약속을 하신 듯했다.

김장철이 다가오자 한철장사 때문에 신경을 쓰시느라 그러신지 어머니 모습이 더욱 분주해 보였다.

두텁게 층을 이뤄 겹쳐진 고적운(高積雲)에 가려 모습조차 잘 보이질 않는 비행기가 남기는 진동음이 귓가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 하늘 아래 읍내로 뻗어난 부연 신작로 위를 질주하는 크고 작은 자동차들이 남기는 소음이 띄엄띄엄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전 들 주막 버스정류장으로 가시려고 내 어머니와 옥순이 어머니가 함께 오르신 서낭당 고갯마루 아래를 휘어 도는 화물열차의 날카로운 기적 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산기슭에서는 ‘땡그렁땡그렁’ 일요일 아침 예배준비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도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동네 방앗간의 잔뜩 녹이 슨 붉은 함석지붕이 유난스레 높다랗게 보였다. 벌건 한낮은 물론 밤늦게까지 석유 등불을 밝혀 집집마다 순번대로 방아를 찧느라 발동기 소리가 여법 커다랗게 들려왔다. 그리고 다스한 햇볕이 오붓하게 내리쪼이는 뒤뜰 후박나무에서는 짝을 부르는 멧새들의 울음소리도 또렷하게 울렸다.
그 모든 소리들이 불협화음으로 들려와 적적한 고요가 가득 서린 산골짝의 정적을 깨고 있어 이 또한 삶의 꾸밈없는 진솔한 소리인 것 같았다.

부지런한 동네 아낙네들은 겨울 김장을 서둘기 시작했다.
한 집 두 집씩 밭에서 어른 팔뚝만 하게 자란 무를 뽑고 어른도 두서너 포기를 두 손으로 포개들기가 힘이 들 정도로 성글게 잘 자란 배추의 밑동을 부엌칼로 잘라 밭두렁에 뉘어놓고 있었다. 철부지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나는지 밭에 모여 들어 무와 배추를 하나둘씩 밭 가장자리로 나르고 있었다.
싸늘한 날씨에 어린 고사리 손으로 어설프게라도 도우려하는 어린 자식의 마음씨가 보기에 자못 기특해 보였는지 아낙네는 손에 들고 있던 부엌칼로 배추뿌리를 대충 깎아 어린 자식의 손에 들려주었다. 배추뿌리를 한 움큼 입에 베어 물어 입 가장자리에 흙물이 묻어나도 입 안에 달작지근하게 배어나는 맛이 그도 좋은지 아이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초여름 호박꽃이 군데군데 드문드문 피어날 무렵부터 해바라기를 흡사하게 빼닮은 뚱딴지(돼지감자)가 그리 무성하게 들어차더니 이제 절기가 다되어 캐어내려나, 기현이가 제 또래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괭이로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 시절 뚱딴지가 사람 몸에 좋다는 말을 동네 어른들한테 몇 차례 듣기는 하였지만 어느 곳에 좋은지 딱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뉘 말마따나 감자도 아니고 고구마도 아닌 어정쩡하게 생긴 뚱딴지가 볼품도 없고 맛도 별로여서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질 않았다.

이제 넓은 논과 밭에 가을걷이가 끝났으니 겨울 김장을 끝마치고 메주만 쑤고 나면 월동 준비는 모두 끝이나 춥고 긴 겨울을 넘길 일만 남은 듯했다. 점차 날씨가 추워지자 고샅길가 동네 사랑방에는 어른들이 모여 소일거리로 볏짚을 간조롬하게 추려 새끼를 꼬시며 정담을 나누고 한쪽에서는 ‘장군, 멍군’하며 장기 두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막걸리 내기 민화투를 치며 노시는 어른들의 걸쭉한 목소리가 봉창 너머로 떠들썩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동네 어른들은 어쩌다 면소재지에 이발을 하러 나가시거나 또 다른 볼일로 나들이를 하여 마을로 돌아오시면 면소재지에서 보고 들은 세상 돌아 이야기를 나름대로 자상하게 이야기보따리를 구성지게 펼치셨다. 그러면 방 안에 모인 동네 어른들은 그렇지 않아도 바깥세상일이 궁금하셨던 지라 두 귀를 모아 들으셨다.

유일하게 바깥세상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는 문명의 이기인 라디오가 동네에서 겨우 두 집 밖에 없었으니 동네 부잣집 종구네 집과 그 다음으로 잘 사는 영택이네 집뿐이었다. 두 집에 가지고 있는 라디오라고 하는 것이 일제 중고 트랜지스터 휴대용 소형 라디오인데 너나 할 것 없이 먹고 살기가 어렵다 보니 그런 라디오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나마 다른 마을처럼 전기가 들어오질 않아 라디오 몸체 뒷부분에 도시락 반찬통 크기만 한 건전지를 고무줄로 잔뜩 졸라맨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탓에 어쩌다 천둥벼락은 물론이고 비바람이라도 세게 치는 날에는 온통 지직거리는 잡음에 그나마 소리가 잘 들리질 않았다. 그런 라디오라도 유행을 타는 인기 있는 가수의 노랫소리와 연속극 그리고 어쩌다 ‘장소팔과 고춘자’가 하는 만담을 들어보려고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농사일에 피곤함도 잊은 채 동네사람들이 두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 그리 작지도 않은 안방이 꽉 들어찼었다.

그런데 종구네 집이 기성이형과 정희누나의 일로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느라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겼다. 그러다보니 영택이네 집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그 것도 복이라고 영택이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그마저 동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말았다.

그 후 밤으로 남정네들은 동네 사랑방과 막걸리를 파는 삼식이네 아랫방으로 모였고, 아낙네들은 옥순이네 집으로 모이게 됐다.
토방에는 고무신짝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어 밤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등불을 밝혀 흐릿한 불빛 아래 저마다 자기들 신발을 찾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나마 도중에 잠이 쏟아져 하품을 하며 먼저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주위가 어두운지라 얼떨결에 신발을 바꿔 신고 가서 짝이 틀린 신발을 찾느라 한참동안 애를 먹었고, 다음날 날이 밝아서야 각자 자기 신발을 찾아 바꿔 신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렇듯 삶 속에 순수함이 절로 베어났고 사람들의 인성도 유순키만 하여 때 묻지 않아 잔잔한 정감에 물들어 있었던 것 같았다.

그즈음 내 친구 성구는 태권도에 심취되어 열심히 갈고 닦은 보람이었는지 초단을 따 검정색 띠로 묶은 도복을 내 앞에서 들춰 보이며 여법 거드름을 피웠다. 그리고 성구 주변에 또 하나 눈에 띄게 보이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상급생이라고 하여 자기들에게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으며 대하는 태도가 거만스럽다하여 심심찮게 들볶았었는데 요즘은 성구를 대하는 상급생들의 태도가 전과는 달리 부드러워졌다. 아마도 그동안 무술을 열심히 갈고 닦은 위력이 그제서야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가난에 지쳐 그무러지는 마음을 다잡고 아픔을 이겨보려 뜻을 같이 하는 몇몇 학우들과 웅변연습을 부지런히 했다. 그런 나를 눈여겨보셨던지 공민(公民) 과목을 가르치시는 담임선생님이 바쁘신 학무(學務) 속에 시간을 내시어 써주신 원고를 한 구절씩 머릿속에 암기했다.
때론 이해하기 난해한 단어도 있어 그 뜻을 알려고 방과 후에는 선생님께 몇 차례씩 질문을 하여 그 뜻을 하나둘씩 천천히 숙지(熟知)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처음엔 음의 폭을 조절할 줄 몰라 무조건 높이려고 무리하게 소리를 지르니 여지없이 목이 꽉 메어 쉬고 말았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어느 누구는 내 성대(聲帶) 안의 점막이 붓고 피가 터져 나올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웅변할 수 있는 초보적 단계에 도달한다고 일러주셨다.

그리 애쓰는 내 모습을 바라보시던 어머니께서는 부듯하신 표정으로 굵은 소금을 곱게 빻아 물에 타서 소금물로 목을 헹구라고 하셨다. 그리고 성대 보호에 도움이 되라는 뜻에서 평상시에는 순덕이만 주시던 계란을 날로 먹으라고 주셨으며 때론 그토록 아끼시던 토종꿀도 서슴없이 내놓으셨다.

비록 내 작은 몸뚱이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일지언정 굴곡져 오염된 그늘진 세태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부르짖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여야만 가슴속에 오랫동안 응어리졌던 아픔의 덩어리가 조금이라도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리들이 하는 웅변이 다소 어설플지라도 이따금 면소재지에 찾아오는 가설극장의 변사의 어투와는 품격이 판이하게 달라 나름대로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면내 행사장에서 지역 유지들이 거드름을 피며 하는 인사말에 비교하면 더욱 힘 있게 보였으며 국회의원 선거 때 각 후보자들이 하는 연설보다는 진솔함이 더 묻어나는 듯했다.

이제 해가 바꿔 한 학년이 오른 후 이른 봄이 오면 3.1절 기념일에 있을 군내 초, 중, 고등학교 대항 웅변대회가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방과 후에 청소가 끝난 텅 빈 교실에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연습을 하였고 낙조가 붉게 물들어 가는 늦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서낭당 언덕마루에 올라 열심히 발성 연습을 했다. 이따금씩 오고 가는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무엇 때문에 벌건 대낮에 저리 소락떼기를, 있는 힘을 다해 죽어라 질러대는가? 하고 의아스럽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래도 그런 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관심 있게 보아주는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단발머리 내 친구 옥순이였다. 그렇게 내 딴에 열심히 웅변연습을 하면 옥순이는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두 귀를 모은 채 들은 다음 연습이 끝나기 무섭게 작은 두 손을 모아 힘껏 박수를 치면서 말을 건넸다.

“야, 상민아! 너 증말루 잘한다. 뭐시냐? 행사 때마다 말문이 막혀 더듬거리는 면장보다는 몇 곱빼기 낫고 내가 볼 때는 국회의원 나왔다 낙방했지만 그 말 잘한다구 온 사방간데 소문난 은진면에 사는 그 양반보다도 나은 것 같다. 그러닌께 열심히 혀, 알았지?”

그럴 때마다 옥순이의 그런 칭찬이 과하다 싶으면서도 싫지 않았고 관심을 가져 주는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희누스름한 갈대가 불그레하게 물들려 하는 저녁 햇살을 듬뿍 받고 몸을 반쯤 뉘인 동네 어귀 방죽가엔 미파(微波)가 일렁이고 방죽 위 언덕마루엔 동네 아이들이 연을 띄웠나, 성냥갑만 하게 보이는 방패연 하나가 온 하늘을 독차지한 듯 둥실 떠올라 있었다.

그 언덕마루에 느긋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저녁 햇살은 산 밑 종구네 기와지붕에도 내려앉아 번들거리는 새 기왓장이 금방 먹물을 갈아놓은 먹물처럼 윤기가 돌아 거북스럽게 느껴지는 부(富)를 상징하는 듯했고 정반대로 납작 엎딘 내 작은 초가집이 그리도 초라해 보여 외견상(外見上)으로 빈부의 차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제 이틀이 지나고 나면 옥순이 어머니가 종구네 집으로 들어가서 종구 아버지와 부부의 연을 맺고 한 식구가 되어 살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가지고 있던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기만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꼭 그렇게 종구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만 종구네 집 부(富)의 힘을 빌려 옥순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갈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끝없는 반문을 되풀이해 보았다.

그런데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해 당사자인 옥순이가 자기 어머니의 개가로 인해 얻어진 정신적인 충격은 물론이거니와 그로 인한 번민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았다. 그와 더불어 마냥 거북스럽게만 느껴지는 새로 형성되는 가족관계를 종구 역시도 그리 탐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과정을 쭉 지켜 바라보는 나 또한 진정으로 원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어려 미숙한 우리들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어른들 세계에서만 이해가 가능한 또 다른 이유가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 분들 나름대로는 그 이유가 차지하는 비중도 꽤나 큰 듯싶었는데 그 속내를 확연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의문의 겉껍질을 한 겹도 벗기질 못하니 그 답을 찾을 길 없어 그저 생각의 굴레 속에서 엉거주춤하며 어른들의 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며 묵시(默示)할뿐이었다.

구름은 산릉선에 유연하게 높이 떠올라 머물고 하루해가 불그레한 여운을 서쪽 지평선에 물들여 저녁 무렵으로 접어들자 새들은 저마다 제집으로 돌아가려는지 산속 둥지를 향해 머리를 돌려 날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자락을 샅샅이 훑어내려 한 곳에 모인 계곡물 위를 흔적 없이 비추는 창백하다 못해 새하얀 초저녁달이 애념(哀念)의 능선 위, 그쯤에 다소곳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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