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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89 조회 : 2,771




세월이 한 겹 그리고 또 한 겹 연륜(年輪)의 테를 두르는 동안 대자연의 섭리는 생성과 소멸을 끝없이 반복했다.
그런 섭리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들 모두는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주어진 삶의 여정은 실로 예측 가늠키 어려운 미래를 향한 끝없는 지향(志向)인 듯싶었다.
이미 오래 전에 가진 자에 의해 억지로 등 떠밀려 외진 산골로 쫓겨 밀려난 궁핍(窮乏)한 내 처지가 더더욱 그랬다.

또 한 편으로는 옥순이 어머니가 재가를 하셔 정신적 중심축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옥순이의 모습이 초라한 내모습보다 더 안타깝게 보였다.
그렇게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지는 여과(濾過)되지 못한 아픔들을 견뎌내기엔 나이 어린 우리들 모두가 참으로 힘들기만 했다.

그런 이해하기 난해한 기성세대들의 사고에 우리들이 끝내 순응해야만 하는지? 때때로 반감(反感)어린 질문도 거듭해 보았다.
그토록 앞날에 대한 시계(視界)가 너무도 불투명해 그지없이 암울했던 번민의 나날이었다.

어쩜! 가난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슬퍼지려는 감성보다 속된 세속에 대한 분노로 얻어지는 차가운 이성에 온 신경이 더욱 예리해졌다.
그런 환경이 나와 옥순이 우리 두 사람을 어설프게라도 점차 철이 들게 하였던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얻어지는 시련 또한 어쩔 수 없이 우리들 스스로가 감내해야할 각자의 몫인 듯싶었다.

겨울 하늘이라고는 하지만 비교적 우중충한 날이 많아 암울한 삶에 깊이만큼이나 침울했다.
그무레한 날씨 탓인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앙상하게 가지를 드러낸 은행나무의 모습이 그도 초라하게 보였다.
철롯길 양쪽으로 줄져 서있는 전봇대의 전선줄을 세찬 바람이 스치고 지났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 뜻 모를 외로움에 그지없이 적적하기만 했다.

아마도 첫눈이 내리려나? 그런대로 개었던 하늘엔 엊저녁 늦을 무렵부터 잿빛 구름이 서서히 모여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날이 밝아오자 이른 아침부터 온 하늘에 구름이 잔득 끼어 눈에 보일 듯 말 듯 하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맘때쯤엔 첫눈이 그리 옴팡지게 내렸었다. 그러나 해가 바귀어 첫눈이라고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였다.
오후가 되어도 마음에 흡족하리만큼 쌓이지도 못하고 세차게 부는 바람에 난분분했다.

우묵하게 그늘진 곳 새터 마을로 이어지는 잔솔밭에 고만고만한 작은 소나무들이 간조롬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 우듬지에 그나마 조금 쌓인 눈이 채 녹질 않아 햇살에 희번덕이게 보였다.

잿빛 하늘에서 눈이 감질이 날 정도로 쉬엄쉬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툼한 구름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보이던 해가 한낮인데도 희멀겋게 보였다.
마치 어두운 밤에 구름이 품안에 품은 달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겨울은 내 주위에 머물러 있던 그 모든 것들을 다음 해 봄이 올 그 무렵까지 앗아가는 것 같았다.
그로 인해 한 가닥 아쉬움을 남기니 내 스스로 하여금 침잠(沈潛)의 깊은 늪에 빠져들게 했다.

마을 어른들이 늘 말씀하시길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먼저 잡는다.’고 했다.
동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 년 내 먼동이 터 오르기 무섭게 들녘 논밭에 나가 혀가 빠지도록 있는 힘을 다해 피땀을 흘려 농사를 졌다.
허나 실컷 농사를 지어봤자 고래 심줄 같이 마디게 장만한 쌀로 장리변 이자를 갚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다시금 그 지긋지긋한 빚을 내야만 식구들 목구멍에 풀칠을 할 지경이었다.
그러니 죽을 듯 농사를 지어봤자 잘사는 집 쌀섬이나 늘려주고 마니 참으로 허무하기만 했다.

속절없이 오가는 세월 속에 맞이하는 일 년 중 마지막 달이 되었다.
농한기에 동네사람들은 뚜렷하게 할일 없어 이리저리 소일꺼리를 찾아 발길만 분주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내려가는 기온이 싸늘하여 허한 마음만큼 견디기 어려울 만큼 춥기만 했다.
그리고 해가 기울어 칠흑 같은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쳤다.
검둥이와 닭들이 이따금씩 목을 축이는 물도 꽁꽁 얼어붙어 아침이면 순덕이 어머니께서 뜨거운 물로 그릇에 달라붙은 얼음을 녹여 주셨다.

싸리나무 울타리가 일 년 내 비바람에 시달려 희끄무레하게 색이 바랬다.
이른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먼지처럼 떠다니는 작은 부말(浮沫)들의 결빙된 모양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모습을 추운 겨울날에만 볼 수 있는 ‘얼음침’이라고 하셨다.

높게 바라보이는 뒷산 봉우리에 새벽녘부터 유유히 머물러 있던 한 조각구름이 해가 떠오르면 흔적을 지워 스러져 갔다.
마른 풀잎과 나뭇가지에 하얀 눈처럼 얼어붙은 서리의 형체가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여 보기 드문 신비로운 풍경에 흠뻑 빠져들었다.

눈만 뜨면 버릇처럼 바라보는 산자락 전경(全景)이 이제는 무덤덤하게 느껴질 때도 된듯 싶었다.
허나 눈길을 모을 때마다 더욱 생경한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지니 주위를 이루는 모든 사물들이 더불어 모두 참하게 보였다.
뿌연 아침 안개 속에 희뜩희뜩 모습을 드러내는 개울가 섶다리와 햇살에 희뿌옇게 번득거리는 억새의 우듬지도 마음 한 켠으로 정겹기는 매한가지였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오목조목하게 머릴 맞댄 초가지붕 사이로 옥순이네 지붕이 유난스레 눈에 띄었다.
동네잔치가 있었던 엊그제는 그리도 벅차오르는 아픔이 컸던 모양이었다.
학교 수업마저 빼먹은 내 친구 옥순이의 처지가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못 궁금키만 했다.

전란에 이미 고인 되신 옥순이 아버지가 새로 집을 지으셔 그 터에 모녀가 십 여 년을 정붙여 살았다.
그런데 엊그제 종구네 집으로 옥순이 어머니가 새살림을 차려 떠나셨다.
그러자 휑하게 텅 빈 집에 홀로 남게 된 외로움에 가득한 옥순이의 창백해진 얼굴과 축 쳐진 모습이 왜소하게 보이다 못해 애처롭게만 보였다.
그런 옥순이의 가슴 아린 사연도 내가 느끼는 불만스런 삶의 범주 안에 빼놓을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학교 수업 때문에 잔치를 지켜보지는 못했다.
잔치라고 턱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일도 못되는 건 사실이었다.
말이 단출하게 치룬 동네잔치라고는 하지만 어찌 그리도 면내 구석구석까지 소문이 그리도 빨리 퍼졌는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들끓었다고 했다.

종구아버지와 스쳐간 인연이라도 있는 사람들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찾아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준비했던 국수가 모자라 대신 서둘러 지은 하얀 쌀밥에 돼지고기로 손님을 치렀다고 전해 들었다.
그렇게 먼 곳에서 까지 사람들이 내왕을 했던 모양이었다.
허나 속된 말로 엎어지면 코가 닿을 지척(咫尺)인 한마을에 사는 동네 사람들 중에서도 지난 전란에 종구 삼촌으로부터 상처를 받았던 몇몇 가구들은 아예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니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상처에 대한 분노가 생생하게 잠재되어 있는 듯했다.

그렇게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시름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초가집 지붕 위로 저녁연기가 소옴소옴 피어올랐다.
기우는 저녁 해가 아직은 읍내 옥녀봉에 머물고 있어 저녁이 그리 늦지 않았다.
그런데 점점 길어지는 하루해가 지루했는지 벌써부터 허기져 저녁밥이 은근히 그리워졌다.

동네 대다수의 집들이 겨울 반찬거리라고 해야 짜디짠 김치가 전부였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누워 있으면 소금기에 목이 타올라 물을 자주 찾게 되었다.
군데군데 헝겊을 덧대어 깁은 얇은 내복 바람에 찬기가 매섭게 도사리는 부엌으로 물을 뜨러 다니기가 춥고 귀찮았다.
그래서 식구 수에 맞춰 커다란 질그릇에 찬물이나 숭늉을 미리 떠다 방 아랫목에 놓았다.
그런데 방 안은 보온이 전혀 안된 탓으로 버름한 벽 틈사이로 찬바람이 용서 없이 새어 들어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콧등과 발끝이 시렸다.
그래서 아랫목에 물그릇을 놓아두어 이른 새벽 참에 게슴츠레한 모습으로 일어나 물을 먹으려 하면 잠이 덜 깨어 거북스러웠다.
그래도 물을 마시고 나면 잠시나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뿐만은 아니었으니 없이 사는 궁색한 집에 이만 들 끓는다고 그 시절엔 이가 그리도 많았다.
의학적인 관념으로 볼 때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비위생적으로 살았던 시절이라 살충제인D,D,T 하나 없었다. 동네 어린 여자 아이들의 머리카락에 이가 알을 퍼트려 서캐가 군데군데 달라붙었다.
어쩌다 햇살이 올곧게 비추는 양지바른 곳에서 놀고 있으면 뒷덜미가 간지러웠다.
그래서 손으로 슬쩍 더듬어 보면 속내복에서 위로 올라온 이가 굼실거렸다.

그런 탓에 밤이면 집집마다 어머니들이 석유등잔 불 밑에 내복의 이음새 골 따라 깊이 박힌 이와 서캐를 손톱으로 꾹 눌러 잡았다.
조금 성격이 급하신 분들은 등잔불에 서캐를 태우려고 그을려 조금은 역겨운 누릿한 냄새가 났었다.
그리고 화롯가에는 식구들의 내복을 차례대로 벗겨 이를 잡아 화로에 넣어 ‘툭툭’ 이가 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매섭게 스며드는 외풍(外風)을 막아 그런 추위를 조금이라도 버텨 보려고 하였다.
밤에는 방문에 군용담요나 비교적 두껍고 널따란 천을 덮어내려 방문을 가리고 살았다.

자그마한 집체에 단작스럽게 바싹 들러붙은 부엌에서는 순덕이 어머니가 저녁밥이
밥이 얼추 다 되어 가는지 아궁이에서 아직도 타다 남은 성성한 불씨를 고무래로 아궁이 앞턱에 끌어 내셨다.
그리고 질흙을 구워 만든 화로 안에 담고 계셨다.
가뜩이나 엉성하게 지은 집에 사방 방 벽 틈새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와 외풍이 그렇게나 심했다.
순덕이 어머니께서는 싸늘한 방안에 온기를 보태려고 화로를 들어 놓으셨다.
그리고 순덕이를 향해 절대로 불장난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짓을 곁들여 어눌하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순덕이가 말귀를 알아들은 듯 머리를 끄덕이는 모습이 그리도 귀엽기만 해 볼을 살며시 꼬집어 주고 싶었다.

그때 사립짝 밖에 낯선 사람이 왔는지 검둥이가 잽싸게 문밖으로 뛰어나가 큰소리로 짖는 것 같았다.그리고 이내 걸쭉한 전라도 토음(土音)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고 쪽마루에 나서니 전혀 생각지도 않은 방앗간 순태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억세게 으르렁거리는 검둥이의 기세에 눌렸는지 선뜻 마당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한 채 싸릿문 밖에서 주춤대셨다.

더 이상 검둥이가 짖지 못하게 큰소리쳐 마당 한쪽으로 몰아붙이고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그제서야 순태아저씨가 말씀을 하셨다.

“음 상민이 많이 컸구나! 내가 요기까장 온 건 다름이 아니구, 며칠 전에 김장 헐라구 젓갈 가져간 거 돈 좀 줄라고 왔는디, 뭔 놈에 개가 저리두 악발스럽나 모르긋네 참말루. 사방간디 확 터진 외딴집에 보초 하나는 틀림없이 서는 거 같아 꼴에 밥값은 제대루 하는구먼 그려. 그건 그렇구 나두 얼른 가서 방아를 또 쪄야 헐 것 같아 싸게 가봐야 허닌께 그리 알고 느그 엄니 오시면 내가 댕겨 갔다구 말 전해 주거라. 그럼 그리 알고 날랑은 가볼랑께.”

순태아저씨가 아랫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돈을 꺼내셨다. 그런데 낡아빠진 돈이 착 달라붙었는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세어 내 손에 건네주셨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금새 일이 바쁘셔 서둘러 가실 것 같이 말씀하셨던 순태아저씨였다.
빨리 갈 생각은 하지 않으시고 순덕이 어머니가 저녁밥을 차리고 계시는 부엌 쪽을 자꾸만 힐끔힐끔 쳐다보시며 엉거주춤하셨다.
순덕이 어머니께서 부엌 거적때기를 제끼고 나오셔 밥상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시자 눈이 뚫어지게 바라보시다 그제서야 발길을 돌려 동네로 향하셨다.

불그레 타오르는 노을빛이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벼락바위 모퉁이를 지나고 있었다.
개울가 섶다리 위에 장사를 끝내시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검둥이가 언제 보았는지 득달같이 달려갔다.
나 또한 더할 나위 없는 반가움 속에 그 뒤를 따라 마중을 나섰다.

냇가로 내려서는 양지바른 우뚝한 둔덕에 선 버드나무 한 그루가 그리 쓸쓸해 보였다.
작은 멧새들이 죽죽 늘어 내린 앙상한 나뭇가지에 종일토록 재잘대며 자발스럽게 놀았다.
이제 저녁 해 기울어감을 아는지 저마다 잘 곳을 찾아 냉정하게 뒤도 안돌아 보고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 야멸친 모습이 못내 마땅치 않은지 버드나무는 가는 줄기만 바람결에 아늘거렸다.

노을 속에 들녘으로 차츰차츰 내려서는 어둑발에 읍내로 뻗어난 신작로 자갈길이 더욱 뿌옇게 보였다.
드문드문 차들의 모습이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가로수 사이로 자그맣게 보여 더욱 고적(孤寂)하기만 했다.

개골창에서 비릿하게 불어오는 냉기 가득 서린 찬바람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졌다.
섶다리를 건너오신 어머니 몸에서 늘 진저리나도록 맡아 온 젓갈 냄새가 바람결에 더욱 도드라지게 풍겨났다.
어찌 보면 그 냄새가 뭇사람들에게는 가난에 찌든 초라한 냄새로 느껴질는지 몰라도 우리 네 식구에게는 삶을 버텨가는 유일한 냄새였다.
또한 내 어머니의 맺힌 한이 깊숙하게 담겨진 아픔의 냄새였다.
어둠살이 깃들어 가는 산 밑 종구네 기와집을 두어 번쯤 바라보시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그것도 팔자(八字)에 연(緣)이라구, 옥순이 에미가 함께 살아 볼려구 들어 갔는디 출가를 한 정희야 이것저것 다 알 나이가 됐은께 별일이사 있긋냐마는 종구란 놈이 제 딴엔 머리가 굵어졌다구, 속 터지게 애나 안 먹일려는지 모르긋다. 암튼 아무 탈 없이 모다덜 잘 살으야 헐 긴데.”

참으로 요상스러운 것이 사람의 심리라고 하였다.
그렇게 자못 걱정스런 마음으로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뜻이 합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내 생각은 달랐다.
그리 애를 삭이지 못하고 나날을 가슴앓이 하는 옥순이의 애처로운 모습이 언뜻 떠올랐다.
비록 내 생각이 불합리할지라도 차라리 종구가 새중간에서 애물노릇을 하길 바랐다.
그래서 종구네 아버지가 못된 심성으로 살아온 만큼 옥순이 어머니와 종구 사이에서 진저리가 나도록 애를 먹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마치 영택이네 집처럼 다시 갈라섰으면 하는 생각이 부질없이 들었다.
그리되면 옥순이가 잃었던 웃음을 되찾을련지는 나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비스듬히 기운 너덜길을 걸어 냇둑에 올랐다.
다보록하게 늘어선 잔솔밭 솔가지 사이로 석유등잔 불빛들이 들여다보였다.
마을엔 벌써부터 긴 밤 이야기를 시작하는지? 소곤거리는 것 같았다.
어둠살이 나지막이 내리는 초가에선 순덕이 어머니가 등잔불을 켜셨는지 방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이 흐린 달빛에 가려 희끄무레했다.

몇 발짝 앞서가던 내가 조금 전에 순태아저씨한테 젓갈 값으로 받은 돈을 바지주머니에서 꺼내 어머니에게 드리면서 말을 했다.

“참, 엄니! 아까참에 방앗간 순태아저씨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엄니헌티 주라고 허면서 젓깔 값이라구 이 돈 주고 가던디. 받어! 그런디 순태아저씨가 왜 그러는지 모르긋어! 저번참에 종구네 아버지 일 땀시 진정서 도장 받으러 왔을 때두 그러더니 오늘도 말로만 바쁘다구 하면서 빨랑 갈 생각은 않구, 자꾸만 부엌에서 일하는 순덕이 어머니 얼굴을 볼라구 기를 쓰더라구. 도대체 그 양반이 왜 그러는지 모르긋네.”

그러자 어머니께서 돈을 받으시며 대수롭지 않으신 듯 그저 빙긋이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한동네 살면서 서루 얼굴이라두 익힐려구 그랬는가 보다. 그런 걸 가지구 너는 뭘 그리 깊이 생각하냐? 쓰잘데기 없는 생각일랑 말구 그럴 시간 있으면 그 뭐시냐? 그 코쟁이들이 쓰는 꼬부랑 글씨라두 한 번 더 써 보구 읽어. 내 말 단디 알아들었냐?”

내 딴엔 정작 내 말에 함께 편을 들어 순태아저씨의 그런 태도를 탓하실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는 달랐다.
가볍게 넘기시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잘 되질 않아 의아스런 생각에 발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신 채 먼 산등성을 바라보고 계셨다.

애틋한 정이 소록소록 묻어나는 삶의 둥지로 향하는 우리들의 발밑에 밟히는 얼음발이 사그락사그락 소릴 내었다.
그리고 능선마루에 떠올라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달빛에 묻혀 집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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