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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94 조회 : 2,178




늘 그랬다.
마을 앞에 끝모르게 펼쳐진 들녘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마냥 벅차 올랐다.
바로 대단위 농경 지대인 논산 평야가 비옥(肥沃)한 모습을 장대하게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땅은 결코 한치의 거짓이 없었다.
땀 흘려 노력한 만큼 알찬 결실을 우리들 모두에게 고루 되돌려 주었다
그 땅에 몸 붙여 사는 우리들 모두는 농사짓는 일을 천직(天職)으로 알고 살았다.
해가 떠오를 무렵부터 낙조가 깃들 때까지 저마다 혼신에 힘을 다해 땅을 일궈 일용할 양식을 소중하게 거둬들였다.
그러나 그런 천혜의 혜택을 저마다 고루 나누진 못했다.
조상으로 부터 땅 한 평 물려받지 못한 가난한 농민들 대다수는 지주의 눈치나 살피면서 소작농을 지어 겨우 생계를 이어나갔다.
처해진 사정이 그렇다 보니 긍휼한 우리들에겐 긴 겨울이 실로 힘들고 지루할 뿐이었다. 극히 열약한 삶의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늘 가슴 속 깊이 요동치건만 냉엄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 한계를 결코 벗어나질 못했다.
그런 탓에 스쳐 지나간 어제가 오늘과 그다지 별다를 바 없고 서두를 필요 없는 내일이 막연하기만 했다. 그런 관계로 그토록 답답한 생각들이 내 작은 뇌리 속에 늘 만연(蔓延)해 있었다. 아마 그런 사고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함은 피할 수 없는 가난으로부터 얻어지는 반증(反證)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어느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대물림한 가난은 어찌 보면 내 스스로가 감내하며 살아나가야 할 몫인 듯싶었다. 때론 감내키 어려운 고통이 뒤따를지라도 먼 훗날 그 언젠가는 진보된 삶이 도래될 것이라는 다소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살았다.

그 언제부터인가 지루하게 고요한 적막이 산골짝에 두루두루 감돌았다. 아마도 그런 적적함은 내가 아랫마을에서 빚에 쫓겨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부터 수년을 두고 지속된 것 같았다.
내 삶의 그루터기인 조촐한 초가집이 세상 그 모든 것들로부터 소외된 듯싶었다. 더욱이 가을걷이가 끝난 뒤로는 그 누구 하나 살갑게 찾아오는 이 없어 말 그대로 그지없이 적적하기만 했다. 그러다 겨울로 접어들자 싸늘한 찬 공기가 허한 산골짜기에 음흉스런 들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그저 적적한 분위가 짙게 감도는 산자락에 애꿎은 솔바람 소리가 때론 섧디섧게 우는 산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잎이 떨어진지 오래된 마른 나뭇가지와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넝쿨들 모두가 추위에 잔뜩 오그려 주위가 숙연하기만 했다.

단작스럽게 달린 달랑 방 한 칸에 비좁은 부엌이 혹처럼 붙어 있는 보잘것없는 곳이 그나마 내 삶에 꿈의 나래를 키워나가는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그렇듯 작은 초가집일지라도 아침으로는 삐뚤삐뚤한 봉창에 선연한 아침햇살이 삶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듯 인색하지 않게 들이비쳤다.

마을 어른들이 흔히 말씀하시기를 겨울은 추워야 겨울다운 맛이 난다고 너무 쉽게들 말을 했다. 그러나 우리 집처럼 가난에 쪼들려 전전긍긍하는 마을 내 대다수의 집들은 겨울이 마냥 길고 힘에 벅찼다. 그도 그럴 것이 긴 겨울을 날 양식 걱정과 땔감 걱정이 늘 앞섰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잔뜩 기다렸다는 듯이 이내 찾아올 춘궁기를 어떻게 버텨낼까 하는 강박감에 탄식어린 한숨이 절로 새어났다. 그로 인해 매섭게 찾아드는 강추위가 전혀 달갑지 않았다.

다행이도 어젯밤 느지막이 군불을 넉넉하게 지핀 탓으로 밤이 지나 날이 밝았어도 아직은 구들에 온기가 남아 있어 방바닥이 미지근했다.
온기가 온몸으로 감도는 두툼한 솜이불 속을 선뜻 빠져나오기 싫어 얼마쯤을 이부자리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꾸물거렸다. 방문 틈새를 비집는 바람이 싸늘해 예견했던 대로 바깥 날씨가 야물딱지게 추운 듯싶어 강추위의 기세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내 누이동생 순덕이가 말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엔 아직은 서툰 듯해도 이젠 제 나름대로 두서너 개 단어를 연결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아직은 잠이 덜 깨어 온기로 달아오른 두 볼이 발그레 달아올라 두 손을 위로 뻗은 채 천진난만하게 단잠에 빠져 있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작은 모습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주의 깊게 바라보는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굳건한 신뢰 속에 교감을 나누니 우리 네 식구의 온후한 정이 날로 돈독해지는 것 같았다.

작달막한 부엌에선 순덕이 어머니께서 아침밥을 지으시느라 아궁이에 삭정이를 꺾어 넣으려 무릎으로 나무를 꺾는 소리가 마디게 들려왔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순덕이 어머니의 그런 정성어린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릴 뿐이었다.
그와 더불어 먼 훗날 내가 성장한 후에는 그에 버금가게 보답을 꼭 해드리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인 듯싶었다.

찬 서리가 가득 내린 마당에서 세수를 하려고 쪽마루를 내려서면 으레 검둥이가 마루 밑을 얼른 기어 나오곤 했다. 그리고 내 곁에 다가 서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어대며 덩치에 걸맞지 않게 재롱 아닌 재롱을 좀 부산스럽게 떨었다. 그런데 저도 강추위가 그다지 달갑지 않은가?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고 나올까 말까 그 자리에서 어기적거렸다.

하늘엔 몇 덩이 뽀얀 열구름이 서쪽 하늘가로 느릿하면서도 차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울타리 밖 늘 푸른 사철나무 숲에선 한 무리 작은 멧새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저마다 나뭇가지에 사붓사붓 내려앉았다. 그리고 서둘러 아침을 부르는 듯 거침없이 재잘거려 학교로 향하려는 마음을 더욱 다급하게 부추겼다.

눈에 익은 앞산은 변모하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암갈색 옷을 걸쳐 입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느긋한 표정으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난 가을은 만추의 절정을 이뤄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한껏 풍요를 안겨주었다. 그 뒤를 이어 찾아든 겨울이 다소는 삭막하게 느껴질지라도 다시금 다가서는 생동의 계절을 맞이하기 위한 알찬 준비를 하는 듯싶었다.

옥순이네 여자 중학교가 우리 학교보다 하루를 앞서 겨울방학을 했다. 그래서 참으로 모처럼만에 나 혼자서 버스를 이용하여 등교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어머니에게 오랜만에 버스비를 달라고 하자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시며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셨다.

“아니 오늘은 어쩐 일루 버스를 타구 갈라구 그러냐, 왜? 한 며칠 걸어서 댕겨보닌께 이제 더는 다리가 아파 못 견디것는감? 그러닌께 뭣났다구 버스를 안 타구 사서 그 생고생을 했냐? 참 녀석 승질머리 하나는 죽은 지 애비를 딱 닮아서 그런지 참 알다가두 모르것네 그려.”

그라도 하늘 아래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점 남은 피붙이기에 정이 더욱 가는지 눈을 가볍게 흘기시며 웃고 계셨다.

“엄니 그게 아니란께. 어저께 옥순이가 나보다 먼저 방학을 했단께. 그래서 나 혼자 가기가 좀 그래서 오늘일랑은 그냥 버스를 타구 갈려구 그려.”

“음, 근께 옥순이랑 같이 못 가닌께 그런가 보구먼? 기나저나 그 가시내두 승질머리는 죽은 지 아버지를 쏙 빼닮었나, 뭔 놈의 고집이 그리 센지 모르긋다. 지 딴에 지 에미 일루 속이 좀상하드라두 그러려니 허구 살면 모다 맴이 편할 건디, 뭣땀시 그 먼 디를 억지루 걸어서 댕기는지 모르긋다. 가시내가 그러닌께 지 애미두 영 마음이 짠해 죽을라구 허든구먼 그려 암튼 그것두 다 지 팔자지 뭐 에이구.”

어머니 입장에서는 옥순이가 고향 마을에서 겨우 하나뿐인 절친한 친구의 자식인지라 그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모양이였다.

“엄니두 잘 알긋지만 오죽하면 멀쩡한 버스 안 타구 두 발이 부르터 물집이 생기구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뒤지게 추운 들녘 길을 걸어서 그 고생허면서 학교에 댕길라구 허긋어? 그 집 씨알머리들 꼴 보기 싫어서 안 보구 살려구 그러는 거지 뭐. 내가 옆에서 봐도 옥순이두 지네 엄니 때문에 속앓이를 무지허게 허드라구.”

무청 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넣고 쌀뜨물을 부어 끓인 구수한 냄새가 비좁은 방안으로 소박한 내 삶에 증표처럼 잔잔하게 번져났다. 늦잠을 자는 순덕이가 잠에서 깰까 싶어 조심스레 숟가락과 젓가락질을 했다.
그러나 등교에 온통 신경을 쓰다 보니 마음이 급해 밥그릇에 숟가락이 부딪는 소리에 그만 순덕이가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두 팔을 벌려 기지개를 켜고 작은 입을 벌려 하품을 하며 나를 힐끔 쳐다보면서 티 없이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앙증맞게 보였다.

어머니께서 주시는 꼬깃꼬깃한 돈 버스비를 호주머니에 넣고 면소재지 들 주막 간이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집 모퉁이 뒷간 지붕 위엔 물건이 될 성싶지 않아 그냥 내버려둬 말라 볼품사납도록 누렇게 쪼그라든 조롱박 하나가 유난스럽게 눈에 띄었다.
앙상한 줄기에 겨우 매달려 바람에 버둥대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등 굽은 밭둑길을 따라 걸으려니 우묵골 갈참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예사롭지 않게 매서워 코끝과 두 귀가 아리도록 시렸다.

솔가비가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는 언덕바지에 수령이 좀 오래된 잣나무 대 여섯 그루가 아담하게 솔숲을 이뤘다. 바람결에 은은히 번지는 솔향기에 산의 정취를 양껏 느끼게 했다.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겨우 몸을 비켜 설 정도로 폭 좁은 오솔길이 언덕마루로 간조롬하게 트여 있었다. 활처럼 휘어진 산모롱이를 끼고 돌려는데 언뜻 눈에 띄는 것이 있어 시선을 끌었다.
눈과 비바람을 견뎌낸 메마른 덩굴에 알알들이 아주 작아 깜찍하게 보이는 멍감이 보기 좋을 만큼 달라붙어 있었다. 마치 붉은색 강옥을 빼닮은 청미래 알이 농숙하다못해 요염한 모습을 도드라지게 드러냈다.

희뿌연 운무가 아주 옅게 깃든 마을 앞 개여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려니 세차게 몰아치는 골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하여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하늘 높이 쭉쭉 뻗어난 두어 그루 미루나무 윗부분 가지에 지어 놓은 텅 빈 까치둥지가 왠지 쓸쓸하게 보이는 개울둑에 올랐다. 이른 봄부터 그리도 부산을 떨면 시끄럽게 우짖더니 모다 떠나 버려 텅 빈 둥지가 그리도 허전해 보였다.

그런 내 심경을 야유하듯 마을에서 제일 부잣집인 종구네 기와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새집답게 굴뚝 하나도 붉은 벽돌로 맵시 있게 쌓아올려져 있었다. 굴뚝에서는 장작불을 지폈는지 검은 연기가 풍족한 살림살이의 한 단면(斷面)을 보여주듯 희뿌연 연기가 하늘로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종구네 집 토담 또한 마을 여느 초가집들 토담보다는 높게 쌓아올려졌다. 토담에 얹어놓은 기왓장에 밤사이 내렸던 결로(結露)가 아침햇살에 축축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욕심 많은 종구 아버지가 쌀섬이라도 헐어서 값비싼 보약을 드셨는지 한약 냄새가 대문 밖까지 번져났다. 또한 대문 앞으로 오가는 사람들 기척이 들리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사납게 마구 울어대는 거위의 울음소리가 귀에 따가울 정도로 큼직하게 들려왔다.
잠시 후 부엌에서 아침 밥상을 들고 안방으로 향하는 옥순이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 동안 버스를 타지 않고 종구네 집과는 정반대방향으로 걸어 다니느라 서로 얼굴을 대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 연유로 옥순이 어머니를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종구는 아직까지 등교를 하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아침밥을 조금 늦은 듯싶게 먹는 것으로 보아 한편으로는 종구도 옥순이처럼 나보다 하루 아니면 이틀 정도 먼저 방학을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이나 죽마고우인 종구와 나 사이에 말문이 막힌 지가 꽤나 오래된 듯싶어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양손에 검정 옻칠에 자개가 수놓아진 밥상을 들고 부엌을 나서던 옥순이 어머니께서 나와 서로 얼굴이 마주치자 퍽이나 반가워하시며 말을 건네셨다.

“아니, 상민이 아니여? 야, 참말루 니 얼굴 오랫만에 본다. 그래 그동안 잘 지냈냐? 한참 때라 그런지 그새 좀 못 봤다구 무지허게 커번졌구나.”
“예, 그간 안녕하셨어유?”

막상 서로 얼굴을 마주쳤지만 옥순이 어머니가 종구네 집으로 개가를 하고 난 후로는 왠지 모르게 예전처럼 살갑게 느껴지질 않았다. 그저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짤막하게 대답을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도 한때는 그리도 다정다감했던 내 친구의 어머니이자 내 어머니의 절친한 친구였는데 어쩜 나도 모르게 생리적으로 거부반응이 일었다. 어찌 보면 그만큼은 서로의 관계가 서먹해져 다소는 멀어진 듯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난날 가난 속에 빚에 쪼들려 핍박을 받았던 남은 감정 탓인지 종구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하기가 정말 싫었다. 그것은 내 온몸 전체에서 솟아오르는 강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감정의 응어리가 그 언제부터인지 옹골지게 웅크리고 있어 내심 얼른 종구 아버지를 피해 가고만 싶었다. 그러나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 집 앞을 지나가는 낌새를 알아채신 듯 소여물을 주시던 종구네 아버지가 나를 힐끔 쳐다보셨다.

상대가 웃어른이기에 마음엔 전혀 뜻이 없었지만 하는 수 없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바쁜 등굣길을 핑계 삼아 얼른 종구네 집 앞을 비켜섰다.
생각해보면 한 하늘, 같은 산자락 아래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할 고향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허나 서로가 서로를 꺼려하는 참으로 개운치 못한 관계가 어느 시점까지 지속될지는 그 누구도 모를 정도로 검정에 골은 깊어만 갔다.

그와 더불어 비단옷을 화사하게 걸치신 옥순이 어머니의 모습에서 얻어지는 강한 거부감이 그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더욱 멀게 하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단 하나 뿐인 딸자식과 서로 헤어져 그런 환경 속에서 삶을 영위하시는 옥순이 어머니의 심정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허나 내 친구 옥순이가 겪는 마음에 고통이 심하다보니 편파적일지는 몰라도 생각을 가늠하는 기본 추가 자연스레 옥순이의 입장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검회색 바위만이 덩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썰렁하게만 느껴지는 벼랑바위 앞에 닿았다. 세월의 때가 듬직하게 묻어난 바위 틈새에 잎 끝이 햇볕에 그을려 누런빛으로 변해가는 바위손이 추위에 잔뜩 오그려 자릴 잡고 있었다. 면소재지로 이어지는 달구지 길에도 날씨가 추운 이른 아침인지라 오가는 행인이 단 한 사람도 없어 그 또한 공허하기만 했다.

면소재지에 높다랗게 보이는 교회의 십자가와 불그레하게 녹이 슨 종탑이 초가집들과 감나무 사이로 유난스레 돋보여 성스럽게 느껴졌다.
여느 해나 다름없이 성탄절을 맞이하건만 열약한 개척교회인지라 읍내에 있는 교회처럼 유난스레 성탄절 트리를 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교회와 발걸음을 끊은 지 오래여서 성탄절이라고 해도 그저 상징적 의미를 겨우 느낄 뿐이었다.

그보다는 또다시 한해가 기울어 그저 뚜렷한 의미도 남기지 못한 채 다시금 삶의 연륜에 테를 하나 더 두른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동안 의식적으로 멀리했던 탓인지 검정 콜타르를 듬뿍 칠한 지서의 건물이 다소 거북스럽게 보였다.

들녘바람에 묻어 온 결로가 흐트러지는 현상 때문인지 부연 물안개가 희미하게 드리워진 들 주막이 눈앞에 다정하게 다가섰다.
마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들녘 한구석에 자릴 잡은 들 주막은 다른 곳과는 달리 희뿌연 물안개 자주 끼었다.

읍내에 있는 중고등학교가 겨울방학을 시작한 탓인지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과 학생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조금은 홀가분했다. 포장이 안 된 자갈길 신작로답게 덜컹거리며 이리저리 요란하게 흔들리는 시골버스에 몇몇 학생들과 더불어 버스에 올랐다.

가는 흙먼지가 다복하게 내려쌓인 시골 자갈길을 이따금씩 아랫배가 아프도록 덜컹대는 버스가 읍내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계속 달려갔다. 앞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가 일으키는 뿌연 흙먼지에 시야가 잔뜩 가려 차에 후미로 내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잠시 동안이라도 잘 보이질 않았다.
어쩜! 내가 달려가는 이 길은 그 끝을 가늠키 어려운 미지의 앞날에 대한 무한에 도전인 듯싶었다.
그와 더불어 진절머리 나는 이 가난의 멍에로부터 꼭 벗어나고 싶은 심지(心志) 깊은 열망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숙해지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비록 서툴지라도 알찬 자아를 형성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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