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적으로 초겨울 날씨가 그렇듯이 구름과 구름이 층을 이룬 하늘이 희뿌연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얀 구름들이 서로 겹쳐 층을 이룬 하늘에 바지런한 아침해가 구름 틈사이를 어렵게 비집고 곰살갑게 안완한 모습을 드러내 여뉘 날보다 더 마음이 끌렸다.그로 인해 따스한 햇살이 한나절 동안은 토담 위에 머물러줄 것 같은 예감에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지붕들이 무릇 정감 어리게 보였다. 그중 불그레하게 녹슨 방앗간 지붕이 오뚝하게 솟아올라 유독(唯獨) 돋보였다.
다른 곳보다 유난히 볕이 잘 깃드는 방앗간 앞마당엔 참새들이 땅에 떨어진 낱알이라도 주워 보려나, 연신 꼬리를 위아래로 촐싹대며 이따금씩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 하늘 향해 쭉쭉 뻗어난 서너 그루 가중나무도 이젠 방앗간 지붕 높이를 거의 따라잡으려 했다. 가중나무는 이른 봄부터 성가시게 울어대는 까치에게 둥지를 틀 수 있게 선뜻 자릴 내주었다. 허나 이제 세밑이 되니 모다 떠나버린 텅 빈 둥지만을 쓸쓸하게 부둥켜안고 우두커니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점심나절이 가까워오자 햇살이 고샅길 골목에 살뜰하게 들이비쳐 아침에 비해 추위가 좀 풀린 듯싶었다. 그래도 동네 고샅길엔 간혹 어깨를 움츠리고 마실을 가는 할머님들만 두어 분 정도 눈에 띄어 퍽이나 한적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삼일 간격을 두고 마을로 우편물 배달을 오는 우체부 아저씨의 다정스런 모습이 조금 멀찍하게 보였다.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우편 행랑을 왼쪽 어깨에 둘러메고 고샅길 끄트머리 연자방앗간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짐작하건데 군에 가 있는 기성이 형으로부터 오랜만에 편지가 온 듯했다. 그 편지 한 통이 전해주는 의미는 참으로 벅찬 기쁨일 것 같았다. 머릿결이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기성이형 어머니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아빠의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자식을 데리고 일구월심(日久月深)으로 남편의 건안만을 기원하며 사는 정희누나에게도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더 소중할 것만 같았다.
허나 처해진 현실은 그에 부응치 못했으니 지난 전란으로 인하여 종구네 집과 기성이 형네, 두 집 관계에서 벌어진 원한이 여태껏 풀리지 못해 미궁(迷宮)속에 빠져 영원한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그로 인한 종구 아버지의 쇠심줄보다 질긴 고집으로 아직껏 예식도 못 올리고 덜컹 아이만 낳고 사는 기성이 형 두 내외의 입장이 참으로 답답하다 못해 안타깝기만 했다.
초가집 추녀 밑 흙벽에 자빠름하게 기대 있는 굴뚝에선 검정 그을림 내음이 물씬 풍겨났다. 그 내음이 바람 따라 콧속 가득 풋풋하게 배어들어 우리네 삶의 징표처럼 자못 친근감 있게 느껴졌다.
추위 탓인지 발길이 뜸한 고샅길에 ‘뎅그렁뎅그렁’ 워낭소리와 함께 ‘삐그덕삐그덕’ 거리는 소달구지 소리가 등 뒤에서 가참하게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요 며칠 동안 마을로부터 면사무소로 공출미(供出米)를 실어 나르던 순아네 소달구지가 눈에 띄었다. 두 엉덩짝에 살이 도톰하게 오른 누런 황소가 입가에 허연 입김을 내쉬며 그리도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집 앞에 가까이 다가서자 이젠 저도 제 할일을 다해 홀가분한지 목을 바짝 치켜들고 ‘음머’하고 한차례 울음소릴 큼직하게 냈다.
인식이네 집 양지바른 담벼락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토끼집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무토막을 덧대어 만든 벼름한 틈사이로 흰색과 잿빛 토끼 두 마리가 주둥이를 잔뜩 들이밀어 코를 벌름거리면서 밖으로 나오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 토끼 집 바로 밑에는 털색깔이 알록달록한 토종닭들이 여러 날을 두고 파헤쳐 놓은 흙 둥지를 먼저 차지하려고 서로 밀쳐 몸뚱이를 들척거려 마른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토방 위에는 깜빡 잠에 들었던 누렁이가 별안간 들려오는 황소 울음소리에 번뜻 눈을 떠 머릴 들고 이내 사립짝으로 다가서며 어울리지 않게 짖어댔다. 또한 서서히 빛바래져가는 초가집 지붕에 옹종거리던 참새들도 소리에 놀랜듯 ‘포르릉포르릉’ 소리를 유연하게 남기며 조금 높이 날아 우물가 위를 스쳐 지나 주현이네 대밭으로 우르르 잔뜩 몰려가 제가끔 재잘거리며 대나무 가지에 사풋사풋 내려앉았다.
우물가 첫들머리 준섭이네 집은 성품이 인자하신 준섭이 아버지의 후덕한 인심처럼 사립문이 활짝 열어 제켜진 낮은 담장너머로 안채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큰아들 준섭이는 내년 초봄에 있을 중학교 진학 시험공부를 하느라 방학도 잊은 채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하는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안방에서는 준섭이 어머니께서 재봉을 하시나 ‘탈탈탈탈’ 가삐 돌아가는 손재봉틀 소리가 고삿길 까지 들려왔다. 작년에 고추 농사가 풍작을 이뤄 준섭이 아버지가 목돈을 거머쥐셨다더니 이참 저참 해서 이번에 큰맘 먹고 손재봉틀을 번듯하게 들여놓으신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넷!’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왔다. 바깥 마당에 아담하게 자릴 잡고 있는 벼낫가리 앞에서 대추나무 집 상두와 준섭이 동생 준영이 그리고 몇몇 동네 아이들이 모여 제기차기를 하고 있었다. 그토록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그 아이들 중에 실로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사는 어린 동생이 하나 있어 바라보려니 실로 마음이 애잔키만 했었다.
그게 바로 싸리문 앞에 밑둥치가 여법 굵은 대추나무가 서 있는 집에 사는 이제 겨우 아홉 살 난 어린 상두였다.
그러니까 9년 전으로 되돌아가 한국전쟁 때 인민군들이 면소재지와 우리 마을을 점령하고 난 후 내 아버지께서 그리 처참하게 억울한 죽음을 당하신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은 1950년 7월 하순경 늦 더위가 그리도 매섭게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늦여름 무렵이었다.
세상사 인간살이가 어디 그리 만만할까 만은 그래도 있어서는 절대로 안될 일이 우리 마을에 다시금 일어 나고 말았다.다시금 기억에 되뇌이고 싶지도 않은 내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으로 끝을 맺었어야 함에도 인간의 윤리와 도덕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업는 일이 작은 마을 들메에서 또 다시 일어나고 말았다.
놈들의 서슬퍼런 점령 하에서 남로당 출신인 종구네 삼촌 종섭이는 투절한 좌익 사상과 자기 형인 동섭이의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물질적인 면에서 인민군들에게 극대한 협조를 하였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피난을 가지 못해 전전긍긍 하고 있는 우익단체에 가담을 하여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었던 지역민들을 총 뿌리로 겁박하여 검거 또는 사살 하는데 늘 앞장 섰었다.그래서 놈들로 부터 지대한 신임과 인정을 받아 면 인민 위원회 부위원장이란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었다.그러자 기세가 등등하여 그리도 숱한 만행을 직접 지휘 하면서 비인간적이고 부도덕한 짓이 아주 정당한 일인 듯 세상 모르고 살기등등하게 살아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주 오래 전 총각시절 부터 일방적으로 흠모를 거듭해 왔던 상두 어머니가 이미 결혼을 하여 한 남자의 아내가 된 유부녀임에도 자신의 위치와 위력을 앞세워 다시금 흑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을 해낸 것이 전쟁을 이용하여 상두 아버지와 어머니를 영원히 갈라 놓으려는 못된 마음으로 그 동안 눈에 몹시 거슬렸던 상두 아버지를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전쟁 터에 총알받이 정도로 내몰아 위험에 처해 목숨을 잃게 할 목적을 염두에 두고 강제로 면소재지에 있는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끌고 갔다.그러자 상두 어머니께서는 상두 아버지를 구해보려고 온갖 애를 쓰셨다. 그러나 구출 할 방법이 전혀 없자 마음 한쪽으로는 영 개운치 않았지만 결국에는 하는 수 없이 면소재지에 있는 인민위원회에 부위원장 자리에 있는 종구 삼촌을 찾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매번 헛걸음질을 거듭하여 극도로 긴장되고 지쳐서 돌아 온 상두 어머니에게 초생달이 탱자나무 우듬지 위에 해끄름하게 비추어 어둑스름한 늦은 밤에 뜬금없이 종구 삼촌 종섭이가 찾아왔다. 상두 아버지를 풀어줄 방법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어 이를 곧이들은 상두 어머니가 얼마 후에 벌어질 엄청난 일을 예기치 못하고 상두 아버지를 구해보려는 애틋한 마음에 그저 종구 삼촌의 뒤를 따라 나섰다. 인적이 드문 마을 뒷산 우묵한 곳으로 상두 어머니를 유인한 종구 삼촌은 온갖 더러운 회유와 협박을 했다. 그래도 자기의 뜻을 끝내 거부하자 미약한 여자의 몸으로는 도저히 저항을 못할 정도의 강한 폭력으로 모지락스럽게 몸을 빼앗아 상두 어머니께서는 끝내 억울하게 몸을 빼앗기고 말았다.
참으로 내 아버지의 일도 그랬지만 상두 어머니의 일 또한 하늘이 진노하고 땅이 진동 할 정도의 결코 용서 받지 못할 극악무도한 일이었다.
그렇게 불가항력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어도 전란 중에는 서슬 시퍼런 종구네 삼촌이 두려워 쥐 죽은 듯이 살아갈 수박에 없었다. 동네 사람들 그 누구도 감히 그 일을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그저 서로 약속이나 한듯 철저하게 함구무언 하며 살아야만 했었다.
그러던 중 바로 그해 가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유엔 연합군과 국군이 합세하여 인천 상륙 작전이 대대적인 성공을 이뤘다. 그 여세를 몰아 유엔군과 국군의 반격으로 잃었던 서울을 되찾았고 전세가 절대적으로 우리의 아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놈들은 전세가 불리함을 미리 깨닯고 허겁지겁 북쪽으로 달아나기 바뻤다. 그로 인해 우리 남한이 놈들의 더러운 손아귀에서 벗어나 서서히 안정되어 가자 우리 마을에도 고향을 버리고 그 동안 멀리 피난을 갔었던 동네 사람들 모두가 무사히 돌아와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자 기다렸던 듯 상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그 누구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는지 부풀릴 대로 부풀려진 좋지 않은 소문이 좁은 동네는 물론 인근부락까지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는 면소재지까지 널리 쫙 퍼졌다.
그런 천인공노할 반인륜적인 일을 당한 상두 어머니의 심정은 피가 꺼꾸로 솟아 오를 정도의 분노로 가득찼었다. 하지만 차마 산목숨을 억지로 끊을 수는 없었다.그것은 밉던 곱던 간에 그토록 정을 쌓으며 살아 온 남편을 차마 버릴 수도 없었지만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이미 뱃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어린 상두를 끝내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반의 사정을 직간접으로알게 된 상두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메어 터지고 오열이 떨리는 기막힌 사연을 가슴 속에 묻고 제 때에 밥도 제대로 먹질 못한 가운데 치미는 분노와 울화를 다스리려 술에 의존하여 자신을 스스로 자학하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그 모습이 죽은 송장이나 다를 바 없이 변해 버렸고 따가운 동네사람들의 시선을 억지로 피하면서 살아야만 했다.
그런 생지옥에서 가까스로 풀려나온 상두 아버지가 그 일로 괴로워하시며 아예 동네에서 바깥출입을 멈추었다. 종일토록 집안에만 들어앉아 그 일을 핑계 삼아 수년을 두고 술에 만취되어 살림을 몽땅 때려 부수고 상두 어머니를 시도 때도 없이 들볶아대어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사나흘 건너 지속되는 악순환을 견디다 못한 상두 어머니가 그해 늦여름 어느 날 이른 새벽에 홀연히 집을 뛰쳐나가셨다. 그리고 그 후로는 단 한 번 얼굴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없어 여지껏 소식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어린 상두는 어머니의 따듯한 품을 잃은 채 외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그런 뼈아픈 슬픈 사연 속에서도 상두가 아픔을 잘 참고 견뎌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어 기특하고 대견스럽기만 했다.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갈대꽃이 군락을 이뤄 바람에 하늘거리는 둔덕을 지나 채 오리 길이 안 되는 이웃 새터마을로 이어지는 소롯길이 조금 멀게 내다보였다. 동네 남쪽 끝머리 고샅길 한 쪽에 비록 여느 집들과 같은 초가집일지라도 사랑채가 따로 딸려 있는 규모가 비교적 큰 집이 안락하게 자릴 잡고 있었다. 그 집이 바로 영택이네 집이였고 마을에서 종구네 집 다음 가는 부잣집이었다. 한 해 농사를 풍작으로 넉넉하게 거둬들이고 그리도 길지 않은 하루해가 지루하여 소일거리로 틀어놓은 축음기 소리가 그다지 높지 않은 토담 너머로 낭랑하게 들려왔다.
이젠 마을에서는 물론 읍내에서도 등굣길을 오가며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런 축음기 소리도 전처럼 그다지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축음기에서 귀에 익은 ‘굳세어라 금순아’ 라는 박자가 좀 빠른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열약한 삶의 조건 속에서 허덕이는 소작농들과는 달리 윤택한 살림에 생활이 넘쳐나도록 여유롭다 보니 그에 비례하듯 못된 습성은 누구보다 먼저 답습하는 듯했다. 물론 조강지처와 사별하고 수해를 홀로 넘긴 터라 외로워서 그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새로 받아드린 후처를 하나도 모자라 둘씩이나 거느리고 그것도 작은 동네에서 함께 살았다.
영택이 아버지가 다행이도 타고난 성품이 종구네 아버지와는 달라 그런대로 괜찮았다. 허나 여자 문제로 다소 도덕적이지 못한 부분에선 동네 사람들 시선에 그다지 곱게 보이진 않았다.
바람 따라 댓잎이 서로 스쳐 저마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주현이네 집 사립짝 앞에는 시주걸립(施主乞粒)하시는 시주승 한 분이 서 계셨다. 찔러도 바늘 하나 안 들어갈 정도로 야물딱진 자린고비로 온 동네 소문이 파다하게 난 주현이 어머니께서 어쩐 일로 보리쌀 한 되를 정성껏 들고 나와 시주를 하시자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시며 가볍게 머릴 숙여 답례를 했다.
마을 한복판 우물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초가집들의 모습이 화기애애하게 보였다. 너부죽하게 보이는 들녘을 가로지르는 철로엔 저 멀리 서울로 향하는 화물열차가 굉음을 울리며 숨 가쁘게 들녘을 달려 마을을 향해 당차게 달려오고 있었다.
마을 우물터에는 묵묵히 지키는 수호신인양 사시사철 검푸른 빛을 발하는 두 그루 향나무가 턱 버텨 서 있는 우물터에 닿았다. 우물 터 향나무는 만고풍상을 겪으며 온갖 수난을 버텨 낸 마을의 애환 서린 사연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마을 앞 둥구나무와 더불어 온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스럽게 자릴 했다.
우물가 미나리꽝에는 희뿌옇게 얼음이 얼어 있었다. 우물가 개골창 물길 따라 녹아내리는 얼음 위로 쫑긋쫑긋하게 푸른 줄기와 짧은 잎을 앙증맞게 드러내는 미나리가 삭막해진 주변의 쓸쓸함을 한결 덜어주었다.
아직은 하루해가 넉넉하게 남아 저녁밥 지을 때가 덜 되었는지 우물가에는 다행스럽게도 단 한 사람도 없어 마음이 홀가분했다. ‘텀벙’ 소리를 내며 두레박을 우물 안으로 던져 물을 가득 떠올리려하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야! 상민아 물일랑 난중에 깃고 내가 너헌티 꼭 헐 말이 있은께 시방 우리 집으로 빨랑 와봐, 얼른!”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옥순이가 깨금발로 자기네 집 흙 담장 너머로 나를 성급하게 불렀다. 그런데 왠지? 옥순이의 얼굴 표정이 굳어 있어 옥순이도 연자방앗간 대문짝에 그려진 낙서를 이미 본 것 같았다.
“알았어, 금방 갈게.”
대뜸 대답을 해놓고 흐트러진 두레박줄을 가지런하게 추려놓고 서둘러 우물터에서 고샅길로 나왔다. 그리고는 감나무 밑에 녹슨 함석 문짝이 반쯤 열려 있어 마당이 훤히 내보이는 옥순이네 집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옥순이는 연분홍색 털 스웨터에 아랫도리는 옥순이 어머니가 입으시다 두고 가신 듯해 보이는 검정색 몸뻬를 입고 있었다. 화사한 색깔의 그 스웨터는 작년 늦가을에 내 어머니께서 뜨개질하여 떠주신 옷이었다. 옥순이는 오후 한낮 햇볕이 올곧게 내리쪼이는 마루에 앉아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난 아직까장 그놈에 낙서 꼬라지를 보지 못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것지만, 우리 고모가 아침나절에 우리 집에 와서 말을 해줘서 알았는디, 어느 놈이 손모가지로 연자방앗간 대문짝에다 싸강박머리 읍시 낙서를 해놓은 모양인디, 너두 봤냐?”
내가 예측했던 것보다 더 옥순이는 화가 잔뜩 나 있어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응, 나두 어제 봤는디 기분이 영 안 좋더라. 근디 애들이 뭘 알구 그랬것냐? 다 지그 부모들이 책임지지두 못할 말을 씀벅씀벅 허는 걸 옆에서 듣구 지들끼리 그러는 거지 뭐. 그런께 낙서를 한 애들보다 그 말을 한 어른들이 더 밉지 뭐, 안 그러냐?”
격한 쪽으로 자기감정을 모으려는 옥순이를 조금이라도 차분해지게 해보려고 내 감정을 한 박자 줄였다.
“넌 막말루 머슴애닌께 그러는가 본데 난 너랑은 사정이 달라. 시상 없어두 절대루 그냥 넘길 수 없은께!”
작달막한 체구에 어디서 그런 당찬 기운이 솟는지? 생각보다는 받아들이는 옥순이의 태도가 여느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단호해 보였다.
“글구 너두 그렇지, 그 낙서를 봤으면 얼른 지워야지 그게 무신 큰 벼슬이나 한 거라구 그냥 내박쳐둬서 동네사람 이사람 저사람 오고가다 다 보게 허냐? 물 깃는 게 급한 게 아니구 그것부터 싸게 지워야지, 안 그러냐?”
벌건 대낮에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낙서를 지울만한 그럴 용기가 없고 옥순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자꾸만 지나가는 동네사람 누가 볼까 싶어 담장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는 내 속을 환히 들여다보고 책망이나 하듯 다그쳤다.
“알았어. 안 그래두 오늘 저녁 늦게 어두워지면 싹싹 문대서 지울려구 혀. 그러닌께 너무 서둘지 말구 기둘려 봐.” “참! 기나저나 손바닥만 동네에 말들두 많지. 그래 내가 너랑 뭔 넘에 짓을 혔다구 그러는지 당췌 모르긋다. 뭐 너랑 나랑 연애를 한다구? 참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그저 한동네 살면서 하냥 학교 댕깅 게 그리 숭볼거리던감? 안 그래두 우리 엄니 땜시 허구헛날 속이 뒤집어져 죽것는디 누구 염장을 지를라구 그러는가? 참 알다가두 모르것네.”
열기로 가득 달아오른 옥순이가 한참을 이야기 하던 중에 자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부분에서는 조금은 울먹이는 음성으로 힘들게 말을 했다. 그리 가슴 아린 듯 애태우는 모습이 마냥 측은해 보였다.
“그건 참말루다가 니 말이 마땅께. 자기들은 뭐 그리 떳떳하다구 넘 말을 그리 허는지 모르긋다. 뭐 있는 말을 혀야지 택두 없이 그러면 쓰는감?” “야 그기사 보나마나 뻔하지 뭐? 동네에서 그런 입방정 떨구 허튼소리 헐 사람이 누가 있것냐? 대충 어느 정도는 짐작이가지만 시방은 확실하지 않은께 시방은 내가 뭐라 말 않고 그냥 눈치만 보고 있지만 두고 봐라 언젠가는 내가 꼭 밝히고 말 틴께.”
카랑카랑 옥순이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마루 양지바른 쪽에서 슬며시 잠에 들었던 고양이가 두 눈을 번뜩 크게 뜨고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허리를 쭉 펴 슬금슬금 걸어 아랫방 방문 앞으로 자릴 옮기려 했다.
“그려 그건 옥순이 니가 잘 생각했다. 항상 도둑은 뒤로 잡으라구 세상에 비밀은 없다구 언젠가는 누구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게 될 꺼야.”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그런 낙서가 되어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 누군가에게 내 깊은 속내를 그만 들켜버린 것처럼 부끄럽기만 했다. 더욱이 내 마음속으로 옥순이를 좋아했기에 가슴은 더욱 두근거렸지만 시침을 뚝 떼고 나에 깊은 속내를 끝내 감추려 했다. 그리고 애써 옥순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 동조하여 더욱 말들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나의 이중성에 내 자신이 더 껄끄러웠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분명 친구사이를 넘어서는 듯싶은 감정이었다. 그러나 답답하게도 옥순이의 속마음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더욱이 그토록 화를 내며 큰소리치는 옥순이의 태도에서 내 생각이 자꾸만 틀린 것 같아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하며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기도 했다.
“야, 상민아! 근디 내 말 오해허지 말구 잘 들어 봐. 내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닌게 시방은 어차피 방학이라 그렇다 치지만 개학을 허면 널랑은 편하게 버스를 타구 댕겨라. 괜히 나 땜시 말 많은 사람들 입설에 오르내리지 말구. 뭐 나야 이왕지사 그리 맘 먹었으닌께 죽어두 그 집 씨알머리덜 꼴 안 보구 살 틴께 그리 알아라, 알았지?”
옥순이가 다리를 구부리고 마루 위에 앉아 있느라 발이 저렸던지 두 다리를 가볍게 흔들면서 나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을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를 멀리 하려는가 싶어 왠지? 서운하기만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옥순이를 좋아하는 만큼 옥순이는 나와는 전혀 다르게 조금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 불쑥 한마디 내뱉고 말았다.
“야, 옥순아! 니 생각은 그럴지 몰라두 뭐시냐 나는 안 그려. 왜냐면 시방까지 내둥 같이 읍내 학교로 댕겼는디 그 낙서를 했다고 너랑 나랑 서로 떨어져 댕기면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 허긋냐? 뭔가 우리가 양심에 찔리는 일이 있으닌께 그런다구 안 컷냐?”
내동 옥순이가 하는 말에 자분자분하게 대답을 하던 내가 갑자기 언성을 높여 말을 하자 옥순이가 조금은 당황하는 듯싶은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비록 지금의 이 모든 흐름이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라도 결코 후회함은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빛바래지지 않는 우정이 우리 둘 사이에 돈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처해진 유형은 각기 서로 다를지라도 우리 둘은 열약한 환경 속에서 같은 해에 함께 태어났다. 그리고 향리(鄕里) 밭두둑에 태를 묻었고 부끄러운 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고 또 함께 코를 흘리며 자랐다. 더불어 숱한 지난날들을 가난으로 빗어진 온갖 고난 속에 헐벗고 굶주렸어도 강한 의지로 함께 부대끼며 살아왔다. 그저 무의미하게 머물렀다 스쳐 지나는 시간에 흐름은 결코 아니었다. 지향하는 목적이 뚜렷했기에 서로가 애틋하게 감싸며 실로 가파르게 줄달음질하여 어렵고 또 어렵게 지금껏 달려왔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