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해가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음력으로는 이제 겨우 섣달의 끝자락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하듯이 겨울이 유난히 길고 힘들게만 느껴지는 것은 비단 살을 에이는 듯한 강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요인은 찌든 가난에 대한 심한 강박감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 저마다의 마음은 늘 몸에 찌든 가난의 늪에서 그저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안간힘을 썼다. 허나 처해진 주위 환경 속에서 처해진 환경이 너무도 열약했기에 그리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그나마 혹한기에는 어머니께서 네 식구의 생계가 딸린 젓갈장사 행상마져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집안 살림은 눈에 탁 띌 정도로 현격하게 쪼들렸다. 그 여파가 피부에 절실하게 와 닿았으니 턱없이 부족한 양식에 억지로 점심을 건너뛰는 날이 태반이었다.
어른들이야 애써 참아내며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순덕이만큼은 끼니를 건너뛸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침 식사 때 한 움큼 남겨 놓았던 밥에 물을 붓고 끓여 된죽을 쑤어 주었다. 그리고 남은 식구들은 가끔씩 아주 출출할 때 가마솥에 넣고 찐 고구마 서너 개로 끼니를 때울 때가 허다했다. 그렇게라도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했다. 그나마 허기진 배를 달래며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듯 긍휼한 삶은 하루 세끼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궁색하기만 했다. 그에 걸맞게 추위는 여느 해보다 표독스럽게 억척을 떨어 계절이 겨울임을 실감나게 하였다. 제아무리 속옷을 두툼하게 껴입어도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온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라도 산봉우리엔 밤새 내린 눈이 희끗희끗하게 쌓여 곱살한 풍광을 은연하게 드러내 다소나마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 하얀 눈빛 속엔 알듯 모를 듯한 그리움들이 말없이 도사려 깊은 의미를 잠재하고 있었다. 그런 뜻 깊은 의미는 오랜 세월의 번뇌 속에 어렵게 얻어낸 현실적인 포착(捕捉)이었다.
그지없이 열약한 환경적 요인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라 마음은 마냥 적적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심성을 부추기듯 바람이 ‘우웅우웅’ 소리를 내며 산골짜기를 휘어 돌아 여느 날보다 사뭇 어수선했다. 언덕바지 왕소나무에서도 유난스럽게‘쏴아쏴아’솔바람 소리가 귓가에 큼직하게 들려왔다.
마알간 하늘 아래 비석골로 이어지는 둔덕엔 병막 터 정영감네 두 마지기 천둥지기가 흰 눈에 뒤덮인 채 허허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날씨가 찌뿌듯한 만큼 하늘엔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해는 다소 흐릿하게 자태를 드리웠다. 그런 하늘 아래 방대하게 펼쳐진 온 들녘은 뽀얀 눈 속에 침묵에 시위를 하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마을을 포근히 에워싸고 있는 산들도 밤새 내린 눈으로 그나마 갈증 나는 목을 축인 듯 보였다.
이따금씩 겹쳐진 구름사이로 단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해가 한겨울의 황량함을 조금은 덜해 주는 것 같았다. 추녀 끝에 떨어지던 지시랑 물이 강추위에 얼어 붙어 길쯤길쯤하게 매달린 고드름이 햇빛에 반사되어 오색의 영롱한 빛을 진부하게 드러냈다.
이른 아침부터 동구 밖 언덕배기 아카시아나무에서 까치가 자리다툼을 하며 부산스럽게 울어댔다. 그러더니 오후 들어 동네에 낯익은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면소재지에 유일하게 단 하나 있는 성결교회의 교인들이 우리 마을로 심방을 나선 것 같았다. 마을 고샅길 안 입구 쪽에 턱 버티고 서 있는 종구네 집 대문 앞에 머리가 희끗희끗 하신 전도사님과 몇몇 교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며칠 전 부터 들리는 소문에 교회에서 능력 있는 부흥 목사를 초빙하여 부흥회를 한다고 했다. 아마도 그런 일로 우리 마을에 전도를 하러 나섰다 맨 먼저 같은 교인인 종구네 집부터 들른 듯싶었다.
그 이유는 예전처럼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하지도 않는 종구 아버지를 다시금 교회로 인도하려고 다시금 찾아 온 것같았다.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한동안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것처럼 흉내를 냈던 종구 아버지가 아예 신앙생활을 아예 등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유당 정권 아래서 나름 열성 당원이라고 자칭하면서 그토록 유별나게 지난 정부통령 선거에서 남다르게 심혈을 기우려 선거를 도왔었다. 그 결과 자유당이 정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했다. 그러자 그 덕에 숙원처럼 그렸던 기와공장을 세우는 일이 이제 곧 이루어질 것처럼 보여 의기양양하게 온 동네 고삿길은 물론 면소재지까지 활보를 했었다. 아울러 온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면내에 사는 모든 면민들이 모두 기정사실로 믿고 있었다.
허나 3.15 부정선거로 인해 급기야는 4.19 학생의거가 일어났다. 그로 인하여 비참한 말로를 자초한 자유당 정권이 마침내 붕괴되고 말았다. 그래도 국부라고 까지 추앙을 받았던 이승만 대통령은 권자에서 물러나 '하와이'로 기약 없는 망명 길에 올랐다. 아니 어쩜 그리 초라하게 도망을 쳤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성난 민초들에 의해 그렇게 세상이 뒤바뀌고 말았다. 그러자 그 기와공장을 세우려는 일마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허무하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유로 종구 아버지가 무척이나 의기소침해 있던 터였다.
그런데 엎친데 겹친다는 말처럼 그런 와중에 또 하나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하나뿐인 외동딸자식마저 한동네에 사는 총각과 서로 눈이 맞아 출가도 하기 전에 뱃속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러니 그 소문이 온 동네는 물론 면소재지까지 퍼져 우세를 떨만큼 떨게 되었다. 그런 탓에 남들에 눈을 의식해 한동안 바깥출입을 멈추고 드문드문 다니던 교회마저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종구 아버지가 옥순이 어머니와 재혼을 앞두고 산 밑 아래에 새로 기와집을 지었을 때였다. 집을 짓는데 조금 모자라는 목재를 충당하려고 병막 터 정씨 영감네 산에서 임의로 나무 몇그루를 베어 내렸다. 그 일로 정 영감이 읍내 경찰서에 고소를 하여 그곳 까지 끌려가 곤욕을 치루고 나온 터였다.
그런 예기치도 못한 험한 일들이 연이어서 생기자, 그나마 한 조각 남아있는 알뜰한 체면과 자존심마저 마냥 구겨져, 더욱 마을 밖으로 나오질 않으려 했다.
그래도 온갖 우여곡절 끝에 그나마 일구월심으로 기대를 걸었던, 옥순이 어머니와 재혼이 가까스로 성사되었다. 그런 연유였는지 겨우 음참한 마음을 비워 정신적으로 조금은 안정을 되찾은 듯해 보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종구아버지를 면소재지에 있는 교회의 전도사님과 교인들이 다시금 교회로 인도하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재 너머 용암사에 부지런히 불공을 드리려 다니시던 옥순이 어머니까지도 교회로 인도하려는 것 같았다. 그 일로 그새 중간에도 아름아름 낯이 익은 듯싶은 교인들이 종구네 집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종구 대문 앞에 서 있는 교인들 틈새에 참으로 오랜만에 석란이가 모습을 나타냈다. 아마도 석란이가 겨울방학 동안 시간적 여유가 있어 부흥전도회를 도우려 이십 리나 떨어져 있는 연무대에서 일부러 짬을 내어 이곳까지 온 듯싶었다.
목이 긴 하얀 색 털스웨터에 검정색 두툼한 모직 오버를 걸쳐 입고, 빨강색 털실로 짠 목도리를 목에 예쁘장하게 두르고 있었다. 그리 참한 옷차림의 단아한 모습이 여러 사람들 중에 돋보여 유난스레 눈에 띄었다.
그저 허름한 검정색 몸뻬 바지에 색 바랜 털스웨터를 차려입어, 다소 촌스럽게 보이는 옥순이보다는, 석란이의 옷차림새가 더 부유하게 보였다. 더불어 남루한 내 자신의 옷차림에도 다소는 신경이 쓰여졌다.
한동안 그저 잊은 듯싶었던 석란이가 교회 일을 계기로 마을에 다시 나타나자 마음속에 작은 혼란이 슬슬 일기 시작했다. 석란이와 종구와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었던 간에, 나에게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한때는 마음 설레도록 애를 태웠던지라, 지난날에 쌓여졌던 석란이에 대한 감정을 쉽사리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내 속마음을 옥순이가 알아채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우려를 했다. 그리고 도의적으로는 옥순이를 배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도 조금은 들었다.
심방을 온 교인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대접하려는 것 같았다. 대낮부터 종구네 기와집 높다란 굴뚝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여유롭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얼마 후 평소에 자주 들어본 터라, 귀에 낯설지 않은 찬송가 소리가 개울 둑 너머로 잔잔하게 들려와, 나도 모르게 입소리로 따라 불렀다.
울타리 구석에 서있는 대추나무에는 우루루 몰려 온 참새 떼들이 인색하지 않을 정도로 따스하게 내리비치는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시끄럽게 재잘거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땐 참으로 간고하기 그지없어 어렵고 힘들기만 한 시절이었다. 마을 대다수의 집들이 없는 살림에 그나마 양식을 절약해보려고 점심 끼니를 억지로 건너뛰며 살았다.
여느 때처럼 그렇게 점심을 건너뛰기 서운했던지 부엌에서는 순덕이 어머니께서 가마솥에 불을 지펴 고구마를 삶는 냄새가 부엌문 밖으로 흠씬 퍼져났다.
지난번 밤에 옥순이 어머니께서 마실을 오시면서 마대자루 하나를 머리에 이고 오셨다. 아마도 어려운 우리 집 처지를 간과하여 끼니를 잇는데 보탬이 되라고, 그것도 종구 아버지 눈을 피해 고구마를 가져오신 것 같았다. 궁색한 살림살이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라고 도와주시는 옥순이 어머니의 배려가 더없이 고맙기는 했다. 그러나 그 고구마가 종구네 집에서 나온 것이기에 마음으로는 크고 작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난 날에 있었던 종구네 집과 이리저리 얽히고 얽힌 일들이, 남겨 놓은 후유증이 너무도 컸기에 더더욱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처럼 참으로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점심 끼니도 못 때우고 허기지게 보내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굶지 않고 넘길 수 있다는 것이 실리적인 면에서 비굴하리만큼 피부에 빨리 와 닿았다.
그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하루 세끼 밥을 아무런 걱정이 먹고 살 수 있는 평범한 삶을 그토록 바랐지만, 그마저 이루지 못하는 아쉬움에 늘 한숨이 입 밖에 절로 새어나왔다.
아랫마을로 물 길러가려고 부엌의 물두멍에 나무판자 뚜껑을 열고 항아리 안을 드려다 보았다. 물 항아리 속의 일렁이는 물위에 빡빡머리 내 얼굴이 그리도 촌스럽고 초라하게 보였다.
물지게를 지고 사립문 밖으로 나섰다. 마을로부터 외떨어져 있는 산골인지라 가을걷이가 끝난 후로는 앞산 다랭이 밭에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였다. 좁다랗게 이어진 하얀 눈길에 사람 발자욱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어쩌다 눈에 띄는 것은 굶주린 족제비가 먹이를 찾으려, 소롯길을 황급히 가로 질러간 흔적이 겨우 한두 군데 보일뿐이었다.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 온 발자국만이 눈에 띄어,몸으로 느껴지는 적적함은 더할 나위 없었다.
텅 빈 동균이네 원두막엔 지난여름 왕거미가 쫀쫀하게 처 놓은 듯한 거미줄이 바람에 힘없이 흔들릴 뿐이었다. 문득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갈참나무가 앙상하게 가지만을 내밀고 있어 다소는 스산해 보이는 언덕바지에 가쁜 숨을 고르며 올랐다. 다소 싸늘하게 느껴지는 들녘바람을 온몸에 받으니 두 볼이 발그레 달아오르고, 코가 시려 입에서 뜨거운 김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한차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발밑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얀 눈 속에 쌓여 듬직한 모습으로 그 위용을 드러내는, 광활한 논산들녘은 언제나 묵묵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이내 손끝에 닿을 것 같은 마을엔 희뜩희뜩하게 잔설이 쌓여있는, 잿빛 초가지붕들이 그리도 소담스럽게 보여 마냥 정감이 어렸다.
그리고 조금 멀리 강경읍내 쪽으로 눈을 모아 바라보았다. 널따랗게 확 트인 겨울 들녘엔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은백색의 설원을 시원스레 펼치고 있었다.
허한 들녘에 쌀쌀한 바람만이 홀로 지켜 정적미(靜寂美)가 흘렀다. 그리고 저 멀리 들녘 한가운데 외로이 서있는, 눈에 쌓인 작은 역사가 다스한 오후 햇살 아래 소연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차는 멀고 먼 남녘땅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겠노라고, 기적소리를 역동적으로 내질렀다. 역사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간 증기기관차가 남긴 흑연이, 역사 낮은 지붕 머리 위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다시 시계 방향으로 눈을 돌려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만그만한 초가집 사이로 가지만 앙상하게 남긴 감나무가 부유스름하게 보이는, 옥순이네 집이 선뜻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알맞게 빛바래져가는 잿빛 지붕이 다정스럽게 눈 안에 쏙 들어왔다.
사회적인 통념의 잣대로 가늠하여 보면 나와 옥순이가 정을 운운하기엔 아직은 턱없이 어린 나이인듯 했다. 허나 매사 어설프게 보일지라도 주변 사람들의 지나친 제약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옥순이에게 참신한 믿음이 튼실하게 깔리는 그런 사랑을 마음껏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 또한 옥순이로 부터 그런 정을 가슴 벅차오르게 한껏 받고 싶었다. 그저 가벼운 의미로 성급히 다가서질 않고, 진득한 기다림 속에 온유한 교류의 정을 돈독하게 키워나가고 싶었다.
바로 그것이 내 꿈이었으며, 남들 모르게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싶은 절실한 희망이었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그리도 사람들이 들끓었던 마을 앞 둥구나무 밑에는, 스산한 겨울 찬바람만이 쓸쓸하게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렇듯 침잠의 계절답게 둥구나무는 나목의 자태를 쓸쓸하게 드러냈다. 뉘 집 강아지인지 앙증맞게 꼬리를 잘래잘래 흔들며, 나무 밑을 가로질러 고샅길로 바삐 향하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딸그락딸그락’ 가마니틀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와, 허전한 마음에 비록 작게나마 훈훈함을 더 할수 있었다.
마을 안 고샅길이 세 갈래로 나뉘는 연자방앗간 앞에 이르렀다. 양지바른 쪽 추녀 밑에는 두툼한 솜바지와 저고리를 입으신 동네 어른들이 모여앉아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고 계셨다. 방앗간 경태 아저씨가 소뿔로 만들었다는 빨뿌리에 궐연을 끼워 물고, 손짓도 모자라 발짓까지 곁들여 한껏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 하시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 분 특유의 호들갑을 떠시며 웃음 띤 얼굴로 살갑게 말을 부치셨다.
“상민아 날한질라 오라지게 추운디 그래 요기까장 물 길러 왔냐? 참! 고생헌다.”
순태아저씨는 어찌됐던 순덕이 어머니와 혼사를 이루어 보려는 심사에, 동네 어른들 중에서도 유난스럽게 친절히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동네 살면서 정리로 그저 반갑다고 인사를 나누는 한계를, 훨씬 벗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허나! 그런 경태 아저씨의 모습이 내 시야에는 떨떠름하다 못해 퍽이나 거북스럽기만 했다.
이삼일 전 저녁 무렵에 순덕이 어머니께서 저녁밥을 지으시느라 방안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이런 말하면 니놈이 어찌 생각할는지는 모르것다마는 내가 순덕이 에미와 방앗간 경태양반을 짝 지어 줄려는 것은 비록 어려운 살림살이에 입 하나 줄여보려고 그러는 건 참말로 아니여! 니놈이 아직은 나이가 어려서 잘 모르것지만 남녀란 것이 서로 인연이 닿으면 한솥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이여. 그리고 뭐시냐? 순덕이 앞날 교육 문제도 있으닌께 더 그러는 거여.’
그러나 그렇게 말씀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이 그리 달갑지 않아 마음에 팍 와 닿지를 않았다. 그저 진저리쳐지는 가난이 버거워 피해보려는, 궁색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두서너 달 후엔 그동안 정들었던 마을을 떠나, 낯선 타향 땅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그런 탓에 어머니께서 네 식구를 추스르는 일보다는, 순덕이 어머니가 경태아저씨와 짝을 이뤄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면, 어머니와 나 단 두 식구만 남겨 되어 험난한 세파를 헤쳐나감에 있어, 훨씬 더 수월할 것 같아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고뇌 찬 결심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그 것은 삼사일 건너 이 집 저 집 눈치를 살피며 양식을 꾸러 다니시는 어머니의 절박함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으로는 그동안 알뜰살뜰 정이 들었던 두 모녀와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허전하고 우울해졌다.
언제나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그루 등 굽은 향나무가 반갑게 맞아주는 우물터에 닿았다. 아직은 저녁밥 지을 시간이 아직 먼지라 우물가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별로 눈에 띄질 않았다. 우물터 바닥에 살얼음이 얼어 꽤나 미끄러운지라 몸에 중심을 잡고 조심스럽게 딛고 걸었다. 그리고 시려오는 손을 ‘호호’ 불며 우물 안에 두레박을 던져 넣었다.
물을 길어 올리면서 행여 옥순이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은근히 옥순이네집 흙담 너머로 시선을 모아 보았다.
“야! 우리 집에 뭐 훔쳐갈 꺼라두 있냐? 그렇게 눈이 뚫어지게 쳐다보게.”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얼른 뒤를 바라보았다. 옥순이가 똬리를 얹은 머리위에 물동이를 이고 우물터 안으로 들어서며 살며시 웃고 있었다.
전혀 예기치 못했는데 갑자기 눈앞에 옥순이가 나타났다. 그저 반갑기도 하고 마음속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담 너머를 바라보다 내 속마음을 들켜버렸다는 부끄러움이 앞서 새침을 떼고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옥순이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뭘 쳐다봤다구 그러는가 당췌 모르긋다 나는 영택이네 집에서 축음기 소리가 들려서 그냥 쳐다본 건데 그걸 가지고 뭘 그러냐? 너는 참 이상하다.”
다소는 퉁명스럽게 내뱉는 내 말에 멈칫하면서 옥순이가 이내 말을 이었다.
“응, 그러냐? 그럼 내가 잘못 본 모양이구먼. 허기사 니가 뭐 땀시 우리 집을 훔쳐보긋냐? 여튼 미안허다.”
나에게 뒤질 새라 입을 뽀로통하게 내밀며 은연중에 비꼬는 듯 말을 건네는 옥순이가 그도 좋게만 보였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터놓고 속 시원하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런 서먹해지려는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심산에서 옥순이 눈치를 살피면서 다시 말을 걸어보았다.
“참! 아까 참에 우리 집 울타리 너머로 보닌께 화산리 교인들이 종구네 집으로 잔뜩 떼 지어 몰려가는디 석란이가 연무대에서 왔는가? 보더라.”
“응, 그러냐? 그럼 너는 좋것네 뭐.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애가 그 먼디서 요기까장 지 발로 찾아왔은께 어여 가서 반갑게 만나보지 그랬냐?”
역시나 쌀쌀맞게 말대꾸를 하는 옥순이에게 툭 쏘아붙이듯 말을 건넸다.
“야! 너는 참말루 용한 점쟁이인가 보다. 니가 어떻게 내 맘을 안다구 그렇게 힘부로 말을 하냐? 글구 내가 언제 석란이를 그렇게 보고 싶어 했냐?”
“아님 말구 근디 니가 왜? 그렇게 열을 올리구 그러냐? 니 맴이 정말로 안 그러면 그만이지 딥다 화를 내구 그러냐? 괜히 사람 무안하게시리.”
“내가 뭘 화를 냈다구 그러냐? 내 맘이 전혀 그렇지 않은디 니가 자꾸만 석란이 애기를 끄내닌게 그렇지. 그건 그렇구 정임두 같이 온 모양이던디 니덜은 서로 친구지간이닌께 이따가 한번 만나보지 그러냐?”
“뭘 만나보냐? 학교에서두 진종일 눈이 아프게 쳐다보는데 새삼스럽게 만나서 뭐한다냐? 그리고 이러쿵저러쿵 울 엄니 얘기까지 나오면 내 염장 팍팍 문들어지닌께 아예 안 만날란다. 날마다 혼자 먹는 밥도 어설프고 그래서 안 그래도 진작부터 토끼재 외갓집에 한번 가볼까? 어쩔까? 했는디 마침 잘 됐다 이참에 외갓집에나 가서 한 사날 푹 쉬었다 올란다.”
옥순이가 무엇인가? 가슴 속에 꽉 끓이고 있던 것을 쉽사리 풀지도 못해 애를 태우는 듯 좁다란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그런 옥순이의 모습이 왠지? 애처롭고 안쓰럽게만 보였다. 친구들로부터 자기 어머니와 종구 아버지가 재혼한 일에 대하여 거북스런 말을 듣게 되면 자존심이 상할까 봐 애써 석란이를 피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심정을 그 누구보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두 개의 양철통에 물이 가득 담긴지가 꽤나 되었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린 우물터를 쉽사리 빠져나오질 못했다.
비록 나 혼자만의 느낌이었을는지는 몰라도 대화를 계속하면서도 옥순이 얼굴을 바라보는 내 기분은 깊은 몽환적인 느낌 속에 빠져들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의 흐름이 우리 둘 사이를 그렇게 이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느낀 것이 있었다. 감정의 표현이 아주 서툴지라도 옥순이와 같은 공간의 흐름 속에서 함께 머물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뿌듯하게 차오르는 진정한 행복인 듯싶었다.
왼쪽 심장에 박동이 그리 힘차게 요동을 치는데도 쉽사리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다. 그저 남몰래 애를 태우는 것은 아직도 미숙함 때문인 것 같았다. 비록 서툴지라도 그 어느 것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실함이 있다고 나 스스로 용기 있게 자부할 수 있기에 마음이 흡족했다.
어느덧 서편 하늘가엔 불그레하게 타오르는 낙조가 우리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듯 온 누리에 보기 좋을 만큼 물들여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