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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30 조회 : 1,615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논산평야를 끼고. 전라도와 충청도를 가로지르는 금강 둑엔 하얀 클로버 꽃이 수없이 피어났다. 둑 밑 보리밭엔 이삭들이 바람에 하늘거려 온통 초록빛 물결을 이루었고 논배미엔 자운영(紫雲英)이 활달하게 피어났다. 더불어 논길 양옆으로는 새참한 모습의 노란 민들레꽃이 즐비(櫛比)하게 피어났다.
그리 들꽃이 많이 피어나는 천혜의 이곳을 옛사람들은 마을이름을 채화리라고 지은 것 같았다.

날마다 아침 해는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삼십여 리쯤 떨어진 대둔산으로부터 하늘을 가르며 장엄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산을 내려선 해는 황산벌을 단숨에 달려 면내에 하나뿐인 용화리 양조장 지붕 위를 가뿐하게 지났다.
빨간 페인트칠을 한 양조장 지붕을 비켜선 해는 채화국민학교의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이내 마을 앞 산자락에 닿았다. 미운듯하면서도 애틋한 그리움으로 가슴 울먹이게 하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그 산자락에 영면하고 계셨다. 그리고 햇살이 다소곳하게 비추는 구부러진 논밭 길을 따라 어머니께서는 날마다 읍내로 젓갈장사를 나셨다.
옹색하게 작은 초가집은 낮은 추녀의 흙냄새 물씬 배어나는 방 하나에 올망졸망한 부엌이 딸려 있어 말 그대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더욱이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엔 북쪽으로 트여진 봉창 문 틈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스며들어 온몸을 잔뜩 웅크리게 했다.

그라도 방벽 액자 속엔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에 찍으신 듯싶은 흑백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 벽에는 어머니와 내 옷가지들이 버름한 흙벽기둥에 박힌 못에 더부룩하게 걸쳐 있어 가뜩이나 비좁은 방이 아주 답답하게 보였다.
봉창 문 위에는 오학년 때 받은 우등상장이 반듯하게 걸려 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일 년 열두 달을 한 장의 종이에 인쇄한 달력(캘린더)이 밀가루 풀칠로 벽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 계셨다. 깰 듯 말 듯 잠자리에 누워 늦장을 부리는데 온통 보리알뿐인 밥 냄새가 벽의 흙냄새와 어울려 좁은 방 안에 가득 번져나고 있었다.

“상민아, 어여 일어나라! 학교 갈 준비혀야지.”

어머니가 몇 번을 반복하여 부르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두 눈을 비비면서 몸을 일으켰다. 제각기 다른 종이를 오려 군데군데 발라 구멍을 메운 방문을 열고 마루를 내려섰다. 그리고 어림짐작하여 발로 더듬어 흙 묻은 검정색 고무신을 찾아 신었다.
앞마당으로 내려서 듬직한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서는 앞산을 버릇처럼 바라보았다. 이슬에 흠뻑 젖은 잔솔나무들이 아침햇살에 맑고 투명한 빛을 제가끔 완연하게 띄우고 있었다.

사립짝을 나서 텃밭을 지나 원두막을 지나면 작은 개울이 있어 아침마다 그곳에서 세수를 했다. 유리알 같이 맑은 물에 세수를 하려는데 산 까마귀 몇 마리가 ‘까아악 ……. 까악 …….’ 소리를 시끄럽게 내지르며 산 밑 콩밭으로 날아갔다. 아마도 밤사이 나처럼 배가 고팠던 것 같았다.

계절의 흐름은 봄의 문턱인 입춘(立春)이 지난지도 꽤나 되었다. 긴 동면(冬眠)속에 몸을 앙당그레 움츠렸던 개구리가 부스스한 눈을 뜨고 세상 밖으로 뛰어나오는 경칩(驚蟄)도 넘겼다.
청명(驚蟄)과 곡우(穀雨)가 지나니 농부들은 못자리를 만들려고 서둘렀다. 황토(黃土)를 끌어 모아 볍씨를 뿌려 놓은 못자리에는 어린모가 제법 파름하게 자라 싱그러운 모습을 보였다.

따스한 봄날이라고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하 수상한 날씨는 변덕이 그리도 심했다. 한낮엔 여름 반팔 티 하나로도 거뜬할 것 같이 따뜻하지만 산골짝이라 그런지 어둑발이 찾아드는 해 떨어질 무렵이면 바람이 제법 싸늘하게 불었다.
밤늦은 시간에는 가벼운 한기를 느껴 계절이 거꾸로 되돌아가나하는 생각이 들어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가려고 책보자기를 둘둘 말아 어깨에 둘러매고 사립짝을 나섰다. 하얀 구름 틈 사이로 청잣빛 고운 하늘 한 조각이 또렷이 보였다. 그런 하늘빛이 반갑고 고마워 홀가분한 마음으로 앞뜰에 나섰다.
널따란 논배미엔 못자리가 녹색 융단조각을 군데군데 펼쳐놓은 것처럼 곱게 보였다.

빼곡하게 들어찬 독사풀 풀잎 끝에 맺혀 있는 이슬방울이 영롱하게 빛을 내었다. 독사풀 이삭들은 줄기 끝에 얼룩얼룩 제가끔 주황색 바탕에 각색(各色)을 띄우며 불을 밝혔다.
뾰족뾰족 솟아난 독사풀의 수(數)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더불어 논에는 불그레한 빛으로 여울져 물결치는 자운영 꽃이 장관을 이루었다. 야트막한 논둔덕 위에는 샛노란 민들레가 귀엽기만 하고 수줍음 잘 타는 보랏빛 제비꽃이 함초롬하게 보였다.
어느 틈에 그리도 뻘쭘하게 자랐는지 이른 봄 눈길 놓친 냉이가 줄기 끄트머리에 아기별 모양으로 새하얗게 작은 꽃들을 앙증맞게 피웠다. 그리고 가녀린 긴 목을 시나브로 부는 소슬바람에 간지러운 듯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그토록 온 산야가 은혜롭게만 보였다. 허나 가뭄에 기근(飢饉)이라도 겹쳐서 들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지친 얼굴로 저마다 들녘으로 지벅지벅 걸어 나왔다. 들녘에 나물을 뜯어 밥알이 동동 떠올라 스쳐 지나간 나물죽이라도 쑤어 잔뜩 골은 배를 채우려 했다.
명아주 어린순도 밀가루에 섞어 죽을 쑤어 먹었고 독사풀 애순은 나물로 무쳐 먹었다. 독사풀 꽃밥은 둥글고 가는 체로 훑어 솥에 넣고 볶아 죽을 쑤어 끼니를 때웠다. 봄비가 그칠라치면 어른들은 산에 올라 취나물과 고사리 그리고 두릅을 따 허기를 달랬다.
그렇게라도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써 가을 먹을거리가 나올 때까지 겨우 버텨가며 살았다.

어찌 보면 순박하기만 하였기에 제대로 하늘을 원망치도 못하고 진저리쳐지는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여 살았다. 막말로 잘사는 부잣집 소만도 못한 처참한 삶을 살았던 그 시절 우리들 모두는 암울하다 못해 처절하기만 했다.
주황색 독사풀 꽃밥이 마치 잘 빻아놓은 고춧가루 같이 보여 내 짝꿍인 같은 동네에 사는 옥순이와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다.
흙 담장 앞에 쪼그려 앉아 히득히득 웃으며 깨어져 담 밑에 내다 버린 그릇을 주워 모아 그 안에 독사풀 꽃밥을 따다 넣었다. 그리고 동네 어른들 몰래 따온 애호박을 잘게 썰어 함께 버무려 넣고 소꿉놀이를 했다.

너른 들녘 논배미엔 땅거미들이 집을 지어놓고 짝을 이뤄 놀았다. 어벌쩡한 개구리는 사람들 인기척에 놀란 듯 궁둥이에서 하얀 오줌을 찍하고 내리 갈기며 성급하게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더러는 독사풀 숲에 무자치란 놈이 몸을 칭칭 감아 똬리를 틀고 있었다. 흉물(凶物)스럽게 생긴 모습에 가늘고 긴 혀를 주둥이 밖으로 방정맞게 날름거렸다.

젖빛 같은 부연 하늘은 배고픔에 지친 몸 그도 안쓰러워 살포시 보듬어주려는 듯 그윽한 눈으로 바짝 다가서는 것만 같았다. 철딱서니 없는 우리들은 논둔덕에서 달짝지근한 삘기를 얼마나 뽑아 먹었는지 입언저리가 염소주둥이처럼 푸릇푸릇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독사풀 줄기를 알맞게 잘라내어 달달한 연한 속살은 얼른 먹어치우고 겉껍질은 잘 부풀려서 풀피리를 만들었다. 두 볼이 불그레하게 달아올라 터질 것처럼 입에 대고 힘껏 불어 ‘삐이 삐이’ 소리를 내며 뜻 모르게 찾아드는 외로움을 묵묵히 달랬다.

때로는 마냥 부풀어 오른 푹신푹신한 독사풀 밭에 벌러덩 드러눕고 마음껏 나뒹굴었다. 더러는 서로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느라 가는 종아리를 바르르 떨며 씨름을 곧잘 했다. 그렇게 놀다가 더욱 신이나면 가위 바위 보로 편을 둘로 갈라 말타기 놀이도 하며 놀았다.
또 어떤 때는 가지고 놀 고무공 하나 없어 검정 고무신짝을 공으로 삼아 맨발로 공차기를 하며 놀았다. 서로 부딪쳐 넘어지고 엎어지기도 하여 온몸에 진흙이 묻어나고 무르팍에 풀물이 가득 들어도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 터놓고 웃었다.
비록 가난으로 못 먹어 배는 고팠을지라도 단단한 차돌멩이처럼 티끌 하나 없이 자라났다.

무릇 우리들 모두는 무책임한 윗세대들을 굳이 탓하려 않고 그저 자연의 순리에 순응(順應)하며 살았다. 그런 순진함은 싱그러운 풀 내음과 콧속 깊이 익숙해진 풋풋한 흙냄새와 그리고 논밭에 뿌려진 쾌쾌한 거름 냄새까지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옹골지게 내리 비치는 햇살에 마을 앞 냇가의 물결이 금파를 이뤘다. 실개천에서 비릿한 물비린내가 나는 고향땅에서 밝고 따스한 햇살의 축복을 받으며 우리들은 더불어 살았다.

독사풀 밭에서 놀 만큼 놀아 지쳐올 무렵이면 산허리를 휘돌아 빠져나오는 검정 증기기관차를 반갑게 바라보았다.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힘껏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작은 손을 번쩍 들어 동그라미를 그리며 마구 흔들어 주었다.
기관사 아저씨도 그런 모습들이 귀여워 응답을 해주시려는 듯 ‘뽀오오옥, 뽀오오옥’ 우렁찬 기적소리를 온 들녘에 힘차게 울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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