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글, 사진 등의 저작물에 대한 무단복제를 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들메로 가는 길 - 33 조회 : 1,552




마주 바라보이는 앞산 높다란 산봉우리 너머로 두어 차례 기적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아마도 호남선 철길 따라 남행을 계속하던 화물열차가 논산(論山)역에 닿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금 원행을 계속하는 모양이었다.
얼마 후 희뿌연 연기를 하늘자락에 남기며 도심을 빠져 나온 기차는 읍네 외곽 공동묘지가 있는 산기슭을 가볍게 휘어 돌아 나왔다. 세차게 달려오는 기차는 하늘로 치솟는 시커먼 연기와 함께 광폭한 소리를 사주에 굵직굵직하게 남겼다.
한차례 냅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난 기차는 채운면의 앞 들녘을 스쳐 지나며 다음 행선지인 강경역을 향해 푸른 들녘을 두 쪽으로 가르듯 매섭게 질주했다.

여유롭게 휘어 도는 철롯길 아래 냇둑에는 이른 아침나절부터 나서 읍내 오일장에 장을 보러 갔다가 마을로 돌아오는 아낙네들의 잰 발걸음이 눈에 띄었다. 그런 모습들이 냇둑에 매어놓은 검은 염소들과 한데 어우러져 그리 평온하게만 보였다.
금강 하구의 둑 밑으로 보이는 들녘 한가운데. 그리 오랜 세월동안 자리를 지켜온 작은 마을. 한적(閑寂)한 채화리의 오후는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나지막한 언덕 너머 면소재지에는 검정색 콜타르를 칠한 목조건물(木造建物)한 채가 또렷하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곳을 강경경찰서 채운지서라고 불렀다. 그 건물의 울타리에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키가 크고 굵은 미루나무 이십여 그루가 사방으로 에워싸 울타리를 이루었다.
지서 정문 앞 초소에는 내 키보다도 더 큰 총을 어깨에 둘러멘 순경아저씨가 무섭게 버텨서 있었다. 그렇듯이 외형상으로도 퍽이나 위엄을 갖춰 권위적으로 보이는 그곳 지서를 사람들은 가까이 가기조차 내심 꺼려했다.

그렇게 다들 꺼려하는 그곳에서 지난여름 어린 나는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호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평소 내게 앙심을 품고 있던 종구가 학교 아이들에게 지난 번 난리 때 내 아버지께서 인민군 하고 싸우셨는데 그때 아버지께서 비겁하게 미리 겁부터 먹고 논배미로 숨다가 인민군한테 들켜서 따발총 맞고 돌아 가신 것이라고 사실과 다르게 소문을 퍼트려 참기 어려울 정도로 무척이나 화가 났었다.

그 일로 분을 참지 못한 내가 비석골 앞 둔덕에서 종구와 심하게 몸싸움을 했다. 그때 나는 덩치가 큰 종구의 힘에 밀려 콧등을 얻어맞아 코피가 심하게 흘렀다.
그 바람에 화가 잔뜩 난 나는 얼떨결에 옆에 있는 돌덩어리로 종구의 얼굴을 그만 내려치고 말았다. 돌에 얻어맞은 종구가 입언저리에 심한 상처를 입어 얼굴을 움켜쥔 두 손에 붉은 피가 철철 흐르는 모습을 보고 잔뜩 겁이 났다.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하다가 울고 있는 종구를 그 자리에 내팽개치고 앞산 우묵골로 도망쳤다. 그러고 나서 반나절 동안이나 싸리나무 숲속에 숨어 있다가 종구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용만이의 우직한 손에 붙들려 종구네 집 마당으로 그만 끌려가고 말았다.
노발대발(怒發大發)하는 종구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온갖 심한 욕설을 다 들었다. 그리고 무지막지한 그 손으로 귀가 멍멍할 정도로 뺨을 한 대 얻어맞았다. 그래도 분이 가득 차오른 종구네 아버지는 실로 감당키 어려운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으셨다.

“내 원 참! 시상 살다 살다 별 개꼬라지를 다 볼라닌께.으디 새비젓 장시나 해 처먹구 사는 여편네 새끼가 꼴값을 허구 자빠졌네.”

그것도 모자라 종구 아버지의 억센 손에 팔목이 붙들린 채 질질 끌리다시피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면서도 자기 아들을 돌로 무지막지하게 내려친 천하에 나쁜 놈이라고 소릴 치셨다. 또한 고샅길에서 만나는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종구를 가리키시며 나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온갖 참기 힘든 면박을 주셨다.
방앗간 발동기를 돌리시는 순태 아저씨와 동근이 아버지 두 분만 종구 아버지 말을 거들 듯 나를 덩달아 나무라셨다. 나머지 동네 분들은 그렇게 끌려가는 내 모습이 측은하신 듯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계셨다.

한동안 수모를 당하고 나서 지서로 끌려가고 말았다. 도중에 혹시라도 내가 도망을 칠까 싶었는지 종구 아버지가 앞장을 서 거들먹거리며 걸어가셨다. 뒤에서는 우직하게 생긴 용만이가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바짝 따라붙었고, 피로 얼룩진 수건으로 입을 가린 종구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를 지나 면소재지로 이어지는 흙먼지 이는 달구지 길이 그날따라 부담스럽기만 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터벅터벅 걸어 철로 건널목을 넘어 지서로 끌려가고 말았다.

종구 아버지가 지서 초소 앞을 지키는 순경아저씨와 전부터 안면이 있었는지 초소 앞을 거침새 없이 지났다. 지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마치 자기네 집 안방처럼 지서 사무실이 쩡쩡 울리도록 큰소리를 치셨다.

“아 글쎄! 이놈이 애비 없는 만고에 후레자식이라서 그런지 천하에 무지막한 놈이구먼유. 세상에 사람 얼굴을 돌로 때려 이 지경으로 못쓰게 맹길어 버렸으니 이런 놈은 가막소에 쳐 넣어 평생토록 콩밥을 먹여야 쓰것기에 내가 붙들구 왔구먼유.”

더욱 분에 차오르신 얼굴로 엉거주춤 서 있는 종구를 가리키시며 말씀을 하셨다.

‘가막소’ 라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그만 땅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겁에 질려 울면서 수없이 빌고 또 빌었다. 그리 애절하게 비는 내 작은 목소리는 아랑곳 않으시고 지서 주임님이 얼마 전에 새로 왔는지 낯이 선 순경과 서로 인사를 시키고 있었다.
종구네 아버지가 내동 잘 물고 있던 물부리를 입술 가장자리에 삐딱하게 무시고는 그분 특유의 거드름을 잔뜩 피우셨다.
새로 온 순경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지 자기네 논은 사면팔방(四面八方)으로 보아도 그 끝이 안 보인다고 또 한 차례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지서주임이 동네에 모습을 내비치기라도 하면 죽은 조상님이 살아 돌아오는 것처럼 얼른 달려가 아부를 하며 두 손으로 받들어 자기 집으로 모셨다. 그리고 머슴일하는 용만이를 시켜 살이 잘 오른 누런 암탉을 몇 차례나 잡아 주어서 그런지 지서주임과 종구네 아버지가 퍽이나 친숙하게 보였다.
그런 분위기가 가뜩이나 겁에 질려 움츠리고 있는 몸을 더욱 오그라들게 했다.

“아 주임님 지가 사십 평생을 넘게 살았지만 세상에 살다가 살다 이런 꼴은 첨 보네유. 그래 시상에 무지막지한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지 사람을 이 지경까장 맹글어 놓는 법이 하늘 땅 아래 으디 있는감유?”

또다시 지서 사무실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내어지르셨다. 그리고 도저히 분을 못 참겠다는 듯 큼직한 주먹을 불끈 쥐시고 내 앞으로 다가서 곧장 내려치실 것처럼 하셨다.
그런 격한 모습에 자리에 앉아 계시던 지서주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리며 노발대발하시는 종구 아버지 양쪽 팔을 붙들었다.

“아! 이 주사님 좀 참으시고 진정을 하셔유! 내가 이 주사님 심정 모르는 바두 아니구 충분히 이해헐 수 있으닌께 지발 좀 참으시라구유, 그런다구 모던 일이 다 해결되는 거슨 아닌께유.”

겁이 나서 벌벌 떨고 있는 나를 주임님이 자기 앞으로 오라고 부르셨다.

“너 이놈, 등뫼산에 사는거 맞지? 그니까 저번 인공난리 때 인민군허구 싸우다 죽은 강기태 아들 맞지?”

준엄하게 물으셔 겁에 질려 나는 두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겨우 모기만한 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목구멍 안으로 기어들어갈 정도의 작은 소리로 겨우 대답을 하자 바로 주임의 말씀이 한동안 쉴 사이 없이 이어졌다.

“아 이놈아! 아무리 그래두 그렇지 사람을 그렇게 때려번지면 쓰긋냐? 학교에서 니네 선생님이 사람을 돌멩이루다가 막 사정두 읍시 때리라구 그렇게 가르치데? 어디 말 못 허구 사는 소 돼지 같은 짐승들이나 그렇게 싸우는 것이지... 음.”

지서 주임님은 겨우 자리에 앉아 분을 삭이고 있는 종구 아버지에게 말씀하셨다.

“아무튼 이 일은 지가 다 알아서 처리를 할 테닌께 우선 아드님 데리고 빨리 읍내 병원에 가서 치료를 시키세유.”

종구 아버지가 나에게 몇 차례 심한 욕설을 퍼부으시고 분이 덜 풀린 모습으로 종구를 데리고 강경 읍내 병원에 가려고 들 주막 정류소로 향하셨다. 한동안 그리나 소란스러웠던 지서 사무실이 그제야 진정이 되어 조용해졌다.
사무실 왼쪽 자리엔 순경 아저씨가 무슨 서류인지를 열심히 작성하셨다. 그 와중에도 여름더위를 재촉이나 하는 듯 울타리 미루나무에서는 매미와 쓰르라미들이 목을 높여 울고 있었다.
한동안 말이 없으시던 주임님이 사무실 한편에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는 나를 불러 세웠다.

“너 몇 학년 몇 반 이름이 뭐시냐?”
“네, 저는 5학년 1반 4번 …….”

나는 순간 그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굳게 닫고 말았다.

“이름은?”
“······.”
“야 니이름이 뭐시냐구! ‘강’ 뭐시냐? 말 안 할끼여? 그놈 참 고집 한번 세네 그려.”

나는 다그치는 지서주임의 말에도 입을 꾹 다문 채 절대로 열려하질 않았다. 그 우환 중에도 지서주임이 혹시나 내 이름표를 볼까 싶어 얼른 윗저고리 앞가슴을 바라보았다. 그저서야 나는 종구와 엎치고 덮치면서 나뒹구느라 앞가슴에 핀으로 바르게 꽂고 있었던 명찰(名札)이 떨어져나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몇 번을 다그쳐 물으셔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담임선생님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어린 마음에는 큰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당번이었는데 책가방을 두고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교실 안이 온통 난리가 났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나사 너는 잘 모르것다만, 느그 아버지는 내가 잘 안다. 참 한참은 더 살으야 헐 나인디 …….”

지서주임님의 그 말씀에 머리를 숙이고 있던 내 어깨가 들먹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려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느네 아버지는 진짜 훌륭한 사람이었는디 너는 어째서 남을 그렇게 흉측(凶測/兇測)하게 돌로 때려번즛냐?”

나를 향해 물으시는 주임님의 말씀이 너무도 서러운 감정(感情)에 복받쳐 잘 들리지 않았다.

“어이, 오순경! 시방 용화리 쪽으루 순찰 나갈라구 허는 기여? 그럼 마참 잘 돼번졌구먼 그려. 가는 짐에 학교에 들러서 야네 담임슨상한테 다녀가라구 혀 저기 강기태 아덜 땜시 그런다구 허면 잘 알꺼구먼 그려 암튼 조심혀서 싸게 댕겨 오드라구 .”
“예!”

오순경이라는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시자 나는 본능적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얼른 주임님에게 달려가 바지 끝자락을 붙들고 울면서 애원했다. ‘제발 담임선생님께는 알리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나 오순경이라는 분은 내 애원하는 소리를 끝내 외면하고 매정하게 자전거를 타고 출발을 했다.
목록으로

 

Copyrigt By 들메로 가는 길 All right reserved.
Webpage Administrator dooris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