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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34 조회 : 1,527




지서 울타리의 미루나무들이 서로 키 재기를 하듯 하늘을 향해 높다랗게 뻗어나 있었다. 그 나뭇가지에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따갑게 짖어대는 참새들 소리가 심란한 마음을 더욱 부추겼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흐트려져 있는 지서 사무실 정면 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머리가 허연 이승만 대통령의 흑백사진이 네모난 액자 속에 담겨 있었다.
하늘색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네모난 유리창 밖으로 호남선 철둑이 조금 높직하게 바라보였다. 한낮 뜨거운 햇살을 받은 레일에서 번져나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이글거려 온몸이 더더욱 후덥지근했다.

지서주임님이 담배 한 개비를 물부리에 꽂아 입에 무시고 피우셨다. 타오르는 담배 연기가 유리창을 타고 들어온 햇살에 반사되어 푸르스름한 빛을 띠었다. 그리고 조금은 매캐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났다.
그 혼탁한 연기마저도 앞으로 전개될 일로 인해 초조해지는 마음을 더욱 조이는 듯했다. 그런 답답하고 착잡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양쪽 팔 군데군데에 찰과상으로 벗겨진 탓에 상처 난 피부가 따끔거려 손가락으로 침을 묻혀 살살 발랐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으려니 다리에 쥐가 났다. 주임님 눈치를 살피며 다리를 조금씩 펴 가볍게 옆으로 움직였다.

그런 초조한 분위기 속에 얼마가 지난 후였다. 지서 오순경이 밉살맞게 그리도 빨리 학교로 달려가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끼이익 끼익!’ 지서 현관 앞에서 자전거의 브레이크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의식적으로 얼른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검정 뿔테안경을 쓰신 담임선생님께서 자전거에서 내리셨다.
그 순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으로는 도저히 선생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낯이 없어 사무실 바닥을 향해 고개를 더욱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가뜩이나 무더운 날씨에 학교에서 지서까지 짧지 않은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오시느라 힘이 드신 것 같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둔탁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담임선생님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시며 지서주임님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지서주임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에 물고 계시던 물부리에 꽂혀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시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셨다.

“네, 슨상님 어서 오세유. 날씨헌질라 겁나 더운디 요기까장 오시느라구 참말루 수고가 많내유. 지가 선생님을 번거롭게 오시라구 한 긋은 이미 잘 아시긋지만 저 아이 일 때문에 그랬습니다.”

지서주임님이 등받이가 달린 나무의자를 담임선생님께 권했다.

“아무튼 여러모로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모두 다 제가 교육을 잘못시켜서 …….”

미안스러운 마음에 선생님은 더 이상 말씀을 잇질 못하셨다. 그리고 사무실 한구석에 두 무릎을 꿇고 있는 내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시며 만감이 교차하시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무엇을유, 아 슨상님이사 무신 잘못이 있을라구유! 아이들이 다 교육시킨 대로 되던 감유? 아동들을 다루시다 보면 이런 아이 저런 아이 다 있기 마련이지유, 뭐!”

지서주임님이 담임선생님에게 말씀을 하시자 자리에 막 앉으신 담임선생님이 코밑으로 조금 내려온 안경을 손끝으로 버릇처럼 추켜올리셨다.

“그래두 지가 맡고 있는 아동이 이런 짓을 저질렀으니 일선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담임으로서 그 책임이 막중하고 도의적으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척 조리 있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더욱 죄스러워 얼굴을 똑바로 들지 못했다.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는지 귀밑이 울쑥불쑥해지며 두 볼이 마냥 달아올랐다.
또한 가슴은 참새가슴처럼 쉴 새 없이 두근거리기만 하여 사무실 바닥을 향해 더욱 고개를 떨어뜨리고만 있었다.

“저! 주임님 제 아동(兒童)하고 얘기를 좀 나눌 수 있는지요?”
“아, 예 그렇게 하세유.”

주임님은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편히 말씀하시게 배려를 해주셨다. 선생님은 한구석에 꿇어앉아 있는 내 앞으로 다가오셔 한동안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신 채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러면서 울먹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상민아 큰 인물이 될 사람은 절대루 쉽게 화내지 않구 참고 사는 사람이라구 내가 시간 날 때마다 그리 누누이 말을 했는디 그걸 참지 못허구 일을 이리 크게 저질러놓으면 어쩌란 말이냐?”

몹시 걱정하시는 얼굴로 창밖 등나무넝쿨의 늘어진 줄기 따라 군데군데 피어난 보랏빛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신 듯 지서주임님 앞으로 가서 말씀을 하셨다.

“주임님 모든 잘못은 저에게 있고, 또 제가 책임을 지겠으니 일단은 저에게 맡겨주실 수 있는지요?”

담임선생님이 정중하게 말씀을 드리자 주임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을 했다.

“네, 좋으신 말씀이기는 합니다만 슨상님두 잘 아시다시피 이주사 그 영반이 원체 승격이 별나번져서 으쩔란가 모르긋네유,뭐시냐 허기사 아그가 법적으로 미성년자라서 형사소취는 안되닌께 서로 간에 원만하게 합의를 해가지구 일을 마무리 지었으면 좋것네유.”

지서 주임님은 모난 종구 아버지를 크게 의식하시는 듯 말씀하셨다. 주임님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계시던 선생님도 잔뜩 부담스러우신 표정으로 또 다시 말씀을 하셨다.

“네 주임님. 다친 아이에게는 당연히 도의적인 배상을 하여야 옳은 일이구. 그 부모도 같은 우리 학교 학부형(學父兄)이니 지가 손이 발이 되도록 사정해보겠습니다. 그러니 이 어린 아이에게 한번 개과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주임님 얼굴을 바라보시고 간절하게 부탁을 하셨다.

“음, 이주사 그 양반 승격이 좀 별나서 잘될랑가는,,,. 그럼 슨상님이 수고스럽더래두 이주사허구 원만하게 해결을 해주세유. 그라믄 지는 슨상님만 믿구 기둘려 볼 테닌깐유.”

지서주임님이 승낙을 해주시자 참 간사한 것이 사람마음이라고 그제야 나는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던 두려움이 어느 정도는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담임선생님이 더없이 고맙기만 하여 마음에 여유를 조금은 가질 수 있었다.

“주임님 지 청을 들어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강상민이 얼른 일어나서 지서장님한테 잘못을 빌구 고맙다고 머릴 숙여 인사를 드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준엄(峻嚴)하게 말씀하셨고 나는 그제야 사무실 바닥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꿇어앉아 있느라 잔뜩 저려 오는 두 다리를 뒤뚱거리며 주임님 앞에 차렷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모아 잘못을 빌었다.

“너 이놈! 이번 참에 되게 혼 좀 나야 되는디 니 담임선생님이 간절하게 사정을 하셔 니 담임선생님 체면을 보구 한번 용서를 해줄 테닌께 앞으로는 어느 누구 허구도 절대 싸우면 안 된다 내말 잘 알아들었지?”
“네!”

빨리 혼탁한 지서 사무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얼른 짧게 대답을 했다.

“지서장님 참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고 이렇게 선처를 해주셔서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뭘유, 슨상님이 여러무로 고상이 많으셨지유, 참 그라구 우리 집 딸내미는 어케 공부를 좀 하는 건지 모르긋네유.”

주임님이 담임선생님 얼굴을 바라보시며 궁금하신 듯 말씀을 하시자 담임선생님께서 그제야 안정을 찾으신 듯 얼굴에 웃음을 지으셨다.

“네 아주 잘하지유. 아이가 너무 영특해서.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난 편이지유, 자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지서주임님에게 인사를 하시고 지서 사무실 문을 나서려는데 지서주임 사모님이 선생님을 보시고 반갑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석란이 담임슨상님 오셨구만유, 안녕하셨어유? 여기는 무신 일루다가 오셨는감유? 우선 안으로 좀 들어가시지유, 차라두 한잔 대접해 드릴랑게 마침 우리 석란이두 집에 있는디.”

그동안 먼발치서라도 보아온 일이 있어 그리 낯설지 않은 지서주임 사모님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석란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관사에 있다고 하시는 말씀에 나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었다.

자전거의 핸들을 손에 쥐고 계시던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사모님 말씀은 고맙지만 지가 이 아이 일 때문에 볼일이 바뻐서 다음 기회루 미루구 죄송허지만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석란이가 집에 왔다구유?”

석란이 어머니가 관사 안쪽을 향하여 석란이를 부르셨다.

“야, 슥란아! 느네 담임슨상님이 오셨다.퍼뜩 나와서 인사드려라.”

제발 석란이와는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그녀를 부르시는 석란이 어머니가 조금 못마땅하게 느껴져 슬며시 바라보았다. 석란이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보다 훨씬 더 좋은 옷에 예쁘게 화장을 한 모습이었다. 무명저고리에 검정 몸뻬를 입으신 초라한 내 어머니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부유하게 보였다.

“선생님!”

조금 급하게 부르는 석란이의 목소리가 들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단발머리 석란이가 지서건물 벽 모퉁이를 돌아서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선생님 앞으로 달려와 인사를 드렸다.
종구 일로 못내 부끄러워 일부러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핀잔을 주는 듯 말했다.

“야, 강상민이! 넌 무식해터진 깡패냐? 사람을 그렇게 무지막하게 때리게 에이구!”

말을 마친 석란이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고 나는 계속 부끄러워 말을 못한 채 애써 석란이의 얼굴을 피하려고만 했다.

“야, 그리구 우덜 죄다 너 땜시 수업두 제대루 못허구 선생님하구 우리들이 널 을매나 찾아댕긴 줄 아냐? 남샐미(남산리) 토끼재 고개 날맹이까장 널 찾을라구 갔다 왔어 알긋냐?”

말을 끝마친 석란이가 싸늘한 눈초리로 계속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분명히 학교에 왔는데 아침 조례시간까지 그날 주번인 내가 보이지 않아 선생님은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생각하시고 학교 전체를 다 뒤져 찾으신 것 같았다.

“저 석란이 어머님 제가 할일이 좀 많아서 오늘은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군요. 그럼 이만.”
“아니 이걸 우쩌나 오랜만에 오셨는디 대접두 못해드리고……. 그럼 잘 살펴가세유.”

담임선생님과 석란이 어머니가 서로 인사를 나누셨고 석란이는 선생님과 내 뒤를 따라 지서정문 밖으로 나왔다.

늦은 오후 는적거리는 해는 면소재지를 벗어나 들녘 서편 장화리 마을 앞 샛강을 여유롭게 넘고 있었다.

“석란이는 그만 들어가서 공부하고 상민이는 얼른 내 자전거 뒤에 타거라!”

선생님이 먼저 자전거 위에 올라타셨고 나는 자전거 뒷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네, 선생님 안녕히 가세유.”

석란이는 선생님에게만 인사를 하였고 퍽이나 못마땅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선생님과 내가 함께 타고 가는 자전거가 면소재지 앞을 지나 서로가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석란이는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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