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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35 조회 : 1,874




면사무소 앞을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서자 자전거는 저절로 탄력을 받는 듯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자전거의 뒷좌석에 앉아 흔들리는 몸의 중심을 잡으며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온몸으로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휩싸여 너무도 지루하게 보냈던 길고 긴 하루였다. 그 모든 일들은 내 자신이 저지른 그릇된 일이었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 하루는 극도로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초조하게 보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생님의 간곡한 청을 지서주임이 받아들여 겨우 풀려났다는 점이다. 하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될 일이 남아 있어 긴장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번 일의 이해 당사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종구네 아버지이고 보니 상대가 만만치 않아 더욱 긴장감은 극에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담임선생님께서 앞에 나서 원만하게 풀어보려고 노력을 하실 것 같아 미약한 나로서는 참으로 큰 힘이 되었다. 허나 유별나게 모난 종구 아버지의 심성으로 미루어 볼 때 그리 쉽게 일이 매듭지어질 것 같지는 않아 실로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와 더불어 내 어머니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받으실 충격이 클 것 같았다. 그로 인한 부담감에 마음이 무척이나 무거워졌다.

억압된 분위기에 기가 잔뜩 죽어 있다 용서를 받고 지서의 현관 문밖을 나서 밖으로 나오니 우선은 살 것만 같았다. 그와 더불어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가득 담은 바람이 코끝에 상쾌하게 스며들었다.
정말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몸소 깨달을 수 있어 이젠 두 번 다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을 했다.

면소재지 변두리에 위치한 외딴 초가집 안마당 한구석엔 아직은 덜 자란 작은 감들이 술래잡기를 하듯 푸른 잎사귀 사이로 앙증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지서(支署)를 출발할 때부터 입을 굳게 다무신 담임선생님과 등 뒤에 풀이 죽은 채 매달린 나는 그 때까지도 서로 단 한마디 말이 없어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자전거는 양쪽 길옆으로 줄지어 서 있는 크고 작은 가로수들을 뒤로 밀치며 달려가고 있었다. 포장(鋪裝)이 안 된 길은 한 이틀 억세게 내린 빗물에 땅바닥이 군데군데 파여 울퉁불퉁했다. 거칠기만 한 도로는 달리는 자전거를 몇 차례씩이나 들썩거려 몸 가누기가 어려웠다.
광활하기만 한 들녘은 그 끝이 보이질 않아 가물가물했다. 앞 들녘엔 오후 늦은 무렵까지 모내기를 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군데군데 심심찮게 보였다.

어느덧 해는 너른 들녘을 여유롭게 헤집어 서쪽 읍내(邑內)로 다가서려 했다. 청명한 하늘엔 한 시간에 열 번 정도 먹이를 물어다 어린 새끼들의 노란 주둥이 안에 쏘옥 넣어준다는 부지런한 제비들의 모습이 보였다.
처마 밑 둥지 안에 두고 온 어린 새끼가 그도 걱정이 되는지 저녁햇살에 검은색을 선명(鮮明)하게 발하며 마을을 향해 날갯짓을 했다.
새터 마을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약간 비스듬하게 내려서자 검푸른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는 학교 건물이 보였다.

오늘 일로 담임선생님은 화가 크게 나신 듯 평소와는 달리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이따금 오고 가는 낯익은 사람들의 다정한 인사도 그날은 별로 달갑지 않으신지 겨우 머리를 약간 굽히는 것으로 대신하셨다.
그렇게 아무런 말씀 없이 다리에 힘을 주어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셨다.

길고 커다란 소나무를 잘 깎아 세워놓은 국기(國旗) 게양대(揭揚臺)가 학교건물(建物)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교무실(敎務室) 앞에 자전거가 멈춰 섰다.

“강상민! 너 나 따라 교실로 들어와!”

아주 단호하신 표정으로 말씀을 하셨다. 어느 정도 예측(豫測)은 하였지만 너무도 격양(激揚)된 말씀에 몸이 움츠러져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겨우 대답을 했다. 온종일 그토록 시끄럽게 들썩거리던 교실은 무서움을 더하려는 듯이 너무도 조용했다.
햇빛 밝은 밖에 있다가 어두운 교실로 들어와서 그런지 갑자기 주위가 어둑어둑하게 보였다. 선생님은 자전거를 타고 오시느라 엉덩이 부근이 구겨진 아랫바지 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손수건을 꺼내셔 얼굴에 흐른 땀을 닦으시며 말씀하셨다.

“강상민, 너 칠판 뒤에 있는 회초리 가지고 내 앞에 와서 종아리 걷고 서!”

관용(寬容)을 거부(拒否)하는 호된 소리에 잔뜩 겁이 났다. 칠판(漆板) 뒤에 넣어둔 싸리나무 회초리를 들고 두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니가 무엇 때문에 매를 맞는지 이유를 잘 알것지? 난 너한테 참말로 큰 실망을 했어. 어서! 종아리를 걷고 숫자를 세어.”
“네!”

내 밀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선생님은 매를 치셨다. 겁에 질린 딸리는 마음과 종아리가 아려오는 아픔에 이를 꽉 깨물고 숫자를 하나둘 세었다.

“내가 널 그렇게 가르치데? 돌멩이로 남의 얼굴이나 뭉개라고? 가르쳤냐고 어서 말을 해!”
“아니유. 선생님 잘못했어유. 정말 잘못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데 말을 해 보아”
“제가 종구를 때린 것이 …….”

나는 울면서 대답을 하였다.

투명한 교실 유리창 밖으로 내보이는 운동장가엔 플라타너스 나무가 어른 손바닥크기만큼 넙적한 푸른 잎들을 저마다 가지 끝에 달고 있었다.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는 몇 마리 참새들이 그리 힘들어 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내 아픔을 저 혼자만이라도 아는 양 멈춤 줄 모르고 울어댔다.
십여 차례 거세게 회초리를 내리치시던 선생님이 매를 놓으신 것은 교직원들의 저녁 종례를 알리는 방송이 있은 직후였다.

“너 내가 직원종례에 다녀올 동안 반성문 쓰고 있어!”

선생님은 복도에 ‘따그닥따그닥’ 슬리퍼 끄는 소리를 내시며 교실로 들어가셨다. 종아리가 온통 욱신욱신하여 참기 힘들 정도였다.
쓰라린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맺힌 종아리를 매만지며 입에 고여 있던 침을 상처가 난 자리에 바르며 텅 빈 교실을 바라보았다.
검정 먹칠을 한 다음 니스 칠을 한 소나무 책상의 끝부분에 옹골지게 박혀 있는 옹이가 나를 바라보며 비웃는 듯했다. 맨 앞줄 가운데 책상 위엔 채 풀지도 못한 내 검정색 책보자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 그리 외롭게만 보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유산인 양 물려받은 그 지긋지긋한 가난은 마치 돌림병처럼 되풀이됐다. 또한 겨울의 문턱을 막 벗어나면 들녘에 돋아나는 나물을 캐어 죽을 쑤어 연명(延命)을 하였다.
머리 껍질 벗기는 뙤약볕이 기승(氣勝)을 떨치는 여름이면 하지 감자를 으깨어 섞은 보리밥으로 허기진 배를 겨우 채우며 살았다. 그리고 서늘바람 부는 가을 추석명절이나 되어야 겨우 쌀밥에 고깃국 맛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나의 슬픈 유년기(幼年期)였다.

“강상민! 책보자기 들고 나와.”

직원종례를 마치고 돌아온 선생님이 발길을 교실로 들여놓지도 않으시고 교실문턱에 서셔서 말씀을 하셨다.

“너 종구네 집에 가면 두 무릎 꿇고 하늘이 땅이 되도록 머리 숙이고 빌어!”
“네!”

모기보다 작은 소리로 짧게 대답을 했다. 그런 기죽은 현상은 종구 일이 마무리된 그 후에도 얼마동안 버릇처럼 지속(持續)되었다.
어린 나이로는 글자의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생소한 영어문자가 새겨진 크고 둔탁하게 생긴 자물통을 선생님은 교실 문고리에 끼우셨다.
불그레한 노을빛에 물들어가는 텅 빈 교실도 그런 내 모습이 안타까운지 찾아드는 어둠살에 서서히 묻혀가고 있었다. 종일토록 지칠 대로 지친 내 작은 몸뚱이를 매몰차게 밖으로 내모는 듯이 커다란 교실 나무문짝이 굳게 닫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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