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스럽게 붉어지는 저녁노을이 흔적을 지우자 어둠살이 소리 없이 찾아들었다. 저 멀리 들녘너머로 생김새와 높낮이가 제각기 다른 읍내 건물들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금강 둑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어둠속으로 서서히 묻혀가고 있었다. 그 무렵 읍내를 오가는 교통수단이 고작 열차와 버스 편을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하루 통틀어 겨우 네다섯 번 오고가는 기차는 면소재지로부터 역까지의 거리가 오리 길이 훨씬 넘었다. 들녘 한가운데 덩그라니 세워진 작은 간이역으로 걸아서 기차를 타려가기엔 거리가 어중간했다.
더우기 밤으로 운행하는 서울로 가는 완행열차를 타려면 어둠에 잠긴 들녘을 겨우 달빛에 의존하여 걸어가야만 했다. 역으로 향하는 새중간에 인가라고는 하나도 없어 아무리 어른이라도 혼자서 밤길을 걷기엔 다소 을씬년스러웠다. 그런 탓에 멀리 서울이나 광주를 경유하여 목포로 가려면 논산역이나 아니면 강경역으로 가서 열차를 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차의 도착 시간이 잘 맞질 않아 늘 불편했다. 그래서 외지(外地)로 장거리 여행을 할 때가 아니면 면내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버스를 곧잘 이용했다. 그런 연유(緣由)로 읍내로 향하는 버스가 멈춰서는 화산리 주막집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또한 그렇다보니 사람들의 입을 통해 면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소문들이 각 마을로 퍼져나가는 근원지(根源地)가 되었다.
어쩌면 낮에 종구와 나 사이에 있었던 그 모든 일들에 대하여 벌써 소문이 번져났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면내에서 일어난 모든 소문들은 때로는 사실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다소는 과장되게 거침없이 퍼져났다.
저녁 무렵이 되자 아랫마을 초가집 굴뚝에서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밥을 짓는 저녁연기가 어두룩해지는 하늘로 소옴소옴 번져나고 있었다. 점심 끼니를 거른 탓에 허기져 오는 몸은 나른해지기만 했다. 여느 날 같으면 벌써 검둥이를 데리고 벼락바위 앞에서 더디 오는 어머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집에 오셔서 집을 비울 수 없는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오늘의 일에 대해 어머니 얼굴 똑바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묵직한 심리적인 부담감 속에 온 주위가 어둠살에 서서히 묻히고 있었다.
평소에 담임선생님은 자상하게 보이면서도 때론 준엄하게 보였다. 그래서 가까이 대하기가 조금은 거북스러웠는데 오늘 일로 인해 더욱 서먹해져 거리감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 탓에 마루 한 귀퉁이에 부자연스럽게 앉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착 가라앉은 서먹한 분위기를 은근 슬쩍 눈치 챘는지 그리 사나움을 피우던 검둥이도 차분한 모습으로 토방 한쪽에 어물쩡하게 몸을 낮추고 있었다.
“상민아 에미다. 빨랑 나와서 이것 좀 받아라, 얼른!”
그 일로 인한 두려움과 죄스러움 속에서도 애태워 기다리던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신 것은 어둠살이 오솔길 끝부분을 지워갈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얼른 나오라니까 뭘 꾸물거리구 있냐? 아니 누가 왔는가 보네 누구여?”
오글오글 하얀 꽃망울을 달고 있는 도라지가 목을 길게 빼어 내밀고 있는 밭 가장자리를 지나시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응 엄니! 선생님이 오셨어. 담임선생님이.”
머리에 옹기동이를 이고 계신 어머니의 눈길이 선생님과 마주 닿았다.
“아니! 이게 누구랴, 근용이 아닌감? 아니 나 좀 봐. 시방은 선생님이지! 이게 얼마 만이랴, 참 오래됐구먼 그려, 아까 참에 내가 집으루 오다가 들 주막에서 이야기는 대충은 들었는디, 암튼 그일 땜시 왔구먼? 어여 들어가 배고프지? 내가 빨리 밥 앉힐게.”
온종일 머리에 이시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시며 팔다 남기신 젓갈이 들어 있는 옹기그릇을 땅에 내려놓으시며 어머니가 말씀을 하셨다.
“참 고생이 심하구먼 그려 힘들지? 모다 사는 꼴들이 이러니 휴우 그 난리만 없었어두 이리 살지는 않았을 건디. 이렇게라두 만나게 되닌께 정말 반갑구만. 같은 면에 살아두 좀처럼 만나기가 힘드니.그러닌께 작년 가을 운동회 때 만나고 처음인가? 내가 담임 맡고 가정방문 올려고 하였는데 …….”
무언가 어머니의 모습이 애처로운가 말끝을 흐리셨다.
“음, 다 알어, 그 마음. 내 사는 이런 비참한 꼴 안 보려구 그랬지 뭐 차라리 안 오길 잘했지.”
그렇게 두 분은 내가 다니는 국민학교를 같이 졸업한 오랜 친구 사이였고 읍내에서 젓갈 도매상을 하시는 재숙이 어머니와 옥순이 어머니도 같은 반이셨다.
“그나저나 내가 주막에 들러 대충 얘기는 듣고 왔는디 어떻게 된 일이랴?” “음 ……. 지서에서 연락을 받고 가서 내가 상민이 데리고 나와서 종구 집에 가보니 종구가 읍내병원에서 아직까장 안 와서 여기서 기다리는 중이었어.” “참, 사람덜 보기 챙피하구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하것구먼 죽도록 살려구 발버둥 쳐봐야 헛고생이구 글타구 자식새끼가 내 맘 알아주는 것도 아니구 휴우.” “너무 걱정 말어. 내가 힘 있는 대로는 해볼 테닌께. 아무리 옹고집이라구 혀두 빌다 보면 무신 방도가 나오것지, 뭐! 그리고 정 안되면 지네 반 담임하고 같이 와볼 테니께 그리 알구 있어. 그건 그렇구 병원비도 읍내로 갔으니 여법 나올 건디 참 어려운 살림에 걱정이구먼 그려.” “참 더러운 놈에 팔자가 이리두 기구한지 지 애비 그런 병신 몸으로 돌아와 명대로 살지도 못하구 내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구 온다 간다 말 한자리 읍시 그렇게 혼자 세상 떠나버리구 저 더러운 자식 하나 믿고 살아볼려구 추한 소리 다 들으며 혀 빠지게 고생 다하고 다니는디 증말 살기 싫어지는구먼 그려.” “에휴 그러게나, 그래도 으짜것는가? 팔자러니 허구 꾹 참고 살어야지 그래두 더러운 이승이 저승보다는 낫다구 않던감? 지금 이 판국에 내가 뭔 말을 하겠는가? 그저 참구 살라는 말밖에는 …….”
잘 참아왔던 그 모든 아픔들이 지각없는 내가 저질러놓은 일로 못내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시게 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세 사람 먹을 밥을 지을 보리쌀이 담긴 바가지를 마루 한쪽에 밀쳐놓으셨다. 그리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르기 힘이 드신 듯 마루기둥을 바르르 떨리는 두 손으로 잡으시고 소리 없이 흐느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