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떠오른 해가 더욱 도드라지게 보여 낮 더위가 실로 만만치 않을 것만 같았다. 시야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진 산 계곡엔 지형의 높낮이를 따라 계단식으로 층을 이룬 고만고만한 밭들이 퍽이나 아담스럽게 보였다. 계단식 밭 가장자리엔 산릉선을 타고 키가 작은 잔솔나무들이 빼곡히 둘러 있어 바라보기에 좋았다. 그 산자락 아래로 마을 앞을 스쳐 지나는 개울물이 사계절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개울을 가로 지르는 호남선 철로엔 이따금씩 증기기관차가 검은 연기를 흩트리며 힘차게 달렸다. 여느 시골 마을의 모습이 모다 그렇겠지만 그렇듯 마을 주변을 감싸고 있는 아기자기한 풍경은 언제나 바라보아도 정겹기만 했다.
두 해 전쯤으로 기억된다. 종구네 집에 소작을 부쳐 먹고 살던 남순이네가 오랜 고심 끝에 고향을 떠났다. 소작농에 한계를 느꼈는지 큰 도시로 나가 막벌이라도 해서 살아보겠다고 도청소재지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그 남순네 집이 바로 우리 집 앞에 작달막한 밭을 일구고 있었다. 그저 부르기 좋아 밭이라고는 하지만 산기슭에 단작스럽게 달라붙은 이십여 평이 채 되지 않아 보잘 것 없는 화전이었다. 그 밭은 좀 더 엄밀히 따지고 보면 종구네 산에 딸려 있는지라 그 토지에 대한 소유주는 종구네 아버지였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함부로 남에게 팔수도 없는 밭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 남순네 밭을 어머니가 당분간 빌려서 틈나시는 대로 정성들여 일궈놓으셨다.
작달막한 밭엔 개구리참외가 하늘 향해 둥그런 배를 불쑥 내밀어 익어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눈곱을 떼면서 하나둘씩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참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앞 개울가에 세수하러 가기 전 꼭 한 바퀴 둘러보며 혹시나 누가 따갈까 싶어 줄기에 달린 참외를 세고 또 세어 보았다. 그맘때쯤이면 아침 일찍 원두막에 나오신 동근이 아버지는 나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상민아, 많이 열렸냐? 순을 잘 집어줘야 알이 굵어진다. 그리고 못된 놈들이 우리 밭에 들어와서 나 몰래 참외를 따가나 잘 봐 줘라. 금년 수박농사만 잘되면 내가 니 운동화 한 켤레 사줄 틴께, 알았지?” “네, 아저씨 꼭 사주셔야 되유.”
그 시절 가난한 삶을 살았던 우리들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나이 어린 아이들은 신발의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하기가 그렇게도 힘이 들어 우스꽝스럽게 거꾸로 바꿔 신고 다녔다. 그런 탓에 한여름에는 발가락 부분만 하얗고 발등은 온통 햇볕에 검게 그을렸다. 들메 마을을 끼고 흐르는 금강의 물이 서해바다로 빠져나가는 하구에 군산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무척이나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서해 바다에 있는 항구도시라는 것을 지리부도(地理附圖)에서 보아 겨우 알았을 뿐이었다. 위치가 저녁 해 저무는 강경 읍내보다 더 먼 곳이라고만 막연하게 생각을 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신고 있는 고무신 바닥에 ‘만월’이란 한자(漢字)의 글이 찍혀 있었다. 그 신발이 그곳 군산 어디쯤에 있는 신발공장에서 만든다는 것을 어른들의 말씀을 통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닳아 해진 옷들은 군데군데 천 조각을 이어 바늘로 꼼꼼히 꿰맸고, 유난히 무릎 부분에는 덧댄 헝겊천의 이음새가 더 심하게 불룩 튀어나왔다. 그리고 지우개도 안 달린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 글씨를 쓰다보면 재질이 약한 공책 종이가 한쪽으로 힘없이 밀리면서 찢어졌다. 여법 사는 형편이 나은 집 아이들은 검정색 운동화를 신었고 읍내에서 사온 천 조각에 비닐 조각을 덧대어 재봉질을 한 가방을 한껏 뽐내며 들고 다녔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은 읍내 직조(織造) 공장에서 짠 베 조각을 잘라 만든 헝겊 천 보자기에 책과 공책을 싸서 어깨에 둘러매고 다녔다. 어쩌다 등교 시간이 늦어 조금만 뛰어도 ‘딸랑 딸랑’ 요란스럽게 나는 필통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다녔다. 일 년에 두 번 맞는 명절날에는 새 신발을 사오는 엄마를 어린 동네 아이들은 동구 밖에 나와 옹기종기 모여앉아 해 저무는 줄도 모르고 두 눈들이 빠져라 기다렸다. 그렇게 귀하고 값비싼 운동화를 사 주신다는 동근이 아버지 말씀에 귀가 번쩍하여 우리 밭처럼 늘 열심히 밭을 지켜주었다.
참외의 겉모습이 볼품없는 개구리처럼 생겨 개구리참외라고 불렀지만 그 속맛은 무척이나 달기만 했다. 그날 밭에서 그중에서 제일 잘 익은 두 개를 어머니가 모르시게 따서 한 개는 선생님에게 드리고 남은 한 개는 미운 듯싶으면서도 싫지 않은 석란이에게 주려는 마음에서 나 혼자만 알 수 있는 풀숲에 잘 숨겨놓았다. 빈부의 차이에서 오는 열등감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만이 가난한 내가 작은 성의라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머니가 서둘러 아침밥을 드시고 읍내로 장사를 나가시기 전에 이미 어젯밤에 보셨던 통지표를 마음에 흡족하신 듯 또다시 바라보셨다.
“상민아. 그려 정말 잘했다, 잘했어. 에미는 이런 낙으로 사는 기여. 꼭 더 열심히 혀서 내후년에는 강경중학교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해야 돼.”
눈시울을 붉히시던 어머니는 바느질그릇 속에서 도장을 꺼내셔 두어 차례 입김으로 호호 불어 생활성적표의 학부형 란에 도장을 찍어주셨다.
푸르다 못해 검은빛의 띠를 구부려 두른 학교의 측백나무 울타리가 들녘 밭 너머로 보였다. 학교로 향하는 마을 아이들의 모습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개울둑 길로 내달렸다. 두 사람에게 순수한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어 소중히 안고 달리는 두 개의 개구리참외도 같은 반 아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제일 먼저 교실에 도착하려는 마음으로 더욱 뛰어 달렸다.
턱밑까지 차올라 가누기 힘든 숨을 몰아쉬고 교실에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맨 먼저 교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누가 볼까 싶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몇 번인가 교실 옆의 복도(複道)를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 교실 앞에 자리한 선생님의 서랍 속과 창문가 석란이 자리의 책상 속에 개구리참외를 넣은 후 마치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운동장으로 뛰어나왔다.
“반장은 어제 나누어준 성적표 도장 받은 사람 것 걷어서 교무실로 가져와!”
아침조회를 마치신 선생님은 책상서랍을 열지 않으셔 참외를 못 보시고 교무실로 향하셨다. 석란이 자리에는 석란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의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야, 누가 내 자리에 쌩참외를 갖다 놓았어?”
개구리참외를 손에 든 석란이가 소리쳤다. 그러자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아닌디 …….”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얼굴이 달아올라 애써 가누려 했다.
“뭐, 내가 거지인 줄 아나 봐? 생긴 것두 뭐 같은 이런 걸 주게. 에이 기분 나뻐!”
석란이는 개구리참외를 들고 교실 끝으로 걸어가 휴지통에 버리면서 말을 했다. 상당히 거만스럽게 느껴지는 석란이의 말에 나는 기분이 무척 상했다. 아니 그보다는 순수한 내 마음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그 불쾌함으로 석란이를 흘겨보며 말을 했다.
“야, 윤석란! 너 그렇게 말하면 되냐? 참외를 받은 네가 거지면 준 사람은 더 거지겠네?” “뭐라구? 야, 강상민! 니가 왜? 나서서 그러는디? 도둑이 지발 저린다구 정말 웃기고 있네.” “뭐 내가 웃긴다구?” “그래 웃기지 안 웃기니? 너 나하구 무슨 감정 있구나? 그리고 나하고 말하기 싫다면서 말은 왜 붙이는디?”
신분적인 위치와 생활의 부유(富裕)함에서 오는 일종의 우월감인지 석란이는 교실에서 크고 작은 언쟁(言爭)이 시작되면 유난스레 목소리를 크게 내며 정도에 지나칠 정도로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 했다. 그런 과격한 석란이의 행동이 종구 아버지와 같은 느낌을 주기에 늘 싫었다. 또한 그러지 않기를 마음 한쪽으로 바라고 있었다. 단발머리를 곱게 빗어 내린 오뚝한 코의 예쁜 그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모습들이 가끔씩 내 가슴에 꺼림칙한 감정으로 남았다. 그 일로 인하여 우리 반 이이들은 내가 한사코 말려도 나를 향해 ‘쌩참외’라고 놀려대기 시작하여 졸업을 할 때까지도 궂은 놀림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