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소재지로 들어서는 나들목을 지났다. 그리고 키가 그만그만한 전나무 대여섯 그루가 가지런하게 서 있는 언덕바지에 올랐다.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산새들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산마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리도 시원했다. 언덕 아래 사면팔방으로 탁 트인 푸른 논산 들녘이 눈 안에 꽉 들어찼다. 온통 푸른 들녘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 마을이 마치 외떨어진 작은 섬 같이 보였다. 삼십여 채의 초가지붕들이 모래톱에 울뚝불뚝 모습을 드러낸 조가비처럼 앙증맞게 보였다. 펑퍼짐한 반석 위에 여유롭게 앉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훔쳤다.
얼마 후 비탈진 언덕을 내려올 무렵 ‘우우웅, 우우웅’ 하는 비행기의 소음이 들려 본능적으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덩치가 여법 커 보이는 쌍발(雙發)의 미군 군용기(軍用機) 한 대가 서쪽 하늘을 향해 날고 있었다. 프로펠러의 요란한 굉음 속에 몸이 무거운지 푸른색의 커다란 두 날개를 기우뚱거리며 뽀얀 구름사이로 몸을 반쯤 감추고 있었다. 마을 어른들의 말씀에 서해바다 쪽 군산에 있다고 하는 미군 비행장으로 가려는 것 같았다.
초록색 군용기가 나지막하게 떠 있는 하늘 아래 면소재지 마을이 단아하게 보였다. 그라고 석란이가 살고 있는 목조건물 지서(支署)의 모습도 눈에 탁 띄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짜증스런 더위를 잠시 동안이라도 식혀 보려고 하였다. 크고 작은 돌들이 쌓여 있는 계단식 밭 가장자리 소나무 밑에 발길을 멈췄다. 그리고 둔덕 너머 물레치기 쪽을 바라보았다.
내 아버지께서 두 모자의 시커멓게 타는 속을 그렇게도 모르신 채 몸을 뉘이신 곳이었다. 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쪽으로 눈길을 모았다. 그렇게 애타는 내 속마음을 그리도 모르겠는지 들녘 밭 어드메에서 때 아닌 맹꽁이 울음소리가 조금은 청승맞게 들려왔다.
잠시 구름 속에 가리는 듯싶었던 군용기가 구름을 헤치고 머리를 들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면소재지 마을을 지나 서쪽 하늘 지평선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두 그루 향나무로 둘러싸인 화산리 마을 우물가를 지나려할 때였다. 그리도 수없이 보아 눈에 익은 약방(藥房)이 보였다. 그 앞을 지나려 할 쯤 도수(度數) 높은 돋보기를 콧등에 걸치신 약방 아저씨가 밖으로 나오셨다. 서울에서 살다 오신 분답게 서울 말투로 나를 향해 말씀을 하셨다.
“상민이구나, 그래 잘 있었니? 엄마도 무고하시고? 허긴 지난 장날 읍내서 한번 보긴 했는데 음 너 엄마한테 잘해 드려야 한다.”
약방을 지나 좁다란 골목길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서면 초가지붕의 작은 이발소가 있었다. 그 이발소 안에는 키가 나만큼이나 작고 등이 굽으신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선천적인 장애로 키가 작은 그분을 면 사람들은 ‘난쟁이’라고 불렀다.
그 이발소 건너편에는 면사무소의 건물이 우직스레 자리하고 있었다. 면사무소 앞에서 지서 건물 앞까지는 내리막길로 이어졌다. 면사무소와 지서의 건물 사이 그 거리의 중간부분쯤에 강씨네 점방이 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유?”
점방 안으로 들어서며 아저씨를 향해 인사를 했다.
“응, 이게 누구라냐? 들메 사는 기태 아들이구먼 그려. 어여 오너라! 너 공부 잘한다지?” “아닌디유, 누가 그러는디유? 전 공부 못하는디유.” “야, 이놈아! 내가 다 알구 있어, 너는 아마 잘되면 크게 될 꺼야, 에휴! 지 애비만 살었어도 을매나 좋을긋이여.”
듣기에 싫지 않는 소리이건만 못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아저씨 모조지 전지 두 장 하구 연필 다섯 자루, 글구 수채화물감 한 갑 주세유.”
코밑으로 내려온 돋보기를 손으로 치켜 올리시면서 점방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물건을 골라 내놓으셨다. 나는 학용품 값을 치른 후 털보 아저씨에게 가벼운 인사를 드리고 점방 문을 나섰다.
다른 날 같으면 그냥 곧장 집으로 서둘러 갔을 터인데 그날만큼은 혹시나 석란이를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 기대감으로 면소재지 마을 한복판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가르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비록 내 감정이 서툴고 미숙(未熟)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는 남모르게 여리고 여린 감정들이서서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발걸음이 지서 앞에 가까워지자 가슴은 더욱 두근거렸다. 그 두근거림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그날 종구를 때린 일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금 도래(到來)되어 왔다.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단발머리 석란이를 마음속으로나마 깊이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길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지서 안은 밤사이 면내에 큰 사건이 없었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너무 조용한 분위기였다. 관내 순찰을 나가셨는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사무실에 석란이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석란이가 나타나 주길 바라면서 좀 더 가까이 다가섰다.
푸른 이파리 사이로 불그레한 복숭아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초가(草家)의 담장에 몸을 붙여 반대편 지서 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신경을 곤두세워 바라보았다.
아직은 푸릇푸릇한 고추가 지서 울안의 자그마한 텃밭을 가득 채웠다. 시간이 꽤나 흘렀는데도 기다리던 단발머리 석란이의 모습은 끝내 보이질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지서 울타리에 우뚝 서 있는 포플러나무의 잎들이 그런 나를 비웃는 듯하였다.‘메롱메롱’ 하면서 팔랑거리고 있었다.
못내 아쉬워 발길을 돌려 지서 앞을 지나 마을로 향했다. 오르막 철로 건널목을 넘으려 할 때였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는 감리교회 마당 안에 같은 반 정숙이와 자전거를 받쳐놓은 종구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교회의 예배당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석란이의 모습이 눈에 띄어 무척 반가웠다.
“야 상민아 어디 갔다 오니?”
나를 맨 먼저 본 정숙이가 반가운 듯이 말을 하였다. 자전거의 핸들을 손에 잡고 서 있는 종구는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애써 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였다.
“응 가게에 학용품 좀 사느라구!”
왠지 모르게 서먹함을 느끼면서 나는 석란이를 바라보았고 뒤늦게 나를 본 석란이가 말을 이었다.
“상민이구나! 잘 있었냐?” “응!” “상민아, 우리랑 같이 놀래? 정숙이도 있구, 종구도 …….”
종구와의 서먹한 관계를 잘 알고 있기에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냉정하게 딱 잘라 말을 하고 말았다.
“싫어, 너희들이나 실컷 놀아라! 난 집에 가야 허닌께.” “상민아, 왜 그러는디? 같이 놀면 안 되냐? 니가 종구에게 미안하다구 사과하면 될 건디.” “뭐라구 내가 왜 미안한디? 야! 우리 집 논 다 팔게 해서 못살게 맨들어놓은 게 누군지나 알고들 그러냐? 그렇게 돈 갚으라고 우리 엄니를 피도 눈물도 없이 숨넘어가게 졸라댄 사람이 누군데?”
너무도 격앙(激昻)된 내 목소리에 친구들 모두는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서먹하다 못해 어정쩡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나는 석란이의 옆에 서 있는 종구를 질시(嫉視)하는 눈초리로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래 난 느네들처럼 잘살지두 못하는 가난뱅이니께 …….’
그렇게 내 속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목멘 외마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아마도 암울했던 그 시절 내 자신에 대한 자학(自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책임의 한계를 어느 누구에게 되물어 원망하기에 앞서 가난은 작은 바람마저도 모질게 가로막고 있었다. 하늘 향해 우뚝 솟은 새하얀 교회 십자가도 별스런 의미가 없었다. 교회는 아무런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사는 그들만의 시간을 위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도망치듯이 서둘러 교회 문을 빠져나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려는 것 같았다.나를 향해 마주 불어오는 서늘바람이 두 볼을 가볍게 스쳤다. 높다랗게 올려다 보이는 철둑 너머로 청잣빛 하늘이 깔끔하게 보였다. 그 하늘 위에 마냥 부풀어 오르는 솜털구름도 나처럼 더없이 외롭게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