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 나위 없이 맑게 개인 날에는 마을로부터 십여 리 넘게 떨어진 강경읍내가 이내 내 손끝에 곧 닿을 것만 같았다. 읍내에 있는 그 모두가 내가 살고 있는 시골 마을과는 확연하게 달라 보였다. 태어나 지금껏 눈에 박히도록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푸른 들녘 너머로 보이는 읍내의 모습은 늘 낯설기만 했다. 그런 낯설음은 언제나 생소한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그 이질감은 또 하나의 색다른 열등감을 동반케 했다. 어쩌면 그런 열등감은 지지리도 가난한 만큼 낙후된 환경 속에서 살아온 탓도 있었을 것이다.
읍내로 외출이라야 어쩌다 운이 좋으면 일 년에 겨우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어머니의 뒤를 따라 오일장에 장 구경을 하며 읍내 모습을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둘러보고 오는 정도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어린 뇌리 속에는 읍내의 모습이 서먹한 느낌으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울퉁불퉁한 신작로 길을 달려온 탓으로 그리도 덜컹거리던 버스가 부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읍내로 들어섰다. 다소는 느릿하게 달리던 버스가 빨간 우체통에 휘어 내린 수양버들 나뭇가지 끝이 닿을 듯 말 듯 읍내 외곽 지역 남교동 간이정류장에 잠시 멈춰 섰다. 제가끔 읍내에 볼일을 보려고 나온 사람들 틈에 끼어 어머니와 나도 함께 차에서 내렸다.
길 건너엔 읍내 중앙국민학교가 울창한 향나무 울타리에 둘러쌓여 있다. 도시의 학교다운 면모(面貌)를 갖추어 내가 다니는 목조건물 학교보다는 몇 배나 더 크게 보였다. 또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층 건물은 고딕하면서도 부유하게 보였다. 그리도 많은 교실의 수와 넓디넓게 잘 다듬어진 운동장이 돋보였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철봉과 평행봉들이 균형 있게 아우러져 아침 햇살은 넉넉함으로 그 모두를 가볍게 포옹하는 것만 같았다.
길 건너 조금 멀리 떨어진 채운산 밑에는 강경 역사가 아담하게 자릴 하고 있었다. 플랫폼에는 전라도의 드넓은 들녘을 세차게 달려와 가쁜 숨 몰아내어 쉬는지 검정 증기기관차가 하얀 수증기를 거침없이 내뿜고 있었다. 얼마 후 출발을 알리려는지 외마디소리를 거세게 하늘 향해 내어질렀다.
길을 건너 학교의 울타리를 끼고 돌아 읍내 중심부에 있는 중앙동 번화가로 향했다. 길목 입구에는 작은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는 전축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점포 앞 나무전신주에는 비에 젖어 얼룩진 극장의 포스터가 궁상스레 붙어 있었다. 두세 칸 정도 점포를 지나니 종구가 자전거를 사왔다는 대흥 자전거포가 눈에 띈다. 길을 걷던 나는 그 자전거 점포 앞에서 발을 멈췄다. 점포 안에 멋지게 진열되어 있는 자전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늘 그랬듯이 혼자 되뇌어 보았다.
‘언젠가는 나도 꼭 종구 것보다 더 좋은 자전거를 사고 말 거야.’
도로의 포장이 잘되어 비교적 정교하게 줄지어진 거리 위를 우마차가 지나고 지게를 지고 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리고 내 어머니처럼 옹기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아낙네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그리고 길옆으로 늘어 선 각기 다른 점포들의 모습이 도시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추녀가 나지막한 빙수가게에서 얼음을 가는 기계의 소리도 그 활기에 한몫을 했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잔뜩 기대했던 자장면을 만드는 중국집 간판과 혀가 얼얼하게 차갑고 달디 단 아이스케키를 파는 빙과집도 눈여겨보아 두었다. 그런 생각 속에 얼마를 걸은 후 후각으로 들어오는 비릿한 황석어젓 냄새에 어물전이 가까워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앞서가시던 어머니가 길 양옆의 가게 사람들과 퍽이나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셨다. 그리고 얼마쯤 걸어 녹슨 큼직한 젓갈 드럼통들이 가계 앞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어느 점포 앞에 발을 멈추셧다.
“아저씨 안녕하세유. 재숙이 엄니는 아직 안 나온 모양이네유?” “네, 안녕하세유. 어서와유. 곧 나올기구먼유.” “상민아, 이 어른에게 인사 드려라.” “안녕하세유!” “응, 어여 오너라. 니가 상민이구나! 그놈 참 야무지게 생겼네, 그려. 어서 이리루 들어와!” “야무지기는 뭘유. 아직두 철딱서니가 없어서.” “아, 그래두 들메댁 아주머니는 고생한 보람 있구먼유. 애가 인물이 좋아서 난중에 크면 한자리 해먹것네유.”
뒤에 안 일이지만 그곳 어물전 상인들은 어머니를 우리 마을 이름을 따서 부르기 편하게 들메댁으로 불렀다.
“아침밥은 먹고 왔는감유?” “예, 집에서 애랑 같이 한술 뜨고 왔구만유.”
가난하였던 그 시절 사람들 모두는 만나기만 하면 인사가 ‘밥 먹었냐?’로 시작한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탓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밤새 안녕하셨어유?’ 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 그리 암울하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해묵어 잘 삭혀진 젓갈 냄새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여름 열기와 더불어 온 가게 안에 진동했다. 나는 따끔거리는 여름 햇살을 피해 점포 안 마루 위에 서먹한 기분으로 앉았다.
“상민이 너 몇 학년이라고 했더라?” “지금 6학년이구 내년에 중학교에 가유.” “그럼 내년에 중학교 들어가네. 그럼 우리 딸내미 재숙이랑 같은 나이구먼, 그려”
“암튼 공부 열심히 혀서 고생하는 니 엄니 불쌍하게 생각하구 훗날 훌륭한 사람 되서 잘 모셔야 된다.” “네!”
모두가 옳은 소리이지만 자라오면서 수없이 들어온 말이기에 조금은 짜증스레 들렸다.
“글구 좀 있다가 우리 임자 점방에 오면 같이 집에 가서 푹 쉬었다가 다른 볼일 보러 가세유.” “예, 고맙구먼유. 뭐 번거롭게 해유. 집을 아닌께 지가 그리루 갈 게유.” “아 참, 집을 알지유? 그람 되겠네유.” “예, 그럼 그리루 갈게유.” “그래유, 이따가 즘심 먹으러 가서 뵈유.”
젓갈 냄새가 진동을 하는 마루에 그저 멍하니 앉아 있기가 좀 지루하게 느껴질 무렵 어머니는 조씨네 안집으로 가려고 하셨다. 젓갈 가게를 나서 일본식 목조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좁은 골목을 두어 번 굽어 돌았다. 얼마쯤 걸었을 때 나보다 몇 걸음 앞서 가시던 어머니께서 검정 칠을 한 묵직한 나무대문 앞에 발걸음을 멈추셨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일본식 목조건물 안으로 들어서면서 소리를 내어 조씨댁 아주머니를 부르셨다.
“재숙이 에미야, 재숙이 에미 있어? 나야 나 들메여!”
‘들메’라고 하는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뒤를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응 들메냐? 어서 와라.”
아주 반갑게 현관문을 열고 나오시는 조씨댁 아주머니의 부유한 옷차림이 남루(襤褸)한 어머니의 옷차림새와는 퍽 대조적이었다. 그런 모습에서 느껴지는 열등감 속에 다시금 그리 허무한 생을 마감하신 아버지가 그지없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비록 남루할지언정 정갈하게 차려입으시고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묻어나는 진솔함과 깊은 신뢰감을 느꼈다. 그런 강인한 정신적인 힘이 존재하여 어린 나를 굳건하게 지켜내신 듯했다. 이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들이 순진함을 가장하여 숱한 엉큼함으로 구역질나게 다가서는 험난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내 어머니는 그런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 살아오신 것 같았다. 더불어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그토록 거친 세파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그런 강인함을 심어 주려했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