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 조씨 댁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덕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 시간은 참으로 값지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 아래 사방을 둘러봐도 살갑게 맞아 줄 친척이 없는 터였다. 어느덧 해는 기울기 시작하여 읍내 옥녀봉에 주홍빛으로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잘 익어 곧 터질 것 같은 석류 알처럼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빛을 쏟아냈다. 조씨 댁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어머니와 함께 대문을 나섰다. 다정하신 조씨 댁 아주머니에게 머릴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가볍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말씀을 건네셨다.
“그려, 암튼 집에 잘 가구 또 놀러오니라, 글구 부지런히 공부혀서 내년엔 꼭 중학교에 합격혀야 한다 알았지? 기나저나 해는 다 저물어 가는디 우리집 가시내는 으딜가서 뭘허는지 코빼기두 안 보이네 그려.”
그러자 어머니께서 살며시 웃으시며 조씨 아주머니를 가볍게 핀잔을 하시듯 말씀을 하셨다.
“아따 너는 걱정두 팔자다, 때 되면 으련히 알아서 들어 올 건데 뭘 그리 난리냐? 한참 뛰어놀 나인데”
언제나 그랫듯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터기 위해 황산동 버스 정류정으로 갈 줄 알았는데 어머니께서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셨다. 다소 의아스런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데 골목길을 걸으시던 어머니께서 말씀을 하셨다.
“ 상민아, 오늘일랑은 에미랑 강뚝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이야기 좀 하자. 괜찮지?” “응 엄니. 마음대루 혀 깜깜해질라면 아직까장은 시간이 남았느닌께 천천히 걸어가지 뭐.”
몇 차례 골목길을 휘어 돌아 강경 중앙국민학교 뒤편에 있는 작은 둠벙 앞에 이르렀다. 둠벙 안에는 연꽃들이 목을 수면 위로 내밀고 지는 저녁노을을 한껏 받아들이고 있어 참으로 바라보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읍내 외곽지역에 위치한 샛강을 건너는 다리 앞에 이르렀다. 그 샛강이 개어귀를 거쳐 흘러 들어가는 금강 둑이 조금 멀리 바라보였다. 숱한 영욕의 세월 속에 얼룩진 애환(哀歡)들을 홀로 간직한 듯 금강 물은 저녁햇살에 금물결을 번득이며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읍내로부터 집까지는 시오 리 정도의 거리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열기를 품어 다소는 후끈거리는 강바람이 불어오는 금강 둑 위를 걸어 집으로 향했다. 읍내에 갈 때처럼 집으로 돌아 올 때도 버스를 타고 올 수 있었지만, 어머니께서는 모처럼만에 나들이를 하는지라 나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서로 부여잡은 손끝을 놓을 줄 모르고 누구의 입으로부터 먼저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섧디 섧게 노래를 불렀다.
‘산에는 진달래, 들엔 개나리 산새도 슬피 우는 노을 진 산길에 엄마 구름 아기 구름 정답게 사는데, 아빠는 어데 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 …….’
그렇게 한참동안을 섧게 노래를 부르시던 어머니께서 내 얼굴을 찬찬히 내려 바라보시며 말문을 여셨다.
“상민아 니 애비 생각 많이 나지?”
그리고는 파르르하게 떨리시는 손에 더욱 힘을 주시며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움켜쥐시고, 두 눈가엔 물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그도 안쓰러워 애써 보지 않으려 머리를 돌려 강 건너 세도 들녘을 바라보며 대답을 했다.
“아니, 정말루 안 보구 싶어 하나두.”
감정을 속이려 하는 그 어린 마음을 헤아리시는 듯 어머니는 나를 껴안고 울먹이셨다. 그리고 복받치는 서러움에 겨워 그 노래의 중간부분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다. 그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어머니의 온몸에 배인 비릿한 젓갈의 냄새처럼 한 가닥 끈끈한 정이 여리고 여린 가슴속에 살아 움직였다.
저무는 저녁 해 재촉이나 하듯 어미 뒤를 따르는 아기 염소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스치듯 지나치는 자전거는 길을 비켜서라는지 ‘따르르릉, 따르릉’ 방울소리를 요란스레 울렸다.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아저씨는 등 뒤에 탄 나이 드신 노모(老母)가 걱정이 되는지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달려갔다.
지는 해가 남기려는 흔적처럼 우리 모자의 그림자가 둑길 위에 기다랗게 드리워졌다. 두 그림자를 그도 반기려는 듯 길가에 무리 지어 핀 하얀 클로버의 꽃들이 저마다 눈인사를 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먼발치 성동면 부람산도 불그레한 노을빛 속에 차츰차츰 젖어들고 있었다. 그 부람산 산길을 끼고 돌아 얼마쯤 가면 부여 읍내의 입목인 석성면에 닿는다.
그리고 밤잠을 준비하려는지 비비새(오디새) 한 마리가 노을 속에 나래를 치며 강 건너 버드나무 숲으로 날아갔다. 강 건너 나루터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는지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 보였다.
눈을 돌려 강둑 밑을 내려다봤다. 작달막한 동네 들메 마을의 모습이 아스라이 보였다. 동네 사람들은 배고픔만 해결되면 세상걱정 하나 없어 등 허물 벗겨지도록 논밭에서 허리 굽혀 농사를 짓고 살았다. 동네 초가 지붕너머 산기슭에 희미하게 보이는 작은 움막집이 눈에 띄어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내 심사를 아시는 양 한동안 말씀을 멈추셨던 어머니가 다시 말씀을 하셨다.
“상민아 너 들메에 살기 싫으냐?” “응, 난 다른 디루 이사를 가서 살구 싶어 우리. 이사 가면 안 돼?”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대답을 했다.
“에미두 너처럼 어디론가 훌쩍 떠나번지구 싶지만 아직은 일러. 가을 되면 니 애비 산소도 옮겨야 허구.” “아버지 산소 어디루 옮길 건데?” “음 아직은 나두 잘 모르긋다. 모진 세상 어디 죽은 지 애비 잠재울 땅 한 평이 읍으니, 그렇다고 아무디나 늑장(勒葬)을 할 수도 읍구, 에휴!”
한 맺힌 소리에 그렇게 잠시 잊은 듯했던 종구네에 대한 감정이 다시금 굼틀댔다. 무언의 응징인 양 들메마을 한가운데 오만스레 자리를 한 종구네 집 지붕을 놓칠 새라 두 눈 모아 바라보았다. 온기 서린 어머니의 손이 나의 오른손을 더욱 세게 붙들었다. 또 다른 한 손에 든 물안경의 작은 유리알 안으로 그 아픔을 한데 모으려는 듯 노을빛이 다붓하게 깃들고 있었다.
마을로 향해 걸어가는 발길에 흙먼지와 함께 온종일 뜨겁게 달구어진 땅의 열기가 몸 위로 후덥지근하게 차올랐다. 그렇게 저녁 해는 두 모자의 애틋한 사연을 다독여주는 듯 서서히 서산으로 기우러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