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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56 조회 : 1,980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전쟁의 상흔은 인성을 극도로 피폐시켰다. 그로 인해 사회적 분위기는 극한 혼란 속에 흉흉하기만 했다.
인정이 고갈된 환경의 속에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그 무엇인가에 막연하게나마 의존하려 했다. 그 틈새를 파고들은 신앙의 형태는 실로 다양각색이었다.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절에 다녔다. 그렇다고 열성적안 불교 신자는 아니였다.그저 어쩌다 무슨 일이 있으면 사찰을 찾아가 블공을 드리는 정도였다. 그리고 일부는 토속신앙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 즈음 개화의 물결을 타고 들어 온 천주교와 기독교가 서서히 우리들에게 다가서는 그런 시기였다.
시골 마을 교회는 보잘 것 없는 단출한 초옥에 재정이 극히 간고한 개척교회였다. 나무토막을 열십자로 엮어 한가운데 못을 박아 십자가를 만들어 지붕 위에 세웠다.
그리고 읍내 철공소에서 어렵게 구해온 반쯤 자른 산소통을 추녀 밑에 매달아 교회의 종으로 사용했다. 굵은 철사 줄로 단단히 매달아 놓은 둥그런 쇠 통을 쇠망치로 힘껏 두들겨 예배시간의 시작과 끝남을 알렸다.
교인들은 한겨울에 난로 하나 없이 마룻바닥 틈사이로 찬바람이 새어들어 방석을 깔고 앉아 예배를 드렸다. 그리 열약한 환경에 성경책은 커녕 찬송가 한 권도 없었다.
그저 커다란 문종이 위에 붓글씨로 써 놓은 검정색 글씨를 눈여겨보며 더듬더듬 찬송가를 전도사님의 목소리에 따라 부르며 배웠다. 교인의 숫자도 그리 많지는 않아 여자 전도사님 한 분이 작은 교회를 아주 어렵게 이끌어 가고 있었다.

우리 마을의 가구 수가 겨우 삼십여 가구에 옆 동네인 샛터마을의 가구 수는 조금 적은 십여 가구를 넘기지 못했다. 면소재지 화산리에 가구 수가 인접한 두 마을보다는 조금 많은 오십여 가구에 달했다.
조금은 생소한 느낌을 주는 교회에 동조하는 사람 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보수적인 일부 동네 어른들은 교회가 처녀 총각들이 모여 연애를 하는 곳 정도로 매도를 했다. 더불어 변화되는 물질문명에 걸맞지 않게 서낭당이 함께 존재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개화의 속도가 좀 빨라 전깃불이 들어오는 면소재지 화산리는 교회에 나가는 교인의 수가 다른 마을에 비해 조금은 많았다. 그러나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토속신앙에 잘 길들여진 우리 마을은 기독교 교인의 숫자가 그리도 적었다.
그런 탓에 집안에 크고 작은 우환이 있으면 심심찮게 무당들을 불러들여 굿판을 벌리는 일이 허다하던 그런 때였다.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종구 어머니도 몇 차례 무당을 불렀다.
잘 삶은 돼지머리에 떡과 과일을 잔뜩 차려놓고 무당이 밤이 이슥토록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무엇이라고 시끄럽게 주절대었다. 그리고 종구네 어머니는 무슨 큰 죄나 지은 것처럼 두 손바닥이 닳도록 싹싹 빌면서 온갖 정성을 모아 땅바닥에 덥석 엎드려 큰 절을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종구가 교회에 그리 열심히 다니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석란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 같았다. 나 혼자만의 짐작이었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하려는 교회 측이 그리 공부도 못하는 종구를 깍듯이 배려하는 듯했다.
그리 고지식한 종구 아버지도 다른 일과는 달리 적극 나서서 말리지 않으셨다. 그것은 지난 과거의 자기 신분으로부터 오는 열등감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려 하는 자신에 대한 안위였던 것 같았다.

언덕배기를 내려서 철길 건널목을 건너 밭길을 지나 동네 앞에 다가서니 낯설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그중에 맨 먼저 눈에 띈 것이 석란이었고 그 옆에 교회 전도사님과 정순이 그리고 종구의 모습도 보였다.
종구는 하얀 바퀴살이 햇빛에 눈부신 자전거의 핸들을 잡고 있어 전도사님을 따라 여름성경학교에 어린 아이들을 모으려 마을로 전도를 하기 위해 나온 것 같았다.

“야 상민아, 오랜만이다.”

맨 먼저 석란이가 반가운 듯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을 옆 개울가로 비켜가려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바로 그때였다. 하얀 모시옷에 둥그런 은테 안경을 쓴 전도사님이 말씀하셨다.

“상민이 학생, 나 알지? 우리 교회에 나오면 좋을 건데, 종구랑 같이 나오지 그래!”

종구라는 말에 신경질적으로 전도사님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대답을 했다.

“뭐라구유? 내가 왜 종구하고 같이 가야 하는디유? 저는 절대로 안 갈 꺼구먼유.”

갑작스럽게 너무 공격적인 말을 하자 모두들 무척 당황해 하는 얼굴 표정들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석란이가 앞에 나서 말을 했다.

“야, 강상민! 니가 감히 전도사님 말씀에 대드냐?”
“뭐? 내가 대들었다구? 입은 삐뚤어져두 말은 바로 하랬다구 왜 종구랑 같이 가야 하는디?”
“그럼 니가 끝까지 잘했다는 거네, 참 어이가 없어!”
“야! 어이가 없다구? 내가 더 어이가 없다. 글구 니가 뭔데 나서서 그러니? 니가 우리 집이 어떻게 망하게 됐는지나 알구서 떠벌리냐?”

조금은 울먹이며 목 줄기의 핏대를 세우며 거칠게 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더 이상 모두가 보기 싫어 개울가로 내달렸다.
그리 거칠게 말이 오고갔어도 옆에 있던 종구는 말 한마디 못하고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날 비석골에서 싸움에 패한 이유도 있었던 것 같았다.

비석골에서 그 일이 있고난 후 어머니가 논을 팔아 원금에 이자를 합쳐 다 갚았다. 그리고 종구의 병원비까지 물었기에 더 이상은 우리 집 일에 이렇다 저렇다 말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집 사이에 그렇게 끝맺음을 한 결과에 대하여 동네 사람들이 뒤에서 하는 말을 동네 고샅길을 오고가다 한두 번쯤은 들은 듯싶었다.

“세상에 아무리 그렇다 혀도 그렇지 철딱서니 어린것들이 싸움질헌 걸 가지구 무슨 원수 척졌다구 죽은 사람 묘까장 파가라고 헌뎌.”

그즈음 동네 원만한 집들은 종구네 집에서 장리변을 얻어 쓰고 살던 터였다. 그런 영향으로 종구 아버지와 종구가 직접 보는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눈치를 살피며 살았다.
그런 가운데 그 집 식구들이 없는 곳에서는 저마다 가슴 속에 서운하게 느꼈던 감정을 풀려는 듯이 때론 지나칠 정도로 헐뜯기도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개울가로 달려가는 몸 위로 한줌 바람이 불어 열을 식히는 듯했다. 화를 참지 못해 옷을 벗지도 않은 채 시냇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숨을 고르고 개울 둑 너머로 동네 입구를 넌지시 바라보니 전도사님 일행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개울가에 오려는지 몇몇 동네 아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개울가로 아이들이 몰려오자 그중에 종구네 옆집에 사는 중현이가 보여 넌지시 물어보았다.

“야 중현아, 교회 전도사님하구 종구 봤지?”
“응!”
“어디루 갔냐?”
“음 종구형네 집으로 가던디, 그리구 자꾸만 우리덜 보구 교회 댕기라구 했어.”
“응 그랬구나! 알었다.”

내심 짐작은 했지만 막상 종구네 집으로 갔다는 말에 뭔지 모를 외로움을 작게나마 느꼈다. 그런 마음에 버릇처럼 눈앞에 보이는 등메산 아버지가 묻힌 곳 우무배미와 십 리 길 금강 둑을 바라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날은 유난스레 다른 날보다 뙤약볕이 세차게 내리 쬐였다. 그리고 물고기가 잘 잡히질 않아 잡은 것이 겨우 붕어 서너 마리 뿐이여서 그냥 물속에 도로 놓아주고 헤엄만 치고 놀았다.

하루의 해가 서쪽 읍내를 향해 발돋움하려는지 마을 앞 둥구나무 위를 비켜설 즈음이었다.
둥구나무 밑에 앉자 계신 마을 어른들께서도 말이 좋아 나무 그늘 밑이지 더위를 참아내시느라 힘이 드시는 것같았다.

그런데 널은 들녘 논배미에 검푸르게 자라 난 벼이삭 사이를 헤집고 먹이를 찾는 두루미와 왜가리는 좀처럼 더위를 타지 않는 것 같았다.
기다란 목을 움추려 논바닥에서 우렁과 미꾸라지를 그리고 개구리까지도 긴 부리로 물어 꿀꺽꿀꺽 잘도 삼켰다.
그리고 이따금씩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이 벼 이삭 위로 목을 길게 빼내밀고 가뜩이나 밉살스럽게 생긴 검은 부리를 좌우로 돌리면서 얄미울 정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마을 어른께서 그런 모습들이 마뜩찮으신지 한 말씀 하셨다.

" 저 우라질 놈에 왜가리란 놈은 더위두 않 타능가 아 글씨 진종일 때약볕 논바닥에서 무신 장승처럼 꼿꼿허게 서 가지구 청승을 떠는건지 모르긋네 그려, 어지간히 배 채웠으닌게 앵간허면 그늘 밑으로 날아갈 긋이지 그란디 뭐땀새 온 사방간데 헤집구 댕기면서 느자구 읍는 짓꺼리는 혀쌌는가 당췌 모르갔구먼 그려, 참말루 저러다가 나락 꽃이라두 떨어지믄 우짤라구 저 지랄발광을 혀 샀는가 모르긋네 그려, 글구 시방 저넘 허는 짓 좀 보라구 억센 시에미 눈치 보는 매누리처럼 대그빡만 내밀구 가뜩이나 긴 놈에 모가지를 잔뜩 빼내밀어 깐닥깐닥 눈치를 보는 거 같구먼 그려. 으디 사람을 나찹게 보구 염장 처 질르는 긋두 아니구 딱 하니 허는 짓꺼리 보면 귀싸댕이라두 한볼테기 처 올려번졌으면 딱 조캈구먼 그려. "

물론 벼꽃이 떨어질까봐 걱정스러우셔 하시는 지당한 말씀이었다. 그러나 앞 들녘에 있던 논 서마지기도 이미 남에 손에 넘어가고 말았으니 그런 말이 그다지 큰 의미로 와닿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그런 말 조차도 별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탓에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어졌다. 집으로 향하는 논둑엔 옷깃에 스치는 콩 잎사귀 소리에 놀란 듯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포닥여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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