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제부터인지 동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앞 들녘을 가로 지르는 샛강 물이 갑자기 울고 동쪽 산모롱이에서 까마귀들이 청승맞게 울어대면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마을 하늘 위에 까마귀가 떼를 지어 한동안 요란스레 울어대더니 어느새 산 너머로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혹자는 그런 비유를 한낱 부질없는 일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엔 어제 있었던 종구 어머니의 위독한 병환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날씨는 한여름 염천의 진면모를 보여주듯 아침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찬 뙤약볕이 온몸을 담금질하듯 억세게 내리 쬐어 한낮 더위에 열기가 턱밑까지 차올라 견뎌내기에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땅은 메마를 대로 메말라 푸석한 흙먼지만 일고 담장 가에 뻘쭘하게 긴 목을 빼어 내민 해바라기들도 이제는 마냥 지친 듯해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장독대 가장자리에 피어난 맨드라미는 저 혼자 제철을 만난 듯 한껏 불게 물들고 있었다. 그 빛깔이 한낮 햇볕에 더욱 반들거렸다. 그런 무더위 속에서도 이따금씩 감질나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리도 고맙기만 했다.
한 사나흘 먼 산등선에 멍청스럽게 엉거주춤하던 시커먼 구름들이 마을을 향해 서서히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한차례 스쳐 지나가는 소나기라도 시원스럽게 내려 줄 것만 같았다. 그런 탓인지 아침부터 산릉선이 부유스름하게 보였다. 이제서야 비가 오려고 그러는지 마당가에 노닐던 잠자리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진종일 요란스레 보채듯 울어대던 매미의 울음소리도 조금은 수그러지는 듯했다. 여름내 낮은 추녀 밑을 힘겹게 타고 오르던 포도넝쿨 잎사귀 사이로 군데군데 자줏빛을 띤 포도 알이 탐스레 얼굴을 내밀었다. 텃밭 가장자리엔 꽈리가 수줍은 듯 불그레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렇듯 하늘이 심술을 부려 비라도 올라치면 무엇보다도 읍내로 장사를 나가신 어머니가 제일 걱정됐다. 가난한 탓으로 남들처럼 반듯한 가게는커녕 시장 골목에 펼칠 노점 좌판 자리 하나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열약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으시려고 안간힘을 쓰셨다. 진종일 무거운 동이를 머리에 이시고 이 동네 저 동네로 두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셨다. 그리 힘들게 다니시는 어머니께서 갑자기 비라도 맞으시면 어쩌나 싶어 가슴만 졸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연약한 어린 마음은 무척이나 무겁기만 했다.
그런저런 생각에 잠겨 걱정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낮 열두 시 정각이 된 듯싶었다. 그때 면소재지 지서에서 어김없이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가 온 들녘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쯤이면 멀리 남쪽 끝머리 전라남도 목포로 가는 완행열차(緩行列車)가 요란스럽게 울리는 기적 소리와 더불어 시커먼 연기를 힘껏 내뿜으며 동네 앞을 비켜갈 무렵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더위에 지친 노란 호박꽃이 축 늘어진 싸리나무로 엮어 놓은 울타리 너머로 아랫마을이 바라보였다. 아마도 동네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동구 밖 둥구나무 아래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 의아스런 모습에 궁금타 못해 토방 위에 놓인 검정 고무신을 급하게 찾아 신고 사립문을 나서 줄달음쳐 둥구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아니, 이게 뭔 날벼락이랴! 그리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죽게 내 원 참 …….” “왜, 아니래? 아무리 인명은 재천이라구 허지만 참 허무하구먼 그려. 그 지긋지긋한 난리 통에도 죽지 않구 모질게 살아남았는디.”
마을에서 좀 나이가 많으신 노인 분들이 장죽에 담배를 모아 피우면서 말씀을 주고받으셨다. 나는 직감으로 종구 엄마가 돌아가신 것을 그 자리에서 알게 되었다. 더불어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혹시! 우리가 몹쓸 소리로 저주를 해서 그리 되었나 하는 부담감에 마음속으로 몇 번쯤은 되물었다.
“아니, 으짜면 좋데유. 하늘이 무너지구 땅이 통곡헐 일이 생겨버렸으니 이를 으쩐데유, 시상에 그 어린 걸 놨둬번지구 그리 훌쩍 갔다냐 아이구 불쌍두 혀라.”
나무 밑에 모여든 동네 사람들 중에 종구 어머니와 그중 절친했던 상수 어머니가 머리에 둘렀던 수건을 풀어 눈시울을 훔치시며 말씀하셨다.
지난밤 종구네 어머니가 급성맹장염으로 충수(蟲垂)가 터지는 바람에 복막으로 번져 아주 위독한 상태에서 소달구지에 실려 읍내 병원으로 황급하게 달려갔다. 헌데 읍내 병원의 의료 시설과 의술이 미비하여 다시금 대전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시간을 너무 지체해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리 안타깝게 숨을 거두신 종구 어머니의 시신이 열차에 실려 대전역을 출벌하여 강경역에 도착했다. 그런 후 읍내에 있는 화물 트럭에 실려 동네로 돌아온다고 하여 온 동네 사람들이 둥구나무 아래로 모여든 것이다.
현재의 입장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 같이 교통이 활달하게 발전되고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학으로는 충분히 치유가 가능했을 법한 병이었다. 허나 모든 것이 여의치 못한 어두웠던 시대에 교통수단이 불편하여 그렇게 시간을 끄는 바람에 어처구니없이 일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그해 여름은 평온하기만 하던 작은 마을에 있어서는 안 될 흉사를 남기고 말았다.
그 무렵 해마다 여름은 지루한 더위만큼이나 평온하기 더없는 작은 들메 마을에 아픔을 꼭 하나씩 던져주었다. 아주 어렸을 적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옥순이 아빠의 유골이 하얀 보자기에 싸여 마을에 도착했던 것도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었다. 그리고 내 아버지가 불어난 물에 빠지셔 그리 허무하게 세상을 등지신 것도 두 해전 여름 장마 때였다. 그 다음으로 종구 어머니 역시 이 한여름 철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런 마을에 슬픔을 외면하는 듯 둥구나무 매미들은 밉살맞게 울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면소재지로부터 동네로 들어오는 달구지 길을 두 눈이 뚫어지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동안 종구네 집을 그토록 원망했고 종구네 아버지는 물론이려니와 덩달아 은근히 우리 집을 무시했던 종구 어머니가 그토록 밉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격지심(自激之心)이였는지는 몰라도 왠지 그 자리에 더 이상 서 있기가 민망스러워 슬그머니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언덕배기를 넘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머릴 돌려 바라보니 둥구나무 밑으로 모여드는 동네 사람들의 수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저렇듯 남에 아픔도 자기의 아픔인양 함께 슬퍼하는 미덕이 있는 마을인데 지난 날 종구네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동네 사람들에게 그리도 몰인정하게 대했는지 다시금 되짚어보게 했다. 내가 사는 산 밑 오두막집은 푹푹 찌는 더위 속에 텅 빈 집을 검둥이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마루엔 이른 아침 텃밭에서 따온 빨간 고추를 햇볕에 말리려고 펼쳐 놓았다.
쪽마루 한쪽에 걸터앉아 두 눈을 면소재지 건널목으로 모아 종구 어머니의 시신이 도착하는 모습을 먼발치서라도 보려 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종구에 대하여 미운 마음 보다는 미안스런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 늦은 일이지만 석란이와 옥순이의 말처럼 종구와 서로 마음을 풀어 살고 싶어졌다. 더불어 갑자기 어머니를 잃은 종구의 마음에 상처를 어떻게라도 달래줄 수만 있다면 노력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 마을에 흉사 아는 듯 하늘도 검어 짙은 구름이 가득 끼어 금방이라도 한줄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 후 약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어두운 구름 낀 하늘 밑 들메 마을로 종구 어머니의 시신이 쓸쓸하게 도착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동네 사람들은 슬픈 듯 머릴 조금씩 숙인 채 시신을 실은 트럭 뒤를 따라 동네 골목길로 그 끝을 감추고 있었다. 참으로 허무한 것이 사람의 목숨이라고 종구 어머니의 에기치 못한 죽음은 어린 나로 하여금 실로 많은 것을 깨닯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
하늘도 그 슬픔에 대답을 하려는지 메말랐던 땅에 빗방울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오랜 가뭄 끝에 해갈을 해주는 단비가 내려 너나 할 것 없이 그도 좋으련만 그날만큼은 그리 썩 반갑지 않은 듯 보였다. 그보다는 예기치 못한 큰일로 침울하게 가라앉은 동네 분위기에 내리는 비도 서글프게만 느껴졌다. 아울러 밉든 곱든 간에 한 하늘 한 마을에서 동고동락했던 한 사람을 그리 허무하게 떠나보내야만 하는 애석함이 동네 사람들 저마다의 가슴가슴 속에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런 무거운 마음에 잔뜩 침울해져 있는데 아랫마을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굵직한 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얼른 마을을 내려다 보니 여느 초가집들보다 더 높아보이는 종구네 기와지붕 위에 올라 선 동근이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지붕 위에 올라 선 동근이 아버지가 종구 어머니께서 살아 생전에 입었던 옷으로 보이는 흰치마 겉옷의 말기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팔을 벌려 흔들며 망자의 부음을 온 사방에 알리려는 듯 커다랗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날 내 두 귀로 들은 동근이 아버지의 목소리는 그리도 애잔스럽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