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온 천지가 들썩이도록 서너 차례 천둥벼락이 요란스럽게 내리쳤다. 그 여세를 몰아 비는 좀처럼 그칠 줄 모르고 억세게 퍼부었다. 비뚜름한 봉창 밖에서 들려오는 빗방울소리가 종구 어머니의 죽음으로 가뜩이나 싱숭생숭한 마음을 더욱 뒤흔들어 놓았다. 밤이 이슥해졌는데도 그 일로 인한 심리적 부담이 너무도 큰 탓에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윽고 날이 밝아오자 그 기세가 꺾인 듯 빗줄기가 점차 가늘어지더니 이내 멈추고 말았다. 온 들녘이 밤새 후줄근하게 내린 비에 촉촉이 젖어 그 빛깔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제법 머쓱하게 키가 자란 수숫대 위로 옅디옅은 운무가 가득 서려 은연하게 운치가 배어났다. 실개천 건너 화산리 산릉선에는 빛깔 고운 오색의 무지개가 영롱한 빛을 발하며 찬연하게 떠올랐다. 그 아름다움에 반해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멈추자 나지막한 초가지붕 추녀 끝을 타고 지스랑물(낙숫물)이 ‘톰방톰방’ 소릴 내며 땅위에 떨어져 예쁜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마당 한쪽 산초나무 밑에는 맹꽁이 한 마리가 붉게 익어가는 꽈리나무 풀숲을 향해 엉금엉금 걸어가고 있었다. 토방 위에 서 있던 검둥이도 비가 멈췄음을 아는지 이제 슬슬 마당가를 거닐려고 했다.
그때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나오시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오메 무지개 떴네 그려, 참 곱기두 혀라. 무지개가 뜨는 거 보닌께 그 여편네 죽었어두 좋은 디루는 가겄구먼 그려. 암! 그래야지 지나 내나 이놈의 모진 세상 사느라 고생 뼈 빠지게 했은게 그런 복이라두 있어야지, 에휴.”
그렇게 두 집 사이에 얽히고설킨 서운함이 있었건만 그래도 한 동네에서 다정한 친구로 지냈기에 꽤나 마음이 쓰이는 모양 같았다. 밥상을 두 손으로 드신 채 잠시 무지개를 바라보시던 어머니께서 다시 말을 이으셨다.
“야, 상민아. 나 오늘일랑은 장사 안 나가고 종구네 집에 일 거들러 간다.”
물론 날씨가 좋지를 않아 장사를 쉬는 이유도 있었지만 동네에서 그런 애사나 경사가 있으면 모두 하던 일들을 뒤로 밀쳐놓고 자기 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어 끈끈한 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리고 매달 한 번씩 친목계를 하면서 쌀이랑 돈을 모아 큰일이 닥치면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런 큰일이 있을 때는 계절에 따라 보리때는 보리쌀을, 쌀이 날 때에는 쌀로 얼마큼씩 도와주는 규칙을 정했다.
“엄니 나도 가면 안 돼?”
종구 어머니의 초상을 치루는 일에 대하여 많은 궁금증에 보리쌀에 감자를 넣어 지은 밥을 한 움큼 입에 가득 문 채 어머니를 조르듯 말을 했다.
“가긴 뭘 갈려구 허냐, 또 비가 올란가두 모르는디 그냥 집에서 방학 숙제나 하지.” “응 그래두 가구 싶단 말이야.” “정 그러면 니 맘대로 혀. 그런디 그런 상갓집에 가서는 몸가짐 공손하게 하구. 상놈 소리 안 들을려면 동네 어른들한티 인사 잘혀야 한다, 알았냐?”
어머니가 같이 데려간다는 말에 얼른 밥상 앞에서 일어나 방 한쪽 구석에 있는 반닫이를 열어 새 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마루 한쪽에 놓인 지우산(紙雨傘)을 챙겨 들고 마루를 내려서는데 영문도 모르는 검둥이가 뒤를 따라 나서려 했다. 가늘게 내리던 가랑비가 멈춰 앞산 머리 쪽부터 구름이 벗어지면서 산 모습이 군데군데 오롯하게 보였다. 산릉선엔 거의 맞닿을 듯이 운무(雲霧)가 나직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비가 멈춘 산야의 모습은 그 색감이 더욱 짙게만 보여 또 다른 생동감을 불러일으켰다.
텃밭의 빨간 고추는 빗물에 젖은 채 도톰하게 살이 오른 꼬리 끝에 투명한 물방울을 탐스럽게 매달고 있었다. 더불어 하얀 목화는 빗방울에 볼이 간지러웠는지 꽃잎을 잔뜩 오므리고 짙푸른 수숫대는 하늘 향해 쫑긋하게 긴 목을 힘껏 뻗고 있었다. 간밤에 내린 빗물로 땅이 촉촉이 젖어 신발에 진흙이 잔뜩 묻어나 조금은 미끄러운 듯싶은 언덕배기에 올랐다. 여느 때에는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보았던 마을 전경이 그리도 참하게만 보였다.
언덕배기를 내려서 방죽가를 지나 동네 어귀 당산나무 밑에 닿았다. 그리고 동네 입구에 들어서 골목길을 꺾어 들어서자 큼지막한 종구네 기와지붕이 보였다. 대문 앞에는 한문으로 상중(喪中)이라고 써진 한지로 바른 등이 걸려 있었다. 개다리소반 위에는 사기그릇에 담긴 밥에다 숟갈을 세워 꽂아놓은 채 그 소반 밑에는 볏짚으로 만든 미투리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널따란 마당엔 차광막(遮光幕)이 쳐져 조문객들로 조금은 붐비는 듯 보였다. 안방 방문이 두 짝 모두 열려진 방 안엔 병풍이 둘러쳐진 채 상위에 놓인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내가 온 집안으로 퍼져나고 있었다. 방안에는 누런 삼베로 만든 굴건을 쓰고 상복을 입은 종구가 둥그런 대나무를 잘라 만든 봉장(棒杖)을 짚고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로 옆자리엔 종구 아버지가 망연하신 듯 자리에 앉아 계셨다.
그런 종구의 모습을 마당 한쪽 모퉁이에서 바라보니 마음이 울적해지고 미안스러워 더는 있을 수 없어 대문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마음은 솔직히 종구에게 얼른 달려가 사과하고 싶었다. 그러나 종구 아버지가 곁에 있어 왠지 두렵고 꺼림칙하여 그런 속내를 펼치지도 못하고 그만 접어야만 했다.
대문 밖을 나서 허전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 보았다. 변덕스런 여름 날씨처럼 하늘엔 서서히 구름이 걷혀 구름 사이로 햇살이 가늘게 비췄다. 어린 동네 동생들은 저마다 손에 떡과 돼지고기 한두 점씩 들고 기와 추녀 밑에 서성대며 먹고 있었다. 고기라고는 잘해야 일 년에 두 번 추석 명절과 설에 그리고 누구 집 결혼 잔치나 상을 당한 초상집에서 얻어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그리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던 어렵고 가난한 그 시절의 한 단면이었다.
막상 대문을 나서고 보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발길을 집으로 돌려 동네 어귀를 벗어날 즈음이었다. 철길 건널목을 건너오는 일행들이 눈에 띄었다. 그 일행 속에 교회 전도사님과 교인들 그리고 석란이와 정순이의 모습도 보였다. 아마도 같은 교인 집에 상을 당해서 종구네 집에 문상을 오는 것처럼 보였다.
동네 앞 나들목에 닿아서 서로 눈이 마주치게 된 석란이가 말을 건넸다.
“야, 상민아 너 종구 집에 갔었냐?” “응!” “그렇구나! 참 잘했다, 종구하고는 만났냐?” “아니, 그냥 마당에서 얼굴만 쳐다 봤어.” “왜?” “음 종구 아버지 땜시 말을 할 수가 없었어.”
종구 아버지라는 말에 석란이도 더는 묻지를 않고 서둘러 교인들과 동네로 향했다. 무척이나 답답한 마음에 나는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마음은 무거웠고 막상 집에 와서도 마음이 어둡기는 역시 매한가지였다.
버릇처럼 마루 한쪽에 앉으려니 대문 앞까지 달려 나온 검둥이가 그리 보고 싶었는지 펄쩍 뛰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울타리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들녘은 검푸른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벼가 간헐(間歇)적으로 부는 바람에 가벼이 몸을 흔들어 풍요로운 가을을 약속하는 듯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옅은 구름 밑으로 펼쳐진 들메 마을의 모습은 소담스럽게만 보였다.
등화 마을 산모롱이를 돌아 나온 기차는 남쪽을 향해 검은 연기를 내품으며 달려가고 있었다. 비 갠 날 오후에 더욱 정겹게 돋보이는 촌락에 풍경을 오래도록 머릿속에 담고 싶었다. 온종일 마을길이 옆 동네에서 문상 오는 사람들로 조금은 분주해 보였는데 저녁녘이 되니 문상객들의 발길이 뜸해 비교적 한산해졌다.
저녁노을이 너른 들녘에 물들기 시작하자 문상객들이 하나둘씩 제가끔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일행들 중에 석란이와 교인들도 화산리로 되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