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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61 조회 : 1,804




저 멀리 대둔산 능선에 아침 해가 장엄하게 떠올라 온 산과 들에 활기를 가득 불어 넣었다. 그 찬란한 빛 속에 들메 마을의 하루는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동네 골목길에는 우물가에 물 길러 가는 아낙네와 논밭 자리를 고루 둘러보러 나서는 어른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뽑아 오신 잎과 줄기가 아주 연한 열무에 참기름을 넣고 고추장에 비벼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어머니께서는 흰 옥광목 저고리에 검정색 몸뻬를 입으시고 서둘러 읍내로 장사를 나가셨다.
홀로 집에 남게 된 나는 늘 외로움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그라도 다행인 것이 같이 놀아 줄 검둥이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냥 푸르기만 한 하늘엔 나에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솜털 같은 구름들이 떠 있었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아 일기도 쓰고 쓰다 멈춘 글짓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마음은 종구 어머니의 장례식에 대한 생각들로 온통 들 떠 있었다.
아침 햇볕이 쨍쨍히 내리쪼이는 앞마당엔 여느 날처럼 고추잠자리가 떼를 지어 놀았다. 돌배나무 잎 사이에 살짝 몸 숨긴 참매미는 목이 터져라 그리도 요란스레 울어댔다. 한여름 더위를 한껏 부추기듯 땅의 열기가 뜨겁게 끓어올라 이른 아침부터 온몸이 후덥지근했다.

종구 어머니의 출상(出喪)을 보기 위해 종구네 집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사립짝 앞으로 내보이는 구릉진 밭엔 그날따라 귀분이 어머니와 그리고 동근이 아버지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산자락과 맞닿은 비알밭엔 누에 뽕잎을 따러 오셨는지 살구나무 집 할머니가 뽕잎을 따고 계셨다. 밭둑길을 걸어 할머니 곁에 다다르니 할머니께서 말을 건네셨다.

“상민아, 너 종구 에미 출상에 가냐? 나두 어여 뽕잎 따고 싸게 가 봐야 할 건디.”
“네, 지금 가고 있는 중이구만유, 이따가 뵈유.”
“응, 먼저 가거라! 나도 곧장 뒤따라 갈랑께.”

밭둑길을 걸어 철길을 건너 흥남이 아저씨네 집을 지나려니 아저씨께서도 종구 집에 가신 듯했다. 주인 없는 마당에는 빨래를 한 몇 가지 옷들이 빨래줄 위에 널려 있고 털 색깔이 각기 다른 닭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었다.
종구 집 대문 앞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어 조금은 분잡하게 보였다. 연 이틀 동안이나 향을 피워 놓았는지 향내가 대문 밖까지 물씬 풍겨 나왔다.
대문 앞에는 머리에 삼베 두건을 쓴 상여꾼들인 동네 아저씨들은 꽃상여를 둘러싸고 동근이 아버지로부터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 어른들들 사이에 경수 아저씨와 기성이 형 그리고 방죽가에 사시는 흥남이 아저씨의 모습도 보였다.
집안에는 멀리 전라도 김제에서 올라온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마지막 가는 고인에 대한 예를 정중하게 올리고 있었다. 그 속에 종구도 지쳐 보이는 모습으로 끝없이 울고 있었다.
널따란 마루 한쪽에는 화산리 교회의 교인들과 석란이 정순이의 모습도 보였다. 옥순이는 부엌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부엌일을 거들고 있었다.

소란스런 분위기 속에 시간이 흐른 후 출상을 시작 하려는지 동근이 아버지가 방안에 둘러져 있던 가리개 병풍을 치우셨다. 남산리 마을에서 오신 지관이라고 하는 노인분의 말씀에 따라 몇몇 상여꾼 아저씨들의 손에 붉은 천에 싸인 관이 들려졌다.
그리고 방문 앞에 놓인 바가지를 밟아 깨면서 마루를 내려섰다. 그런 다음 마당을 지나 대문 밖을 나서 꽃상여 한가운데에 목관이 조심스레 놓이고 있었다. 종구와 종구 누이, 종구 아버지 그리고 친척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골목길을 가득 메운 동네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 사람들 틈 속에서 한번쯤 종구와 멀리서라도 눈이 마주치길 바랐다. 허나 종구가 슬픔에 겨워 우는 탓이었는지 내가 종구에게 미안하고 무거운 마음에 똑바로 쳐다보질 못했다.
그런 탓에 그곳에서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멍하니 서서 눈시울만 적시고 말았다.

얼마 후 옆 동네 새터 마을에서 왔다는 상여를 인도하는 선소리꾼 한 분이 요령(搖鈴)을 쳐 방울소리를 내며 출발을 알렸다. 상여 양쪽에 걸린 흰 천의 굵은 끈을 어깨 위에 둘러맨 상여꾼들이 고인을 편히 모시려고 모두 자리에서 가뿐하게 일어섰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북망산천 나는간다. 이제 가면 언제오나 친구들이나 만나고 갈까 상주상주 내상주야 어디 가서 아니오나. 오늘 이제 한번 보면 막죽이고 하직인데 나는 오늘 떠나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상주상주 내상주야 너의 애비 잘 모셔라 혼자 남은 너의 애비 불쌍해서 어이 할꼬. 너의 남매 키우면서 모진 고생 마다않고 앞산 돌밭 다 일구고 뒷산 긴 밭 논 만들고,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생고생도 많이 했다우. 이제 그만 살만하니 내가 덜컥 병이 들어. 내가 먼저 떠나가니 혼자 남은 너의 애비 불쌍하고 가련하다 행복하게 잘 모셔라.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북망산천 나는 간다 북망이라 하는곳은 험하고도 멀고 긴데, 심심험로 높은 산을 어이 넘어 내가 가나 세상천지 만물 중에 사람 밖에 더 있더냐. 어허 어~허 어허 어~하.”

방울을 치며 소릴 내는 선소리꾼의 뒤를 따라 상여를 맨 동네 어른들이 후렴으로 슬픈 가락의 노랫소리를 내며 발을 맞춰 걷고 있었다. 그리고 상여 뒤에는 상주인 종구와 정희 누나 그리고 집안 친척들이 곡을 하며 뒤따랐다.
종구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적에 그리도 자주 다니셨던 우물가를 한 바퀴 돌아 골목길을 빠져나와 동네 어귀 당산나무 앞을 지나 영면의 터가 있는 등메산으로 향했다.
동네사람들은 상여가 동네를 떠나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눈을 모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미우나 고우나 같이 운명을 함께 하며 그 숱한 역경을 헤쳐 살아온 그들이었기에 마음속에 애잔한 아픔은 더욱 그러하였으리라!

동네 어른들 말씀에 종구 엄마의 시신은 종구네 할아버지가 묻힌 묏자리 밑에 묻히실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종구네 어머니의 묘가 어디쯤에 자리를 잡을 것이란 것을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내 아버지 묘와 그리 멀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자기네 땅이니까 아버지 묘처럼 경사가 진 곳이 아닌 펑퍼짐한 평지에 묻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묏자리는 정남쪽에 위치해 있어 햇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이었다. 온 산에 철쭉, 진달래가 곱게 물들고 넓은 터에 잔디가 잘 자라 동네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앞이 확 트인 그곳을 동네 어른들이 명당자리라고 하셨다.
그런 좋은 자리에 조상님 묘를 쓰면 그 집안 후손들이 번창을 한다고 동네 어른들이 늘 말씀하셨다. 하지만 처해진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넓은 들녘에 그 많은 대지를 소유하게 되어 분에 넘치는 부를 축적했으니 그 점만은 조상님이 돌봐주신 은덕인 듯싶었다. 허나 그 후손 중에 한 사람인 종구네 삼촌이 전란 중에 온갖 흉악스런 일을 자행하여 끝내는 반공법 위반으로 대전형무소에서 장기수로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찌 보면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멀쩡했던 종구네 어머니가 갑작스런 병고로 불우한 생을 마치셨으니 과연 그 자리가 명당자리에 맞는지 마냥 의심스럽기만 했다. 그런 의구심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마을에 상가(喪家)가 있어 그런지 여느 날보다 개울가에 미역을 감으려 모여든 아이들의 숫자가 퍽이나 적어 마을 앞개울이 한산하게 보였다. 개울가에 늘어선 버드나무의 가느다란 잎들이 한낮 더위에 지친 듯 축 처져 있었다.
꽃잎이 시들어 떨어진 개망초 머리끝에는 노랑말잠자리 한 마리가 사뿟 내려앉아 저도 더위에 숨이 가쁜지 잠시 쉬어가려는 듯 보였다.
실개천 둑 너머 멀찍하게 바라보이는 앞산에서는 상두꾼들의 구슬픈 달구노래 소리가 가늠하게 들려왔다. 그런 온갖 시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런 황소는 느긋하게 좌우로 꼬리를 흔들며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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