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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63 조회 : 1,673




내 나이가 너무 어렸던 탓에 그 언제부터인지 확연하게 알 수는 없었다. 뒷산 가파른 언덕 위에는 두 그루 소나무가 서로 보듬으려는 듯이 다정스레 머릴 맞대고 있었다.
이른 봄부터 높다란 소나무 가지에 둥지를 틀어 그리 분주하게 드나들던 까치가 둥지를 비운 듯 그 모습조차 보이질 않았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소나무 위를 올려다보아도 텅 비어 있는 둥지는 그리 쓸쓸하기만 했다.

좁다란 오솔길로 이어진 야트막한 둔덕엔 달맞이꽃이 무성한 풀숲 위로 길쭘하게 목을 내밀고 있었다. 그 달맞이꽃은 온종일 입을 잔뜩 오므리고 있다 달이 휘영청 떠오르는 밤에만 활짝 피어났다. 아마도 그런 연유로 달맞이 꽃이라 불리는 것 같았다.
이른 봄부터 초가 지붕위로 바지런히 뻗어난 박 넝쿨이 여름으로 접어들자 기세를 더해 잎과 줄기가 푸르디푸르게 보였다. 여러 갈래로 뻗어난 넝쿨 틈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새하얀 꽃이 퍽이나 소박하게 보였다.

개학이 삼일 앞으로 다가오자 마음이 공연스레 바빠졌다. 책보자기를 펼치고 책과 공책 그리고 필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공책 두 권과 연필 세 자루 정도를 사야 될 것 같았다.
저녁 무렵 어머니가 장사를 끝내시고 집에 돌아오시면 말씀드려 내일 낮에 강씨네 문방구에 가서 살려고 마음먹었다. 과제물을 밥상 위에 펼쳐 놓고 글짓기를 끝낸 원고지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네모난 공란에 깨알 같은 글씨로 메운 글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글짓기의 제목은 ‘우리 어머니’로 했다. 힘들게 고생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 보려 네 딴엔 힘들게 노력 했다. 질리도록 몇 차례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여 마음에 흡족하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겨우 글을 지었다.
개학을 하게 되면 방학 과제물을 담임선생님께 제출해야만 했다. 각 반에서 엄선된 작품들은 학교 모든 선생님들의 철저한 심사를 거쳤다. 그다음 잘 쓴 글이나 그림, 곤충채집 표본 그리고 공작품들을 한데 모아 강당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리고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수상한 학생들에게 상장과 상품을 수여했다.
지난 4학년 여름방학에도 글짓기 부문에서 입상을 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었지만 글 솜씨가 뛰어난 석란이가 좀 마음에 걸렸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어여쁜 이 병에 가득히 넣어서 …….’

반쯤 열려진 방문 밖으로 개울가에 모인 동네 동생들이 부르는 합창소리가 매미소리와 함께 어울려 들려왔다. 그 순간 나도 개울가에 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물안경과 양철통을 챙겨 들고 밭길을 내려서려는데 원두막에서 밭일을 하시던 동근이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야, 상민아! 이리와 나 좀 보고 가그라.”
“네!”

볏짚으로 솜씨 좋게 지붕을 이은 원두막에 오르자 동네 모습과 개울가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욱 가깝게 보였다.

“그동안 밭 지켜주느라 욕 많이 봤다. 내가 고마워 주는 것인께 사양 말고 어여 받거라.”

동근이 아버지께서 검정 천으로 된 운동화 한 켤레를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아저씨 고마워유. 이 은혜 나중에 꼭 갚을 게유.”

머릴 숙여 절을 하고 운동화를 품에 안고 개울가로 가려던 발걸음을 얼른 되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루에 앉아 꿈에도 그려 보았던 소중한 검정 운동화를 한참을 보고 또 바라보았다.
내일 낮 화산리에 학용품 사러 갈 때 신고 가려고 마음먹었다. 이번에 있었던 종구와 싸운 일도 원만하게 해결해 주려고 애를 쓰셨고 동네에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도맡아 도우시는 동근이 아버지가 더욱 존경스럽게 보였다.

우리들 모두가 가장 혼란스런 시국에 태어나 가난에 굶주려 있는지라 전반적으로 생활이 넉넉치 못했다. 전교 학생 중에 운동화를 신은 학생은 전 학년 합쳐 불과 열 명 안쪽이었다. 우리 반에서는 석란이와 양조장집 아들 상영이 그리고 종구도 신고 있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검정색과 흰색의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다.
신발의 오른 쪽과 왼 쪽을 구분 못하는 낮은 학년의 학생들은 신발을 잃어버릴까 싶어 고무신 바닥 두툼한 창에 잘 드는 칼끝으로 각자의 성씨나 이름을 새겼다. 또 다른 학생들은 흰 바느질실로 자기 이름을 고무신 한쪽에 꿰매어 신고 다녔다.
암튼 그 무렵 검정 운동화는 그리 귀한 것이기에 마음이 더욱 설레기만 했다.

검정 운동화가 그리도 갖고 싶어 몇 번 어머니에게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중에 중학교에 들어가면 사준다고 하시며 자꾸만 뒤로 미뤄 거의 포기를 하고 살아왔었다.
그렇게 귀한 운동화이기에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 같아 이름을 써 놓으려 했다. 언젠가 어머니가 아버지가 쓰시던 유품이라고 하시며 그리도 소중히 반닫이 속 깊이 넣어두었던 만년필을 꺼냈다.
그런데 막상 이름을 쓰려고 하니 오랜 세월 반닫이 속에 넣어 두었던 탓인지 잉크가 메말라 글이 전혀 써지질 않았다. 그래서 논산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는 종기 형에게 잉크를 빌리려고 마을로 내려갔다.
늘 가파른 언덕배기를 오르려면 땀이 흘러내리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조금 짜증이 났지만 운동화 덕분에 기분이 좋았던 탓인지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언덕 위에 오르자 들녘에서 시원한 바람이 그리도 고맙게 불어와 마음이 흔쾌했다.

마을 중간지점에 있는 종기형네 집으로 가려면 우물가를 거쳐야만 했다.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양철 두레박으로 물을 떠 마시니 가슴속이 시원했다.
종기형네 집으로 가려는데 옥순이가 열무김치를 담그려나 자기 집 울안 텃밭에서 열무를 뽑다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말을 건넸다.

“상민아, 너 시방 어디 가냐?”
“응, 종기형네 집에 갈라구!”
“종기오빠네 집은 왜?”
“응, 뭐 좀 빌리려구. 참 너는 방학숙제 다했냐?”
“응 지도 그리는 것만 빼고 대충 다 했어. 참 너 먼저 번 일요일 날 화산리 교회에 갔었다며?”
“응 그런디 누가 그러데?”
“어제 화산리루 울 엄니 심부름 갔을 때 잠깐 석란이 만났는데 석란이가 그러더라.”
“음, 그랬구나.”
“그리고 너 종구랑 만났다면서 서로 오해는 풀었냐?”
“응 만나긴 했는디 통 말을 안 하고 그냥 가서 그만뒀어.”
“종구가 화가 많이 났던 모양이구나 …….”
“암튼 그렇게 알고 나 바뻐서 간다. 낼모레 학교에서 보자.”

해바라기가 흙 담장 너머로 긴 목을 빼어 내밀고 있는 종기 형네 집안으로 들어섰다. 반갑게 맞이해 주는 종기 형으로부터 잉크를 빈병에 조금 얻어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논길에 벼이삭은 내려쬐는 뙤약볕에 마냥 푸릇하게만 보였다. 올 추석에 조상님 제사 모시고 모처럼 쌀밥을 먹어보려고 남보다 일찍 심어놓은 이른 벼는 벼이삭이 여법 야무지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논둑길을 지나 철길을 건너려니 마을 옆 샛강 철교 위를 달려오는 기차가 보였다. 발걸음을 잠시 멈춰 달려오는 기차를 바라보고 있는데 동네 꼬마 녀석들이 줄달음질쳐 달려왔다.
제가끔 기차를 향해 두 손을 힘껏 흔들고 있었다. 그 중에는 아랫도리를 채 입지도 않은 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리 좋아 웃어대는 어린 동생들도 섞여 있었다.그러자 기관실에 탄 기관사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기차에 탄 손님들도 반가운 듯 웃으며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철로 둑길에 메어놓은 염소들은 기차소리에 놀란 듯 목에 매달아 놓은 줄이 끊어지라 이리저리 껑충껑충 뛰면서 ‘메에에 메에에’ 소릴 내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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