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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64 조회 : 1,708




참으로 변덕스럽기 더 할 나위 없는 여름 날씨는 구름이 심술을 잔뜩 부려 놓은 것 같았다. 이른 아침부터 우중충한 날씨에 앞산과 너른 들녘이 흐릿하게 보이더니 어느 틈엔가 안개비가 살포시 내리기 시작했다.
앞 들녘 논배미에 빗물을 머금은 벼 포기들이 더없이 생기롭게 보였다. 지붕 한 모퉁이 추녀 끝 거미줄에 초롱초롱 매달린 빗물방울이 투명한 구슬 같았다.
거미줄에 들붙은 작은 물방울이 실바람에 남실남실 몸을 떠는 모습이 퍽이나 앙증맞게 보였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니며 먹이를 찾던 닭들이 토방 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싸리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울타리에 줄기를 뻗은 연한 분홍빛 나팔꽃이 빗물에 안쓰럽게 젖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아빠생각’ 노래가 생각났다.
그리고 잊은 듯싶었던 아빠 얼굴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지난날 내 눈에 보였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앞산보다 더 큼직하게 보여 그리도 믿음직스러웠다. 허나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허무함이 온몸을 감싸고돌았다.
이 세상 그 누구라도 가장 쉽게 부를 수 있는 말이 아빠인데 이제는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리 먼저 세상 떠나신 아버지가 더없이 야속하기만 했다. 더불어 마음 한구석이 시려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같이 살자 그랬죠.
애들하고 재미있게 뛰어 놀다가 아빠 생각나면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같이 살자 그랬죠.’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가 어린 나를 등에 업고 한번쯤은 불러주셨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아버지의 얼굴조차 볼 수 없어 마음 더욱 서러워 눈언저리에 눈물이 고였다.
그런 내 모습을 부엌에서 훔쳐보셨는지 어머니는 애써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시려는지 아궁이 앞에 머릴 더욱 숙이고 계셨다. 나처럼 어머니도 활활 타오르는 불길만큼이나 타는 가슴이 끓어오르셔 눈가엔 눈물이 일렁이었을 것 같았다.
전란으로 지아비를 그리 어처구니 없이 먼저 떠나보내고 삼십 중반의 나이에 과부댁 소리를 들으며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거친 세상을 이를 악물고 버텨 살았으니 그 아픔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말복을 고비로 더위가 한풀 꺾이려나 생각했는데 늦더위 맹위를 떨쳐 후덥지근하기만 한 날씨는 숨을 가쁘게 했다. 차라리 비가 내리려면 한줄기 시원스레 소낙비라도 퍼붓지 애매하게 가랑비가 내리면 후덥지근한 열기만 더해지는 듯싶었다.
싸리 울타리에 앙증맞게 매달린 주먹만 한 애호박 한 덩이를 따서 손에 들고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장사를 나가시려는지 마루 한쪽에 놓인 옹기동이를 챙겨 드시며 어머니께서 말씀을 하셨다.

“상민아! 여기 돈 놓구 갈 테니께. 이발소에 외상값 갚고 니 학용품 사라. 그리고 동근이 아버지 고마우니께 가는 길에 담배 집 들러 파랑새 두 갑 사다 드려라. 사람 도리는 혀야 되는 법이닌께.”

그 당시 어른들은 생활이 간고한 탓에 비싼 궐연을 사 피우질 못했다. 그래서 밭에 심어놓은 누런 담뱃잎을 따 햇볕에 말렸다. 그리고 잘 드는 칼로 잘게 썰어 잎담배 가루를 만들었다. 알맞은 크기로 자른 헌 종이 한가운데에 잘게 썬 담배 잎을 가지런히 놓고 동그랗게 둘둘 말아 침을 잔뜩 발라 피우셨다.
그런 담배 밭도 없는 어른들은 누런 종이봉지에 담긴 ‘풍년초’를 그리도 많이 피우셨다. 나이 드신 노인들은 긴 담뱃대에 담배가루를 꾹 눌러 담아 입에 무시고 빨곤 하셨다.
사는 형편이 조금 나은 사람들은 각자의 기호에 따라 갑에 담긴 필터가 없는 궐연을 피우셨다.

변덕스런 여름 날씨라더니 그 말이 딱 맞아 떨어졌다. 어머니께서 읍내로 장사를 나가시고 한 시간쯤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엔 구름이 바람에 등을 떠밀어 한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비 온 끝에 찌는 더위는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구름사이 햇살이 빠끔히 얼굴을 내밀자 오랫동안 숨죽였던 매미들이 하나둘씩 다시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비 멈춘 등메산이 짙푸른 모습으로 또렷하게 눈앞에 성큼 다가섰다. 화산리로 향하는 길가 참깨 밭에서는 풀내음과 함께하고 참깨 밭에서 풍겨나는 내음이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비에 젖은 콩잎사귀에는 채 마르지 않은 물방울들이 옷깃을 가볍게 적셨다.

건물의 생김새가 지서의 건물과 비슷한 면사무소 건너편에 있는 담배 집에 들러 담배를 사려 하니 아주머니가 이상하신 눈빛으로 물으셨다.

“담배는 누가 사오라고 하데?”
“울 엄니가 누구 갖다 드리라고 혀서 사는 건디유. 근디 왜 그러는디유?”
“아니다.”

아주머니께서 말을 얼버무리시고 파랑새 두 갑을 꺼내주시며 거스름돈을 챙겨주셨다. 담뱃가게에서 나와 조금 걸어 면사무소 맞은편에 있는 이발소에 들러 지난번 외상값을 갚았다.
그리고 오르던 길을 되돌려 달구지 길을 따라 강씨 아저씨네 점방에 들러 학용품을 사려고 가는 중이었다.

면소재지에서 마당이 제일 큰 성규형네 집 대문 앞에 머리가 앞으로 쑥 튀어나온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경스럽게 보였다.
성규형네 널따란 마당에는 멍석과 가마니를 깔아놓고 있었다. 마당 끝머리 한가운데에는 긴 나무에 영사막으로 쓰일 하얀 광목의 천이 걸쳐 있고 예법 높은 지붕 위에는 쇠로 된 둥그런 확성기가 올려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어떤 아저씨가 종이 위에 검고 붉은 그리고 파란색의 물감을 붓에 묻혀 글씨를 쓰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종이 위에 커다랗게 ‘단종애사’ 라고 쓰고 한쪽 모서리에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라는 글자를 쓰고 있었다.
자못 궁금한 마음에 성규 형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아주 눈에 거슬릴 정도로 으스대며 활동 사진기를 설치하려는 크고 높다란 책상 곁으로 걸어가면서 말을 했다.

“야, 오늘밤에 우리 집 마당에서 활동사진 돌린다. 너도 이따가 밤에 구경 와라.”

약 두 해 전인가 밤에 어머니와 함께 이동 가설극장이 화산리에서 상영하는 ‘옥단춘’ 이라는 활동사진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어머니와 함께 활동사진을 보러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학용품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성황당 언덕배기에 오르니 활동사진 구경꾼들을 모으려는지 약간 시끄러운 잡음이 섞인 확성기 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아마도 밤이 되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활동사진을 보려고 숱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한바탕 북새통을 이룰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시절 문화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극장이 논산과 강경 읍내에 한 곳씩 있었다. 농사일에 바쁜 사람들이 밤에 겨우 한번 상영하는 활동사진을 보러 갈 시간적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극장 입장료가 만만치 않아 거의 발걸음을 못하고 살았다. 어쩌다 젊은 남녀 간에 서로 눈이 맞아 정분을 나누는 연인들이 낮 동안 농사일을 마치고 주위가 어수룩해지면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십 리 길이 멀다 않고 곧 잘 다니곤 했다.
그런 중에 직접 시골로 찾아오는 이동식 가설극장이 대중들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져 실로 큰 호응을 받았다.

끝이 보이질 않는 넓은 들녘 서편 하늘가에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면소재지 주막집도 노을빛에 흠씬 물들어 가고 있었다. 주위가 서서히 어둑발에 깃들기 시작하면 들녘 일을 마친 어른들이 저마다 집으로 발걸음을 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막차에서 내리는 손님들 중에 어머니의 모습이 희끗희끗하게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검둥이와 함께 밭둑길을 따라 어머니를 향해 힘껏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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