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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66 조회 : 1,832




모지락스런 더위가 짜증나게 연일 계속되는 8월은 지루함 속에 어정쩡하기만 했다. 이제 지긋지긋했던 늦장마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하도 오락가락 하는 날씨는 변덕을 그리도 심하게 부렸다.
엊저녁 무렵부터 앞산 산릉선으로 검은 구름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더니 늦은 밤부터 비가 간간이 내리기 시작했다. 기왕 내릴 바에는 한줄금 시원하게 쏟아 붓기라도 하면 잠시인들 더위라도 식힐 수 있을 것인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날이 밝아 아침이 되자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따가운 여름 햇살에 기가 눌린 듯 그마저도 멈추고 말았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건만 참으로 감질나게 내린 비는 마당에 흙먼지를 겨우 가라앉힌 듯했다.

눈만 뜨고 나면 아침밥도 뒤로 미루고 무엇이 그리 바쁜지 불이 나게 아랫마을로 마실을 다녀온 검둥이도 하수선한 날씨가 마음에 썩 들지 않는지 토방에 엎드려 능청을 떨고 있었다.
아마도 이른 아침부터 짝을 찾아 아랫마을에 다녀 온 것 같았다. 이슬에 젖어 꿉꿉한지 한바탕 온몸을 흔들고 쪽마루 앞에 다소곳이 앉아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폈다.

토방에 흐트러져 있는 검정 고무신을 구겨 신고 마당에 내려서 앞개울에 얼굴 씻으려 뜨락을 내려섰다. 눈앞에 펼쳐지는 앞산과 들녘의 모습들은 또 다른 생동감을 잔뜩 불러 일으켰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마을엔 고만고만한 초가집들이 다정스레 머릴 맞대어 참한 모습으로 다가섰다. 좁다란 달구지 길이 끝닿은 들 주막에는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희뿌옇게 드리워진 안개 속에서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앞개울에 가기 위해 밭둑을 걸어가는데 눅눅하게 젖은 땅에 습기 가득 밴 황토 내음이 온 사방으로 번져나 그 냄새조차도 새삼스레 정겹기만 했다. 폐 속 깊이 스며드는 자연의 내음은 내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음을 한 층 더 각인시켜 주는 듯했다.
이 땅을 지켜온 선조들이 이 내음을 맡으며 살았고 그 뒤를 이어가는 우리들이 다시금 이 흙내음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해 보니 온몸으로 느끼는 감회가 더욱 새롭기만 했다.

여름방학이 끝나 2학기로 접어들자 중학교 입시시험이 불과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담임선생님의 태도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1학기 때까지는 하루 수업시간이 길어야 여섯 시간 정도에서 끝났었다. 그런데 2학기가 되자 수업 시간이 한 시간 더 늘어났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반 전체의 성적이 여의치 못하면 야간에 보충수업도 강행할 것이라고 우리들을 서서히 압박하셨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교실 안에는 두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일주일 중에 두 시간이었던 음악시간이 한 시간으로 줄어들었다. 그 줄어든 음악시간에 자율학습인 자습시간을 주어 시험공부를 하게 했다.
단 한사람이라도 낙오가 없도록 하시려는 선생님의 뜻에 따르려고 너나할 것 없이 열과 성의를 다해 수업에 임했다.

선생님은 쇠로 된 줄판 위에 등사원지를 올려놓고 철필로 시험문제를 긁어 쓰셨다. 등사 원지를 등사기의 틀에 종이와 함께 끼워 넣고 등사잉크를 바른 롤러로 밀어 인쇄를 하셨다.
등사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시험지를 우리들 모두에게 고루 나눠주셔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리고 채점결과에 따라 성적 순위대로 교실에 앉는 자리를 배정해 주셨다.
그 결과 반 석차에서 상위권 열 명 중에서는 큰 변동이 없었으나 중위권에서는 각축이 치열 했다. 그런 탓이었는지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
책상 위에 동아출판사에서 발행한 전과와 답안지를 떼어낸 학습수련장을 놓고 저마다 시험 준비를 했다.

하루 중 마지막 수업시간엔 선생님께서 미리 내어주신 범위 안에서 시험을 치뤘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답안지를 서로 바꿔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답에 ○와 ×표시를 하여 채점을 했다. 채점이 끝난 답안지를 한데 모아 제출하면 선생님이 채점 하신 후 순위를 발표하셨다.
잘한 학생은 칭찬해 주시고 못한 최하위권 학생은 운동장을 몇 바퀴 돌게 하는 식의 가벼운 체벌을 하셨다. 그러한 변화는 옆 반인 2반에서도 시작되고 있었다.
또 다른 하나의 변화는 반의 분위기를 좌우하던 석란이의 인기가 좀 약해지는 듯싶었다. 그 틈사이로 새로 전학 온 영선이가 서서히 부각되어 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런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새로 전학을 온 영선이의 뛰어난 말솜씨와 친구들을 배려할 줄 아는 친근감 때문인 것 같았다. 더불어 총명한 만큼 학업성적이 최상위권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한편 석란이도 영선이에게 모든 면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안간 애를 쓰는듯하게 보였다.

한참 자라나는 성장기에 점심 도시락 하나로 끼니를 때운 후 땅거미 질 때까지 강행되는 늦은 수업시간으로 배가 무척이나 고팠지만 모두들 잘 참고 견뎠다.
우리들 모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난의 고리를 끊고 싶은 마음에 중학교에 꼭 합격을 하려고 그토록 열심히 했다. 그런 열학에 흐뭇하셨는지 교장선생님은 저녁 늦은 시간에도 가끔씩 교실에 들러 두루 살펴보시며 우리들 모두를 격려 해주셨다.

시간이 꽤나 흘러 어둠이 짙어지자 교실 유리창 밖으로 새터 마을의 전깃불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주위가 어스름해지면 수업을 마치고 저마다 배고픔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러니 수업이 없는 일요일 날은 모두들 그렇게 좋아라했다. 그날만큼은 뜻이 맞는 친구들끼리 어울려 공부도 하고 마음껏 놀기도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니 주위가 어두워져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산 밑을 휘어 도는 개울이 어둠 속에 조금은 음침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런 위압감에 나와 옥순이는 실과 바늘처럼 꼭 함께 붙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우리들이 걱정스러웠던지 내 어머니와 옥순이 어머니는 둑길 중간에 있는 수문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나와 옥순이가 같은 반 친구이듯이 어머니와 옥순이 어머니도 국민학교 같은 동창이었다. 그리고 마을 친목계에도 같은 계원이여서 무척이나 친하게 지내셨다.
그런 탓인지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챙겨주려 애를 썼다.

그리고 마을에서 이따금씩 일본말을 더듬거리듯 하는 사람은 이장아저씨와 동근이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옥순이 어머니 네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서울에 사신 적이 없어 그러신지 영선이가 부른 ‘팅클팅클 리틀 스타’ 노래는 전혀 알지도 못하셨다.

일주일 내 계속 강행군을 하던 학교 수업이 토요일이 되자 우리들 모두는 마음이 들떠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옥순이가 나에게 말을 했다.

“야, 상민아! 내일 영선이가 우리 집에 놀러 온다구 허는디 어쩌면 좋냐? 나 교회두 가야 허는디.”
“영선이가 니네 집에 온다구? 뭐하러 오는디?”
“우리 집 장독가에 봉숭아가 많이 피었다구 하닌게 손톱에 물들이구 싶어서 놀러온데.”
“그래서 뭐라구 했는데?”
“온다구 하는 걸 어떻게 못 오게 하니, 안 그래?”
“그럼 교회는 안 갈라구?”
“응, 못 가는 거지 뭐! 근디 전도사님이 뭐라구 헐랑가 걱정이다.”
“뭘, 그런 걸 가지구 뭐라구 한다냐? 못 가면 그만이지.”
“그래두!”

옥순이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둠이 내리는 냇둑 길을 함께 걸었다. 마을에 희미하게 등잔 불빛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보다 더 멀리 떨어진 면소재지 화산리에도 전기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화산리의 전기 불빛이 동네 등잔 불빛보다 더 밝게 보여 왠지 뒤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앞산 능선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그 위로 늦저녁 마실 나온 새하얀 하현달이 여유롭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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