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글, 사진 등의 저작물에 대한 무단복제를 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들메로 가는 길 - 67 조회 : 1,889




그저 단출하기 짝이 없는 초라한 초옥이지만 나에게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뒤뜰엔 숱한 해를 넘겨 밑동이 제법 굵어진 밤나무 한 그루가 듬직하게 서있었다.
나지막한 초가지붕에 닿을 듯이 휘어 내린 가지마다 제법 알이 굵어진 밤송이들이 야물딱지게 영글었다. 올곧게 내리쪼이는 아침 햇살에 밤나무의 짙푸른 잎사귀들이 눈에 띄게 번들거렸다.

어느새 토방에도 뜨거워 달갑지 않은 햇살이 성큼 다가섰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검정 고무신을 찾아 신고 마당에 내려섰다. 헛간 지붕에는 무성하게 뻗은 넝쿨사이로 초록빛을 띈 박이 서서히 배를 불리며 둥그렇게 자릴 잡아가고 있었다.
싸리나무로 엮어 놓은 울타리 너머로 조금 먼듯하게 보이는 들녘엔 논배미에서 피사리를 하는 농부들의 허리 굽힌 모습이 정겹게 눈 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무렵까지 온몸이 피곤하더라도 풍성한 가을에 알찬 결실을 거두려는 농부들의 마음은 땡볕 더위 속에서도 한결 같았다.
논에 물을 넣었다 빼기를 거듭하며 짬이 나는 대로 논둑을 반질반질하게 다듬어 온갖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집 앞 원두막엔 아직 동근이 아버지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발걸음 늦은 주인을 기다리는 누런 참외들이 아침 햇살에 맛깔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밭두둑에는 검은 줄무늬가 알맞게 쳐진 수박덩이들이 알차게 잘 익어가고 있었다.
바람이라고 시원하지도 못해 후덥지근하게 불어오는 언덕배기에 서 있는 갈참나무들도 늦더위에 갈증을 느끼는 것같이 보였다. 철로길 건너 물웅덩이 왕골논에선 솜씨 좋기로 이름난 기현이 할아버지와 흥남이 아저씨가 왕골을 베고 계셨다.
얼굴을 씻으려 몸을 굽히니 유리알처럼 맑은 개울물 위로 뭉게구름이 어른거렸다. 멀리서 다가오는 기차의 진동음이 귓가에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아마도 대전으로 향하려 강경 읍내를 출발한 기차인 듯싶었다.

동네 어른들 말씀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동구 밖 달구지 길에는 원두막을 향해 오시던 동근이 아버지가 면소재지에서 소달구지를 몰고 오시는 순아네 할아버지와 무엇인가 잠시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노란 밀짚벙거지를 눌러쓰신 동근이 아버지가 순아 할아버지와 말씀을 나누신 후 둠벙을 지나 언덕배기를 오르시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은 비스듬하게 비탈진 언덕배기를 내려선 동근이 아버지가 개울가에 닿아 나를 부르셨다.

“상민아!”
“네 아저씨 안녕하셨어유?”
“응, 이따가 저녁참에 느네 엄니 집에 오시면 면에서 밀가루 배급 나왔으니께. 도장 가지구 마을 구장네 집에 가서 타가라구 혀라.”

그제서야 나는 조금 전에 소달구지가 잠시 멈춰 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동근이 아버지는 말씀을 마치시고 참외 밭고랑으로 발길을 옮기셨다.
정말로 너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정부는 그중에서도 형편이 극히 어려운 집들을 선정하여 미국에서 들여오는 구호물품인 밀가루를 나눠줬다. 그런 구호품으로 나오는 밀가루라도 어려운 살림에는 큰 보탬이 되었다.
밀가루를 물에 반죽하여 밥주걱에 올려놓고 솥 안에 펄펄 끓는 물에 놋젓가락으로 뚝뚝 떼어 수제비를 만들어 끼니를 때웠다.
어쩌다 귀한 손님이라도 오면 칼국수를 만들어 손님 대접을 했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홍두깨로 밀어 둥글 넙적하게 펼친 다음 몇 번을 곱게 접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부엌칼로 잘게 썰어 면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 들러붙지 않게 면발 위에 밀가루를 고루 뿌렸다. 그 다음에 굵은 멸치로 다시국물을 잡은 다음 애호박을 잘게 썰어 넣고 칼국수를 맛깔스럽게 끓였다.

학교에서는 역시 원조물자로 들어온 우유가루를 학생들이 각자 만들어 온 종이봉지에 학교 소사 아저씨가 골고루 나눠주셨다. 때로는 큰 가마솥에 장작불로 펄펄 끓여 줄을 서게 한 후 차례대로 한 컵씩 나눠주셨다.
종이봉지에 타온 가루우유는 어머니가 밥솥에 넣고 쪄주시면 따뜻할 때는 그 맛이 달달하고 부드러워 먹기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 식어 버리면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먹기가 매우 힘들었다.

텃밭에 누렇게 잘 익은 노란 참외가 모양새를 점점 갖춰가고 있었다. 그 틈 사이 듬성듬성 거무스레한 빛의 개구리참외가 눈에 드문드문 띄었다. 밭 가장자리 탱글탱글하게 익은 옥수수가 햇살에 얼굴을 내밀어 잘 익은 것으로 몇 개 땄다.
더없이 넓은 들녘에 풍요로움이 넘쳐났다. 푸른 벼이삭 위로 높지도 낮지도 않게 떠있는 구름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한낮 더위에 진저리가 나서 쪽마루에 찾아오는 한줌 햇살도 썩 달갑지 않았다. 그런 내 속마음도 모르는 닭들은 날개를 푸덕이며 두 발로 두엄을 온통 파헤쳐 굼벵이와 지렁이를 찾고 있었다.
부엌 물두멍에 물이 없어 물지게를 지고 마을 우물터에 가려고 철길을 건넜다.

탱자나무가 울타리를 이룬 흥남이 아저씨 집 앞을 지나 왕골논에 닿았다. 두 분이 정담을 나누시며 왕골을 베시고 누렇게 색 바래가는 왕골이 내 키만큼이나 조금 높이 자라 있었다.
그 왕골로 껍질을 벗겨 잘 말린 다음 돗자리와 방석을 짤 모양 같았다. 문득 우리 담임선생님이 의자에 깔고 계신 왕골방석이 생각났다.

개울가에는 돌배나무집 득칠이형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한쪽 발로 풀숲을 뒤척여 물고기를 몰아 족대로 뜨고 있었다. 그리고 동네 개구쟁이들은 둑길위에 앉아 재미있는 듯 구경을 했다.
어쩌다 조금 큰 붕어나 메기가 족대 그물에 걸려 나오면 ‘와’ 소릴 내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반들거리는 골목길을 지나 연자방앗간 공터에 이르니 동네 우물터가 맞바라보였다.

향나무가 서너 그루 운치 있게 서 있는 동네 우물가에는 우물을 둘러싸고 물 길러 오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병수네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시려는지 한가운데가 우묵하게 파인 돌확에 붉은 고추를 넣어 갈고 계셨다.
다른 한쪽에서는 인식이 어머니가 보리쌀을 씻고 계셔 부연 뜨물이 우물터 아래 도랑으로 좔좔 흐르고 있었다.

우물가에 닿은 상분네집 대추나무에는 불그레한 빛을 발하며 대추알들이 탐스레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꼬리 끝이 빨간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토담을 사이에 두고 가뿐하게 넘나들었다.
고샅길에는 서너 살짜리 동네 꼬마 아이가 아랫도리를 훌렁 벗어 고추를 드러내고 있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물 길러 온 엄마를 찾아 자박자박 우물가로 걸어왔다.

물지게를 지고 일어서려는데 골목길을 빠져나와 우물가로 오는 옥순이가 눈에 보였다. 오늘 우리 마을로 놀러 온다고 했던 영선이가 왔는지 궁금하여 머뭇거리며 기다렸다.

“야, 옥순아! 영선이 아직까장 안 왔냐? 너 영선이 땜시 교회 안 갔네?”
“응, 좀 있다가 올 거야. 어제 내가 점심 먹지말구 오라구 했는디. 오면 같이 먹을라구.”
“음, 그랬구나!”
“상민아, 너두 이따가 우리 집에 와! 같이 밥 먹자. 우리엄니가 너두 데려 오라구 했어.”
“응, 알았어 고마워! 나 먼저 간다. 이따가 만나!”

옥순이와 헤어져 물지게를 지고 동네 골목길을 벗어났다. 집으로 오면서 혹시 영선이가 마을로 오다가 물지게를 지고 가는 내 모습을 보면 어쩌나 싶어 다른 날보다 얼른 발길을 서둘러 걸었다.

“상민아, 너 그렇게 빨리 가면 물 다 쏟아질라 천천히 가그라. 무시 그리 급해서 호랭이 똥구멍에 불붙은 것 매냥 서두냐?”

밭에 가시는지 뒤에 따라오시던 주현이 어머니께서 걱정스러운 듯 말씀하셨다. 양쪽 물동이에 각각 반쯤 정도 물을 담았는데도 늦더위 탓인지 숨이 헐떡헐떡 차올랐다.
동구 밖 거북바위를 지나 흥남이 아저씨네 집 앞에서 잠시 쉬어가려고 멈춰 섰다. 거친 숨을 가다듬으며 혹시나 영선이가 오는가 싶어 고개를 들어 학교로 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논에서 일을 하고 계신 어른들 모습이 가물가물하게 보일뿐 영선이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오전 중간 때쯤에 마을 앞을 지나는 목포로 가는 화물차가 검은 연기를 내품으며 동구 밖 샛강 철교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목록으로

 

Copyrigt By 들메로 가는 길 All right reserved.
Webpage Administrator dooris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