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는 동안 서울이라는 곳은 어쩌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말로만 들어왔을 뿐이었다. 더욱이 단 한 번 가본 적이 없으니 그저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었다. 겨우 삼 십여 가구에 불과한 작은 동네지만 마을에서도 그곳 서울에 다녀온 사람이 아직까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 떵떵거리며 잘 사는 종구네 아버지도 서울이라는 곳에 다녀 온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보니 서울이란 곳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곳임에 틀림이 없었다.
방금 전 강경역을 출발한 기차는 그 서울을 향해 남쪽에서 북쪽으로 거슬러 원행을 계속했다. 달리는 기차의 연통에서 모지락스럽게 내뿜는 흑연(黑煙)이 청연한 하늘의 한 부분을 희뿌옇게 흩트려 놓았다. 우직하게 생긴 기차는 몸을 점점 커다랗게 부풀리며 금강과 맞닿는 샛강 철교인 공굴다리를 선뜻 건넜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거침없이 마을 앞으로 달려오면서 ‘뽀옥 뽀옥’ 기적소리를 날카롭게 내어질렀다. 그러면서도 재빨리 몸을 숨기는 한 마리 뱀처럼 마을 외곽 산기슭을 휘감아 잽싸게 모습을 감췄다. 숨바꼭질을 하듯 산모퉁이 뒤로 몸을 감춘 열차가 남긴 잔연(殘煙)이, 바람결에 산릉선으로 쓸쓸하게 흐트러졌다.
동구 밖 느티나무 위에는 목화송이에서 갓 빠져나온 새 솜 같은 뽀얀 흰 구름이 유유히 떠돌고 있었다. 방죽 가장자리엔 불어오는 실바람에 물결이 간지럽게 일렁였다. 하늘 향해 민출하게 뻗은 방죽가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기차가 남기고 간 연기가 바람에 날려 실실이 흩어졌다.
흰 옥광목 저고리에 검정 몸뻬를 입으신 어머니께서 좁다란 밭둑길 따라 화산리 주막을 항해 걸어가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점점 작게 보이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려니 오늘도 어제와 변함없이 온갖 고생을 하실 생각에 좁은 가슴속에 차오르는 애절함이 더욱 커져만 갔다. 사는 형편이 그렇다 보니 뉘 집 어머니들처럼 머리에 동백기름도 한번 못 바르셨다. 쪽진 머리에 옥비녀 한번 못 꽂으시고 늘 검정 몸뻬 바지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장터에 나가셨다. 온몸에 찌든 비릿한 젓갈냄새 그도 마다하질 않으시고 어린 나를 위해 강인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에 나도 몰래 눈물이 고여 시야가 흐려졌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더욱 슬퍼질까 두려워 얼른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쪽마루에 놓인 도시락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사친회비가 담긴 누런 봉투를 바라보려니 어렵게 마련해 주신 고마움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런 어머니의 안타까운 모습에 마음만 앞설 뿐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한이 맺힌 이 가난의 늪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일이었다.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애꿎게 책보자기 끈을 세게 졸라매어 어깨에 걸쳐 메고 사립짝을 나섰다. 마냥 철없는 검둥이도 같이 가자고 살갑게 응석 부리는 천진스런 눈망울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 검둥이라도 곁에 있어 목을 치고 오르는 서러운 감정을 다소나마 가눌 수 있었다.
잎과 줄기가 무릎까지 차오를 만큼 실하게 자란 콩밭을 지나 물 내음 비릿하게 나는 개울가에 내려섰다. 온몸이 알록달록 곱디고운 물총새 한 마리가 톰방톰방 물속으로 뛰어들어 재빠르게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개울둑길 수문 앞을 지나려 할 때 자전거 방울소리가 요란스레 울려 뒤를 돌아보았다. 앞서가는 아이들이 좁다란 길 한쪽으로 비켜서고 종구가 몸을 앞으로 약간 구부린 채 페달을 밟으며 내 앞을 스쳐 지나났다. 아직도 묵은 감정이 풀리지 않은 듯 서로 눈을 마주칠 틈도 주질 않았다. 조금은 거들먹거리는 몸짓으로 학교를 향해 달려갔다.
서먹하고 아쉬운 마음에 잠시 서성이는데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둑길 가 한쪽으로 내려서 볼일을 보면서 달려가는 종구의 자전거를 보며 ‘저리 쉽게 빨리 학교에 갈 수도 있는데’하고 그저 속으로만 생각해 보았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고 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늘 그렇게 말씀하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직 형편이 어려웠으면 그리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 발이 부르트도록 온종일 고생하시는 어머니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소변을 보느라고 내렸던 아랫도리를 서둘러 올리고 둑길로 올라서니 조금 먼발치에서 옥순이가 서둘러 걸어오고 있었다.
“야, 상민아! 같이 가자.” “응, 빨랑 와! 학교 늦을라.” “상민아, 너 오늘 사친회비 가지구 가지?” “응, 니가 그걸 어떻게 아는디?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어저께 장날에 니네 엄니랑 우리 엄니가 만났대.” “음, 그래서 아는구나! 얼릉 가자.”
보충수업을 하면서 평소보다 책을 많이 가지고 다녀서 그런지 묵직한 책보자기가 힘에 겨운 듯 옥순이 한쪽 어깨가 기울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기에 조금은 안쓰러웠다.
“옥순아!” “응!” “니네 집은 그래두 여유가 있으닌께 니네 엄니헌티 책가방 사달라구 혀라. 맨날 무겁게 들고 다니면 우쩔려구.” “야, 너 속 몰르면 가만이 있어. 울 엄니, 바늘로 찔러두 피 한 방울 안 나와. 가방? 어림 턱도 없는 소리지! 뭔 말만 하면 그저 중학교 들어가면 사준다구 혀.” “음, 울 엄마두 내가 중학교만 들어가면 자전거 사 준다구 했는디. 정말 사줄란가 모르것다.” “너는 걱정 안혀두 되지 뭐, 니 실력이면 눈 감구 들어 갈 건디 뭐. 안 그러냐?” “옥순아! 너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어, 그 정도하면.” “그래두 솔직히 좀 쭈밋쭈밋혀, 영선이도 충분하다고는 허든디 어쩔란가 모르겄다.”
언덕배기 묘지를 지나 새터 마을로 가는 나들목에 닿았다. 면소재지에서 푸줏간을 하시는 차씨 아저씨가 마차를 몰아 요란스레 방울소리를 울리며 새터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학교 후문 앞에는 소사일 하시는 양씨 아저씨가 불에 쓰레기를 태우고 계셨다.
아침조회 시간이 되어 교단 위에 서신 담임선생님이 평소와는 달리 조금 엄숙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모두 잘 들어! 새 학기 시작한지도 좀 되었고 남은 학년 우리 반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줄 반장, 부반장을 새로 선출을 할 건데 각자 마음속에 생각한 사람을 한사람씩 추천하기 바란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교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웅성대며 제각기 마음에 두었던 사람을 추천하려고 하였다.
“선생님, 저는 반장에 강명식이하구 부반장에 윤석란이를 추천하는디유.”
맨 먼저 손을 들고 말을 한 것은 석란이와 교회에 같이 다니는 화산리에 사는 종태였다. 그런 종태의 추천이 나오자 선생님은 칠판에 커다랗게 이름들을 쓰셨다. 그리고 다음 추천할 사람 없냐고 재촉을 하셨다. 그러자 교실 맨 뒤에 앉아 있던 성태가 손을 번쩍 들고 말을 했다.
“저는 반장에 이명수 하구 부반장에는 양영선이를 추천하고 싶은디유.”
성태의 추천에 선생님이 다시 영선이의 이름을 쓰셨다. 더 추천할 사람 없냐고 두 번을 재차 물으신 후 반장 후보 두 사람과 부반장 후보 두 사람을 앞으로 불러내 인사말을 시키셨다. 반장과 부반장 후보로 추천된 네 명이 돌아가며 인사말을 하는 동안 모두 조용히 들으며 때로는 웃기도 하며 박수를 쳐 주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이 준비해 오신 종이 위에 자기가 원하는 반장 이름과 부반장 이름을 적어 내라고 하셨다. 한동안 술렁이던 교실이 갑자기 긴장 속에 숙연해졌다. 우리들 모두는 각자 종위 위에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의 이름을 써서 접은 후 선생님께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