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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78 조회 : 1,632




근 보름 동안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던 여름장마는 넌더리가 나도록 지루했다. 어쩌다 비라도 옴팡지게 내려 바람이 세게 불면 냇둑 위로 환하게 한 가닥 번갯빛이 아주 짧게 번쩍거렸다.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우루룽 타다당’ 고막이 터지도록 요란스럽게 천둥을 쳤다.
나는 놀란 마음에 자라처럼 얼른 온몸을 바짝 웅크렸다.

냇둑 위에 가만히 서 있어도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저절로 등이 떠밀렸다. 받쳐 든 우산이 거꾸로 훌렁 뒤집혀 바로 잡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바람에 쓸리는 우산을 똑바로 펼치려고 한참을 바동거리다 보면 이미 옷은 후줄근하게 비에 젖어 몸에 찰싹 들러붙었다.
그렇게 겨우 비바람을 헤치고 학교에 도착을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흥건하게 젖은 윗옷을 벗어들고 두 손으로 힘껏 비틀어 빗물을 짜내기 바빴다.

이제 그런 지루한 장마에서 겨우 벗어나 홀가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장마 뒤에 더위라고 이글거리는 뙤약볕에 등껍질이 벗겨질 듯 폭염은 연일 계속되었다. 걸상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렸다.
그토록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여름방학이 뭔지도 모른 채 열심히 공부를 했다. 내년 이른 봄에 있을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려고 종일토록 선생님과 공부하며 책과 씨름을 했다.

동네 앞 개울가에서 단 한 차례 마음 놓고 물장구를 치며 놀지도 못했다.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해 여름은 뒤돌아볼 겨를 없이 그리 분주하게 넘기고 말았다.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처서를 넘겼다. 그리고 밤으로 기온이 내려가 이슬이 백옥같이 하얀빛을 발한다는 백로를 지난지도 꽤나 된 듯싶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기도 했다
마알간 하늘이 더없이 높다랗게 보여 마음으로는 가을이 찾아왔는가 싶어도 아직까지는 빡빡 깎은 머리가 따끈하게 한낮 더위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한동안 사람들 발길이 그리 뜸했던 마을 앞길이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여법 붐볐다. 아마도 추석을 하루 앞두고 열리는 읍내 대목장에 동네 사람들이 추석빔을 준비하려고 나서는 듯싶었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둘러 서 있는 주막집 정류장엔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북적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빼곡하게 보였다.

마을 큰길 위에는 동네에 딱 두 대뿐인 종구네 소달구지와 순아네 소달구지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읍네 장으로 여유롭게 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멀찍이 밀짚모자에 지게를 지고 뒤를 따라가시는 경수아저씨 모습도 보였다.

해마다 음력 팔월이면 온갖 햇곡식이 풍성해 동네 인심도 조금은 후해졌다.
일찍 이른 벼를 심은 사람들은 놋황색으로 잘 익어 고개 숙인 벼를 베었다. 조상님께 올릴 신곡주(新穀酒)를 담그고 세 가지 색깔의 햇과일과 햅쌀로 빚은 송편 그리고 토란탕을 제사상에 올렸다.

이윽고 화산리 지서 앞 산모퉁이를 돌아 남쪽으로 가는 기차가 힘찬 금속성 소리를 남기며 마을 앞을 지나고 있었다. 여느 날보다 열차에 탄 사람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열차 안 통로는 물론 심지어는 열차의 계단에 오르는 승강구 손잡이를 붙들고 가는 사람들도 눈에 띄어 명절 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어머니도 대목장을 보시려는 것 같았다. 그날 하루는 일손을 놓으시고 옥순이 어머니와 같이 가신다고 하시며 나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셨다.

“어쩟던 간에 니 애비 제사상은 차려야 하닌께, 학교에서 돌아오면 송편 속 넣게 돔부콩이랑 콩 좀 따다 놓거라, 그리구 이따가 삼식이네 집에서 동네 사람들이 돼지를 잡아 노느매기 헌다구 하닌게, 고기 좀 좋은 디루 두근만 달라고 해서 부엌 거적때기 확 걷어붙여 놓구. 바람 잘 통하게 시렁에 야무지게 달아 놔라, 암튼 장에 얼릉 댕겨 올 틴께 그리 알아라.”

저도 학교에 가려는지 도랑가까지 따라나서는 검둥이를 달래 집으로 돌려보냈다. 알알들이 실하게 익어가는 콩밭을 지나 개울가 둑길에 올라서니 키가 작달막한 옥순이가 건널목을 건너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야, 상민아! 너 이따가 나랑 방앗간에 같이 가야 돼. 왜냐면 니네 송편 할 쌀가루 우리랑 같이 빻는데 니네 꺼 가져가야 하닌께. 그리구 니네 뒷산에서 솔잎두 따야 혀. 너두 따 줄 꺼지?”
“응, 알았어. 근데 울 엄니랑 니네 엄니가 같이 장에 갔다냐?”
“아니, 시방 갈라구 준비 허드라. 가것지 뭐!”
“너는 느네 엄니가 추석빔 뭐 해준다구 허대?”
“몰라! 그냥 두껀 원피스 하나 사줄랑가, 너는?”
“뭘 뻔히 알면서 묻냐? 울 엄니는 내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것두 안 사 줄 거여.”
“아이구, 그놈에 중학교가 뭔지 말끝마다 중학교, 중학교다 에이 지겨워.”

저마다 사는 형편이 어려운 탓도 있지만 삼십여 가구가 사는 동네에서 제일 학력이 높은 사람이 우물가집에 사는 종기형이었다. 그 종기형도 성적이 그리 좋지는 못해 논산에 있는 사립 중학교에 다녔다.
내년에 옥순이와 나 그리고 종구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중학생이 네 명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부모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비석골 앞 언덕배기에 오르자 밤나무에 주먹만 한 밤송이들이 햇빛에 얼굴이 간지러운가? 푸른빛을 벗고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새터 마을 뒷산에는 솔잎을 따고 있는지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듬성듬성 보였다.

학교 교문 앞길에는 명절날 집집마다 쓸 술을 배달하려는지 용꽃 양조장의 마차가 방울소리를 울리며 면소재지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침 조회시간이 되자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내일은 민족고유에 명절인 추석이니까 학교는 내일하고 모레까지 이틀 쉬고 오늘은 집에 가서 집안일을 도우라고 오전만 수업을 한다. 그러니 집안일 열심히 도와주길 바란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모두 좋아라하면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떠들어댔다. 그러자 선생님은 칠판을 회초리로 치시며 조용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모두들 저리들 날뛰며 좋아하는 명절인데 왠지 마음 한쪽이 비어있는 것처럼 쓸쓸하기만 했다. 그러나 나를 위해 사시는 어머니가 하늘아래 딱 한분이라는 생각에 서운해지려던 마음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네 시간 오전 수업을 끝내고 교실을 나서려는데 석란이가 나를 보며 말을 했다.

“야, 강상민! 너 낼 우리 교회에서 다 모일 건디 놀러올래?”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이 우두커니 서 있자 마음이 상했는지 이내 톡 쏘아붙이듯이 다시 말을 하였다.

“왜? 오기 싫으냐? 오기 싫으면 말구.”

그리고 자기와 가까운 아이들과 어울려 교문으로 향했다. 청소당번으로 남아 있던 영선이가 나를 보고 슬쩍 웃으며 아이들과 함께 서둘러 마루에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교실을 나와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오전 내 그리 맑던 날씨가 또 변덕을 부리려는지 하늘가에 검은 구름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명절날 아빠 산소에 성묘도 해야 되는데 하며 걱정을 하고 있는데 옥순이가 뒤에서 뛰어오고 있었다.

교문을 나서 학교 울타리를 반쯤 돌아 새터 나들목에 닿았다. 면소재지와 이어진 달구지 길에는 읍내 장에 다녀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띄엄띄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석골 산자락 밭에는 콩을 따는 아주머니와 할머니 모습이 정겹게 보였다.

“옥순아, 너두 낼 교회에 갈 꺼나?”
“음, 어짤란가 모르것다 가고는 싶은디 우리 외삼촌이 집에 온다구 해서.”
“아, 그 토끼재 산다는 외삼촌 말하는 거지? 하모니카 잘 분다는 삼촌 맞지?”
“응, 그려! 상민이 너는 뭐 할 건디?”
“난 울 아버지 성묘하구 나서 그냥 집에서 검둥이랑 놀라구.”
“야, 그나저나 빨랑 가자. 할일이 무지허게 많은디 안 그러냐?”

비석골 언덕을 내려서니 동네 방앗간에서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발동기소리가 귓가에 방정맞게 들려왔다.

평소에는 다니지 않던 임시열차가 기적소리를 세차게 울리며 남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점점 작아지는 꼬리 끝을 드러내며 샛강 철교 위를 지나 읍내 강경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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