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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7 조회 : 2,378




“그때 그시절엔 세상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 거꾸로 바뀌어 경천동지할 일이 거듭 일어났다.
그런 탓에 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때’는 이 땅에서 절대로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한국전쟁을 말함이다.
그리고‘그 시절’이라함은 놈들의 불법적인 침략과 천인공노할 만행에 의해 어처구니없이 이 땅을 점령 당하고 살았던 통분어린 뼈아픈 시간들을 말하고자 함이다.

모든 사람들이 극악무도한 놈들의 눈과 귀를 피해 자조적인 탄식과 처절한 후회 속에 암암리로 쓰던 말이었다.

정상적인 생리구조를 갖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훙내조차 낼 수 없는 악랄한 만행이 극치를 이루웠으니 이를 두고 어찌 통탄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 모두는 놈들의 불법적인 무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뒤바뀌었을 뿐이다.
허나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숱한 민초들의 순수한 정신과 마음까지는 결코 뒤바꿔 놓지를 못했다 아니 그런 투철한 반공의식까지는 놈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그저 힘이 없어 무참히 당하고 살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은 미처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속으로만 개탄할 수밖에 없었다.

영원한 저주의 대상이 되어버린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수많은 동족들이 어처구니 없게 너무나도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 놈들의 악행을 우리들 모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비분강개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놈들은 양이 덜 찬 듯 침략에 근성을 버리지 못하였다.
이 나라 땅덩어리 곳곳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공공연하게 악랄한 만행을 계속 자행했고 점령을 하는 곳마다 민족을 해방 했다고 공공연하게 부르짖으며 참으로 눈 뜨고는 도저히 보지 못할 정도로 광분해 날뛰었다.

그리 노도처럼 밀려오는 놈들에게 대항 같은 대항을 한 번도 제대로 못하고 힘없이 면소재지가 점령되고 말았다.
그리고 면사무소 입구에는 폭이 좁고 기다란 송판 위에 붓글씨로 큼지막하게 써놓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채운면 인민위원회’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더불어 우리의 태극기는 어디로 간 곳 없고 다들 처음으로 보는 붉은 인공기가 나부꼈다.
따발총을 어깨에 둘러맨 인민군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공산분자들이 왼팔에 붉은 완장을 두른 채 마치 제 세상인양 길거리를 활보했다.

그런 잔존 세력들은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는 큰 힘을 쓰지도 못했다.
지역의 치안을 관할하던 치안당국과 반공사상으로 굳게 뭉친 대한 청년단원들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피해 근근이 지하에 숨어서 활동을 했다.
그저 숨을 죽인 채 납작 엎드려 그 세력을 잃어 거의 와해 단계까지 이르렀던 남로당 계열의 잔존 세력들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마치 한여름 가뭄에 물 만난 물고기들같이 그제서야 제 세상을 만난 듯 사방팔방으로 휘젓고 다녔다.
그러면서 단지 각자의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만행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면소재지를 점령한 그들이 제일 먼저 자행한 만행이 우익 단체의 간부들과 적극 가담했던 사람들을 색출해 검거 또는 사살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 강제로 붙들려온 우익 인사들에게 온갖 수단을 동원해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다.
미처 검거하지 못한 지역의 유지인 우익 인사나 공무원들과 경찰관을 비롯하여 대지주들까지 검거하려 했다. 은신처는 물론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캐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광적인 그들은 그들이 얻고자 하는 목적에 동조하지 않고 완강히 버티면 온갖 야만적인 방법을 자행했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우익에 우자, 좌익에 좌자도 모르는 -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 지역민들을 강제로 면사무소 앞마당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인민의 이름으로 재판을 한다고 떠벌였다.
결국에는‘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한다.’는 허울뿐인 명목으로 소중한 인명을 축생만도 못하게 목숨을 여지없이 빼앗고 말았다.
이른 새벽이나 밤이 아주 깊어진 시간에 마을 뒷산 계곡으로 끌고 가 ‘인민의 적’ 또는 ‘민족의 반역자’로 몰아 총살을 자행하였다.

그리고 무슨 큰 감투나 쓴 것처럼 왼쪽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르고 놈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버렸다.
그리 날뛰던 좌익분자들은 놈들에게 과잉충성을 하려고 지나칠 정도로 움직였다.
그래서 끝이 예리할 정도로 뾰쪽하게 깎아 만든 죽창으로 향리 사람들의 소중한 목숨을 거침없이 빼앗고 말았다.

참으로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은 내 생애에 두 번 다시 기억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내 어머니는 물론 어린 나까지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끔찍한 일이 힘의 논리에 의해 선택의 여지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더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어린 삶은 놈들에 의해 무참하게 유린당하고 말았다.
내 삶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내 아버지가 모순으로 굴곡진 시대의 희생양으로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적인 한축이 무너져 내린 내 삶은 유년기 부터 고통스럽기만 하였다.
더불어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통한의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한서린 기억에 편린들이 남겨지고 말았다.

내 아버지께서는 죽는 한이 있어도 공산괴뢰도당들과 끝까지 싸우고 버텨 고향땅을 꼭 지키겠노라 하셨다.
그렇게 놈들과의 싸움터인 면소재지로 나가셨던 아버지께서 불과 이틀밤 사이에 실로 처참한 시신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내 나이 겨우 다섯 살 나던 1950년 7월 19일 아주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억척스레 퍼붓던 그해 여름 장마 때 늦은 밤이었다.

그날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마치 하늘이 뻥 뚫린 것처럼 장대비가 그리도 억척스레 퍼부었다.
또한 밤하늘에 시퍼런 불빛이 번쩍거리고 이내 온 천지가 무너져 내릴 듯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던 까맣게 어둡기만 했던 여름밤이었다.

오랜 장마 탓으로 습기가 가득 찬 방안 굽도리 여기저기엔 검푸른 곰팡이가 수두룩하게 피어났다.
눅눅한 방바닥에서 배어나는 습기와 후덥지근한 밤의 열기로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비좁은 모기장 안을 이리 뒤척거리고 저리 뒤척거리다 겨우 잠에 들려고 할 무렵이었다.
세차게 불어대는 광풍 속에 마구 흔들리는 사립짝 앞에서 귀에 익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시유, 상민이 엄니! 집에 계시유? 상민이 엄니! 나요 나! 종섭이라구유. 시방 음청시리 급한께 싸게 문이나 열어 주시유.”

그날따라 종구 삼촌의 말소리는 꽤나 위압적이고 거만스럽게 들렸다.
그제서야 어머니와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종구네 삼촌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리고 무엇이 그리 급한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토록 목메어 기다렸던 한 여인의 남편이자 어린 자식인 내 아버지의 신상에 관련된 일이 시급을 다툴 정도로 긴박하다는 것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극도로 긴장한 어머니께서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셨다.
그리고 어둑어둑한 방 한 구석에 있는 성냥 통을 어림짐작으로 더듬더듬 찾으신 후 서둘러 불을 켜셨다.
그러고는 불어오는 비바람에 꺼질 듯 가물거리는 석유램프의 심지를 돋우시며 얼른 사립짝 밖을 내다보셨다.

등불 너머로 희미하게 비친 사립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왼쪽 팔에 붉은 완장을 차고 도도하게 서 있는 종구네 삼촌 종섭이었다.
바로 옆에는 그 어두운 밤에도 따발총의 번득거리는 총부리를 앞으로 치켜세우고 인민군 한명이 서 있었다.

그리고 전혀 낯이 익지 않은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한 호롱불에 비춰 보였다.
사람들 모두 줄기차게 내리는 빗물에 옷이 흠씬 젖어 있었다.
그리고 종구네 삼촌 바로 뒤에 바작이 없는 등지게를 지고 있는 어느 분의 모습이 보였다.
지게 위에는 거적때기에 둘둘 말려 있는 시신의 양쪽 다리가 땅을 향해 축 늘어진 상태로 흔들거리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바로 아버지의 시신이라는 것을 얼른 알아채신 어머니가 지게 옆으로 달려가 덮석을 들춰보시다 말고‘앗!’하는 외마디 비명을 내어지르셨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석유램프를 그만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빗물이 흥건하게 고인 앞마당에 그만 힘없이 쓰러지셨다.

처절한 참상을 안쓰러워하는 듯 광폭한 천둥이 하늘이라도 곧 무너뜨릴 듯 벼락을 치며 다시금 한 차례 스쳐 지나갔다.
삼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딩황하기보다 무서움에 떨어야 했다.
두 다리가 축 늘어져 흔들리는 내 아빠의 그런 흉측한 모습이 더 없이 무서웠다.그리고 그만 기절을 하셔 쓰러지신 어머니의 모습에 놀라 큰소릴 내어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우루루룽 따다당’하며 또 한 차례 온 사방이 떠내려갈 듯 천둥번개가 쳤다.

그러자 귀분이네 집 마당 한구석 두엄자리 옆에 우리 안의 돼지도 요란한 천둥소리와 내 울음소리에 놀란 듯하였다. 우리 앞에 나무 기둥 틈사이로 주둥이를 디밀고 꽥꽥대며 정신 못 차리게 부산을 떨어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데 귀분이네 집 복실이가 평상시에는 낯선 사람이나 특히 으등박지들이 동냥을 하러 싸리 문 앞에 나타나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며 대들었다. 그랬던 복실이가 웬일인지 그날 밤에는 이상하게도 숨소리조차 내질 않았다.그리고 마루 밑에 꼭꼭 숨어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잠시 멎은 듯싶었던 장맛비가 ‘쏴아쏴아’ 소리를 내며 다시 줄기차게 퍼붓기 시작했다. 아닌 밤중에 사람 울음소리가 나니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옆집 귀분이 어머니가 우리집으로 오시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은 두려우신 듯 귀분이 아빠를 앞세우고 사립문 앞으로 다가오셨다.

“아니 뭔 일이 있남유? 이 오밤중에 무신 울음소리래유, 상민엄니. 아 근디 이게 누구랴? 얼라, 종셉이 아닌감? 근디 이 오밤중에 뭔 일이 난겨?”

인공난리가 나기 전까지는 한동네에서 한 우물을 마시며 형님동생하면서 예법 다정하게 살았었다.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즈음 붉은 완장을 차고 난 뒤로는 사람이 달라져서 너무 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변해 버렸다.

“봐유. 성님두 인자는 세상이 확 뒤배껴번졌으닌께 그리 알구 아푸로는 으찌댔던 간에 내 이름일랑 씀벅씀벅 부르지 말더라구유. 듣기에 참 그시기 하닌께 내말 알긋남유?”

그 때 어머니께서 진흙 땅바닥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키셨다.그리고 귀분이 아버지와 종구네 삼촌이 나누는 말에는 아랑곳없이 무섭게 아버지 시신을 끌어안고 하늘이 꺼져 내려라 울부짖으셨다.

“아이구 상민 아부지. 이게 무슨 꼴이래유? 워매 대체 무신 날벼락이냐구유, 참말루! 상민 아부지 어여 뭐시라고 말 한자락 좀 해보셔유.”

그러자 귀분이 아버지도 거적때기에 덮여 축 처져 늘어진 아버지의 두 다리를 보시고 경악(驚愕)하며 말을 이으셨다.

“이걸 워쩌란 말여. 하늘 밑에 이런 억장 무너지는 일두 다 생기는감. 참 드러븐 놈의 세상,아주 미처 돌아가는구먼 그려. 참 얼척이 읍서서 말이 안 나오는구먼.”

그러기가 무섭게 종구네 삼촌이 성난 목소리로 귀분이 아버지를 다그쳤다.

“즈그미 참말루 듣기 뭣같네 그려. 내사 쪼매 전에 성님헌티 그리 당부를 혔으면 대충 알어먹었을 건디, 참말루 왜 그러는지 도통 모르긋네. 도저히 안되긋구먼, 성님. 꼭 흠한 꼴을 당해봐야 알란가유? 똥인지 된장인지를 도통 못 가리능구먼 그려.”

참말로 세상이 뒤집어져 미쳐서 돌아가느라고 그러는지 종구네 삼촌이 그리 심할 정도로 말을 해도 귀분이네 아버지는 총을 겨누고 있는 인민군의 기세에 눌렸는지 한마디 말대꾸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놈들 말대로 세상을 뒤바꿔 놓은 기세를 있는 대로 내보였던 종구네 삼촌이 발길을 돌리면서 어머니에게 참으로 평생토록 가슴에 맺힐 모진 소리를 남겼다.

“보시유, 상민이 엄니. 내사 이런 말까정은 되도록이면 안 헐려구 별렀는디. 시방 상민이 아부지 시체를 으떤 맴으로 가져왔는지, 참말루 모를 긋이구만유. 다덜 악질 반동이라구 불에다가 태워서 아예 읍세번지자구 하는 걸 내가 차마 그랄 수 읍어서 간신히 가지구 왔으닌께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들여 분잡 떨지 말구 오늘 당장이라두 으디 적당헌디다가 싸게싸게 파묻어 번지드라구유. 뭐시냐, 내 입장두 있으닌께. 그럼 나사 그리 알구 갈라네유.”

참으로 해서는 안 될 말이었고, 또 들어서도 안 될 말이었다. 그리 모지락스런 말을 남긴 종구네 삼촌이 놈들의 무리와 한데 어울려 동네 골목길로 유유히 걸어 나갔다.

좀처럼 그칠 줄 모르는 여름 장맛비도 그런 애통한 슬픔을 아는 양 더욱 세차게 퍼부었다.
우리들 모두는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그 누구를 원망하지도 못한 채 소리 내어 통곡을 할 뿐이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비 속에 피가 끓는 듯 울음소리가 빗속에 낮보다 더 가깝게 들렸는 것 같았다. 채 피난을 떠나지 못한 이웃집 사람들이 그 빗속에 한 명 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 어머니와 나는 물론 동네 분들까지 눈물을 흘려 온 집안이 금세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귀분이 아버지께서 놈들이 진흙물이 흐르는 땅바닥에 마치 무거운 짐짝처럼 내려놓고 간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내 아버지의 시신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방 안 아랫목에 모셨다.
시신 위에는 이불호청을 뜯어 임시로 덮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모습을 힘이 빠지신 몸으로 그저 말 한자리조차 없이 맥없이 바라보셨다. 그저 마루턱에 걸터앉아 어두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밤하늘을 힘없이 바라만 보셨다.

그때 마을 구장님과 아버지와 동네에서 가장 자별한 친구 분이신 응수 아저씨께서 어찌 아셨는지 성급한 걸음으로 마당 안으로 들어오시며 말씀하셨다.

“아니, 이게 살다가 무신 청천하늘에 날벼락이유. 으찌 이런 음청난 일이 생겨분졌데유. 참말루 땅을 치구 통곡할 일이구먼유. 기나즈나 이걸 으짰으면 좋을랑가 모르긋네유.”

마을 구장님과 귀분이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친구 분은 동네 분들과 함께 마루에 걸터앉아 흐릿한 등불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셨다.

구들 틈새가 갈라져 매캐한 연기 냄새가 배어나는 아랫방 방바닥에 엎드려 있던 내 귀에까지 어른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시름을 아는 양 앞들 논배미에서 청승맞게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비참한 슬픔과 더위로 지쳐가는 여름밤을 더욱 지루하게 했다.

겨우 여섯 겹의 삶에 테를 두른 연약한 나는 그런 암울한 환경의 바탕에서 살아나야만 했다.
마치 무거운 돌덩이 밑에 눌려 신음하면서도, 그리 살아남아 버티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어린 잡초처럼 힘에 벅차도록 자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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