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우직스럽게 보이는 발동기가 쉴 새 없이 쿵쿵대는 방앗간 안으로 들어섰다. 여름내 그리 조용했던 동네 방앗간이 송편을 빚을 쌀가루를 빻으러 온 동네 사람들로 북적였다. ‘철거덕, 철거덕’ 둥그런 쇠바퀴에 걸쳐 돌아가는 피대(皮帶)소리가 듣기 좋을 만큼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메뚜기도 가을 한철이라고’ 모처럼 대목 경기를 보느라고 발동기를 돌리는 순태아저씨가 신바람이 났다. 얼굴 군데군데에 검은 기름이 묻어나도 개의치 않으셨다. 함석을 구부려 동그랗게 만든 통속에 들어 있는 모빌유를 기계의 윤활을 돕기 위해 군데군데에 주입하고 계셨다. 발동기가 내뿜는 매캐한 냄새 속에 네모난 함석 철판위로 나오는 곱게 빻은 쌀가루가 새하얀 눈같이 곱살하게 보였다.
동네 아낙네들이 잘 불린 하얀 쌀이 다복하게 담겨 있는 큰 양은그릇을 가지런히 놓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동기 소음에 서로가 주고받으시는 말씀이 잘 들리지 않으시는 듯했다. 손짓을 곁들여 큰소리로 말씀을 주고받으시는 모습이 명절 분위기를 한층 돋우었다. 온갖 소음이 진동을 하는 방앗간 안에 그렇게 서 있으려니 두 귀가 멍멍해져 밖으로 나왔다.
방앗간 텃마당에 서 있는데 어디선가 꿀꿀거리는 돼지소리가 들려 바라보았다. 고샅길에 삼식이 아버지가 두 볼에 군살이 도톰하고 엉덩이가 토실토실하게 살이 잘 찐 흑돼지 한 마리를 몰고 오셨다. 잔뜩 겁에 질린 돼지가 잘 가려고 하질 않자 기다란 대나무 회초리로 볼기짝을 톡톡 치면서 힘들게 몰고 오셨다. 아마도 돼지우리에서부터 나오지 않으려 용을 썼는지 주둥이 가장자리에 허옇게 거품을 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추석명절에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이 노느매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얼마 후 옥순이가 쌀가루가 담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방앗간 문을 나서며 말을 건넸다.
“상민아, 너 딴디 가지말구 요기서 꼼짝 말구 기달리구 있어. 내가 얼릉 집에 가서 니네 집 하구 우리 집에 쓸 송편가루 절반으로 나눠가지고 빨랑 올 테닌께.” “응, 빨랑 와! 나두 얼른 콩도 따야 되구 바쁘닌께.”
해는 어느덧 오후 반나절쯤 되었다. 동네 골목엔 뉘 집에서 전을 부치는지 향긋한 기름 냄새가 퍼져 나와 입맛을 돋우었다. 이른 아침 서둘러 읍내 대목장에 갔던 동네 분들이 장보따리를 한가득 머리에 이시고 더러는 어깨에 둘러맨 채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옥순이가 가져온 송편을 빚을 쌀가루가 담긴 양은 대야를 손에 들고 옥순이와 함께 동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둥구나무 앞에 서울로 돈 벌러 가셨던 주현이 아버지와 능수 아저씨의 모습이 보여 무척이나 반가웠다. 명절을 쇠러 오시는지 두툼한 선물 보따리를 손에 들고 마을로 들어오셨다.
둥구나무 밑에는 객지로 돈벌러나갔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가족들을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 멀리 주막집 정류장 쪽을 눈이 뚫어지게 내다보고 있었다.
논둑길을 걸어 철로 건널목을 건너려 하자 옥순이가 나에게 말했다.
“야, 상민아 주현이 아버지 서울에서 뭐 하는지 아냐?” “아니, 몰라! 뭐 하는디?” “음, 울 엄니가 그러는디, ‘뚜러’ 한다고 하드라.” “뭐? 뚜러? 그게 뭐시라냐?” “음, 영선이두 그러는디 서울 사람들은 밥을 할 때 우리들처럼 지푸래기나 솔가리를 안 때고 나무 장작을 땐다고 허드라.” “그래서?” “굴뚝에 끄름 많이 나면 굴뚝이 꽉 막혀 연기가 잘 피워 오르지 않는데 그래서 굴뚝에 들어가서 쑤시개질을 해서 연기가 잘 나오게 뚫어주고 돈을 버는 거래, 꽹과리를 치며 집집마다 댕기면서 ‘뚫어, 뚫어!’ 하구 소리치구 댕긴대. 그러닌께 을매나 우습냐?” “야, 우습기는 뭐가 우습냐? 돈 벌라구 고생 무지허게 하시는구먼, 그래두 주현이 아버지가 그렇게라두 벌었으닌께 지난봄에 뒤 배미 논두 두 마지기 사구 그랬는디 뭐.” “논만 사면 뭐하냐? 주현이 엄니가 주현이 중학교도 안 보내 주는디, 뭐! 꼼보딱지라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 “야, 너 어른한테 그렇게 말 하믄 못 쓰는 기여.” “뭘, 어떠냐? 난 사실대루 말하는 건디.”
주현이네 집도 매나 마찬가지로 살기가 어려웠다. 남의 논을 소작하여 겨우 밥 먹고 살 정도로 간고했다. 자기네 땅이라고는 단 한 평도 없는 억척스러운 주현이 어머니가 철도부지에 불법으로 밭을 일궈 푸성귀라도 심어 먹었다. 또한 그런 가난이 지긋지긋해 주현이 아버지가 2년 전부터 서울에 올라가셔서 돈벌이를 하셨다. 그리고 주현이 어머니는 어렸을 적에 천연두를 심하게 앓으셨다. 그런 탓에 얼굴에 흉터가 남아 있어 주현네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동네 사람들은 뒤에서 ‘꼼보딱지’라고 흉을 보았다.
주현이는 학업 성적이 좀 좋지는 못했다. 주현이 어머니는 가난 속에 찌든 탓인지 그저 끌어 모우는 욕심이 남달랐다.
‘낫 놓고 기억 자 모르는 신세만 면하면 된다.’고 하시며 오로지 땅 불리는 것밖에 모르셨다. 돈을 아끼신다고 주현이 머리도 집에서 가위로 직접 깎아 마치 소가 풀을 뜯다만 자리처럼 흉하게 보였다. 그리고 주현이가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논산 읍내에 있는 장롱 공장에 기술 배우러 보내려고만 하셨다. 암튼 살기 힘든 그 시절엔 흔히 있었던 일이었다.
쉽게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나지막하게 모여 있는 구름덩이들이 산릉선을 누르고 구름사이 뻘쭘하게 얼굴 내민 저녁 해는 둥구나무 위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뒷산에서 솔잎을 뽑고 앞 텃밭에서 알이 통통하게 영근 콩을 따다 놓았다. 마을 앞 달구지 길엔 군산 고무신 공장으로 일하러 갔던 용숙이누나의 모습도 보였다. 곱게 빗은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서 예쁘게 따내린 용숙이누나가 한 손에 커다란 손가방을 들고 둥구나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못 보았던 딸이 그리도 반가우신지 용숙이누나 어머니가 뛰어 달려가셨다. 달구지 길에는 순아네 소달구지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동네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제사상에 올릴 고기를 가지러 삼식이네 집으로 갔다. 동네 어른 몇 분이 삼식이네 아랫방에 모여 정담을 나누시고 계셨다. 다른 분들은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도마 위에 돼지고기를 듬성듬성 썰어놓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삼식이 아버지는 돼지고기 뒷다리에서 적당한 크기로 고기를 떼어내셨다. 예리한 칼끝으로 칼집을 내신 후 지푸라기를 꼬아 고리를 만드시고는 내 손에 들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상민아, 너 니네 엄니한티 암튼 잘 혀야 헌다. 니 엄니 너 땜시 고생 무지허게 허는디, 공부 잘해가지구 내년에 중학교 꼭 붙어야 한다, 알었냐?” “네!”
삼식이네 집 뒤뜰 상수리나무 밑에 펼쳐놓은 들마루 위에서는 주현이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에 둘러싸여 서울 이야기를 구성지게 하시고 계셨다. 우리들이 영선이가 하는 서울 얘기에 귀를 기울이듯이 동네 어른들도 주현이 아버지가 하시는 서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때로는 신기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지막하게 머릴 마주한 초가집들이 촘촘히 들어선 동네 골목길을 걸어서 동구 밖으로 향했다. 집집마다 풍겨 나오는 기름 냄새가 좁은 길로 가득 배어나왔다. 드문드문 아이들은 마당가에 나와 먹을 것을 한 움큼씩 손에 들고 신이 나는 듯 놀고 있었다.
동구 밖에 이르자 장에 다녀오시는 옥순이 어머니와 얼굴이 마주쳤다. 머리에 한가득 짐 보따리를 이고 오시면서 말씀하셨다.
“상민아, 니 엄니 저기 간다. 얼릉 가 봐라! 안 그래두 걱정을 무지하게 허든디.”
눈을 들어 바라보니 어머니께서 흥남이 아저씨네 집 앞을 지나고 있어 줄달음쳐 뛰어갔다. ‘엄니 같이 가’ 하며 큰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언덕배기에 올라서니 늦저녁 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었다. 짐이 무거워 잠시 쉬어 가시려는 듯, 어머니가 머리에서 짐 보따리를 땅에 내려놓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낼 보름달 보기는 영 글러먹었구먼. 비나 안 오면 다행이것다. 낼 니 애비 산소에두 가봐야 할 틴디, 날씨가 왜 이렇게 흐리멍텅하다냐?. 참 그리구 너 내가 아침나절에 말한 건 다 해 놓았냐?” “응, 다 했어. 떡쌀가루 진작에 갖다놓구, 솔잎허구 콩 따다 놨어, 그리구 돼지괴기는 요기 있구.”
손에 들고 있던 돼지고기를 어머니 앞으로 내보이며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가볍게 끌어안아 등을 두드려 주셨다. 조금 멀리 원두막 앞으로 검둥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저녁때가 다되어 가는지 날이 끄물거렸다. 가득 낀 구름 틈 사이로 겨우 내비치는 저녁노을이 산릉선에 검누렇게 모습을 드리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