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글, 사진 등의 저작물에 대한 무단복제를 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들메로 가는 길 - 81 조회 : 1,559




어제는 광기어린 폭풍우가 하루 내 퍼부었다. 이윽고 날이 밝아 아침이 되자 그리도 줄기차게 퍼붓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침을 딱 떼고 멈췄다.

싸리 울타리 밖에 서 있는 해바라기는 어제 내린 강한 비바람에 견디다 못해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리고 구름사이로 어렵게 얼굴 내민 해를 향해 무겁게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뒤뜰 장독간엔 빗물에 젖은 돌나물이 더욱 파릇파릇한 모습으로 또렷하게 보였다.

억센 바람결 따라 누운 코스모스는 땅바닥에 비스듬히 쓰러져 있었다. 하늘엔 구름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비우려는지 제가끔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비가 멈추자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싸리나무로 엮어 놓은 울타리 가지 끝에 가뿟하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투명한 네 개의 날개를 비스듬히 치켜세우고 이제 여름의 생명력이 다한 듯 다소 아둔한 몸짓으로 낮게 날고 있었다.

개울가 늪에는 왜가리 한 마리가 파드득거려 뒷산을 향해 높이 날아올랐다. 이내 왕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 웅크렸던 기다란 다리를 쭉 펴 날개를 퍼덕이며 깃을 모으고 있었다.

마을 앞길엔 면소재지를 다녀오시는 이장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진흙이 잔뜩 묻어나는 미끄러운 길 위를 자전거가 조금은 흔들리는 듯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이 그리 급하신지 서둘러 오시는 것 같고 마을 앞 둥구나무에는 마을 어른들이 군데군데 앉아 계셨다.

어머니는 읍내에서 젓갈 도매상을 하시는 조씨댁에 명절 인사를 하러 가신다고 서둘러 집을 나서 주막집 정류장으로 가셨다.

마을 골목길 안에 있는 연자방앗간 공터에 모처럼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려고 검둥이와 같이 집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 화산리로 가는 큰길 위에는 종구가 자전거를 타고 아마도 교회에 가려는가? 화산리 쪽으로 가고 있었다.

마을 앞 둥구나무에 이장님이 동네 분들과 말을 나누고 계셨는데 목청 높은 삼식이 아버지가 말씀을 하셨다.

“아니, 이장! 지금 헌 말 다시 좀 혀봐. 통 믿기질 않네, 그려! 그러닌께 어제 새벽에 태풍이 제주도를 확 쓸어버리구, 이내 부산으로 올라가 물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무지허게 죽구 상했다, 이 말이여?”
“예, 그렇다는구먼유. 면장이 하는 말이 부산은 엉망이구. 그쪽 남쪽 바닷가두 온통 물바다가 되서 집들이 죄 떠내려가구, 사람이 물에 빠져 죽구. 심헌디는 사람 시체두 못 찾게 물에 떠내려갔다는구먼유.”

동네 이장님이 말씀을 마치려 하시자 윗저고리에서 담배쌈지를 꺼내 긴 장죽에 풍년초 가루를 꾹꾹 눌러 담아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시던 진식이네 할아버지께서 말을 이으셨다.

“어쩐지, 어저께 그리 퍼붓더라니! 그런 큰일 벌릴라구 하늘이 지랄 염병을 했구먼, 그려. 아이구, 그넘에 물난리!”

그러자 옆에 서 있던 경수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참, 보통일이 아니네유, 그리 사람들이 많이 상했으니 우쩌면 좋대유? 그러니 우리덜 사는 요기는 양반이구만유, 아, 그나저나 바깥 세상에서 그리 엄청난 일이 생겼는디두 뭔 일이 일어났는지 다덜 소식두 모르구 사니, 이거 원, 눈뜬 봉사 따루 없구, 귀 달린 귀머거리 아닌감유?”

그리 암울하고 어두웠던 그 시절 진공관 라디오가 있는 곳이 면사무소하고 지서뿐이었다. 그마저도 일본 사람들이 사용하다 놓고 간 오래된 것이기에 기계의 성능도 그렇고 수신 상태도 꽤나 고르지 못했다.
그나마 그런 라디오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특수 부유층뿐이어서 면내에서도 단 한 집도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그만큼 뒤쳐진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삶의 형태가 흙에 의존하여 먹을거리를 구하며 살았던 농경시대이다 보니 자연스레 문명과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바깥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읍내 장터에 떠도는 소문을 귀동냥 하는 정도였다. 아니면 면사무소 숙직실에 있는 라디오를 들은 면직원의 입을 통해 겨우 알고 사는 정도로 어둡기만 했다.

마을에서는 동근이 아버지가 유일하게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다. 그나마 낙후된 시골지역의 교통관계로 서울에서 화물로 출발한 신문이 이삼 일이 지난 후에야 도착되는 실정이었다. 그리 어렵게 우편물로 오는 신문을 집배원을 통해 겨우 받아보는 정도였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 처참한 비극은 1959년 9월 17일 바로 추석날 새벽에 일어났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부산과 영남지역을 강타하여 수백 명의 인명을 무참하게 앗아가고 말았다. 그렇게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혀 수많은 수재민을 낳게 하였던 ‘사라호’ 태풍이었다.

동네 이장님으로부터 그 처참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신 동네 어른들은 모두 걱정스런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셔 명절 마을 분위기가 좀 가라앉는 듯해 보였다.

연자방앗간 공터에 닿으니 키가 크고 작은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었다. 그 중에 주현이는 자기 아빠가 사온 추석빔인 듯 줄무늬 나일론 긴팔 셔츠에 코르덴바지에 검정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주현이가 나를 만나자 반가운 눈빛으로 투명한 비닐 포장지에 동그랗게 말려 쌓인 사탕 몇 개를 쥐어주며 말을 건넸다.

“상민아, 이거 먹어 봐! 우리 아버지가 사온 건디 엄청 달구 맛있어. 그리구 넌 교회에 왜 안 갔냐? 오늘 교회에 애들 많이 모이는가 보던디.”
“내가 거길 뭐하러 가니? 교인두 아닌디 뭐.”
“뭐, 교인 아니라두 상관없는 모양이던디. 아무나 갈 수 있으닌께.”
“그럼 너두 가보지 왜 안 갔냐?”
“음, 나는 울 엄니가 우리 아버지 일 잘되라구 며칠 있다가 무당을 불러 치성 드린다구. 그런디 가면 부정타닌께 가지 말라구 혀서 못 갔어.”
“음, 그럼 비성골 무당 아줌니 불러다가 굿을 하겄네?”

마을 놀이터 한 모퉁이에는 종구와 남자 아이들 서너 명이 모여 놀고 있었다. 종구는 은백색 도금을 한 장난감 권총을 갖고 다들 보라는 듯이 으스댔다.
그리고 빨간 종이에 붙은 화약을 떼어 넣고 총을 쏘아대며 요란한 총소리가 그리 좋은지 키득거렸다.

또 다른 아이들은 입으로 공기를 불어 넣으면 앞으로 길쭉하게 뻗어나는 고무풍선을 볼이 터지도록 불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고무로 만든 꽈리를 입속에 넣고 굴리며 그리 신나게 소릴 내어 불고 있었다.

추석빔이라고 형편이 나은 집 아이들은 새 옷을 입었다. 그러나 살기가 어렵거나 형제나 자매가 많은 집 아이들은 형이나 언니들이 입었던 옷을 대물림 하여 깨끗하게 빨아 입고 명절을 났다.
그렇게 마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동네 형들이 머리에 포마드를 잔뜩 발라 빗어 넘겨 멋을 내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속에 구자곡 까치마을 육군 훈련소에 앞에 있는 사진관에 기술 배우러 갔던 성균이 형님의 모습이 보였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검정색 양복에 새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줄무늬 넥타이에 햇살에 은빛 반짝거리는 핀도 꼽혀 있었다.
얼굴에는 사회책에 나오는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장군’ 같은 안경을 멋지게 쓰고 있었다.

그리고 크기가 도시락 반찬 통만 한 납작하게 생긴 카메라를 진한 밤색 가죽케이스에 담아 한쪽 어깨에 메고 있었다. 동내 앞 등메산으로 친구들과 한데 어울려 기념사진을 찍으러 가려는 것 같았다.
동네 아이들은 그 뒤를 졸졸 따라가며 난생 처음 보는 카메라가 신기한 듯 자꾸만 바라보았다.

얼마 뒤 동네 누나들이 성균이 형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동네 누나들은 고샅길 양쪽을 번갈아 살펴보며 슬금슬금 동네 어른들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중에는 종구네 누나도 끼어 있었다.

옥순이가 토끼재에 있는 외갓집과 자기 아버지 산소에 갔다가 마을로 돌아온 것은 해가 마을 끝머리 가죽나무 위에 머무를 무렵이었다. 종구가 면소재지에 있는 교회에 갔다가 마을로 돌아 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리고 읍내 조씨댁에 가셨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신 것은 목포로 가는 저녁 완행열차가 마을 앞을 비켜간 한참 후였다.

“엄니! 큰일 난 거 알아? 음, 아까 즘심때쯤 이장 아저씨가 그러는디. 부산인가에서 태풍이 불어가지구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고 집들이 죄다 물에 잠겨 떠내려갔데!”
“응, 나두 읍내서 소문 들어서 알구 있어, 그러니 어쩐다냐? 굉장하지두 않은 모양이던디, 글럴라구 하늘이 그리 난리를 쳤나보다.”

그런 큰 슬픔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엔 옅은 구름이 나지막이 흐르고 있었다. 더불어 갈라진 구름 틈사이로 불그레한 노을빛이 어렴풋하게 어른거렸다.
목록으로

 

Copyrigt By 들메로 가는 길 All right reserved.
Webpage Administrator dooris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