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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90 조회 : 1,832




운동장 안으로 들어온 우리들은 청군과 백군으로 양편이 갈라서 서로 마주 바라보며 필승의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며 대열을 정리했다.
말 위에 올라탄 선수들은 선생님의 총소리를 신호로 상대편의 말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젖 먹던 힘까지 쓰며 서로 격렬하게 싸웠다. 서로 뒤엉켜 싸우면서도 말 위에서 땅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저마다 안간 힘을 쓰느라 한동안 운동장은 부옇게 이는 흙먼지 속에 꽤나 소란스러워졌다.
구경을 하시는 어른들은 자기 아들 팀의 편을 들며 모두 일어서서 손뼉을 치며 함성을 지르셨다. 운동장은 쓰러진 선수들로 뒤엉켜 잠시 동안이라도 난장판이 되었다.
서로 있는 힘을 다해 싸우느라 땅에 떨어져 얼굴과 무릎 그리고 팔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의연한 자세로 경기에 끝까지 임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대열을 정비하고 이긴 팀은 두 손을 높이 들어 만세를 불렀고 패한 팀은 두 손으로 손뼉을 쳐주었다.

잠시 후 원외에서는 육학년 남학생들의 장애물 경기가 시작되었다. ‘탕!’하는 총소리를 뒤로 하고 출발선을 출발하여 자루 속을 빠져나와 조금 달린 후 사다리 구멍을 통과했다. 그런 다음 나무 막대 끝의 줄에 매달린 구부러진 못으로 빈병을 낚아 땅에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달린 다음 다시금 자세를 바로 잡고 평행봉 위를 걸어서 지난 후 다시 달려 뜀틀을 뛰어 넘어 결승선에 도착했다.
운이 좋았는지 내가 힘들게 3등으로 들어왔고 2반이었던 종구는 덩치 값을 하는지 2등을 했다. 그리고 평소에 동작이 좀 둔한 듯싶은 주현이는 등수에 들지도 못하는 4등을 했다.

남학생들의 장애물 경기에 이어 여학생들은 운동회에 오신 내빈들과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내빈경기를 했다. 출발선을 출발하여 50미터 지점 본부석 앞에서 종이쪽지를 주워 그 안에 적혀 있는 내빈들의 이름을 불렀다.
호명된 내빈들은 본부석에서 얼른 뛰어나와 선수들과 같이 손을 잡고 결승점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함께 손을 잡고 잘 달리다 보면 불어오는 바람에 내빈들이 쓰고 계신 모자가 벗겨지거나 구두코가 땅 끝에 걸려 벗겨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다른 아이들이 앞을 서 뒤에 처지는 바람에 우승을 놓쳐 속이 상한 아이들은 속이 상해 울기도 했다.
그러면 내빈 어른들이 미안스러워하시며 아이들의 등을 두드려 달래주셨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구경하던 학부형들은 모두들 배를 움켜쥐시고 웃음을 터트리셨다.

여학생들의 내빈 경기에서는 석란이가 2등을 했다. 그리고 영선이는 채화역장님의 손을 잡고 빨리 달려 1등을 하였으며 옥순이는 역시나 등수 안에는 들지 못해 4등을 했다.
그리고 본부석 안내 방송에서는 운동회의 꽃인 청군과 백군의 계주를 준비하라고 독촉하였다. 이어서 각 부락대항 계주 선수들과 인솔자를 본부석 뒤로 부르고 있었다.
본부석 뒤에는 각 마을 선발된 선수들이 각 마을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무척이나 번잡스러웠다. 온몸이 구릿빛으로 그을려 젊음의 혈기가 물씬 풍겨나는 선수들은 저마다 산뜻하게 보이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런 소란스러움 속에 주심을 보실 체육담당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부시며 양철을 둥그렇게 말아서 만든 메가폰을 입에 대시고 정리를 하려 애를 쓰셨다.

다시 원외에서는 전교생의 관심에 초점인 청백 계주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물론 어른들도 군데군데 몰려 ‘와아’하는 함성을 함께 질렀다.
응원석에서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치며 자기 팀 선수들을 응원했다. 그 결과 백군의 마지막 주자인 성태가 앞을 서 가쁜 숨을 내쉬며 결승점에 골인을 하여 백군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이어서 각 부락대항 계주가 시작되기 전에 각 레인을 차지하는 추첨을 하고 있었다. 트랙 안쪽의 좋은 자리를 차지한 동네는 벌써부터 우승을 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그와는 반대로 위치가 좋지 않은 곳에 배정된 동네사람들은 서운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운동장 안에는 우승한 부락에게 줄 상품이 진열되었다. 1등은 검정돼지 한 마리, 2등에는 백미 한 가마, 3등에는 광목 1필이 놓여 있었다. 1등 상품인 검정돼지는 학교일 하시는 양씨 아저씨가 돼지 목에 새끼줄을 매어 꽉 붙들고 계셨다.
돼지는 사람들이 내어 지르는 함성에 놀란 듯 자꾸만 다른 곳으로 빠져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모두들 커다랗게 웃고 있었다.

출발선에는 마을 사람들의 응원 속에 각 부락 선수들이 몸을 가볍게 풀고 있었다. 본부석 확성기에서는 경기 진행 중에 선수의 안전과 혹시 일어날 불상사를 우려하여 경계라인 안으로는 절대로 들어오지 말라는 당부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출발 라인에서는 선수들이 주심 선생님으로부터 경기수칙을 듣고 있었다. 새끼줄로 쳐놓은 운동장 경계선 밖에는 어른들이 모두 일어서 출발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분들은 짐자전거 뒤에 올라서 고개를 들고 바라보기도 했다.
성급하신 일부 어른들은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있는 플라타너스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셔 나뭇가지를 붙들고 구경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출발선에 선수들이 몸을 구부려 신호를 기다리자 ‘탕’ 하는 총소리가 울려 선수들은 앞을 향해 일제히 달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온 마을 사람들은 학교가 떠내려가게 함성을 지르셨다.
그 틈새에 동네 누나들도 서로 어깨를 기댄 채로 함께 목이 터져라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주자인 선수가 결승점으로 달려가자 운동장 밖에서 뒤를 따라가며 손을 흔들었다.
1등으로 달리는 동네에서는 마치 우승을 한 것처럼 서둘러 풍물을 치고 있었다. 사람들 고함소리와 풍물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말소리가 잘 안 들릴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경기의 결과는 예측한대로 화정리가 1등을 했다. 그리고 면소재지 화산리가 2등, 용화리가 3등을 했으며 우리 동네는 최하위를 했다.
시상식이 끝나자 우승을 한 동네에서는 서로 부둥켜안고 풍물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고 선수들을 무등(목말)을 태워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다.
잔뜩 겁을 먹어 좀처럼 따라가지 않으려는 돼지를 억지로 끌며 가는 모습이 남의 동네일이었지만 퍽이나 훈훈하게 보였다.

국밥집에서는 이겨서 기분 좋다고 한잔, 경기에 진 부락은 서운하다고 한잔씩 주고받느라 천막 안이 사람들로 다시 붐비기 시작했다.

운동회 마지막 순서인 교장 선생님의 강평 및 훈시를 하려는 안내방송이 울려도 어른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자기네 부락 사람들과 어울리시고 우승을 한 부락 어른들은 우승기를 힘차게 흔드시며 풍물소리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일부는 어른들은 서둘러 한두 분씩 교문 밖으로 빠져 나가시고 장사꾼들도 서서히 짐을 챙기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망개떡과 찹쌀떡을 파시던 할아버지도 집으로 돌아가시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서편 하늘가에 불그레한 노을이 스러져갈 즈음 운동회의 끝남을 알리는 방송이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집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고 온종일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로 그토록 시끌벅적했던 운동장이 서서히 조용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운동회가 끝난 후 육학년은 전체가 남아서 뒷정리를 했다. 남학생들은 천막을 걷고 교기를 접으면서 앰프와 확성기를 그리고 마이크 스탠드와 마이크를 조심스레 챙겼다.
일부는 책상 걸상을 교무실과 교실로 나르며 운동회에 사용한 기구를 한데 모아 창고로 운반했다. 여학생들은 운동장에 널려진 쓰레기를 한곳으로 모았다.

초저녁 성급하게 마실 나온 수은같이 흰 새하얀 달이 텅 빈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라는 듯 교실 앞 화단 풀숲에서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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