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해는 교실 앞 화단에 무겁게 머릴 숙인 해바라기를 한나절 내 애꿎게 붙들고 어물쩍거렸다. 시간이 오후로 접어들자 거드름을 피우며 쭉쭉 뻗은 편백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룬 학교 울타리를 넘어 공동묘지가 있는 비석골을 지났다. 해는 들녘을 한참 내달려 샛강 철교 위에 잠시 머무는 듯싶더니 앞서 가는 구름 따라 읍내 상업고등학교 팽나무 위를 비켜서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하늘과 땅이 서로 맞닿은 듯 보이는 지평선으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 동안 지루했던 수업이 끝난 종례 시간에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과제물을 내주셨다.
“다들 내 말 잘 들어라, 이번에 정부에서 전국적으로 쥐잡기 운동을 벌여 우리 학교도 이 운동에 적극 호응을 하려고 한다. 그러니 내일모레까지 각자 쥐를 한 마리씩 잡아 쥐꼬리를 잘라 종이에 싸서 가져오도록 한다. 다들 알었지? 만일 내 말을 어기는 사람은 이번 가을 수학여행에 안 데리고 갈 테니 그리 알고 꼭 가져오기 바란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교실 안에 여학생들은 쥐꼬리 이야기에 모두 징그러운 듯 얼굴들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데 장난기 많은 응선이가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쥐꼬리 많이 가지구 오면 상품 주나유? 그리구 우리덜 수학여행은 언지 가는데유?” “참, 저 놈 봐라, 쥐는 우리에게 많은 해를 끼치는 놈이라 박멸을 해야 되고 이번 수학여행은 너희들이 선생님 속만 안 썩이고 공부 열심히 하면 다음 주에 일정을 잡아 발표를 할 테니 그리들 알거라. 그럼 오늘 공부는 이만 끝마친다.”
어스름 땅거미가 깔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벗어났다. 배가 고파 급한 마음에 새터 나들목을 지나 냇둑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여름내 풀숲에서 불 밝히던 반딧불이는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질 않고 풀벌레와 귀뚜라미 소리만 청아하게 들려왔다.
야트막한 둔덕엔 눈길 놓친 고사리가 벌써 무릎까지 차오를 만큼 자랐다. 산모퉁이 벼랑바위 옆에 꽉 들어찬 어둑어둑한 조릿대 숲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무엇이 뛰쳐나올 것 같이 예법 음침하게 보여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새터마을 나들목 후미진 언덕배기에 상여집이 흐릿하게 보였다. 상여집 지붕이 늦저녁 허연 달빛에 희끗희끗하게 보여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그래도 조금 멀리 마을 동구 밖에서 탈곡을 하느라 피워놓은 모닥불의 불길이 어스름하게라도 보여 무서움이 조금은 덜했다.
마을과 학교의 거리에서 절반쯤에 있는 수문 앞에는 종구도 겁이 났는지 꽁무니가 빠지도록 자전거를 몰아 동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작달막한 옥순이는 겁이 잔뜩 나는지 옆으로 바짝 다가서 작은 얼굴을 달빛에 치켜세우며 말을 했다.
“야, 상민아! 니네 엄니 오늘 밤에 우리 집에 온다구 했으니께 너 우리 집에 가서 나랑 같이 저녁 먹자.” “그런디 어쩐다냐? 검둥이란 놈 밥두 줘야 되구 닭장문도 닫아 줘야 허는디 안 그러면 병아리들 쪽제비가 물어 갈라.” “야, 느네 엄니가 누구냐? 다 알아서 단도리혀 놓구 오실 꺼니께 아예 걱정일랑 붙들어 매라닌께. 그나저나 그놈에 쥐꼬리를 가지고 오라구 허는디 징그러서 어떻게 한다냐? 아무리 생각을 혀봐두 증말루 큰일이네.” “걱정 말구 가만히 기다려 봐, 내가 니꺼까지 어떻게 혀 볼게 쥐꼬리 두 개를 구해야 되는디.” “뭘 어떻게 헐라구 하냐? 울 엄니보구 부엌에 쥐덫이라두 노라구 혀야 될라나 참 별걸 다 가져오라구 사람 신간을 들볶아대네.”
그맘때쯤이면 마을 앞을 지나는 밤 열차가 늦저녁 어둠의 자락을 걷어 헤치고 온 주위가 환하게 불을 밝혀 세차게 내달려가고 있었다. 기차 앞머리의 불빛 따라 단 한 번 가 본 적 없는 아주 먼발치의 타동네 초가집들이 성냥갑만큼 아득하게 보였다.
이윽고 마을 동구 밖에 닿았다. 탈곡 일을 마치셔 모닥불을 피워놓고 동네 어른들 몇몇이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불길에 일렁이는 어른들의 얼굴이 불그레 달아올랐다.
“아니 그나저나 이 양반은 저녁나절에 기성이 일땀시 종구네 집으로 가던디 아직까정 안 오는거 보면 일이 영 않 풀리는 모양이구먼 그려.”
성질이 남달리 급한 삼식이 아버지가 종구네 집으로 간 동근이 아버지를 기다리는 듯이 말씀 하셨다.
“아, 그게 어디 쉽게 해결 될 일인감유, 혼인은 인륜지 대사라 했는디 내가 알기로는 두 집 사이에 풀어야 할 일들이 많을 것 같구만유, 안 그래유 형님.”
막걸리 한 사발을 걸쭉하게 마시고 난 경수 아저씨가 옷소매로 입을 쓱 문대시면서 안주를 하시려는지 젓가락으로 김치 그릇을 뒤척이시며 말을 이으셨다.
“아따, 이 사람! 오랜만에 문자 한 번 멋들어지게 쓰네 그려. 소실 적 서당 글 읽은 보람 있구먼 그려, 암튼 잘되어야 될 껀디 기성이 엄니두 쏘가리처럼 그 파닥파닥하는 성질에 속 깨나 탈건디.” “그래두 어쩔 건가, 이미 일은 저질러 진 건디 뭐, 딸 가진 집이 수그려 들어야지 아무리 날뛰는 동섭이라두 별 수 있건는감, 다들 안 그런감?”
평소에 말수가 적으셔 과묵하신 우현이 아버지가 말씀을 하시자 잠시 주위가 숙연해지는 듯했다. 옥순이와 나는 어둠이 짙게 내린 골목길로 발길을 서둘러 옥순이네 집을 향해 걸어갔다. 종구네 집 앞에 닿았을 무렵 그래도 은근히 신경이 쓰여 잠시 머뭇거려 보았다. 하지만 종구 집에선 일찍 저녁식사를 마쳤는지 별다른 기색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고샅길을 걸어 옥순이네 집에 닿으니 마루에 남폿불을 켜놓고 어머니와 동근이 아버지가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그리고 옥순이 어머니는 부엌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아저씨, 안녕하셨어유?”
동근이 아버지에게 옥순이와 같이 인사를 하자 동근이 아버지가 말씀을 하셨다.
“음, 이제들 오냐? 중학교 들어갈라구 욕들 본다. 옥순이두 이제 많이 커서 처녀티가 나는구먼 그려.”
동근이 아버지 말씀에 몹시 부끄러웠는지 옥순이가 얼굴을 숙이고 방으로 얼른 들어갔다. 그러자 부엌에서 옥순이 어머니가 얼굴을 밖으로 내밀며 말씀을 하셨다.
“어여들 오너라, 배들 많이 고푸지? 얼릉 밥 채려줄게.”
마루 한 쪽에 무거운 책 보따리를 어깨에서 내려놓고 앉으려니 널따란 마루엔 고추 말린 것과 호박고지 썰어 말린 것 그리고 땅콩이 널려 있었다. 땅콩 한 개를 들어 무심코 흔들어 보니 잘 말랐는지 ‘딸그락 딸그락’ 소리가 났다. 옆자리에서는 흐릿한 불빛 밑에 두 분이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동근이 아버지께서 못내 답답하신 듯 유난스레 불쑥 튀어나온 목덜미에 힘을 주셔 침을 넘기시면서 말씀하셨다.
“아줌니, 내가 아까 어디까지 얘기를 했지유? 아! 생각나네유, 동섭이한테 내가 그리 이해를 시킬려구 백방으루 얘기를 했는디두 그저 내말만 들으면서 빈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며 단 한마디 말두 없드라구유.”
동근이 아버지가 기성이형 일을 도우려고 막상 나섰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왜? 아니 것시유, 종구 아버지두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이가 없구 황당하겄지유. 따지구 보며는 그 집두 손이 귀한 집인디, 이 자식 저 자식 가릴 거 없이 다 귀할건디, 떡하니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안 그렇겠어유? 지 에미두 세상 뜨구 없는디 그리 일을 당했으니 종구 아버지가 더 힘들겠지유 에휴.”
“그래서 더 얘기를 하기가 민망스러워서 혼자 조용히 생각을 혀보라구 말하구 대충 서둘러 그만 나와 버리구 말었구만유.” “근데, 지 생각은유, 지난 난리 때 두 집 사이에 벌어진 과거지사는 덮어두고 무조건 기성이가 빌고 들어가야 된다구 생각해유, 비는데 장사 없다구. 그래야만 종구 아버지 성질이 좀 풀리구 자기 체면두 세워질 꺼니까.” “나두 그리 생각을 했구만유, 비는디 약 없다구, 이왕지사 일은 그리 된 것인디 동섭이두 시간이 좀 지나면 가라앉겠지유, 그렇다구, 다 큰 지지배를 생머리 짤라 절깐으로 보낼 수도 없으니 어쩔거시유 안 그런 감유?”
한참을 열심히 말씀 하시던 동근이 아버지가 윗저고리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셔 궐연 한 개비를 입에 무시고 성냥 알을 그어 대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암튼, 그리 아시구 그 집에 가거들랑 기성이 붙들구 단디 얘기를 하세유. 그저 머리숙이구 빌구 들어가라구, 우메 벌써 이리 날이 어두워졌남 그럼 전 이만 가볼래유.”
동근이 아버지께서 저녁밥을 드시고 가라는 옥순이 어머니의 청을 극구 사양하셨다. 그리고 마루에서 일서시며 크게 한번 헛기침을 하고 대문 밖으로 발걸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