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전문쎈터에서 일년팔개월 동안 지속된 병원 생활은 무척이나 지루하고 힘들었습니다. 아니! 또 다른 일면으로는 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입을 꾹 다물어 온종일 말을 잊고 살었나 봅니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 부위의 피부 이식 수술과 근육이 불에 오그라 붙어 잘 구부려지질 않는 왼쪽 다리에 재활을 위한 물리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이미 오그라든 왼손은 기능을 회복할 수 없어 마음이 쓰려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실생활에 꼭 필요한 오른손 한쪽이라도 제 기능을 찾아 보려고 널판지 위에 오백원 짜리 동전을 던져 놓고 손끝으로 줍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 하였답니다.
검지와 중지에 힘을 줘 집으려 하면 손가락에 이제 겨우 자리를 잡으려 하는 연한 생살이 툭툭 터져 피가 흥건하게 흐르고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의 고통 또한 참기 힘들어 이마에 생땀이 나더군요.
더욱이 가슴이 아려왔던 것은 속살이 찢어진 손가락을 타고 흘러 내리는 붉은 피를 바라보는 것이 그리도 슬프기만 하였답니다. 연 석달을 넘기도록 자고 일어나면 반복적으로 그리 연습을 하였답니다.
그래야만 글이라도 쓸 수 있고 젓가락질이라도 할 수 있기에 연습을 게을리 할 수는 없었습니다.
허나! 신이 나에게 내린 형벌은 가혹하기만 하였습니다. 원래의 내 모습은 끝내 찾지 못한 채 거울에 비친 흉측하게 변해버린 내 모습에 나 자신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처참하게 망가진 내 얼굴이 왠지 모르게 사람들 앞에 나설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하더군요. 양쪽 어금니를 꽉 깨물고 숙명으로 받아 드려, 지난날의 그 모두를 애써 잊은 듯이 살려고도 하였답니다.
또한 나를 기억해 주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연락을 할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막상 퇴원을 하여 병원 문턱을 나서고 보니 그리도 허무하였답니다. 내 주위에 머물렀던 그 모두를 잃고 난 후 가진 것이라고는 단 한 푼도 없는 절박한 입장이었습니다.
어둠살이 찾아드는 저녁 무렵 밥을 먹어야 할 때가 되니, 속내를 모르는 어린 아기는 배가 고파 춥다고 자꾸만 보채더군요.
그라도 조금은 도움을 청해 보려는 내 짧은 생각에, 앞을 다퉈 오색의 현란(絢爛)한 불빛들이 하나 둘씩 눈을 뜨는 흰눈이 소복하게 쌓인 이태원의 현란한 그 거리를 걸어, 오랫토록 오누이처럼 지냈던 그녀를 찾아갔었습니다.
굵은 촛불들이 둔탁스럽게 생긴 네모난 나무 탁자마다 놓여 애처롭게 불을 밝히고 있는 어느 건물의 작은 카페에서, 는적거리는 음율 속에 십여 분을 기다린 후, 연락을 받고 카페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어둑한 불빛 탓도 있었겠지만, 그녀를 먼저 알아보고 달려간 아기의 손을 잡고 탁자 앞에 아무런 말도 없이 다가선 그녀의 얼굴 표정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온통 미간이 찡그러져 있었습니다. 흉칙하게 변해 버린 내 얼굴이 너무도 거북하였던지? 마지 못해 자리에 앉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눈을 마주치기가 혐오스러웠는지? 애써 눈길을 피하려 하더군요.
더이상은 그런 불편한 분위기에 머물고 싶지 않은 지? 손에 들고 있는 손지갑에서 천원짜리 지폐 몇 장을 아기의 손에 쥐어 주고 서둘러 나가려 하였습니다.
그런 그녀의 손을 잡으려 하는 내 손을 세차게 뿌리치며 밖으로 달려 나가려다, 문턱에 발이 걸린 듯 한쪽 신발이 벗겨졌는데도 그냥 버려둔 채, 그녀는 허겁지겁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카펫 위에 덩그라니 나뒹구는 검정색 힐 한쪽을 그녀의 진정한 마음으로 알고 물끄러미 바라본 후 부자연스런 몸을 일으켜 세우고, 그만 옹색하다 못해 비참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카페를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그리도 매정스러워 마냥 서운키만 하였지만, 이렇듯 세월이 흐르고 난 지금에 와서 뒤바꿔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입장이였다 하여도 그럴 수 밖에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아기의 그 실망하는 그 눈빛과 얼굴 표정이 더더욱 가슴이 메어왔고, 꼭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내 몸 속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입도 대지도 못한 커피 두 잔 값을 카운터에 지불하고 계단을 오르려는데, 내 왼팔을 붙들고 따라오는 아기가 하는 말이 " 에이 아깝다, 차라리 그 돈으로 밥을 먹었으면 배라도 부르지, 그리고 그 이모 참 나쁜 사람이네 옛날엔 안 그랬는데 우리 집에 불나서 다 망하니까 그런가? 아빠 이것 넣어. "
아기의 작은 손에 쥐어 있는 구겨진 천원짜리 지폐 다섯 장이 내 가슴 속을 마구 후벼 파헤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광란의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현란한 도심의 한복판 헤밀턴 호텔 앞, 모두를 잃어버렸기에 버려진 듯 어처구니없이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내 모습이 너무나 미웁다 못해 가증스러웠답니다.
그녀와 나 우리 두 사람의 그런 인연이 슬픈 해후(邂逅)속에 더는 초라하게 퇴색되어 가는 것이 너무도 싫었답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황량한 그 거리 위에서 마치! 스러져 가는 낙조처럼 너무도 허무한 이별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밤안개 가득 서린 낯설지 않은 그 거리를 그렇게 버리듯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렇듯 세월이 십수 년 흐른 지금, 그녀는 그 세월 동안 룸싸롱에 마담 노릇을 하며 자신이 부를 축적키 위해 주위의 사람들에게 지은 잘못들을 조금이라도 뉘우쳤는지? 의정부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며칠 전 어느 지인으로부터 건네 들었습니다.
그 추위 속에 배고파하며 발길을 돌려야만 하였던 그 어린아기가 당신의 심덕(心德)으로 이만큼은 잘 자랐답니다. 지금도 그토록 지은 죄 그리 많아 늘 아기 앞에 얼굴을 못 드는 바보 아닌 바보가 되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