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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喜方)계곡에 너를 두고 12 조회 : 1,804




조금은 가파름한 오름길에 만고에 풍상을 두루 걸친 노목(老木)의 모습이 눈 안에 가득 들어옵니다.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이 저리도 편안(便安)해 보일까 하는 생각에 한 편으론 괜시리 얄미워지기도 합니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차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더욱 아담스럽게 보이는 주차장에 멈춰서고 이내 차에서 내려 산사(山寺)로 향하는 좁다란 오름길로 들어섭니다.

솔바람 소리마져 정답게 들려와 맑은 공기 폐 속 깊숙이 가득 스며들어 흐린 정신을 깃털처럼 맑게 하여 들떠 있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줍니다.
이토록 고연함이 물씬 배어나는 이 길을 당신도 나와 함께 걸어갈 수만 있다면 군청색으로 한껏 물들은 하늘 아래 머릴 두른 저 길이 그리 마냥 좋을 것만 같습니다.

어느 해 늦가을 광주 무등산 입석대의 모습이 햇살에 찬연(粲然)하게 보이던 오름길에서 처럼 지금 당신이 내 곁에만 있다면 가슴 활짝 펴 두 손을 꼭 잡고 그 때 처럼 걷고 싶습니다.

여느 사찰에도 다 있는 일주문 하나 없고 사천왕도 없는 단출하리만큼 작은 사찰이지만 자뭇 뛰어난 풍광이 마음을 온통 사로 잡습니다.
이제라도 잡다한 번뇌의 빈껍데기 훌훌 벗어 던지고 그저 홀연히 산속으로 어딘가에 깊숙이 묻히고만 싶습니다.

작은 산사로 오르려 하니 산을 내려 오시는 낯익은 스님 한 분이 인사를 다정스레 건네십니다.
찬바람이 다소 매서울지라도 스님의 홍조(紅潮) 띈 얼굴 모습에서 잔잔하게 묻어나는 온후한 심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빗살무늬 승방(僧房) 문짝들의 모습이 눈에 꽉 차오는 사찰(寺刹) 경내(境內)에 들어서 늘 반갑게 맞아주시는 큰스님을 뵈었습니다.

석축(石築) 계단 한 걸음 한 걸음 밟고 올라 대웅전 안에 있는 당신 위패(位牌) 앞에 다가서려니 울먹여지는 가슴 누르질 못해 눈언저리가 젖어만 옵니다.
무릇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앞에서 참기 힘든 뼛속 아린 사연 속에 아픔에 오열을 터트렸을까요?

배낭을 풀고 당신 앞에 하나 둘 차려 놓습니다.
굽은 두 손 함께 모아 마음 한 조각을 정성스레 그리웠던 만큼 당신께 주려 합니다
향을 피워 두 손을 모은 채 당신께 인사를 합니다.

" 홀로 머물러 있노라,무척이나 외로웠지요?"

피어오르는 짙은 향 내음이 머리를 깨우쳐 몸과 마음 마저도 숙연(肅然)하게 합니다.
그리 오랜 밤 창문 밖이 훤히 밝도록 이루지 못한 잠에 뒤척여 생각했던 그 숱한 말들이 어데로 사라졌는지? 두 입술이 자석처럼 달라붙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네요

그저 멍청스레 미안하다는 말 밖엔 떠오르는 말이 없어 목이 꽉 메어 옵니다.
내 생각에는 제법 챙겨온 듯싶은데, 애잔한 마음에 모두 적게만 보여지니 이 또한 미안할 따름이네요.

저기 놓여진 고종시(高宗柹)는 늘 내 말벗인 주현 할매가 주신 것이랍니다.
그라도 그런 분들이 내 주위에 머물러 계셔 홀로 사는 내가 덜 외롭답니다.

때론 고집스레 아옹다옹하기도 하지만, 하루만 보이질 않으면 거동이 불편하신 몸으로
꼭 언덕배기를 힘들게 넘어 오셔 시침을 떼시고, 마당 앞에서 괜시리 헛기침을 하신답니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도, 어린아이처럼 속이 좁아지기는 나도 매한가지인 듯합니다.

쭈그러진 양푼에 한가득 비벼 놓은 국수를 서로 바라보며 마음껏 나누는 그런 정겨움도, 그곳엔 아직도 남아 있답니다

그런 할매의 정성(精誠)이 오롯하게 담긴 음식이니, 천천히 고마운 마음으로 고루 골라 들길 바랍니다
당신이 그리 많이 먹어야만 내가 다시금 되돌아 집에 돌아갔을 때, 우루루 몰려와 물으시는 그분들의 말씀에 이렇게 대답을 하지요.

'우리 그 사람이 너무도 고맙게 잘 먹었다고 꼭 전하라 하데요'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이젠 발길을 돌려야힐 시간인 듯 싶습니다.
지난 삶은 불빛 하나 없는 빈들을 그리 가삐 달려온 듯 싶어 결코 평탄치 못한 길이였기에, 그 어느메에도 잠시인들 쉴 곳이 없었습니다.

철 늦은 가슴앓이를 할 나이도 벌써 지났건만 나 또한 감성을 지닌 신의 피조물이기에, 좌초되어 뒤틀린 심성에 숱한 날을 그리도 바둥댔나 봅니다.
하지만 입을 굳게 닿아 무모한 헛소리는 그만 둘랍니다.
넉살맞게 힘든 척하는 가벼운 손짓마저도 멈추렵니다.
이천 칠 년 추운 겨울의 길목 어디쯤에서, 꾁 들어찬 육십의 삶에 두께로 이제 겨우 뒤늦은 철이 들려나 봅니다.

이제 표피만 남은 허한 가슴에 당신을 영원이란 기억속에 담고 살렵니다.
허나 결코 당신 곁을 비켜서려는 것은 아니랍니다,
깊은 의미조차 남기질 못하고 애뜻하게 사라지기 전에, 내 나름대로 곱게 접어 두려는 것입니다.

다음 생애에서 그리 될 수만 있다면, 그 때도 꼭 당신의 뇌리 속 깊이 사랑하는 단 한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나 또한 틀림 없이 그러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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