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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난로 조회 : 1,799




온 사방이 높다란 산봉우리들로 둘러 쌓여 하늘만 빼꼼히 바라 보일뿐이다.
산기스락에 삶의 터를 이룬 이 곳을 언제부터인지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답박골이라고 부른다.

오가는 인적이 극히 드물어 퍽이나 낙후된 오지(奧地)인지라 적적하기는 더할 나위 없다.
그라도 아침 저녁으로 빛바랜 감귤색 마을버스가 인심이나 쓰는 듯이 마을 어귀에 한차례씩 짧게 스쳐 지나는 곳이다.

열 가구를 끝내 채우지도 못한 아홉 가구가 마치 소쿠리에 담긴 것처럼 남쪽을 향해 납작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조율하며 내면 깊숙히 알알진 외로움을 낚는다.

햇살 따스한 날엔 차분한 기다림으로 텃밭 가꾸고 때론 산에 올라 먹거리를 구해 오는 순박하기 더할 나위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삶의 습성은 윗대 부터 유산처럼 물려 받은 듯하다.

모진 세파에 등 떠밀려 떠돌다 그라도 몸 붙일 곳이라 생각이 들어 긴 방황의 마침표를 찍고 이곳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 머문 세월이 손가락 오므려 세어 보니 벌써 여덟 해가 훨 지났다.

지난 나날 동안 조각난 기억의 편린들이 이따금씩 스멀스멀 추억이란 껍질을 두르고 머릴 드밀려 한다.
그래서 더욱 애를 써 잊어보려 바지런하게 사는 흉내를 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듯싶다.

내가 그 녀를 다시금 만나게 된 것은 실로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였다.
무심코 접속한 인터넷 공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어 가슴 뭉클함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한 해 보내는 마지막 계절에 떨쳐 내야만 하는 연(緣)의 끈을 놓지 못해 바둥대는 통증이 온몸에 엄습하는 추위보다 더 혹독하기만하다.
어쩜! 그렇게 어처구니 없이 그녀를 떠나 보낸 그 혼란스러움은 작은 몸뚱아리를 쉴 새 없이 헤집었다.

헤어짐의 아픔이 더욱 힘겨운 이 겨울 무심코 들춰 본 메일 속에 곱게 색칠한 한 장의 작은 카드가 소담스레 담겨 있었다
위로 섞인 고운 글들을 한줄한줄 읽어 내려가며 고마움에 눈가장자리를 적시고 말았다

이른 아침부터 황토벽 한 켠을 헐어내고 아랫마을에서 구해 온 볏짚을 황토속에 썰어 넣어 돌들을 모아 쌓았다.
고깔모자 모양으로 단작스럽게 굴뚝도 내어 달아 작은 벽난로를 만들었다.

그녀가 보내준 카드 그림 속에 보이는 앙증스런 모양의 그런 벽난로를 흉내라도 내보려 했다.
벽난로 앞에 하얀 고양이 대신 이제 열흘 후면 태어날 네 눈박이 강아지들을 벽난로 앞에 모아 놓으려 한다.

풍만한 어미의 가슴에 젖꼭지를 옴팡지게 물어 배불러 선홍색의 작은 혀를 내어 밀고 하품을 토하는 모습에서 잊고 살아왔던 작은 포만감을 뒷늦게라도 느껴보고 싶다

" 오빠 나도 그동안 너무 힘들고 우여곡절이 많았어 이제 겨우 새로운 사람 만나 잘 살고 있어 "

그녀는 몸에 배인 버릇처럼 늘 그랬었다.

작은 눈망울이 예리한 듯하게 보이면서도 얼굴의 한구석엔 늘 알 듯 모르를 듯한, 어두움이 드리워져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베이지색 쇼파 위에 무릎을 모아 턱을 고이고 앉아  나에게 응석을 곧잘 부려 힘으로 감당키 어려웠던 그 모두를 잠시인들 잊으려 애를 썼다.
고운 얼굴 만큼 바비 인형을 그리도 좋아했던 그녀를 위해 무디었던 마음을 풀고 그녈 위해 빌어주고만 싶다.

죽어 두 눈을 감아야 끝이 나는 속절없는 삶의 굴레 속에서 서로가 원하여 다시금 만난 사이라면 서로 아우러 보듬고 살아야함이 필연인 듯 싶다.
두 개의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방향을 향해 회전을 해야만 될 듯 싶다.
비록 차가운 냉방에서 한 그릇의 라면을 두고 머리를 마주하더라도 눈 언저리를 적시는 그런 아픔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 뿐이었다.

이제 한 삼일 지나고 나면 쌓아 놓은 흙들이 굳어질 것 같다.
작은 통나무로 불지피펴 그 앞에 앉아 뜨거운 김 속에 국화향이 절절히 묻어오는 차 한 잔에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

그리고 타오를 잉걸속에 그녀와의 사이에 남겨진 기억에 분진마져 모두 태우려 한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두고 나를 에워싸고 뒤흔들던 혹독한 잔영마져도 이잰 떨쳐내고 싶다.
아니 망각의 대해에 그모두를 던져버려 지울 수있는 힘을 뒤늦게나마 그녀가 주었나보다.

그리 오랜 세월을 두고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 내뱉지도 못하고 굳게만 닫아 놓았던 마음의 빗장을 열려고 마음을 다졌다.
그리고 숱한 애증을 담고 살아오는 동안 남은 앙금들도 거침없이 지워 텅 빈 마음으로 비워 놓으려 한다.

마음을 모아 이 해의 마지막 날엔 연하장이라도 꼭 보내고 싶다.
하얀 눈밭에서 슬퍼 울고 싶었던 만큼이나 억지로라도 환한 웃음 지으며 눈 위를 나뒹굴던 해맑은 그녀의 얼굴이 다시금 눈에 선하다.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에 앞뜰 두 고랑이 텃밭에서 캐 온 고구마 몇 알을 묻었다.
까맣게 등껍질이 터져 노란 속살을 드러내고 구수한 내음이 좁디좁은 내 작은 방에 가득 드리울 때 꼭 한마디 말을 전하고 싶다.

" 그래 나도 너처럼 아픈 마음 추스려 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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