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오월의 끝 무렵이면 내 고향 등메산엔 신록의 운치로 계절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산마루에 빼곡하게 들어찬 갈참나무들도 진녹색의 숲을 완연하게 이루워 비리보기 더할 나위 없었다. 다보록한 숲을 양쪽으로 가르는 오솔길이 고갯마루까지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퍽이나 아담스럽게 보였다.
산자락엔 가무스름한 크고 작은 바위들이 듬성듬성 자릴 잡고 누워 나름나름 듬직하게 보였다. 그 사이사이로 술래잡기 하는 키 작은 소나무들이, 다복다복하게 몸을 붙여 저마다 아담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산기슭과 맞닿아 광활하게 펼쳐진 들녘이 드러내는 자태는, 자연이 남겨 놓은 가장 섬세한 걸작인 것 같았다. 그랬기에 그 어느 것 하나라도 감히 탓할 수 없었다.
증기기관차는 들녘 저 멀리 가들막하게 보이는 단아한 채운 역사를 가삐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원목다리 옆 호남선 철교 위를 힘껏 내달리고 있었다.
‘두두두둥, 두두두둥’ 소리를 내고 푸르름이 짙은 들녘을 두 쪽으로 가르며 마을을 향해 역동적으로 달려왔다. 저마다에게 고루 안부를 전하고 싶었나, 청잣빛 상큼하게 드러난 하늘을 향해 세차게 기적을 울렸다. 검은 굴뚝 위로 뭉실뭉실 연기를 힘껏 내뿜어 하늘가에 실실이 흩트리며, 다음 논산역을 향해 질주하며 가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등화동 산모롱이를 가볍사리 휘어 돌아 그 모습을 잽싸게 감추었다.
볼수록 가슴 뭉클하게 정이 가는 초가집들과 토담을 온통 붉게 뒤덮은 찔레꽃들이 찬연하게 바라보였다. 마을을 허리춤에 감아 유연하게 휘어 도는 개울이 살갑게 눈 안에 들어찼다. 사방으로 탁 트인 들녘이 가슴을 힘껏 벌려 그 모든 것들을 욕심껏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꾸밈없는 모든 모습들을 내 마음 깊은 곳에 오래도록 담아 두고 싶었다.
저 멀리 지평선이 아스라이 바라보였다. 푸르스름하게 꽉 차 보이는 논배미들이 씨줄과 날줄이 정교하게 균형을 이루어 놓은 바둑판처럼 보였다. 그런 생동적인 느낌들이 살아오는 동안 켜켜이 쌓여 아낌없는 환성을 자아내게 했고 때론 모질디모진 삶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되었다.
하늘도 그리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화창하게 갠 날들이, 여느 해에 비해 그 해에는 더 많았다. 산마루턱에 의연하게 둥실둥실 떠오른 뭉게구름이 퍽이나 아름답다 못해 실팍하게 보였다.
산중턱에 오르면 거북바위가 널찍하게 자리를 내어주며, 입 다물어 눈으로만 어여 오라 나를 불렀다. 연초록 청미래 덩굴이 가득 뻗어난 숲을 살짝 비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양지바른 곳이 오붓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그곳에 내 어머니께서 영면하고 계신다. 예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일러 우묵골 또는 우묵배미라고도 불렀다.
삶은 지나간 날들에게 살아가는 오늘이 이따금씩 의미 진진한 질문을 던지나 보다. 그로 얻어지는 가슴 뭉클한 일들을 하나둘씩 들춰내 애써 기억하려는 것 같다. 그런 경향이 비록 다는 아닐지라도 애써 기억하려함은, 그로 인해 얻어지는 크고 작은 여유로 마음의 안식을 얻으려 하는 것 같다.
내 고향 들메 마을에 하지(夏至)가 가까이 다가오자 튼실하게 알이 들어찬 감자밭에, 하얀 나비 두어 마리가 바지런히 넘노닐었다. 자주색과 흰색의 감자 꽃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 피어난 감자밭 너머로 푸릇푸릇한 마늘밭이 텃밭을 반쯤이나 채웠다. 쫑긋하게 내민 마늘쫑이 더는 힘에 겨운지 유월의 훈풍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해마다 늦가을엔 작달막한 텃밭에 호미로 골을 이뤄, 쪽쪽이 쪼개 놓은 씨마늘을 정성들여 심으셨다. 한겨울 추위 잘 넘기라고 노란 왕겨를 더부룩하게 뿌려 놓고 마음이 부듯해 느긋하게 이듬해 봄을 기다리셨다.
동빙한설(凍氷寒雪)이 휘몰아치는 긴 겨울을 잘 견뎌, 봄의 미풍이 신록을 몰고 오면 마늘밭은 푸르름을 맘껏 뽐내었다. 그쯤에 철딱서니 없던 어린 나는 마늘 잎사귀를 따서 양손으로 비벼, 허옇게 부풀어 오른 겉껍질을 고무풍선 불 듯 입으로 잔뜩 불었다.
새끼손가락 굵기만 한 작은 풍선을 만들며, 두 눈 가득 시려 오는 청잣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목화솜 같은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초하(初夏)엔 탱글탱글 누렇게 익어 가는 보리 이삭이 파아란 하늘 향해 머릴 곧추세웠다. 그쯤엔 휘어 내린 줄기 따라 보랏빛 등나무 꽃도 소담스레 줄지어 피어났다. 지질맞게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 따라 검푸른 옥수숫대 불쑥불쑥 자라나면, 너른 들녘 논배미엔 농부들의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텃마당 마늘밭에 마늘 잎사귀와 줄기가 노릇노릇해지면, 내 어머니께서는 밭 자락에 허리 굽혀 조심스레 뽑아 올린, 마늘 밑둥치에 들러붙은 흙을 조심스레 털어내셨다. 이따금씩 허릴 쭉 펴시며 땀이 가득 찬 신발을 벗으셔, 검정 고무신 안에 들어찬 흙가루를 탈탈 털어내시며 말씀하셨다.
마음 부듯해 하시며 그늘진 얼굴에 구김 없는 웃음을 흠뻑 지으셨다. 지지리 궁상맞은 가난 빼놓고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찌든 살림에 그것이라도 보여주고 싶으셨나 보다.
어쩌다 산에 오르내리는 동네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치시게 되면 그리도 자랑을 하셨다.
‘우리 집 마늘은 땡글땡글한 육쪽마늘’이라고 하시며, 엮어 놓은 마늘 꾸러미를 들춰 보이시던, 순박하기 이를 데 없으셨던 내 어머니셨다. 숨이 조여 오는 척박한 삶 속에 아린 마음을 그리라도 삭히시려, 한 해 동안 땀으로 공들인 각고(刻苦)의 결실을 볏짚으로 정성스레 묶으셨다.
오 일에 한 번씩 풍성거리는 읍내 장날에, 내 어머니는 자식 다음으로 그리 아끼시던 마늘 두세 접중 한 접을 들었다 놓았다 몇 번쯤 반복하시며 그리도 아까워하셨다. 하루 내 텅 빈 집 홀로 지키는 어린 자식이 마음에 걸리셨나, 작심하신 듯 마늘 한 접을 젓갈 동이에 담으시고 읍내 장터에 내다 파셨다.
어린 자식이 그리도 갖고 싶어 했던 새하얀 고무신과, 입으로 그리 힘껏 물고 흔들어도 찢어지지 않는다는 양말을 사오셨다. 질기고 질긴 알록달록 무늬 고운 나일론 양말을 사다 주셔, 그리도 좋아라 했다.
주홍빛 저녁노을이 물들어 오면 어머니께서는 쪽마루에 앉으셔서, 어린 내가 미처 몰랐던 한국전쟁의 참상과 그때 억울하게 숨을 거두신 내 아버지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자상하게 들려주셨다.
그럴 때면 내 어머니께서는 차오르는 설움이 그리 벅차셨는지 끝내 흐느끼셨다. 그리고 잠시라도 이 설움 저 설움 다 잊으시려 그랬는지, 하얀 종지 가득 차게 햇마늘 껍질을 벗겨 도마 위에 올려놓으셨다. 마늘 한쪽을 어렵게 두 손가락으로 잡으시고, 부엌칼 자루 밑둥치와 납작한 칼등으로 그리 빨리 솜씨 좋게 두들겨 곱게 다져 놓으셨다.
풋마늘 잎사귀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나물 반찬으로 무치셨고, 기다란 마늘쫑은 된장에 깊숙이 묻어 한 해를 걸러 밑반찬을 맛깔스레 만드셨다. 식초를 넣은 간장에 통마늘을 푹 삭힌 마늘장아찌를 찬물에 말은 보리밥 위에 한 알씩 얹어 주셨다.
마늘 두릅은 바람이 잘 통하는 곳 버름한 흙벽에 걸어 그렇게 애지중지 말리셨고, 여름 다 보내고 가을을 넘겨 긴 겨울 다가도록 한 쪽 한 쪽 빼먹다 보면, 어느새 푸석푸석 빈껍데기만 남아 두엄자리에 태우시며 수더분하시게 말씀하셨다.
“다덜 뭐시라 혀싸두 읍는 살림에 음청나게 보탬이 돼번졌는디, 야곰야곰 빼먹다보닌께 은제 다 먹어치워버렸는지 모르긋네 그려. 으찌됐던 간에 쪼까 아숩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못내 아쉬운 듯 부지깽이로 불더미를 뒤척이시며 씁쓰레 웃으셨다. 나는 그리 말씀하시는 어머니가 못내 짠하게 보여 썩 달갑지 않은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이렇게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