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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喜方)계곡에 너를 두고 2 조회 : 1,360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 뭇사람들이, 이곳 "신도안" 을 두고,이리 평을 하더군요.

계룡산 산자락 남쪽 양지 바른 아담한 곳에 자리를 잡은 천혜의 명당이자 청정지역이라고.

하기야 이씨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가, 예언서인 정감록에 근원을 두고 이곳을 신도읍지로 삼으려, 약 11개월간 공사를 하다 수구파의 강렬한 반대로 중단했다고 전해 내려오니, 그말이 그럴 법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사람들은 이곳을 일컬어 "신도안"이라고 부른답니다.

계룡산에는 갑사와 마곡사 그리고 여승들만이 수도하는 동학사가 있습니다.
또한 인근에는 "신원사"라는 고찰이 있답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엔 "개태사" 라는 아담한 절도 있는데, 그곳엔 아주 커다란 무쇠로 만든 가마솥이 있습니다.
그 솥은 백제와 신라가 황산벌에서 전투을 할 때,수백명에 이르는 백제 군사들의 밥을 지었던 솥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쩌다 절에 찾는 등산객들이나 가마솥의 규모에 감탄을 하지만, 사실 현지에 사는 주민들은 오랫토록 싫증이 나게 보아 온터라 그다지 눈여겨 보질 않는다 하더군요.

이렇듯 역사적으로도 이런저런 사연들을 고루 담고 있는 유래 깊은 곳이지만,외부지역과 교류할 수 있는 교통시설이 활달하지 못해 널리 알려지질 못한 곳이랍니다.

특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겨우 예닐곱 가구가 서로 떨어질까바 두려워 찰싹 들붙어 사는 아주 작은 촌락에 불과 합니다
그래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비교적 성품이 온화하여 남에 어려움을 헤아려주는 심덕이 있더군요.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계룡역"이, "두계역" 이란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커다란 산을 끼고 있는 농촌지역이다 보니 열차를 이용하는 철도 승객의 수가 극히 적어 역으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하였지요.
그 흔한 무궁화호 열차도 선심을 쓰는 듯 하루 겨우 한 두번 쉬어가는, 그다지 크지도 않은 작은 역이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대한민국 국군의 3군 통합 사령부이자 군사전략의 요충인 "계룡대"가 들어섰습니다.
그러자 행정구역상 논산시 두마면과 대전광역시 서남부의 일부를 흡수 편입해, "계룡시"로 승격을 하였답니다.
그런 과정을 거처 이제서야 도시다운 면모를 드문드문 갖춰가는 곳이랍니다.

그와 더불어 "계룡대"에 근무하는 군인들의 교통 편익을 위해 낡아터진 "두계역"의 건물을 헐어냈답니다.
그리고 여법 도시의 면모가 배어나오는 새로운 역사를 세워 이름을 "계룡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산 아래 저만큼 계룡 역사가 어둠을 머리에 잔뜩 이고 있습니다.
희뿌연 안개 속에 그 모습이 아스라이 보여 퍽이나 고즈넉하게 느껴집니다.

산을 내려서는 좁은 오솔길 한 쪽 얕으막한 둔덕 위에 개오동나무 한 그루가 조촐하게 서 있답니다.
공허한 내 마음을 쏙 빼닮듯 앙상하게 가지만 남긴 나목이, 시나브로 불어오는 새벽 찬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마냥 떨고만 있습니다.

그나마 나목의 가지 위에 하얀 반점 무늬가 앞가슴에 앙증맞게 박힌 작은 산새 한 마리가, 마치 곡예를 하듯 위아래로 촐랑거려 서둘러 아침을 부러려나 봅니다.

냉기 가득서린 무서리에 잎새를 모두 떠나보낸 마른 나뭇가지에, 힘겹게 매달린 찬 이슬방울이 투명한만큼이나 더더욱 애틋하게 보입니다.
주춤거리는 발걸음을 재촉이나 하듯, 부는 바람결에 흔들린 이슬 방울이 내 뒷덜미에 떨어져 흩트러집니다.

얼마쯤을 걸어 비교적 평탄한 길로 내려서니,굽어드는 언덕 위에 긴 목을 아픔처럼 치켜든 억새풀이 처연하게만 느껴집니다.
저도 나처럼 오랜 세월 동안 올 수도 없고 오지도 못함을 빤히 알면서도, 우둔하게 그리 오래도록 뉘를 기다렸나 봅니다.
이제는 저도 나처럼 더는 지쳐 못 참겠는지?
부는 바람결에 뼈마디마다 맺힌 한 조각 남은 애절함을 전하려나, 마른 잎새를 서로 부대껴 힘에 겨운 소릴냅니다.

그 어느 해 늦가을쯤으로 기억합니다.
그곳 희방계곡을 내려서며 당신이 나에게 그런 억새풀처럼 억척스레 살자고 하였지요?
이젠 그 약속 지켜야할 사람이 달랑 나 혼자 뿐이니 이제는 반 토막만 남고 말았습니다.

이저런 생각이 짙어지면 마음 더욱 서러워질까 두려워집니다.
그래서 가쁜 숨 몰아내쉬며 발길을 서둡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계곡에 가득 서려있는 물안개를 헤치고, 디딤돌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이제 그곳 희방계곡에 발섭(跋涉)하려, 저 멀리 흐릿하게 내보이는 계룡역사를 향해 발길을 옮겨봅니다.

어림짐작으로 산기스락에 호젖하게 자리한 초막을 나서 그리 삼십 여 분을 걸었나 봅니다.

비록 도시의 내음이 직간접으로 풍겨나오긴 하지만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아 아담스럽게 느껴지는 역사 앞마당에 닿았습니다.
텅 빈 마당에 시차를 놓친 가로등이, 희멀건한 눈으로 홀로 지켜서 있습니다.
더불어 허전하리만큼 텅 비워있는 작달막한 마당을, 겨울 찬바람이 어둠을 홀로 쓸고 있어 고적함을 달래려나 봅니다.

호남선의 상,하행선에 도착할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겨우 대여섯 사람 뿐이랍니다.
쓸쓸함만 더하는 대합실 안에 들어서 조치원행 무궁화호 승차권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는 듯 했는데 열차에 대한 안내 방송 소리가 귓가에 또렸하게 들려옵니다.

"여행하시는 승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우리 역을 06시 07분에 출발하여 서대전,신탄진, 조치언,천안, 수원 평택을 거쳐, 영등포, 용산으로 가는 열차를 타실 손님은 타는 곳 1번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이름을 모르니 얼굴 더욱 알 수없는 여자 역무원의, 또랑또랑한 안내 방송을 들으며 출구를 빠져나왔습니다.
이여 홈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구름계단에 올랐습니다.

저 멀리 삼불봉 능선에 하루의 시작을 알리려나 봅니다. 장엄한 아침 해가 불그레한 빛으로 하늘을 가르며, 가슴 벅차게 떠오릅니다.

조금 멀리 역사 외곽 지점에 홀로 서 있는, 외눈박이 신호등이 그리도 애처럽게 보입니다.
그 뒤로 열차의 앞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온 누리가 숙연한 이른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며, 멀리 전라남도 끄트머리 역 여수를 출발하여 두 시간 반여를 달려온 듯합니다.
그 무궁화호 열차가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역사로 서서히 진입을 합니다.
제 몸끝에 여닐곱 칸 정도를 뒤에 매단 열차는 조금은 촌스럽게 느껴집니다.
열차가 노후된지라 색 바랜 모습으로 역무원의 안내 방송에 따라 플랫폼에 닿았습니다.

승차권에 표기된 5호차 9호석에 자릴 하여 가벼이 숨을 내쉬어 봅니다.
얼마 후 열차는 짧고 굵은 신호음을 울리며 홈을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갑니다.
매서운 겨울 찬바람에 등 시린 붉은 외눈박이 신호등을, 매몰스럽게 뒤로 밀쳐내고 곡각 지점을 휘돌아 가고 있습니다.

다음 흑석리역을 향하는 디젤기관차는, 차축을 뒤흔드는 엔진의 진동음을 온 주위에 펴트리며 서서히 속도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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