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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들개(오디) 조회 : 1,035




청하의 하늘에 다붓다붓하게 떠있는 양떼구름이
극성스런 햇살에 새하얗게 바라보이는 여름 한낮
보리밭 가장자리에 개망초꽃 다보록이 피어나면

볼품 하나없는 개복숭아 그리 눈길도 주지 않아
토라진 얼굴을 생뚱맞게 내미는 우묵골 산모퉁이
뽕나무 가지에 달린 오디가 검자주빛으로 익어가면

어느메서 날아 왔나 갓을 쓴 것처럼 둥그런 머리에
가지런한 깃털이 유난스레 빛이 나는 오디새
아무런 꺼림 없이 이 가지 저 가지를 폴폴 날으고

끝 모르게 펼쳐진 푸른들녘을 두쪽으로 가르는 기차
하늘 위로 내뿜은 검은 연기가 뽀얗게 실실이 흩어지는
엇비스듬한 둔덕 위에 줄지어 서있는 뽕나무 밭으로

책보자기 어깨에 질끈 동여 둘러메고 검정 고무신 찢어져라
숨차게 달려온 까까머리 꼬마들 검붉은 오디가 주렁주렁 매달린
뽕나무 가지에 깨금발을 딛고 멧새떼처럼 잔뜩 들러 붙어

두 손이 까맣게 물들도록 빈 도시락에 저마다 욕심껏 따 담아
푸른빛 댕댕하게 도는 덜 익은 오디는 새콤달콤한 맛이 났고
먹듬직스레 새까맣게 잘 익은 오디는 밍밍하면서도 달짝지근해

말썽꾸러기 동네꼬마녀석들 입 언저리를 온통 까맣게 물들이고
티 없이 얼굴을 서로 바라보며 더할나위 없이 좋은지 해맑게 웃어
어린 날의 추억 하나를 청아한 하늘에 곱살스럽게 수를 놓았다.

힘껏 뻗어난 줄기들 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검불그스름한 오들개를
남겨두고 가려니 그리도 아까운 마음에 정신없이 따다 보면
넉잠누에 뽕잎을 따러 망태기를 메고 오는 밭주인에게 그만 들켜

화가 진뜩 나 버럭버럭 큰소리치시면 산자락으로 재빨리 도망을 쳐
어른 키 만큼이나 자란 호밀밭 속으로 몸을 푹 숙여 가쁜 숨 내쉬며
잔뜩 굶주린 매에게 쫓기는 숫꿩처럼 조심스레 머리를 슬쩍 내밀면

느즈막한 오후 햇살 만연한 동네 고샅길엔 허리 굽으신 옥순이 할머니가
풍사(風邪)를 막아준다는 건넛말 당골 사는 무당할매 말만 철썩 같이 믿고
손때 자르르 흐르는 뽕나무 지팡이에 몸을 힘겨웁게 의지하셔 걸어오시고

언제나 그맘때쯤이면 마을 뒷산 다랭이밭에 일 나가셨던 내 어머니
푸릇푸릇하게 윤기가 도는 뽕잎에 곱게 싸 들고 오신 검붉은 오디를
한 움큼을 손에 드시고 하나씩 그리고 또 하나씩 입안에 쏘옥 넣어주시며

내 나이 너무 어려 기억조차 나질않는 어느해 여름
호열자란 병을 앓다 죽은 하나뿐인 내누이가 묻힌 곳 앞산 자락
그곳에 어느새 눈길 모으시고 이내 차오르는 설움을 억눌러 참으시려나

땀내쪄든 삼베적삼 품안에 나를 꽉 끌어안고 얼굴을 마구 부비시고
복바쳐 오르는 설음 끝내 가누질 못해 울먹이시며 더듬더듬 말씀하셨다.
"으찌됐든간에 니놈은 꼭 살아남으야 혀 알긋냐? "

그럴라치면 어린 내가슴도 덩다라 울먹여져 나도 몰래 터져나오는 울음
더는 참을 수 없어 그침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얼굴 가득 젖어들었고
그토록 설음 찬 모자의 모습이 안쓰러운지 지는 해 더더욱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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