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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냄이 누나네 살구나무 조회 : 1,684




내 고향 ‘들메’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첫 울음을 터트려 밭두둑에 태반을 묻은 곳이다.

그곳은 금강평야의 동북쪽 채운 들녘에 소담하게 자리를 잡아 겨우 이십여 가구가 모여 오손도손하게 살던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숱한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품에 아듬었다.
그리고 농사짓는 일을 천직으로 삼아 너른 들녘에 땀 흘려 옥토를 일구며 자손대대로 이어 살았다.

세월 따라 빛바래진 초가집들이 낮은 처마 끝을 서로 맞대어 정겹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마치 강변 개어귀의 모래톱에 사이좋게 모여 사는 납작납작한 조가비들처럼 보였다.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충청도 서대전과 남쪽 끝자락 전라도 목포를 연결하는 호남선 선로가 역동처럼 이어져 있었다.
철길 따라 양 옆으로 펼쳐진 넓디넓은 들녘이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시골의 정취를 한껏 자아내, 하늘의 축복을 듬뿍 받은 삶의 터였다.

내가 이 땅 위에 살아 숨 쉬는 동안 뇌리와 가슴 깊은 곳에 영원히 남을 수밖에 없는 영원한 안식처이다.

충청남도 남녁 끝머리 강경과 전라북도의 입목인 익산을 잇는 ‘원목다리’가 가깝게 바라보이는 마을 남쪽 끄트머리에는, 작고 아담스런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흙 담장 울타리 안에는 해묵은 살구나무가 떡하니 버텨 서 있었다.
그리고 곱살한 얼굴에 치렁치렁하게 긴 생머리를 두 갈래로 곱게 땋아 내린 분냄이 누나가 살았다.

해마다 초여름엔 저마다 흡족한 마음으로 앞마당에서 잘 영근 보리 이삭들을 도리깨질로 타작을 했다.
바심이 끝나면 계절은 초여름으로 들어서 본격적인 한여름을 향해 가쁜 발걸음을 하였다.

그쯤에는 살구나무 가지가 흙 담장 너머 좁다란 고샅길 위로 뻗어날 만큼 튼실하게 자라 있었다.
대략 이십일쯤 지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동글동글하게 노란 살구가 다닥다닥 달렸다.
성그런 여름 햇살에 하루하루가 다르게 알알마다 누런빛으로 먹음직스럽게 익어만 갔다.

그 무렵 온 동네 개구쟁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살구나무에 눈길을 모아 입 안 가득 군침을 흘렸다.

나뭇가지마다 숱하게 달려 있는 시큼달콤한 살구가 그리도 먹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먹고 싶은 마음만 앞섰지 어쩔 방법이 없어, 그저 애꿎게 손가락만 입에 물고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살구나무집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살구를 몇 알씩 고루 나눠주셨으면 그도 좋으련만, 인색하기 짝이 없어 감히 엄두도 못 냈다.

살구나무 집엔 식구라고 해봤자 겨우 네 식구뿐이었다.
그중 분냄이 누나네 큰 오빠는 한 해 전에 군에 입대를 하여 강원도 어딘가에서 복무를 한다고 했다.

덧없는 세월이 벌써 수십해를 넘겨 기억에 가물가물 하지만,단 하나 지금도 기억에 두렸하게 남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그것은 어느 해 가을녁인가? 군대에 갔던 분냄이 누나의 오빠가 휴가를 오면서, 가지고 온 건빵 한 봉지를 들고 동네 골목 길에서 우리들 모두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셨다.
우리들은 하얀색 투명비닐에 싸여 노란색 종이봉지 안에 들어 있는 건빵을 먹고 싶은 마음에 서로 앞을 다투워 손을 번쩍 들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분냄이 누나네 오빠되시는 분이 우리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건빵을 몇 알씩 우리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셨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먹어 보는 군대 건빵인지라, 우리들 모두의 눈에는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고,극히 낙후된 여건 속에서 자라난지라 군것질이라고는 전혀 해본적이 없었기에 조금은 달작지근한 건방의 맛에 우리들 모두는 너나할 것 없이 그리도 쉽게 빠져들고 말았다.
세월이 수십년이 흘렀었도 내 기억 속에 이처럼 또렸하게 남아 있는 것은,우리들 모두가 비록 가난으로 인한 배고픔 속에 살았던 아픔도 있겠지만,그 보다 더 큰 요인은, 한 마을에 태어나 한 우물을 먹고 살았기에, 마치 제 식구처럼 보듬아 안고 살려고 했던, 때 하나 묻지 않은 진솔한 애향심에서 발로된 참된 이웃 간에 정이 아니였나는 생각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렇게 분냄이 누나네 오빠가 군대에 입대를 하여 집에 남은 식구라고는 두 노인 내외분들과 분냄이 누나를 합쳐 겨우 세 식구뿐이었다.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살구를 식구들이 질리도록 먹고도 남을 만큼 풍족했어도, 단 한 번 동네 사람 어느 누구에게도 후하게 인심을 써 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 마을 사람들 모두가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은 가난에 살기가 그리도 어려웠다.
겨우내 겨우겨우 억지로 버텼던 양식이 바닥이 나 쪼달리다 보니, 봄이 되면 그저 풋보리가 하루 빨리 익어가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며 살았다.
더러는 버텨내기가 너무도 조급했던지 채 익지도 않은 풋보리를 베어, ‘보리민딩이’를 만들어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저마다 사는 형편이 그렇다 보니 어린 우리들에게는 잘 익은 살구가 아주 좋은 간식거리였다.

할머니께서는 읍내에 여러 가지 푸성거리와 함께 내다 팔아 푼돈이라도 하시려고 살구를 따서 바구니에 모으셨다.
마음씨 곱디고운 분냄이 누나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몹시 안쓰러워, 나이 드신 몸에 뭣하려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하며 그리 한사코 말렸다.

그래도 할머니는 살구를 싸리바구니에 가득 담아 오일장 날이 아닌 여느 날에도 읍내로 나가셨다.
약방 모퉁이에 자리를 잡아 쏠쏠하게 쌈짓돈을 불리시는 재미로 그러셨던 같았다.

그래서 할머니는 울안에 듬직하게 서 있는 살구나무 대하기를, 하늘에 옥황상제님이 내려주신 보물처럼 그리도 알뜰살뜰하게 아끼셨다.

이른 아침이면 밤사이 바람에 떨어진 살구를 한 알이라도 알뜰하게 챙기려 하셨다.
혹여 동네사람 누가 먼저 주워갈까 싶어, 굽으신 허리로 알뜰하게 챙기실 정도로 욕심이 그리도 많으셨다.

겨우 이십여 가구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동네에, ‘억척배기 할매’라고 어른들은 물론 어린 우리들에게 까지도 소문이 자자하게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해보았었다.
‘어쩌면 저렇게 욕심 많은 할머니한테, 저토록 마음씨 착하고 예쁜 분냄이 누나가 태어났을 까?’하고.

동네 사시는 다른 할머니들은 먹을 것이 있으면 먼저 자기들 손자부터 챙겨주더라도, 나중에는 우리들에게 조금씩이라도 골고루 나눠주셨다.
그런데 살구나무 집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살구를 따주기는커녕 ‘용천배기 콧구멍에 마늘씨를 빼 먹는다.’는 말처럼 별스럽게 인색을 떨었다.

어쩌다 동네 아이들이 길가를 오가며 살구나무 근처에 어슬렁거리기라도 하면 신경을 곤두세워 그리 살펴보셨다.
혹여 나무줄기를 휘어잡아 살구를 훑어내려 도망치려는 줄 알고 잔뜩 노려보셨다.

마치 가을 약병아리를 노리는 황초롱이처럼 쪽마루에 잔뜩 도사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을 향해 무섭게 뜬 두 눈으로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시며 이따금씩 괜스레 헛기침을 하셨다.

그토록 할머니가 틈을 주질 않아 우리들 모두에게 더욱 목구멍에 감질만 나게 했으며, 끝내는 씁쓰레하게 입맛만 다시고 매번 되돌아오고 말았다.

초여름 장마를 알리는 비바람이 조금 세차게 스치고 지나면, 담 너머 고샅길 옆에 있는 민균이네 밭에 까지 살구가 우르르 떨어졌다.
동네 아이들은 무슨 횡재냐 싶어 너도 나도 앞 다퉈 민균이네 남새밭으로 들어갔다.
살구껍질에 묻은 흙을 대충 손으로 문대어 입에 얼른 넣고 작달막한 손안에 가득 차게 살구를 주웠다.

그럴 즈음이면 민균이 어머니가 바쁘신 걸음으로 사립짝 앞으로 나오시며 우리들 모두에게 소릴 버럭 지르셨다.

“야, 이넘덜아! 뭣땀시 넘네 남새밭에는 쳐들어가서 온통 난리를 떨구 지랄들 허냐? 어여 나오지 않을래? 그넘에 살구나무가 뭐시 그리 대단한 거라구 그러는지 참말로 알다가두 모르것당께. 아 글쎄 떨어질 디가 그리두 읍든가? 왜 해필이면 우리 밭으루다가 떨어져서 뭔 난리다냐, 암디나 떨어지두 되갔구만 참말루 요상헌 일이여.”

이제 겨우 힘 좀 받아 꼬투리라두 맺히려고 하는 고춧대라도 철딱서니 없는 어린 것들이 밟아 버려 자빠트리면 어쩌나 싶었는지, 민균이 어머니가 꽤나 못마땅한 듯 역정을 내셨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동네 아이들에게 너무 야박을 떠는 살구나무집 할머니가 조금은 밉살스러웠던지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볼멘소리를 내셨다.

그런데도 성격이 만만치 않은 살구나무집 할머니는 눈 하나 끔쩍 않고 그저 못들은 척 얼굴을 돌려 딴전을 피우셨다.
그리고 돼지막 앞에 있는 구정물통에서 맹깔없이 구정물 한 바가지를 얼른 떠서 냅다 구유에 부으셨다.

방금 전 자기네 살구나무를 들먹거린 민균이 어머니 말이 영 비위에 거슬렸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반대로 민균이 어머니가 들어보라는 듯이 마주대고 말씀하셨다.

“워따메 뭔 소릴 저리 했샀는기여, 그나저나 우리 복돼지 먹성 하나는 끝내주는구먼 그려. 어여 팍팍 실팍허게 먹구 쑥쑥 자라그라, 그래가지구 등판때기가 빤질빤질허게 토실토실한 새끼 한 보따리만 낳아버려. 그라믄 올 가실에 우리 분내미 시집이라두 보낼랑께.”

마치 옹심을 부리듯 민균이 어머니를 한차례 살펴보시며 눈을 가볍게 흘기셨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한나절쯤이었다.
초여름 더위를 부채질하는 한낮 햇살이 방앗간 녹슨 양철지붕 위에 장글장글하게 내리쏟고 있었다.
우리들은 참새들이 그리 시끄럽게 울어대는 연자방앗간, 응달진 그늘 밑에서 땅따먹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리들한테 내 친구 곰보딱지 주현이가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와 말을 건넸다.

“야들아! 시방 일루 오면서 슬쩍 보닌게, 분냄이 누나네 식구들이 밭에 일하러 갔능가? 토방에 신발이 한개두 안 보이더라구. 야! 이럴 때 싸게 가서 살구나 실컨 따 먹어 버리자.”

주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들은 서로 앞을 다퉈 살구나무 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목을 잔뜩 치켜세워 누런 살구가 많이 달려 있는 나뭇가지를,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그리 난리법석을 떨었다.

우리들 키보다 높아 손이 닿지 않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살구까지 따려고 잔뜩 욕심을 냈다.
그래서 신고 있던 검정 고무신을 벗어, 오른 손에 아금박스레 움켜쥐고 나뭇가지를 향해 냅다 내던졌다.

‘후두다닥’ 신발이 나뭇잎과 살구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살구 알들이 ‘우르르’ 땅바닥 위로 떨어져 사방으로 흐트러져 떼구루루 굴렀다.
고무신은 허공을 한 바퀴 빙그레 돌고 나서 이내 땅위에 떨어졌다.
동네 아이들 모두가 자기 고무신을 챙기랴 살구를 주우랴 정신없이 허둥지둥댔다.

그런데 재수가 없으려고 그랬던 것 같았다.
하필이면 내 고무신 한 짝이 분냄이 누나네 돼지막 지붕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살구를 줍는 일보다 우선 지붕 위에 떨어진 신발 한 짝 때문에 잔득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집을 비워 안 계신다고 했던 살구나무집 할머니가 뒤뜰 장독대에서 앞마당으로 허겁지겁 뛰어 나오셨다.
장독대에서 일을 하다 살구 서리하는 것을 알아채셨는지 지게 작대기를 손에 움켜쥐고 소리소리 고함을 지르시며 사립짝 앞으로 달려오셨다.

깜짝 놀란 동네 아이들은 마치 불에 데인 미꾸라지들 마냥, 걸음아 날 살리라고 온 사방으로 흩어져 정신없이 도망을 쳤다.

나는 그런 와중애도 돼지막 지붕 위에 두고 온 신발 한 짝이 걱정스러웠다.
할머니께서 뒤를 쫓아와 온 동내가 떠들썩하게 한바탕 난리를 칠 것 같아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고샅길 모퉁이에 숨어 얼굴을 삐춤하게 내밀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야! 이 너매 자슥들아. 우리 집 살구낭구 허구 무신 넘에 웬수 척졌냐, 그저 틈만 나면 요기루 와서 저러는가 모르긋네 그려. 으디 우리 살구낭구가 느덜헌티 돈을 달라구 혀써, 아니면 밥을 달라구 졸랐어. 아이구 참말로 나두 자식새끼 둘씩이나 키워 냈지마는 이러케까장은 안 혔는디. 요새 아그들이 참말루 별나긴 별난게벼, 이넘에 자슥들 어디 내 손에 한 넘이라두 붙잡히기만 혀봐라. 지금까장 따먹은 살구 값 한꺼번에 죄다 물려버릴 랑께.”

할머니께서 화가 잔뜩 나신 듯싶어 섣불리 신발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한참동안이나 이리도 저리도 못해 애만 태우며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고만 있었다.

그런데 마침 동네 우물터에서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오는 분냄이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에 냉큼 달려가 분냄이 누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러나 막상 무엇이라 말이 잘 나오질 못해 그저 어물쩍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분냄이 누나가 가던 길을 멈추고 다정스레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상민아! 너 시방 나헌티 뭔 말할라구 그러는 모양인디 답답허게 꾸물대지 말구 헐 말이 있으면 싸게 혀봐.”

“으음, 그러닌게 그게 뭐시냐면, 아까 참에 내가 누나네 살구를 따 먹을라구 고무신짝을 벗어서 살구나무에다 던져버렸는디, 고무신 한 짝이 누나네 돼지막 지붕에 떨어져번져서 찾으러 갈라구 혀두, 할머니가 무지허게 화가 난 거 같어 무서워서 갈 수가 음써. 그러닌께 누나가 내 신발짝 좀 갖다 주면 무지허게 고맙것는디.”

나는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제대로 말에 끝맺음도 못해 어물거리고 말았다.

“음, 으쩐지 쪼까 이상허다 혔지! 그래서 니가 시방 신발을 한 짝만 신구 있구먼? 그리구 니덜 또 우리 집에 죄다 몰려와서 살구 서리 한다구 난리 벼락을 쳤구나? 암튼 걱정일랑 하지덜 맬구 요기서 쪼매만 기달려 봐. 내가 퍼뜩 가서 얼릉 가지구 올 틴께.”

그렇게 걸음을 서둘러서 고샅길을 걸어가는 분냄이 누나는 언제나 우리들을 너그럽게 감싸주었다.
그런 분냄이 누나의 따스한 정이, 노을빛 불그레하게 물들어 가는 저녁 하늘만큼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은근슬쩍 미안스럽기도 했다.

그런 추억이 내 삶의 마디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해마다 이맘때쯤 누렇게 익어 가는 살구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서 한번쯤 더 바라보게 된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내 고향 마을도 그 모습들이 참 많이 변해 버렸다.
마을 앞 원목다리 옆을 스쳐 지나 금강의 개어귀로 이어진 마을 앞개울을 따라, 논산과 천안을 잇는 고속도로가 생겼다.
그로 인해 분냄이 누나네 집터는 없어지고 말았다. 그로 인해 내 뇌리와 가슴 속에 수없이 수놓아졌던 그것마저도 송두리째 묻혀 버렸다.

그런데 그 마음씨 고왔던 분냄이 누나가 두 해 전 늦가을에 노환으로 세상을 뜨셨다고 전해 들었다.
분냄이 누나의 슬픈 소식이 엄연한 사실임에도, 옛것을 되뇌어 잃지 않으려 하는 애타는 심사에 쉽사리 받아 드릴 수가 없었다.

어쩌다 다른 곳에서라도 노랗게 농익어 가는 살구를 보게 되면 꼭 하나 떠오른 것이 있다.
그때 마음씨 착했고 곱기만 했던 분냄이 누나의 얼굴이다.
그리 사노라 한동안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은 듯 얼마쯤은 가슴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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