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그리 숱하게 바라보았던 하늘이다. 거의 대다수의 나날들은 가볍게 흘끔 쳐다보는 정도였다. 그랬기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때론 턱밑까지 차오르는 분노를 가눌 길 없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도 보았다. 그런데 오늘 따라 하늘이 더할 나위 없이 해말끔하게 보여 마음이 혼쾌해졌다. 더불어 푸석푸석한 마음에 작을지라도 여유로운 감성을 자아낼 수 있었다. 그런 동기를 부여해준 저 하늘에 변덕스럽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듯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그 모두가 어렵사리 찾아온 봄을 마음껏 예찬하는 것 같았다. 숱한 생명체들이 생동감으로 돌돌 뭉쳐진 봄이 진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저 하늘빛이 더할 나위 없이 탐스럽기만 했다. 파란 하늘을 그저 눈 시리게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부듯해졌다. 그런 연유인지 새삼 변덕스러울 정도로 마음 설렜다. 그리고 끝내는 나도 몰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아니! 너무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그만큼 삶에 쫒기며 살아왔던 지난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를 해보는가 보다. 오랫동안 친숙해진 산들은 중첩된 모습으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언제나 그렇듯이 끝내 말이 없었다. 그저 과묵하게 자리를 지킬 뿐 심오한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매정하다 못해 때론 얄밉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늘이 그토록 해맑은 탓인가 싶었다. 앞산 봉두에 오도카니 서있는 중계탑이 아스라이 바라보여 짙은 정감을 마냥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하나의 여운을 뇌리와 가슴속에 미묘하게 남겼다.
산자락 밑에 붉은 벽돌로 정교하게 쌓아 올린 시골 교회가 선뜻 눈에 띄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모습으로 예스럽게 우뚝 서 있었다. 더불어 세월의 풍상을 겪은 만큼이나 바라보기에 한껏 고풍스러웠다. 지붕 꼭대기에 작달막한 하얀 십자가가 오늘 따라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그런 참한 모습이 주위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사물들과 적절한 조화를 이뤄 더욱 운치를 자아냈다.
언제부터 산 아래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자그마한 마을이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예로부터 이십 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지붕머리를 맞대고 도란도란 살갑게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이곳 마을을 일컬어 ‘산밭네’라고 부른다.
봄 아지랑이가 온 동네를 에워싸고 보기 좋을 만큼 아른거렸다.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 차분하게 너울댔다. 너울 속에 산 밑 아래 작은 시골 마을의 전경이 소담스레 펼쳐져 친숙함이 절로 묻어났다.
마을 끄트머리 자드락의 작달막한 과수원에는 복숭아꽃들이 만개하였다. 그런 화사한 모습들이 시야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 어렴풋이 온통 하얗게 보였다. 동구 밖 들녘 밭에는 봄 농사를 서두는 부지런한 촌로의 뒷모습이 진지함을 자아냈다.
산모롱이를 끼고 흐르는 폭이 좁은 도랑의 물소리가 귓가에 단작스럽게 들려왔다. 도랑 가장자리에 줄지어 있는 노오란 개나리꽃들도 봄을 예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기 좋을 만큼 넉넉하게 피어올라 오가는 길손들에게 정이 서린 눈길을 서슴없이 주고 있었다.
마을로 이어진 소로를 끼고 도는 산모롱이에는 작은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어, 나름 아늑함을 더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송홧가루가 묻어났다. 봄을 상징하는 송진 내음을 짙게 맡을 수 있었다.
마냥 청아한 하늘을 저 혼자 즐기려나 보다. 옥빛 하늘에 우짖는 노고지리의 울음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왔다. 아마도 청아한 하늘을 저 혼자 독차지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넓게 펼쳐진 앞 들녘 논배미에는 파릇파릇한 독사풀(둑새풀)들이 꽉 차 오르게 자랐다. 살랑이는 봄 바람에 짙은 싱그러움이 눈앞에 가득 차게 밀려와 한층 더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 모든 자연의 참 모습에 몸과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다. 이렇게 어렵사리 얻어진 짧은 시간 속에서라도 마음껏 심취해 보고 싶었다. 삶의 마디마디마다 모질게 들붙은 고뇌의 잔흔들을 이젠 절실하게 떨쳐내고픈 욕구가 더더욱 팽배해졌다.
가파른 삶 속에서 바동대던 그 지긋지긋한 고통의 깊은 늪에서 이제서야 겨우 벗어나려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제는 그 어느 것 하나에도 값싼 감성에 흔들리지 않고 나 혼자만의 피안에 접어들고 싶어진다. 그런 탓 있어 저 하늘에 다시금 갈망한다.
그렇게 마음은 늘 어느 것 하나에도 결코 얽매이고 싶지 않다. 그저 자유로움 속에 영원한 일탈을 꿈꾸고만 싶다.
그런 내 작은 바람의 뜻이 담긴 심사를 못내 깨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갓 젖을 떼려 하는 아기 염소가 ‘매애애 매애애’하고 조금은 애처롭게 울어대는 울음소리였다.
듬직해 보이는 어미 염소는 논배미 안에 쇠꼬챙이를 땅속 깊숙이 박아 넉넉하게 늘어뜨린 밧줄에 묶여 있었다. 어미 염소와 아기 염소의 평온한 모습이 내 눈 안에 그리도 쉽사리 들어왔다.
어미 염소는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젖무덤이 제 몸집으로 버티기가 조금은 힘에 겨운 듯 뒷다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찬연하게 비치는 봄의 햇살에 어미의 젖꼭지가 선홍색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런 어미의 젖꼭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또 다른 강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어미 염소 따라 집을 나서 한동안 이저리 그리도 마음껏 뛰놀던 어린 아기 염소가 배가 고픈 것 같았다.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서둘러 어미의 젖꼭지를 입 안 가득 집어넣고 턱에 힘을 잔뜩 주어 앞으로 당기면서 야물딱지게 빨기 시작했다. 어미 염소는 그런 새끼 염소가 그도 사랑스러운가, 혀끝으로 어린 새끼의 머리를 고루고루 핥아주었다.
그렇듯이 저 하늘은 넓디넓은 만큼이나 심성이 너그럽고 지극히 자상한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자연의 그 모든 사물들을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두루 감싸 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런 하늘과 산을 가까이 볼 수 있어 마음이 흐뭇하다. 내 삶이 거칠고 힘이 들 때마다 마음을 달래려 서슴없이 가장 편하게 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미 염소의 젖을 빨고 있는 아기 염소의 모습이 퍽이나 인상 깊게 마음에 와 닿았다. 원초적인 본능의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그런 진솔한 모습들에서 버릇처럼 지난 일들을 다시금 되뇌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그 원인이 자의였던 타의였던 얻어진 치부를 애써 감추고 살려 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 심리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제 애를 써 잊어야만 될 한 맺힌 기억을 다시금 되뇌어 보려 한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강한 거부감이 일어난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해본들 결과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둔한 지혜이지만 삶을 살아오는 동안 터득한 결론이었다. 더불어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에 옹골지게 남아 있는 상처가 뿌리 깊게 자리한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서야 겨우 응고될 것 같은 상처들이다. 그런 사연을 다시금 들춰내어 남들에게 구차하게 알려야만 하는가 하는, 우려에 가득 찬 망설임을 참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수없이 해보았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깊은 이해를 진심으로 바라고 싶다.
내 어린 외 손자는 경남의 어느 바닷가에 인접한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시에서 첫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신의 노여움이 컸는지? 전혀 타의에 의해 어미와 덜어져 살아야만 했다. 아니 바로 저 하늘이 제 부모들 세대에게 내려진 형벌로 그리 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이곳 지리산 작은 마을의 내 품 안에 삶의 터를 옮긴 것은 겨우 두 살 때였다.
인간이 모태에서 태어난 후 어느 정도 성장을 하게 되면 서툴게라도 더듬더듬 말을 배우게 된다. 그건 각자 가지고 있는 지능의 한계에 따라 직간접으로 의사를 표시하려는 방법일 것이다.
보편적으로 미루어 보아 맨 먼저 배우게 되는 말이 ‘엄마’일 것이다. 그 다음이 바로 ‘맘마’라고 생각한다. 그 후에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배우게 되는 말이 ‘아빠’일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말할 수 있는 친숙한 단어들일진데 불행하게도 내 외손자는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를 모르고 컸다. 애를 써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면 억지로 그렇게 어린 외손자를 양육했으며 서둘러 "하라부지" 라는 단어부터 숙지시키려 애를 썼는지도 모른다. 아니 좀 더 진솔하게 말을 한다면 지난날 하늘이 어린 외손자나 나에게 주었던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 참담하기 그지없는 기억들을 어린 외손자에게는 정말 어느 것 하나라도 때가 될 때까지는 정말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허나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외손자가 성장을 해서 어느 정도라도 세상 물정을 알게 되었을 때를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리를 구분할 수 있는 사고력과 스스로 자기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인격도야가 갖춰졌을 때라고 생각했다.
그때서야 뼈 마디마디가 시렸을 만큼 서러웠던 그 혹독한 일들의 전모를 여과 없이 밝혀 주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난 후 그 일에 대한 모든 판단은 외손자 스스로가 풀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세상 그 어느 누가 보더라도 그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애써 외면하며 잊고 살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험한 세상 그리라도 살아남아 철없는 어린 외손자를 지키려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외손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은 완강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모두가 내 스스로의 아집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린 외손자가 어느덧 열 살이 되었다. 숱한 우여곡절 속에 세월이 어느 정도는 지났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그러했고 지금도 내 의사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불행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별 다른 큰 탈 없이 잘 자라준 외손자를 보면서 나름 크고 작은 보람도 느끼며 살았다. 마음은 먹이고 입히는 것만이라도 늘 좀 더 잘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처해진 냉엄한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어렵기만 했다. 늘 한없이 미안한 마음을 갖고 그저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내딴에는 가지고 있는 열과 성의를 다해 잘 해준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고귀한 모성애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높고 깊으며 강한 의미의 정에는 근접할 수도 없었다. 더불어 그 모성애를 절대로 따라 갈 수 없다는 것을 늘 느꼈다. 그것은 세상 어느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기에 현시점에서도 다시금 자인한다.
외손자가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시내에 있는 어느 어린이 집에 다닐 때부터였다. 반복되는 학습이었지만 여느 아이들에 비해 너무도 뒤늦게 배웠다. 그런 단어들이 함유하고 있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진실하고 뜨거운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쉽게 배우는 '뽀로로' 노래 정도를 따라 부르는 수준이었다. 아이가 세상을 실제로 접하여 아주 미세하게나마 정신적으로 받아들여 이해를 하고 체감으로 느껴야 했다. 하지만 열약한 환경적 여건은 둘째치고라도 그럴 조건조차도 아이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타의에 의해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쩜 어린 나이의 두뇌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이 그렇게 미흡하게 귀결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어찌 보면 참으로 비참한 일이지만 그 당시 상황에는 그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이 집에서 그저 흔하게 배우는 동요 가사에 나오는 말들을 같은 또래 아이들을 따라서 너무 늦게 배웠을 뿐이다.
지금은 너무 능숙하게 언어를 구사하며 때로는 제 의사에 반하면 주저 없이 자기 주관을 피력하려고 한다. 그런 모습에서 나 혼자만의 속마음으로 그래도 아주 작게나마 크긴 컸구나 하면서 쓸쓸히 웃음도 지어 보았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허전해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눌 수 있었다.
외손자의 진취성 있는 그런 모습에서 기특하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비록 어려울지라도 꼭 지켜야 할 책무가 더 큰 것같이 느껴졌다. 생살을 예리한 칼날로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이 도래된다 해도 그저 참고 또 참으려 한다. 더불어 어린 외손자를 지키고 키워내기 위해 지난날의 악몽들을 가급적 잊으려 애를 써 보았다.
그래도 늘 가슴에는 참기 어려운 아주 심한 압박감과 치솟는 분노에 가끔씩 목이 메었다.
내 외손자가 세 살 되던 해 늦가을 어느 날 밤에 있었던 일이었다. 외손자가 늘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꼭 밤 인사를 하고 잠에 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에는 내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평상시와는 다르게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멀리 있는 엄마도 잘 주무시구요.”
외손자가 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혹여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보다는 전혀 예기치 못한 말을 들었기 때문에 어찌 할 줄 모르는 당혹감이 더 앞섰다.
외손자와 함께 살았지만 외손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처음이기에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었다. 그래서 당황한 마음에 아기에게 되묻듯이 말을 건네 보았다.
“ 원아! 너 엄마 어디 있는지 알어?” “으음, 응.”
왠지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에서 그저 우물쭈물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재차 물어 보았다.
“으음, 몰라. 그런데 내 친구들이 밤에 잘 때 자기 엄마한테 그렇게 한데. 그래서 나도 그냥 해보고 싶어서 그랬어.”
순간적으로 두 귀가 뜨거워져 달아올랐고 가슴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런 감정을 꾹 누르고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다시 물었다.
“ 원아! 조금 전에 네가 먼 데 있는 엄마라고 했잖아. 근데 엄마 어디 있는지 알어?” “아니, 진짜로 몰라. 정말이랑께.”
모를 줄 뻔히 알면서 외손자에게 짓궂게 묻긴 했지만 예측했던 대로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리고 속마음으로는 그런 질문을 공연히 했나 하는 후회도 해 보았다. 제 어미의 젖비린내가 채 가시지도 않은 품속을 전혀 예기치 못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로 애석하게 잃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날의 상처도 있는 철없는 어린 것에게 너무 잔인한 질문을 했나 하는 후회를 마음속으로 거듭 해보았다.
그래도 먹을 것이 있으면 늘 저 먼저 챙겨 주는 내가 제 눈에는 그렇게 어리숙하게 보였는지 나를 놀리려고 심심찮게 하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도 먹고 싶을 건데, 왜 항상 안 먹고 나만 줘? 할아버지는 정말 바보야.”라고.
세상 어느 부모인들 부모 된 마음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와 똑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런 소리를 천만 번 듣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 자주 할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보스럽게 다시금 마음속으로 말을 해보았다.
‘그래 원아. 이 할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너한테만큼은 바보 할아버지가 되어도 좋아.’라고.
온 들녘을 바지런히 헤집던 해가 오후 무렵부터는 짙푸른 소나무들이 오밀조밀 하게 들어찬 솔밭 위로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저도 뒤따라 나서려나 보다. 오후 내내 논배미에 무리지어 노닐던 예닐곱 마리 산비둘기들이 제가끔 나래를 활짝 편다. 그리고 이내 아래쪽 언덕배기 으슥한 청미래 덩굴 숲으로 날아간다.
늘 그맘때쯤이면 초조하게 기다리는 마음 알아나 주는 듯이 산모퉁이에 노란색 통학버스가 앞모습을 살갑게 드러낸다. 오늘 따라 새삼스레 더디오는 것만 같아 조급한 마음에 더더욱 기다려진다.
불과 십분 후에는 틀림없이 볼 수 있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마냥 조급해진다. 하늘 아래 단 하나 남은 혈육인 내 어린 외손자가 또 다시 그리워진다. 그런 애틋한 그리움 하나 있어 언제나 산모롱이에 노안으로 침침해져 오는 두 눈이라도 모아 보려 한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만 싶어진다. 더불어 이런 구겨진 삶을 내 외손주에게만은 되물림해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 모아 하늘에 빌어본다. 비록 궁핍할지라도 그저 하늘이 고맙게 나에게 준 삶이 다 하는 날까지 언제나 지금처럼 살고 싶다.
내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가야! 이제 멀지 않은 날 자그마한 텃밭 하나 일궈보자. 그땐 할배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도 심자. 그리고 밭 가장자리엔 네가 갖고 싶어하는 오색 영롱한 바람개비도 꼭 세워놓을께.
그 즈음이면 벚나무에 매미가 우렁찬 울음소리로 여름을 알려줄 것이다. 더불어 싱그러운 아침 이슬이 탐스럽게 맺히는 풀잎 위에는 느림보 달팽이도 느릿느릿한 모습을 보여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