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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喜方)계곡에 너를 두고 3 조회 : 1,491




더할 나위 없이 선연한 아침 햇살이 냉기 가득 서린 차창 밖을 다부지게 두드립니다,
하지만 채 못다 들어오지도 못하는 아쉬움에 그만 차창 밖에 몸을 떨구고 맙니다.
그런 모습이 차마 애처러운지, 온누리에 가득 서린 아침 물안개가 유리창을 타고 시름처럼 흘러내립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물들이 이제서야 겨울밤 긴 잠에서 깨어나 숨을 몰아 내쉬려는 듯하게 보입니다.
때론 가볍게 그러다 몸가누기 힘들 정도로 흔들리는 열차의 창 밖으로 가을걷이가 끝나 고적함만 꽉 들어찬 텅비워진 들녁이 황량하기 그지 없어 애잔스럽기도 합니다.

고만고만하게 보이는 나지막한 산들이 운무의 끝자락을 헤치고,저마다 또렷하게 하나 둘씩 형체를 들어내 놓으려 합니다.
저마다 지니고 있는 형체에 따라, 보는이로 하여금 제가끔 다른 느낌을 고루주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속된 인간의 속마음처럼 넉살스럽게도 보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수줍어 못내는 참신하게도 보여집니다.

국토의 중심부를 꿰뚫어 질주하는 열차는 날렵스런 몸짓으로 북상을 계속합니다

이른 아침녁이라 그런지,객실 안은 허전하리만큼 좌석들이 드문드문 비워 있습니다.
그나마 썰렁한 객실 안에 새어 드는 스팀 온기가 텅 빈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네요.
바깥 온도가 차거워 몸을 잔뜩 움추렸다 온기가 가득 서린 차 안에 들어와서 그런지, 차창에 얼굴을 기대니 스르르 잠이 밀려옵니다

달리는 열차가 무정차역인 가수원역을, 외면시하듯 그냥 뒤로 밀쳐 재빨리 스쳐 지나갑니다.

이어 다음역 서대전에 도착한다는 차내의 안내 방송이 들려옵니다.
비록 도심을 벗어난 변두리 지역이지만 그래도 도심다운 면모를 인색하게라도 보여주는군요, 크고 작은 회색 콘크리트 건물들이 저마다 잔뜩 몸집을 부풀려 엉거주춤거리며 차창 밖으로 다가섭니다.
그에 비례하여 열차는 숨을 가삐 몰아 내쉬며 속도를 서서히 낮춰 도심 속 서대전역 홈으로 진입을 하고 있습니다.

무심코 창밖으로 서대전역의 풀랫폼을 살펴 내다보았습니다.
지난 늦여름까지,둥글고 커다란 화분에 담겨 역사 홈의 한 모퉁이에 소담스레 자릴 하였던 베고니아꽃이 하나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마음이 서운하답니다.

더불어 변화무상한 세월의 흐름을 새삼스레 맛보아야만하나 봅니다.

당신과 나 그리 짧지도 길지도 못하게 살아온 지난 날 들이였지요.
아무런 준비도 못한체 그리 허무하게 보내야만 했으니, 구멍 뚫린 마음속에 채워짐 하나도 없어 그저 망연키만 합니다.
그래서인지 마디마디 시려만 오는 이 겨울이 더더욱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언제나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내 자신, 이 나이가 차도록 억제 못하여 가끔씩은 가벼운 감성에도 쉽게 흔들리기만 합니다.
요즘들어 이토록 나약한 내 모습이 너무도 미워져 끝내는 싫어만 집니다

호남선의 시발역인 회덕역을 무정차한 열차는 서서히 선로의 쾌도를 바꿔 경부선으로 진입을 합니다.
그리고 쉴틈 없이 산탄진역을 향해 줄차게 질주합니다.
창밖으로 내보이는 시골마을의 풍경들이 단아한 모습으로 눈 앞에 밀려오니, 잠시인들 잊었던 내 어릴적 기억의 언저리 고향 땅 어느 한 부분에 함께 머물러 봅니다

그 도한 차갑게만 보이니,희뿌옇게 퇴색되어 가는 연초제조창의 콘크리트 육중한 건물이 볼품성 없이 다가섭니다.
그 도심 첫들머리, 물안개 자욱 서린 신탄진 입목에 있는 샛강 철교 위를 요란한 금속성 소리를 남기며, 열차는 신탄진역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곳 또한 그러니 아직은 아침이 이른 듯합니다.
신탄진역에서 내려 오르는 이들이,그다지 눈에 잘 띄질 않아 좀 허전하기는 어느 역과 마찬가지랍니다.

달리는 열차의 선로 둑 밑엔,지방국도를 내달리는 생김새가 각기 다른 차량들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그리고 조금 멀리 경부고속도로 위에는 마치 성냥갑 크기만하게 보이는 고속버스가, 마치 달리는 열차와 서로 앞서려고 경주를 하는 듯합니다.
그런 처령들의 행렬 사이로 뒷쪽 화물칸에 짐을 높더렇게 가득 실은 화물차가 힘겨운 모습으로 느릿하게 달려 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문득 옛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늘이 내린 형벌로 내 몸이 불구가 되었기에 노동력을 상실한 나를 대신하여, 연약한 당신 홀로 가사를 책임진 터라 늘상 생활은 간고 했었지요.
그런 이유가 있어 살던 집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재계약을 하려해도, 집주인이 요구하는 인상된 전세보증금을 구하지 못해 참말로 우리 세 식구 전전긍긍 하였었지요.
그런 와중에도 그 돈을 구하려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혀 짧은 소리를 하며,동분서주하던 당신의 모습이 역력히 떠오릅니다..
그러다 체념 끝에 하는 수없이 이곳저곳으로 숱하게 이사를 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럴 적마다 당신은 내 눈치를 살피며 어린 것을 끌어앉아, 탄식어린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을 하였지요?
"소영아!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참말로 에미가 능력이 없어서 이리 되었나 보다.너를 이리저리 끄잡고 다녀 정말로 미안하다,아무튼 내가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벌께 그래서 다음엔 네 애비랑 니 맘 편하게 해줄께 알았지?" .

그렇게 당신은 우리 세 식구를 위해 바보스러울 정도로 꾹 참고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랬던 일들이 수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지만 그 아픔 속에 당신에대한 고마움과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 교차되어 가슴이 뻐근해져 목이 메여 옵니다.

어느 유행가에 나오는 가사처럼 "참 당신은 바보처럼 살았나 봅니다"

열차가 조치원역에 가까이 다가서려 합니다.
그러자 다른 반대편 선로 위엔 고속열차가 '쌩" 하는 단말의 굉음을 남기며, 빛깔 무늬만이 잠시 보여주는 듯 하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세차게 스쳐갑니다.

오전 06시 54분 정시에 조치원역에 도착됨을 알리는 걸쭉한 남자 승무원의 차내 안내 방송이 귓가에 들려옵니다.

하나 둘 승객들이 선반 위에 벗어 놓았던 배낭을 둘러메고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이제 충청북도의 남서족 관문인 조치원역에서 내릴 준비를 합니다

이곳 조치원은 당신이 단 한 번도 오지 않은 곳이지요. 나 보다는 더 낯설 것만 같아 이해를 도우려합니다.

이제 조치원역에서 얼마 후 충북선으로 달리는 열차를 갈아타야만 합니다.
청주 → 청주공항 → 증평 → 음성 → 주목 → 충주를 거쳐 종착역 제천까지는 약 한 시간 사십 여 분을 더 달려야 닿을 것 같습니다.

이곳 조치원에서 제천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오전 08:00에 출발을 합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아마도 낯선 곳에서 한 시간 여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역사의 집찰구함에 차표를 넣고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조치원 역사를 빠져나왔습니다.
넓다란 광장 한복판에 홀로 서니 온몸에 묻어오는 외로움이 절절합니다.
광장 한 모퉁이 공중전화 부스에도 단 한 사람 보이질 않고, 그저 스산한 바람만 이따금씩 불어옵니다.
그런 내 모습이 무인고도에 홀로 남은 난민처럼 허전함을 더해줍니다.

그나마 쓸쓸함으로 텅 빈 마음을 불어오는 찬바람이 대신 가득 채워주려나 봅니다.

낯선 곳에 이리 혼자서 서있으려니,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무척이나 좋을 것만 같은 부질없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 가누려 푸석이게 보이는 겨울 하늘을 눈 치켜 물끄러미 바라만 봅니다.
당신이 있을 리 없는 냉엄한 현실이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더불어 이 자리에 내 자신이 홀로 머물러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우쳐 줍니다.

존재의 상실감을 절감하며 잠시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낯선 어느 택시기사가 어서 오라고 소리를 칩니다.

이곳을 출발하는 열차가 종착역인 제천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전 09시 45분 입니다.
그리고 제천역에서 다시 중앙선 열차를 갈아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곳 제천역에서 희방사까지 가는 열차는 09시 55분에 있다고 합니다.
제천역에서 환승하는 여유 시간이 겨우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 탓에 그곳으로 가는 열차를 서둘러 갈아타야 합니다.

당신을 만나다는 기대감에 몰두해 마음이 발걸음보다 더 앞선 탓인가 봅니다.
아침을 거르고 내린 낯선 곳에서 어쩔 수없이 아침 식사를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니,역사 맞은편에 낯선 식당 하나가 눈에 띄어 발길을 옮겨봅니다.

가계 앞 길가 쪽에 내걸은 커다란 가마솥에 소뼈다귀와 선지를 섞어 고는 듯 조금은 비릿한 냄새가 물신스레 풍겨 나옵니다.

아마도 냄새에 그리도 민감한 당신과 같이 왔다면, 이내 당신이 얼굴을 온통 찌푸리며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 자기야 내사 죽으면 죽었지 참말로 저 냄새는 못 맡겠다,알았지? "

왼쪽 어깨 위에 바싹 둘러멘 가죽 배낭을 식탁 옆에 내려 놓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생각을 거듭하다 그나마 가장 무난할 것같아, 된장찌개 백반으로 음식을 주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옆자리에 놓여 있는 일간신문의 지면을 얼핏 살펴보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참으로 사람 마음 간사하다 하지만 오늘 더욱 그리 느껴집니다.
손끝이 그리도 맛깔스럽던 당신이 절로 생각납니다.
꼬리 짧은 콩나물과 빨간 고춧가루 듬뿍 넣어 얼큰하게 끓인 대구 매운탕이 문득 생각납니다.

그런 당신이 마음 속으로는 흡족하면서도 왜? 그랬었는지?겉으로는 능청을 떨며 당신을 놀려주려고 이렇게 말을 하였지요?

"위메 살다살다 별놈에 꼴을 다 보긋네 그려,으쩌다 소가 뒷발로 모기를 잡은 것매냥 당신이 맛나게 끓였구먼 그려,"

대구 매운탕을 끓일 때마다,당신이 중앙시장 생선가게 아줌마에게 미리 부탁해 놓은 대구머리 토막을 가져오라 재촉하였지요?
그럼 나는 차라리 안 먹고 말 터이니 그런 추접스런 부탁하지 말라면서 가볍게 다투었지요?
그랬던 기억이, 이 낯선 식당 안에 앉아 있노라니 다시금 떠올라 코끝이 찡합니다.

그리라도 당신 살아날 수있어 한 번만 더 아웅다웅 다툴 수만 있다면, 이제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춥거나 말거나 시장 한모퉁이에 있는 생선가게로 냉큼 달려갈 것만 같습니다.

이래서 언제나 나는 당신 앞에서 속 알맹이 없는 바보가 되고 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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