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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喜方)계곡에 너를 두고 7 조회 : 1,392




'진 도 희"
천만번을 불러보아도 결코 실증이 나질 않는 이름이며, 또한 저 하늘 밑 이 땅 위에 단 하나 뿐인 "영구불변" 내 아내의 이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당신이 "삼척 진씨"의 후손으로 첫 울음를 터트리며 이 세상에 태어나자, 집안 식구들 중에 제일 기뻐한 사람이 바로 당신의 아버지였다고, 나에게 그리 자랑 삼아 이야기를 해 주었지요.
그런 말, 함께 머물러 살아오는 동안 몇차례 정도는 들었던 기억이 있어, 지금도 이렇게 생생합니다.

당신의 아버지께서는, 충북 제천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는데, 그나마 박복하셨던지 가세가 기우러져 끼니끼니 때마다 양식 걱정을 하며 살았다고 숨김 없이 나에게 말을 전하였지요.

대물림 되는 지긋지긋한 가난과 헐벗고 사는 설음에서 벗어날 심사에 가출 아닌 가출을 하여 지닌 것 하나 없는 젊은 몸 하나만 믿고 패기있게, 남도 부산 땅에 내려와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여 생계를 이어가셨다고,설명을 하며 조금은 힘든 표정을 얼굴에 나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의 아버지께서 하숙집 고명 딸과 서로 눈이 맞어 사랑을 나누다 일정한 세월이 흐른 후에 혼례를 치뤘으나, 형편이 뻔한지라 턱없이 부족한 돈에 여기저기 수소문 하고 다리가 저려오도록 발품을 팔아, 지금의 영도구 청학동 "대한 조선 공사"뒷편 언덕배기, 달동네 꼭대기에 있는 판잣집의 단칸방을 겨우 얻어 두 분의 보금자리이자 신혼 살림집을 꾸미고 사셨다.는 말을 하였답니다.
그런 연유로 지금까지도 당신의 가족들이 눌러 살고 있는 집이되었고, 두 분께서 첫 자식으로 당신을 낳았다는 지나간 날에 있었던, 당신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상세히 알고 있답니다.

온 사방을 둘러보아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였지만, 그래도 당신이 믿고 의할 수 있는 남편이라는 굳은 믿음 속에, 나를 만난 후 처음으로 밤을 지새워 부옇게 날이 밝아오도록, 당신 집안에 대한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날 새벽녁에 출출한 배를 채우려고 새벽 이슬을 맞으며 집을 나섰습니다.
가계에서 회식을 할 때마다 가계 식구들과 자주가서 잘 안다는 곳이였는데, 말바우시장 부근에 있는 감자탕 집으로 갔었지요.

내가 이제서야 솔직히 말을 하지만 세상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감자탕이였나 봅니다. 당신이 곁에 있어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음식 맛은 그런데로 먹을 만 했습니다.

참!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의 이름을 지어주실 때, 평소 술을 즐겨하시던 분이 술을 덜 드시고 하루에 두 갑 정도 피우시던 담배도 줄여, 당신 어머니도 모르게 모아두었던 '고래 힘줄 같은 돈"을 가지고, 부산 영도 다리 밑에 있는 어느 허름한 철학관에서 이름을 지어주셔, 지금껏 부른다고 아주 장황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도희"라는 이름에 뜻은 한자로 풀어 복숭아 도자에 계집 희자라고 말을 하면서,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식당 안에 있는 손님들이 들을까 싶어 좌 우로 고개를 가볍게 돌려 두루 살피다, 그제서야 맞은 편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며 슬며시 웃더군요.
그 때 그 자리에서 그렇게 편한 기분으로 웃던 당신에 얼굴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답니다.

여름 뙤약볕에 잘 익어 때깔이 좋은 복숭아처럼 보숭보송한 얼굴로, 예쁘게 자라나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같이 살다보니, 당신이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언제나 당신은 바보처럼 그랬답니다.

삶의 정답을 빤히 알면서도 속세의 속된 셈법에 의존하지 않고, 백치 아닌 백치처럼 때론 의아스러울 정도로 올곧게 살려 바둥거렸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단 한사람으로 이렿듯 기억되니 어찌하여 한 시인들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서야 말하지만 더러는 속으로만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작은 먹을 것 하나를 두고도 어린 것부터 챙겨주는 당시에 대한 고마움이 시간이 흐를수록 쌓이고 더 쌓여, 더 이상은 주체할 수 없어 너무도 답답했습니다.

정말로 감당키 어렵기에 그런 착하고 여린 당신이 업소에 출근을 하고나면, 떠난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아이와 둘이서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버릴려고도 했었답니다.

그런 혼란스러움을 바로 잡아 준 것은, 그모두를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생각하고 어제와 오늘이 한 치도 다를 바 없이, 과묵하게 살아가는 듬직한 당신의 진솔함이 늘 내 곁에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런 당신의 헌신적인 배려가 있었지만 당신과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 온 지난 나날 동안, 그에 대한 보답은 커녕 숱한 크고 작은 아픔을 주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미거하여 매사 부산스러움만 더하고, 패기는 있으나 그 다음을 이어가는 삶에 방법조차 몰라, 좌표를 잃고 거센 풍량에 휩쓸려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참으로 위태스런 삶을 살았나 봅니다.

나에 행동 그 모두가 염치를 외면하고 넉살스레 기대여 사는 저질스런 속물의 근성에 인습화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남은 한 조각 양심이라고 그럴싸하게 쾌변 아닌 쾌변을 쉽게도 늘어 놓았지요.
그리 전신을 짓눌러 압박하는 죄채감에 거칠고 피페하다 못해 궁색해져 가는 내 심성을 다시금 가다듬고 마음 가누려는 제 심정을, 당신 하나만큼은 알아 줄 것만 같아 느슨해지는 내 육신을 곧게 세워 움직이렵니다.

제천역을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온 열차가 도심의 외곽으로 이어지는 곡각지점을 날렵하게 휘어돌아 방금 철교 위를 통과하는가 봅니다.

두 갈래로 나눠어진 선로의 레일과 그 위를 달리는 열차의 묵직한 쇠바퀴가, 서로 맞닿아 울려 퍼져나오는 파열음이, 그저 얼핏 듣기엔 시끄럽게 들리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듣노라면 "두두둥,두두둥,두두둥,두두둥" 마치 규칙적으로 양철 북을 두드리는 듯 합니다.
울려 퍼져나는 진동음이 규칙적으로 꽤나 리드미컬하게 들려옵니다.
또 한편으로는 당신을 서둘러 보고 싶어 조갈난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간절한 울림의 소리처럼 들려옵니다.

바로 내 옆자리엔 칠순(七旬)을 넘긴 듯한 할머니 한 분이, 세월의 잔상(殘像)이 짙게 묻어난 주름진 얼굴에 두 눈을 지긋이 감으시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시려나 봅니다.
그런 모습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우묵골에 영면(永眠)하신, 내 어머님의 얼굴이 흔들리는 차창에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울먹여지도록 불그레한 노을빛이 서편 하늘가에 짙게 물무렵이면, 이른 아침 보리밥으로 배를 채우시고 흰 광목저고리에 검정 몸빼 바지를 입고 읍내로 젓갈을 팔러 가신 어머니가 돌아오시길 눈 빠져라 기다렸던, 고향 마을 동구 밖에 우뚝 솟아있는 벼랑바위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온 종일 동네 아이들과 뛰어 놀다, 서편 들녁 끄트머리 지평선에 자주빛 노을이 기울고 텃마당에 어둑발이 찾아드는 저녁 무렵이 되면 무척 배가 고파 참기 어려웠습니다.

때로 심힌 경우엔 입 안에 침이 바짝 말라 꺼끌하고 코에선 짙은 흙 냄새가 무척이나 많이 났습니다.

지금처럼 간식으로 먹거리가 풍족하질 못했던 어둡던 시절이라 금새 밥을 먹었는데도 굴렁쇠를 굴리며 동네 몇 바퀴만 돌고 나면 다시금 배가 고파 걸신이 들린 것처럼 허덕이였습니다.

그런 탓에 어머니를 그토록 기다렸건만 무슨 사정있는지? 더디 올 때에는 기다리는 초조함에 지쳐 벼랑바위를 뒤덮을 정도로 만개한 누런색 능소화 꽃을 애끗게 따서 개울물에 버리고 시무룩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답니다.

"위미 참말루 시방 배고파서 디져번지긋는디, 도대체 엄니는 뭣땀시 싸게싸게 안 오는지 알다가도 모르긋네, 오기만 혀봐 내가 빙신처럼 가만히 있는가"

그리고 어쩌다 동네 사는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과 의기투합(?)하여, 주인 몰래 남에 밭에 들어가 여름에는 개구리 참외와 덜 익은 수박을, 그리고 가을엔 고구마와 콩을 서리 하며 그리 짖궂게 놀았답니다

금강 갯벌에도 어김없이 어둠살이 스며들면, 갈대 숲에 잠자리를 정하려는 때때새들의 울음소리가, 그리 시끄럽게 들렸답니다.
그리고 집게 발가락이 불그레한 달랑게가 숨이 가뿐지 햐안 버큼을 입가에 잔뜩 부풀리며, 저도 집을 찾아 바쁜 걸음질을 하였답니다.

그렇게 지나간 날에 있었던 일들이, 이제 오늘의 기억 속에 끊임없이 떠 오르는가 봅니다.

어김없는 사계(四季)의 변화는 한기(寒氣)가 더욱 시려오는 겨울임에, 마른 가지만을 남긴 나목(裸木)들의 처연한 모습만을 매정하게 남겨 놓았나 봅니다.

그래도 나목은, 비록 멀지라도 다음 해 봄을 뉘몰래 배태(胚胎)시켜 놓고, 느그적느그적 더디 올려고 하는 봄을 숨 죽여 기다리고 있는 듯하게 보입니다.

불어오는 저 바람결에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여 내려 당신 곁에 다가 설 생각을 하니, 마냥 철없이 나뒹구는 아이처럼 마음 가득 설레여만 옵니다

굽이굽이 가파른 고갯길을 열차가 힘들게 오르고 내려 내눈에 펼쳐지는 높고 낮은 산릉선의 모습들이, 숱하게 많은 오묘함을 자아내어 저절로 탄성이 터져나옵니다.

철길 좌,우로 빼곡히 들어찬 키가 큰 전나무의 울창한 숲은 아름답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와, 이곳이 중부 내륙 들녘으로 부터 조금은 멀리 떨어진 동부 산악지역임을 실감케 합니다

바로 지금 당신이 내 옆자리에서 몸을 비집고 엉덩이를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밖의 풍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큰 소리로 떠들썩하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착각을 이르킵니다.

지금 내가 당신께 냉정하게 묻습니다.

" 나도 당신처럼 옷깃을 여미고 숱한 나날 쓰라린 가슴 부등켜 안고 그리 살았노라"고 힘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이 또한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 부질 없어 어색하기만한 연모(戀慕)일런지요?

기억에 가물가물 거리는 어느 화창키만 했던 봄날, 저 능선 아래 오롯하게 보이는 고갯길처럼 구부러진 희방계곡을제 살붙이처럼 살뜰하게 끼고도는 오솔길을, 우리 두사람 어께를 가까히 대고 느린 걸음으로 한참을 걸었었지요.

그 때 당신은 극구 말리는 내 의견을 끝내 꺽고 감당키 어렵게 차오르는 가뿐 숨을 약물에 겨우 의존하며 어렵사리 산에 올랐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당신과의 마지막 산행이자, 서로가 서로를 영원한 추억 속에 각인시키는 이별여행이였나 봅니다.

길섶 덤불 숲에 몸을 숨겨 마냥 수줍게 피어난 하늘빛을 빼닮은 제비꽃 꽃봉오리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받쳐 들고, 연한 볼에 부비던 당신의 순박한 얼굴 모습도 지나간 추억 속에 놓칠 수 없어 다시금 오롯하게 보여만 집니다.

이리 시름하는 내모습이 그도 애처러웠나 며칠 전에 내렸던 눈은 거의 다 녹았지만, 산 정상에 내렸던 잔설이 쌓여 이룬 설경(雪景)만은 깨끗한 순백의 자태로 머뮬러 있답니다. 그 옆자리에 다소곳하게 자릴잡은 낮은 능선은 눈이 녹아 거무스레하게 보여 상대적으로 비교가 됩니다.

산이 높아 열차는 가파른 산자락을 휘어 감는 듯 기어올라 달려가느라, 열차의 운행 속도가 자꾸 뒤쳐지는 것만 같아, 그리워 서두는 마음이 기차보다 앞을 섭니다.

가슴 가득 담겨진 깊은 숨을 몇 차례 내어 쉰 후, 왼쪽 차창 밖으로 잽싸게 스쳐 지나는 단양 팔경 중에 하나인 도담삼봉(島潭三峯)을 거쳐 지나고 있습니다.
이윽고 재빠르게 터널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빠져 나옵니다.
이제서야 단양역에 열차가 허리춤을 풀고 잠시 숨을 가누려 멈춰섰나 봅니다.

그래서 비록 낯이 설어 익숙치 못한 곳이지만 차창 밖으로 다 보이는 역사의 모습을, 대충이라도 흛어보려고 차창으로 시산을 모아봅니다.

그런데 한참 전 오송역을 지날 무렵, 그저 당신이 그리운 마음에 흔들리는 차창에 입김을 불어 넣어, 나름 정성껏 써 놓았던 당신의 이름 석자 "진도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조차 보이질 않아 무척이나 서운하네요.

맨 처음 당신과 내가 만났을 때는 물론이려니와, 어느덧 시간이 흘러 서로가 서로를 대하기에 별다른 허물이 없을 때에도 당신은 당신의 집, 그 중에서도 당신의 아버지에 대한 그 후에 이야기는 마치 중요한 금기사항처럼 절대로 입밖에 꺼내려 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듣기에 어떠할련지는 몰라도 제 기분은 그리 좋지는 않았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 대한 모든 것은 이미 자연스레(?) 노출된지 이미 오래전 일이라 더는 숨길 것이 없는 데, 어찌하여 당신은 함구무언을 하는가? 하고 늘 궁금하게 생각 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약간 서운하기도 했었지요.

어느 여름 날 조금은 늦은 밤에 가게(유흥업소)에 다녀 온다고 인사를 하고 나갔던 당신이, 갑자기 일을 않고 집으로 돌아왔었지요.
그래서 처음엔 어디 몸이 않 좋아서 그러나 싶어 걱정을 했는데,그 때 당신이 조금은 당황하면서도 애를 써 참르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하였지요.

" 오빠야 으이하면 좋노, 아빠가 죽었데이 "

그리 말을 끝내기 무섭게 오열을 터트리며 당신은 이내 말을 이어 갔지요.

"내는 참말로 내는 아빠한테 효도랑걸 한번도 해본 적이 읍는기라, 그래서 더 불쌍타 아니가 그랑께 으이하면 좋겠노 오빠야 퍼득 말 좀 해보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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