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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9 조회 : 2,233




세상에 빛과 어둠이 공존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둠이 밤을 지켜냈기에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침을 맞이 할 수 있었다.
그런 밝음이 머물러 주는 낮 동안 모든 이들이 각자의 삶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 같았다.

그런 밝음이 늦저녘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어둠살에 순순히 자리를 비켜 주고 서서히 하루를 마감하였다.
그랬기에 종일토록 나와 함께 하였던 해가 노을이 질 무렵까지 존재함을 새삼스럽게 깨닯았다.
그리 준엄한 자연의 순리를 이제부터는 나 스스로 몸에 익히고 배워야만 했다.

더불어 내 어머니의 도움에서 서서히 벗어나야만 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나자신이 너무 어려서 세상일의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식견이 짧아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 아버지의 처절한 죽음에 대하여 수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았다. 답은 딱 한가지 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려하면 그저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억울함에 치가 떨렸다.

비단 이런 통한에 고통이 나 하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참으로 전대미문의 일이 바로 이 땅에서 비일비재 하게 일어난 것이다.

광분한 공산괴뢰도당들의 추악한 손에 억울하게 숨을 거둔 동족들의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이 땅 구석구석을 처참하게 피로 물들여 놓고 말았다.
그러니 이 또한 경천동지할 일이 아니냐는 말이다.

이에 하늘을 저주하고 땅을 치며 울부짖는 남은 유가족들의 피눈물 속에 놈들에 대한 저주와 원망은 잉걸불보다 더 뜨겁게 이글거렸다.

실로 어처구니없이 비통하게 목숨을 잃고만 내 아버지의 죽음을 되뇌다 보면 뼈 마디마디가 시려왔다.
그런 아픔이 도래되기 때문에 나 또한 애절한 유가족의 대열에서 예외일 수가 없었다.

그로써 공산주의자들이 자행한 천인공노할 악행은 우리 민족사에서 결코 지울 수조차 없는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시간은 폭염이 절정을 이루는 칠월의 한 가운데 시점을 무심하게 지나고 있었다.

너무도 어렸기에 그지없이 미력했던 내 영혼은 저 하늘을 향해 가슴으로 통곡하였다.
그리고 뇌리 속에 영원토록 기억해 두려 절규하였다.

살아오는 동안 아침햇살이 실로 성그럽기 그지없게만 느껴졌었다.
그러나 아려오는 나에 아픔을 알고도 모르는 듯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생각에 밉쌀스런 마음이 들어 찬연한 빛마저도 점점 아둔하게 보였다.

더불어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참혹한 현실을 하늘의 계시라고 체념하며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가혹하기만 했었다.

그래도 한줄기 선명한 햇살은 짙푸른 나뭇잎사귀 위에서 해말갛게 빛을 발하여 내가 흘렸던 눈물방울처럼 번득이고 있었다.
짙푸르름 속에 번득이고 있는 찬란하기 그지없는 햇살이 있기에 마음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들메 마을의 모든 시련과 상처의 아픔을 달래주길 진심으로 바랬다.
그와 더불어 마을 사람들이 다시금 발돋움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허나 이 모두가 나만의 착각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저 하늘은 내가 살아왔던 지난 세월동안 내 눈에 그리도 탐스럽고 성스럽게만 보였다.
그렇게 내 뇌리 속에 각인되었던 하늘마저도 그리 무심하게만 보였다.
내 마음 속에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었던 그 아늑했던 느낌들을 이미 지워버린 것 같았다.

내 삶의 밑둥치가 있는 그대로 뿌리째 뽑혔기 때문 이었다.
그러했기에 앞으로 전개될 질곡어린 내 삶 자체가 지극히 험난할 것이라고 어렴푸시 예감 할 수 있었다.

그 시점에서 이미 내 삶의 버팀목인 한축이 무너져 내려 진로를 잃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그저 맥없이 버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정신적으로 다른 방도를 강구할 길이 절대적으로 요원하기만 했었다.

그런 혼란스러움이 내 작은 몸뚱이를 엄습하여 차오르는 억울함을 어찌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로 인해 심성이 뒤틀려오면 아픔이 자성보다 앞서 도저히 분노를 조절할 수 없었다.
그럴 적마다 이글거리는 증오의 굴레 속에 급진적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 내 아버지의 혼백도 살아오셨던 만큼이나 정이 들었던 집과 영원한 이별을 하여야만 할 시간이 도래되었음을 알고 계실 것 같았다.

정녕 밉기만 하고 서운해지는 하늘이었다.
하지만 멀고도 먼 구만리 저승길인 사후세계의 원행을 떠나시는 내 아버지의 억울하신 넋을 그나마 위로해드려는 듯 맑은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어쩔 도리없어 떠나고 보내야하는 구곡간장 찢어지는 내 슬픔을 하늘도 아는 것 같았다.
더없이 높고 그 어느 한곳이라도 빈틈없이 마냥 시퍼렇기만 하였다.

그런 애련한 어린 내 속내를 그 또한 헤아려주려는 듯 때아니게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애통함으로 가득 채워져 지칠대로 지친 내 속살을 파고들어 가볍사리 어루 만져주었다.
그리고 집 안마당에 가득차 는적거리는 서름들까지 싹쓸어 몰고갈 것처럼 가벼운 흙먼지를 이르키며 스쳐지나갔다.

그리고는 감사하다는 내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재빨리 등을 돌려 싸리울타리 너머로 사라져 갔다.
그리 쉽게 떠나는 저 바람이 조금은 얄미웠다.

아침 햇살이 바지런하게 푸릇푸릇한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틈 사이에 장독대에 올곧게 내리쬐어 크고 작은 장독들의 등 언저리가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더할 나위없이 번득거렸다.

그리고 장독대 옆에 묵묵하게 서 있는 빨간 맨드라미에 맺혀있던 해맑기 그지없는 아침 이슬방울을 영롱한 빛으로 발하게 하였다.
이제 맨드라미는 내세에서 영원히 떠나시는 내 아버지에게 그런 참한 모습이라도 보여드려 배웅하려는 것같았다.

투명한 백옥 같은 이슬방울과 더불어 맨드라미의 붉은빛이 가일층 확연하게 보였다.
어쩜 맨드라미의 붉은 빛이 내가 두 눈으로 그리도 많이 흘러내렸던 혈루처럼 보였다.
그러니 마음은 더없이 황량하다 못해 애탄키만 하였다.

온 집안을 휘둘러보아도 어느 한곳인들 내 아버지의 혼과 숨결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잠시나마 누그러졌던 감정이 다시금 미동을 하여 슬퍼지려는 마음을 더욱 부추겼다.

마루 벽에 호젓하게 걸려있는 내 아버지의 땀과 때가 찌든 일복에서 자잘한 정감이 소록소록 돋아났다.
그 옷은 안마당에 들붙어 있는 작달막한 텃밭의 배추밭에서 나무젓가락으로 배춧잎에 붙어 있던 벌레를 잡아 주실 때 늘 입으셨던 옷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녹이 슨 통조림 깡통을 들고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잡아 주시는 초록색 벌레의 꿈틀거림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마지못해 꺼림찍하게 통 안에 담았다.
그럴 적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내 모습이 머뜩하지 않게 보였나 거침없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내. 야, 이넘아! 이깟 걸 가지구 그리 맴이 약해분지먼 으찌 이 흠난헌 세상을 살어갈려구 그러냐, 자고루 부랄 두 쪽 달린 사내새끼는 무신 일이 닥쳐두 무조껀 용감혀야 되는 벱이여, 알긋냐?”

그쯤에 어머니께서는 부엌에서 아침밥을 지으셨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내 모습이 그리도 정겹게만 보여 흡족하셨는지 얼굴을 반쯤 내어미시고 생긋하게 웃어 주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밭일을 마치시고 마당으로 나오셨다. 세월이 흐른 만큼 닳아 몽땅하게 된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깨끗하게 쓸으셨다.
그럴라치면 내 어머니께서는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시며 싫지 않은 눈빛으로 느긋하게 말씀하셨다.

“웨매.당신이 오널은 무신일이래유? 생전 안 쓸던 마당을 다 쓸고 그런데유?”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겸연쩍게 웃으시며 잠시 일손을 멈추시고 대꾸하셨다.

“참말루 당신두 꼭 그렇게 말혀야 쓰갔는감. 나사 바깥일이 바뻐서 그렇지, 이깟거 마당 쓰는게 뭐 그리 심든 거라구 않하긋소. 글구 이거시라두 혀야 임자헌티 눈칫밥 안 먹는 거 아닌감?”

어찌 보면 어느 집 부부라도 어렵지 않게 나눌 수 있는 정에 겨운 말들이었다.
서로 더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가볍게 스치는 몸에서도 서로의 체온을 느껴가며 더욱 오래도록 함께 머물러 살아가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마저도 다시 되풀이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놈들은 그런 작은 포근한 정마저 끝내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토방 댓돌 위에는 아버지께서 집에 계실 떼 늘 신으셨던 하얀 고무신 한 켤레의 색이 아침 햇살에 더욱 깔끔하게 보였다.
지난 날 어머니께서는 그 하얀 고무신을 볏짚 속껍질을 추려 모아 만드신 수세미로 사랑이 쌓인 부부의 정만큼 알뜰하게 닦으셨다.
그리고 햇볕이 잘 드는 부엌 옆 흙벽에 기대 놓아 하루 내 잘 마르게 하셨다.

동네 바깥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울타리 싸리문 옆에는 여법 잘 자라난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봄이 오면 다들 화사한 꽃을 앞다퉈 피어 호들갑을 떨었지만 대추나무는 그리 뭇사람들 눈에 띄지도 못하는 하얀 작은 꽃을 피워 묵묵히 내 집을 지켜주었다.

그 대추나무는 내 아버지께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던 이듬해 봄에 나라는 생명체가 태어났음을 기억하려고 하셨다.
그런 마음에 논산 읍내 장터에서 구해오셔 싸리문 옆에 직접 심어 놓으신 나무였다.

그래서 평소에도 우리집 가족들에게 남다른 정을 받으며 자랐다.

이제 그 대추나무가 봄의 생동감이 듬뿍 서린 수분을 잔뜩 받아 살이 잘 차오른 알알들이 가지마다 수두룩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여름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찾아온 한여름 폭염에 등을 양껏 태워 군데군데 보기 좋을 만큼 누릇누릇해지고 있었다.

뒷마당 구석 화장실 옆에는 무화과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서 있었다.

해마다 늦가을에는 무화과 열매가 익을대로 익어 입을 쩍 벌리면 열매를 따 먹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었다.
그러나 키가 작아 손이 닿지 않는 깨금발로 바동거리는 내 모습을 언제 보셨는지 얼른 다가오셨다.
그런 내모습이 그도 안쓰러운지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셨다.
그리고 무화과 열매를 잘 익은 것으로 골라 따주셨던 생각이 떠올라 목이 울컥 메어왔다.

흙담장에 바짝 달아내어 손수 만들어 놓으신 닭장 안에는 몸집이 커다란 수탉이 저보다 작은 다른 수탉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 작은 수탉이 저와 늘상 붙어다니던 암탉 옆으로 은근슬쩍 다가서려고 하였다.
그러자 사정없이 달라들어 목에 잔뜩 힘을 주어 목둘레의 털을 바싹 치켜세워 날개를 푸덕였다.
그리 위력을 과시하면서 작은 수탉의 빨간 벼슬과 머리 부위를 사정없이 입으로 쪼아대자 작은 수탉이 고개를 바짝 숙이고 닭장 구석으로 서둘러 도망을 치고 있었다.

아마도 자기 영역을 철저히 지키려고 사투를 버린 것처럼 보였다.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고나면 머리맡에 있는 옷들을 주섬주섬 입고 닭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볏짚 둥우리에서 따스한 알을 꺼내는 재미가 솔솔 했었다.

그런데 알을 꺼내려 하면 알을 품고 있던 암탉이 나를 마치 도둑놈을 대하듯이 목둘레의 털들을 가뜩 치켜세워 뾰족한 부리로 내 손등을 마구 조아대었다.

그럴라치면 나는 손등에 아픔을 핑계 삼아 누룽지 한 움큼이라도 얻으려는 마음에 눈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데 우는 목소리를 하여 엄살을 부리며 부엌으로 얼른 들어갔다.
그리고 간장 냄새가 찌든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어머니께서는 밥 반찬으로 계란찜도 해주셨다.
어쩌다 아버지께서 면소재지에서 친구 분들과 어울리시어 술이라도 많이 드시고 오시는 날엔 얼굴을 잔뜩 찌푸르시고 부엌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무엇이라 알 듯 모를 듯하게 궁시렁거리시면서도 그래도 아버지가 싫지는 않으셨던 것 같았다.
달걀을 풀어넣고 부엌칼 밑둥으로 마늘을 곱게 빻아 넣으시고 쪽파도 초총하게 설어 넣어 술국을 꼭 끓어 드렸다.

하루하루를 거치면서 알들이 많이 모아지면 볏짚으로 보기 좋게 묶어 계란 꾸러미를 만들어 읍내 오일장날에 내다 팔으셨다.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눈깔사탕을 사가지고 시오리 길을 멀다 않으시고 걸어오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닭장 위에는 토끼집을 지어주셔 토끼 두 마리를 키웠다.
그 중에서 온몸에 하얀 털이 난 것이 수놈이었고, 잿빛이었던 놈이 암놈이었다.

지난봄 장날에 어머니께서 손바닥만 한 토끼 새끼 두 마리를 사다주셨다.
볏짚으로 엮어 만들어주신 볏짚 망태기를 둘러메고 들녘에 나가 민들레 잎과 자운영의 새순을, 그리고 아카시아 연한 잎들을 따다 밥을 주었다.

털 색갈이 온통 하얀 토끼가 빨간 두 눈을 똘똘하게 뜨고 아주 작은 코로 숨을 내쉬면서 풀을 바쁘게 먹느라 벌름거리는 모습이 퍽이나 재미있게 보였다.

그렇게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키워 그동안 잘 자라주어 여법 토끼다운 면모를 보여 키워 온 보람을 은연중에 느끼며 살았다.
그러나 그즈음에 이런 참혹함을 당했으니 잔잔한 그 어린 동심마저 놈들은 여지없이 빼앗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마루 기둥에 박아 놓은 못에는 아버지께서 들녘 논배미를 둘러보시려 나가실 때 쓰시고 다니셨던 보릿짚 모자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그 보릿짚 모자는 어머니께서 내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네 아낙네들과 바람 길이 트이는 방앗간 대문 옆 길목에 멍석을 깔아 놓고 더위를 피해 시나브로 손수 보릿짚을 엮어 만든 모자였다.

내 어머니께서 솜씨가 그다지 없는 탓에 보릿짚 모자가 썩 멋져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내 아버지께서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앞 들녘에 나가실 때에는 꼭 머리에 눌러 쓰고 다니셨다.

이제는 보릿짚 모자도 주인을 잃은 채 덩그러니 걸려 있어 그리도 외롭다 못해 초라하게 보여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토끼집 앞면에 철사 줄을 엮어 토끼집에 작달막한 문까지 달아 예쁘게 만들어 주셨다.그와 함께 토끼풀을 뜯으러갈 때 어깨에 둘러메고 가는 망태기도 볏짚을 엮어 내 몸에 아주 잘 맞게 만들어 주셨다.

이렇듯이 내 집 안에 있어 눈에 보이는 크고 작은 것들이 모두 다 내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있었다.
그러니 무엇이라 형언키 어려운 짙은 감정이 가슴속에서부터 가득 차올라 주체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동쪽머리 소릿재에 의연하게 떠오른 해가 너른 황산벌을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리고 은진면에 있는 크고 작은 부락들을 골고루 들려 선한 빛으로 아우러 주었다.

그런 다음 채운들녘 동남쪽의 용꽃마을 주조장의 빨간지붕을 넌지시 바라 본 뒤에 이내 다시금 내달렸다.
그리고 샛터 마을 방앗간 지붕 위에서 숨을 잠시 돌리고 있었다.

얼마 후 야트막한 언덕 위에 덩그러니 머물고 있는 새하얀 구름 한 덩이를 어루만져주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북쪽에서 남쪽 끄트머리까지 멀고도 길게 이어진 호남선 철길을 사뿐하게 건너 마을 중천에 자리를 잡은 채 꼿꼿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요 며칠 전처럼 전형적인 여름 날씨가 더더욱 실감나게 펼쳐질 것만 같았다.
아침나절부터 무더위로 맹위를 떨칠 것만 같아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을 뒤흔들었다.

어찌되었던 간에 내 아버지께서 이제 곧 마을을 영원히 떠나실 것 같았다.
그래도 한 우물을 먹고 함께 기뻐할 줄 알고 함께 슬퍼했던 사람들 중에 담너머라도 얼굴을 보여줄 것이라 믿었다.
이미 피난을 간 사람들은 동네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뭐라 할말이 없었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 피난을 가지 못해 마을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중에 몇몇 분들은 뒤늦게라도 찾아 주시리라 믿었다.

그러나 어젯밤부터 부엌일을 도와 주셨던 몇몇 동네 아주머니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도 얼굴 한번 비치질 않했다.
그 때문에 극도로 서운함을 자아내고 말았다.

그래도 날이 밝으면 입소문이나 동네 분들이 아주 적게라도 찾아주실 것이라고 기대도 했었다.

이른 아침부터 등메산에 오르셔 내 아버지께서 영면하실 수 있는 유택을 마련해 주시려는 어른들이 더없이 고맙기만 하였다.
지난밤에 잠도 편히 이루시지 못한 귀분이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 분이신 응수 어른님과 남들이 푼수때기라고 흉을 보는 순태 아저씨까지 참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먼 훗날 내가 더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분들의 은혜를 꼭 갚겠노라 마음에 다짐을 나름대로 결연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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