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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01 조회 : 1,768




텃밭 귀퉁이에는 해 묵은 감나무 한 그루가 턱 버텨 서 있었다. 그런데 그 감나무 품종이 여느 감나무들과는 달랐다. 씨가 많은 산감이라 그런지 크기도 다른 감나무의 감들에 비해 작았고 한 입 베어 물으면 입 안으로 번져나는 떨떠름한 맛이 아주 강했다.
그런 탓인지 어쩌다 산을 오르내리는 동네 사람들조차도 감나무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해마다 그 산감을 깎아 줄에 꿰어 매달아 잘 말려 먹기에 달달한 곶감을 만드셨다.
그리고 때가 되어 가을이 깊어가니 가지마다 주렁주렁 풍성하게 매달린 감들이 군데군데 붉은 홍시로 변해 먹음직스럽게 보여 자못 식탐을 불러일으켰다.
그 감나무 가지에 오늘따라 아침부터 까치가 요란스레 울어댔다. 그래서 발길 뜸한 산자락 밑 외딴집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기려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참으로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지 우연스럽게 우리 집으로 찾아온 예쁜 아기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런 우리의 만남을 축복하는 듯 늦가을 따스한 아침 햇살이 쪽마루에 살갑게 비치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 설움 중에 제일 큰 설움이 배고픈 설움이라고 내 주위의 모든 어른들은 누누이 말을 했다.
어머니께서 비좁은 개다리소반 위에 아주머니 몫으로 밥 한 그릇을 더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아주머니에게 밥을 같이 먹자는 뜻으로 어렵게 손짓을 하셨다. 그러자 머리를 조아리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 아주머니는 배가 무척이나 고프셨는지 허겁지겁 밥을 드셨다.
그리 정처 없는 유랑생활을 하다 보니 제때에 먹을 것도 챙기지 못해 무척이나 허기진 듯했다. 어머니가 밥그릇에 담긴 밥을 두서너 숟갈 더 덜어 주시자 그제야 잔뜩 굳어있던 얼굴에 조금씩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구, 오갈 데 읍시 돌아 댕기다보니 옷두 제대루 못 빨아 입어나 냄새가 어지간히 나네 그려, 어른이사 그렇다 치더라두 저 어린거시 뭔 놈에 죄가 있다구 에휴, 기나저나 어찌된 영문인지 좀 물어볼래두 당최 말이 통해야 물어 보던지 말던지 허지, 참 답답허네.”

천에 때가 묻어 번득거리고 냄새가 나는 포대기에 둘러싸여 그래도 좋다고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며 옹알거려 노는 아기 모습이 그리도 천진난만 하게 보여 귀엽기만 했다. 필시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는 지레 짐작을 했지만 그런 남루한 두 모녀의 모습에 밥을 먹는 동안에도 가슴이 찡했다.
그래도 그런 내 얼굴 표정이 아주머니에게 부담을 줄까 싶은 노파심이 들었다. 그래서 편한 기분으로 식사를 하시라고 가급적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머니께서 식사가 끝난 밥상을 들고 방문을 나서 부엌으로 가려하셨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마음속으로 미안함을 느끼셨는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가려하자 어머니께서 한사코 말리셨다.

설거지를 마치신 어머니께서 앞치마로 손을 닦으시며 방안으로 들어오셨다. 어머니도 아주머니의 때 묻은 옷에서 나는 냄새가 지독했는지 우선 옷이라도 한 벌 갈아입히시려는지 반다지에서 흰 광목 저고리와 검정색 몸뻬 바지를 꺼내셨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으로 마루를 가리키시며 얼른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주머니를 향해 방바닥에 놓인 옷을 가리키시며 갈아입으라고 하셨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미안했던지 몇 차례 망설이셨다. 거듭 재촉하시는 어머니의 호의에 못 이기는 척하시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들고 갈아입으려 하셨다.

허름한 포대기에 쌓여 마루에 누워 있던 아기를 어머니가 품안에 보듬고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말씀하셨다.

“그나저나 이 어린 걸 데리구 또 어디루 갈는지, 걱정이 태산이네. 세상 사람들 다 내 맘만 같으면 좋으련만. 저 어린걸 데리구 한뎃잠 자야 될 판인디 에이구, 무서리라두 내리면 추워서 어쩔려구.”

나를 바라보시여 말씀을 하시여 옆에 있던 내가 불쑥 말을 꺼내고 말았다.

“엄마, 아기랑 아줌니 갈디두 없는디, 몇 일이라두 우리 집에 있다 가면 좋것는디, 그러면 안 되지?”

간곡한 마음에 어머니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자 어머니께서 다시 말씀을 하셨다.

“사정이사 엄청나게 딱허지만 어쩐다냐? 방두 비좁구 우리 두 식구 먹는 것두 빠듯헌디. 그렇다구 밖으루 몰인정허게 마냥 내보낼 수두 없구, 참 난감허다.”
“엄니, 나두 아부지 없이 살아가는디 애기두 아부지가 없으닌께 더 불쌍해서 그러닌게 내가 밥 조금 덜 먹을 틴께, 몇 일이라두 있게 해 줘, 나 아기랑 놀게, 응? 엄마.”
“야는 뜨건 불에 콩 볶아 먹듯이 재촉을 하구 난리랴! 쪼매 기달려 봐, 어디 갈디라두 있나 일단 물어보게. 허긴 말이 안 통하니 어떻게 물어본다냐? 글은 알란가 모르것네, 일단 상민아 너 종이떼기 하구 연필 좀 줘 봐라. 글씨라두 써서 물어볼랑께.”

옷을 갈아입으시고 나오신 아주머니는 한결 모습이 정갈하게 보였다. 기분이 좋으신지 얼굴에 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고맙다고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어머니가 종이 위에 ‘어디서 왔냐?’라고 조금 큼직하게 글로 쓰셨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한참을 망설이다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연필을 받아 쥐셨다. 그리고 종이 위에 서툰 글씨로 ‘싸리재’라고 쓰셨다.

어머니와 나는 아주머니께서 글씨를 알아보시기에 필담(筆談)으로 의사소통이 될 것 같아 무척 반가웠다.
나는 ‘싸리재’라는 곳이 잘 모르는 낯선 곳이라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도 그곳이 생소하게 느껴지는지 나에게 말씀을 하셨다.

“여기서 한 육십 리 길 넘게 떨어진 딘데, 양촌을 거쳐 벌곡을 훨씬 지나 운주 가는 깊은 산골짝 어디라는디, 나두 한번두 가 본적 없는 디라 잘은 몰러 그나저나 참 멀리서두 왔네 그려, 저 어린 걸 데리구.”

그리고 어머니가 다시 종이 위에 ‘어디로 갈 거냐?’고 글로 다시 쓰셨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연필을 마루에 내려놓으시고 다시금 굳은 얼굴에 힘없이 머리를 가로저어 갈 곳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어머니가 다시 종이를 앞으로 끌어당기셔 ‘아기 아빠는?’ 이라고 글로 쓰시자 역시 머리를 흔들며 슬픈 표정의 얼굴로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은지 서둘러 아기를 둘러업으셨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 고맙다고 몇 번을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며 문밖으로 나서려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그런 모습이 못내 안쓰러운지 몸뻬 아랫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돈을 조금 꺼내시어 주려 하셨다. 그러나 아주머니께서는 어머니께서 건네주시려는 돈을 끝내 받지 않으셨다.
아주머니께서는 입장이 거북하고 난처한지 서둘러 사립문 밖으로 나가셨다.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는 아주머니와 아기가 텃밭 길로 내려서는 모습을 잠시 동안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 일로 늦으신 어머니가 서둘러 밭길로 걸어가시며 못내 안쓰러우신 듯 몇 번 머리를 돌리셔 뒤를 돌아보셨다.

마루 한쪽에 놓인 책보자기를 얼른 들고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 차 아주머니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또다시 정처 없이 길을 나서는 두 모녀를 아울러 주려는 듯이 아침 햇살은 아주머니 어깨와 아기의 얼굴에 함초롬히 내리비추었다.

뒤뚱거리는 도랑 돌다리를 건너 학교로 가면서도 마음이 언짢았다. 어머니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철길 건널목을 넘어 다른 곳으로 가질 않으시고 마을로 향하는 아주머니 모습이 보여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아기의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그맘때쯤 아랫녘으로 내달려가는 곳간 화물열차가 마을 앞을 스쳐 지나고 있었다. 검은 연기 자락을 해맑은 하늘가에 쓸쓸하게 흩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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