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대는 가을이 초겨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나 밤사이 무서리가 내렸다. 간만에 목을 축인 산자락의 소나무들이 더욱 또렷또렷하게 보였다. 솔잎 끝마다 구슬처럼 매달린 물방울에 아침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아 현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떠나려는 가을 끝자락을 떨치지 못하는 아쉬움인양 산바람은 애꿎게 갈참나무 목덜미만 암팡지게 붙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자드락길 조릿대 숲 사이로 비추는 햇살 따라 멧새들도 부지런히 길을 트려했다. 잎사귀를 죄다 떨어뜨려 쭈뼛쭈뼛하게 가지만 남긴 집목나무들이 거무스름하게 보여 을씨년스러웠다. 빨갛게 익어 곧 터질 듯 홍시 두어 개가 매달린 늙은 감나무 가지 위에서 까막까치가 스쳐 지나는 계절을 저도 아는 듯 꼬릴 촐랑이며 그리 울어댔다.
텅 빈 들녘을 처연하게 부는 가을바람만이 홀로 지키고 있었다. 하늘가 저 멀리 지평선이 가마아득하게 보여 더할 나위 없이 쓸쓸했다. 늘 그 자리에 자리매김하던 한 덩이 끈끈한 그리움이 또 다른 색깔의 그리움을 낳았다. 아마도 그 것은 먼저 세상을 떠난 내 아버지와 얼굴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 내 누이에 대한 애틋한 연민이었다. 그런 그리움들이 마음 속 깊숙이 파들어 좀처럼 끝자락을 놓지 않으려 했다.
동네 어귀 둥구나무 밑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동네 사람들이 꽤나 모여들어 어수선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석별의 정이 아쉬운 양 고향을 떠나 이사를 가는 귀남이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놓을 줄 몰랐다. 더불어 정희누나와 종금이누나 그리고 살구나무 집 순이누나도 기순이누나와 함께 눈시울을 적셔 헤어짐에 목이 메여왔는지 더는 말을 잇지 못하며 울먹이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들 모두가 삶의 갈퀴에 몸뚱이가 다 뜯겨져 나갔어도 잘 버텨냈다. 그렇게 모지락스럽게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한 숱한 아픈 기억들이 뇌리 속에서 그리 쉽사리 지워질 수는 없었다. 그런 아픔이 기순이 누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이제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새로운 삶의 그루터기를 찾아 서글피 떠나야만 했다. 슬픈 속내를 아는지 살이 토실하게 오른 암소도 ‘음머’ 하며 소리 내어 울었다.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사는 형편이 뻔하다보니 그리 단출하기만 했다. 그저 깔고 덮는 이불 보따리 하나에 식구들 옷가지가 들어 있는 고리짝 하나가 얼른 눈에 띨 정도였다. 그리고 검정 가마솥 크고 작은 것 두 개와 조금은 일그러진 물주전자하고 함지박 두 개에 밥그릇과 반찬그릇을 담은 부엌 살림살이가 고작이었다. 달구지에 올라탄 귀남이는 주현이 어머니가 그리 보내기 마음 아파하시며 건네주신 들기름 한 병을 깨질 새라 두 손으로 꼭 붙들고 있었다.
잠시 후, 기순이 누나네 이삿짐을 실은 소달구지가 삐거덕삐거덕 소릴 내며 움직였다. 달구지 위에 실은 살림살이들이 서로 부딪혀 덜러덩덜러덩 소리를 내며 나무다리를 건너 큰길로 나섰다.
동네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모르고 그 자리에 선 채 점점 멀어져 가는 소달구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소달구지 위에 타고 가는 기남이 어머니도 같이 손을 흔들며 그렇게 떠나고 있었다.
“에이구, 저렇게 떠나는 거 보니 맴이 영 편칠 못허네 그려, 같이 있을 땐 참말루 몰랐는디 막상 저렇게 떠나가니 보기에 영 그렇구먼.”
동네에서 귀남이어머니와 제일 가깝게 지내던 종금이 누나네 어머니가 말씀을 하셨다. 그러자 옆에 서 계시던 술 좋아하시는 키가 유난스레 큰 병수네 아버지가 말을 거들었다.
“왜 아니래유, 그러니께 인지상정이라구 안 하던감유, 암튼 어딜가든 잘들 살어야 헐건디. 그 해 징글맞게 심한 가뭄에 먹을 것 그리 없어 뒷산에 송피(松皮)벗겨다 먹구 그것두 먹을거라구 논빼미 돌아 댕기면서 독사풀 훌터다 먹던 징그런 고생 고생 원 없이 다했는디, 그여이 떠나구 마네, 참 딱허기두 허지.”
그렇게 동네 어른들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동네 고샅길을 막 빠져나온 기성이형이 동네 어른들에게 물었다.
“아니, 그나저나 어디루 이사를 가는거래유, 저는 이사가는거 오늘 아침에사 알었네유, 진즉에 알었으면 짐 싸는거라도 도와드렸을 건디.”
기성이형이 안타까운 듯이 말을 끝내자 둥구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던 올 가실에 장가를 간다고 하는 기수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잘은 몰르겄는디, 그 뭐시냐 사진 일 배운다는 성균이가 있는, 훈련소 앞 동네 까치말인가루 간다는거 같던디, 기순이가 그간 몇차례 왔다 갔다 하면서 벌써 집두 사 놓은 모양이더라구, 뭐, 군인들 헌티 하숙을 친다나 어쩐다나 하던디.”
입에 궐연을 한 대 무시고 연신 연기를 품어내시던 삼식이 아버지가 말을 이으셨다.
“그래두, 어쩌니저쩌니해두 기순이가 큰 욕 보았구먼 그려, 객지 나가 그리 모을라면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했을껀디, 갸가 어릴적부터 야물딱지기는 했지, 뭐시냐 즈그 애비가 그리만 않 되었어두 이렇게 까지는 않 됐을 껀디, 참 아까운 애지, 아까운 애여.”
삼식이 아버지가 안타까운 얼굴로 말씀을 마치려 하시자 종금이 누나 옆에 서 계시던 옥순이 어머니가 말을 바로 받으셨다.
“아, 애 얼굴이사, 나무랄데 없지유, 이목구비 뚜렷하지, 그만한 인물이면 읍내 어디다 내놔두 꿀릴 것 하나두 없지유, 흠이라면 팔자 잘못 타고 태어나서 못 산다는거 뿐이지, 그 인물이면 총각들 줄 나래비 설 건디 에휴.”
소달구지가 가는 큰길 쪽만 뻘쭘뻘쭘 쳐다보고 있던 종구네 집에 머슴살이 하는 용만이가 불쑥 나서더니 퉁명스럽게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디 그 코쟁이인가? 하구는 왜? 같이 안 간데유, 인제 안 살기루 허구 헤어졌남유?”
술을 좀 좋아하시는 게 흠이지 사람 좋기로 소문 난 병수네 아버지가 시크름한 표정으로 용만이 형 말을 이내 되받아치셨다.
“야, 이 사람아! 그걸 시방 말이라구 허는가?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소리 한다고 그 말을 여기서 허야 쓰겄냐구? 참 말 허는 꼬락서니 허구는.”
무심코 말을 내뱉어놓고는 멈칫거리며 주위 사람들 눈치를 살피던 용만이 형이 조금은 서운하다는 듯이 병수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참말루 나는 다른 뜻은 없구만유, 뭐시냐 하두 궁금혀서 그냥 물어본 건디, 듣는 사람 서운하게 그리 막 쏘아붙인데유”
그러자 바윗돌에 앉아 담배를 피우시던 삼식이 아버지가 서둘러 담배를 땅바닥에 비벼 끄신 후 한 말씀 덧붙이셨다.
“어, 용만이 자네랑은 좀 가만히 있어 보라구, 가만이 있으면 되것구먼, 뭘 그리 끈적끈적거리게 말을 계속하는지 모르것구먼, 참 사람허구는.”
동네 사람들의 말들을 잠자코 듣고 계시던 동네 온갖 궂은일 하시길 좋아하시는 동근이 아버지가 분위기가 자꾸만 소란스러워지자 마무리를 하시려는 듯 말씀을 하셨다.
“이왕지사, 말들이 나왔으니 나두 말 한자리 혀볼라네, 귀남이 즈그 애비허구 나허구 불알친구라서 허는 말이 아니라 따지구 보면 저렇게 떠나는 거 다 우리들이 맨들은 거라구, 그저 어여 떠나라구 등 떠다 밀은거나 진배없지 뭐 왜냐하면, 동네 사람들치구 누구 하나라두 그집 흉 안 본 사람들 있는감, 어디 있으면 시방 내 앞에 나와 보라구, 내가 얼굴을 함 볼랑께 다들 허기 좋다구 달린 입으로 너나 없이 떠들어 댔으니 어찌, 동네 하늘 아래 같이 머릴 두고 살것는감, 참말루 이런 경우들 생각혀서 너나없이 입들 조심허여 될 꺼여 떠난 담에 아무리 안쓰럽게 생각만 하면 뭐 할 꺼여 다 쓰잘데기 없는 짓이지.”
이말 저말을 곁에서 한참동안 다 듣고 계시던 이장님이 앞으로 나서 동네 분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동네 분들 동근이 아버지께서 하신 말이 절대루 틀린 말이 아니닌게, 앞으로는 서로가 감싸주면서 화목한 동네를 만들어 가기루 합시다. 그리구 오늘 신작로 길 부역하는거 다들 알지유? 그러닌께 어여덜 아침 식사 끝내고 요기루 다덜 모이시유.”
그 시절 비포장도로인 신작로 정비를 면사무소에서 각 마을별로 할당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싸리나무 삼태기 하고 괭이를 들고 신작로에 자갈을 고루 펼치는 부역에 집집마다 한 사람씩 동원이 되었다.
이장님의 말씀이 끝나시고 귀남이네 이삿짐을 싣고 가는 소달구지가 화산리 앞의 철길 건널목을 넘어섰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향하여 고샅길로 들어섰다.
남의 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려 그러는지 아니면 정희누나 일 때문에 동네 사람들 앞에 나타나기가 영 껄끄러워 그랬는지 그 자리가 다 끝날 때까지도 종구 아버지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병수 아버지에게 한소리 들은 용만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윗돌에 혼자 앉아 있었다. 유난스레 큰 코를 매만지며 소달구지가 사라져간 산모퉁이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