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소재지 화산리 마을 하늘에 먹구름이 나지막하게 몰려들어 날씨가 침울했다. 마을 한복판에 오뚝하게 서 있는 교회의 십자가가 조금은 흐릿하게 보였다. 평일과 달리 인적 드문 주막집 정류장엔 거무스레한 탱자나무 울타리만이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을 쓸쓸하게 맞이하는 듯했다. 눅눅한 날씨 탓인지 초가지붕 끝자락에 어렵사리 머무는 듯싶던 햇살이 이내 흐트러지고 있었다. 마을 남쪽 끝머리에 자릴 잡은 기수 아저씨네 집에서는 잔칫집답게 대낮부터 오고가는 동네 사람들의 발걸음이 꽤나 분주해 보였다.
울타리 너머로 마을을 바라보니 언젠가 둥구나무 아래서 마을 노인들이 나누시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가을철 수확을 해 거둬들인 곡식들을 쌓아 놓고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고 하셨다. 그러나 내 귓가에는 그런 말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그분들의 말씀에 전혀 공감할 수 없어 마음은 더욱 허전키만 했다.
물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버텨내기에는 먹을거리가 귀한 이른 봄 춘궁기(春窮期])보다는 오곡백과가 풍성한 추수기(秋收期)인 가을이 그나마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풍요는 땅을 갖고 사는 그들만의 소유인 듯싶었다. 그나마 힘든 들녘 일을 할 수 있는 노동력이 있는 집들은 대지주의 눈치를 살피며 소작농이라도 일궈 겨우 먹는 양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가장을 잃어버린 몇몇 집들은 노동력마저 없어 소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런 탓에 비교적 손이 쉬운 남의 집 궂은일이나 거들며 겨우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렇게 얻은 품삯으로 받은 곡식이나 몇 푼의 돈으로 겨우 연명을 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렇다보니 절대 빈곤을 면치 못하는 집들에게 가을 수확의 풍요는 그저 그림에 떡이었다.
그런 아픔은 우리 집인들 예외는 아니었다. 전쟁의 혼란 속에 병고에 시달리시다 세상을 뜨신 외조부께서 겨우 남겨주신 논 서마지기가 있었다. 그것을 남의 빚에 쪼들리다 못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면소재지 점방 염씨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어머니께서 비린내 나는 젓갈동이라도 머리에 이고 행상을 하지 않고는 삶을 연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탓에 가을이 주는 풍요는 그저 상징적인 의미였다.
내 친구 주현이 아버지는 종구네한테 논을 빌려 소작농을 지으며 살았다. 그러나 그 소작농마져 별스런 진전이 없자 서울로 올라가 남의 집 굴뚝 청소 일을 하셨다. 그리고 동네 우물가에 사는 인식이 큰형도 영택이네 논을 빌려 소작을 하다 그만두고 두 해 전에 대전으로 트럭 조수 일이라도 하려고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살구나무 집 용순이 누나도 찌든 가난을 면해 보려고 군산 고무신 공장에 일을 하러 직공으로 들어갔다. 또한 가난으로 읍내 중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사진 일을 배우러 남의집살이하러 가버린 성균이 형도 가슴속에 메여오는 한은 남았을 것 같았다. 그런 저런 연유로 동네를 영원히 떠날 수밖에 없었던 기순이 누나네 집도 아픔이 무척이나 컸을 것 같았다. 더불어 어릴 적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하셔 마을 사람들의 배려로 방앗간 발동기를 돌리시며 홀로 사시는 순태 아저씨도 딱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처절한 가난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고 하나둘씩 고향을 벗어나 생소한 도시로 향했다. 그런 아픔의 변화는 비단 우리 마을 뿐만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삶의 꿈을 꾸며 검은 연기를 뿜고 내달리는 호남선 열차에 몸을 실어 잠시인들 고향을 떠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숨통이 잔뜩 조여 오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자 마지막 가슴 아린 몸부림이었다.
그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배우고 있는 공부만을 게을리 하지 않는 길 뿐이었다. 그래서 이 다음을 이어가야 할 다음 세대로서 지금과 같은 삶에 악순환의 고리를 기필코 끊어야 될 것만 같았다.
그와 더불어 아주머니의 등에 업혀 이집 저집 문전걸식을 하며 살았던 저 어린 아기도 그런 슬픈 기억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마음 절절하게 해보았다.
그런 속내 아울러주려는지 둥구나무 우듬지에 머물던 구름 사이로 한동안 몸 숨기고 있던 해가 얼굴 한쪽을 내밀었다. 그리고 햇빛이 알맞을 만큼 얼굴에 와 닿아 다스하게 비추었다.
뒷산 마루 소나무 위에 쉬어 놀던 솔개 한 마리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위로 드높이 날아 방죽가 미루나무 머리 위쯤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아마도 뒤늦게 먹이 사냥에 나선 듯했다.
동네 앞 나무다리 위에는 마을 공터에서 땜질 일을 하시던 노인 분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동네에 잔치가 있어 모두들 들뜬 마음에 일거리가 별로 신통치 못한 것 같았다. 그런 탓에 일찍부터 짐을 서둘러 챙기신 듯 지게를 지고 오시는 모습이 괜스레 쓸쓸해 보였다. 그 뒤를 따라 동네 삼식이네 집에서 술을 더 드셨는지 조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머리카락 장수 아저씨도 고샅길을 벗어나고 있었다.
마을 앞 들녘 깊은 골 바탕엔 청둥오리들이 떼를 지어 내려앉았다. 논바닥에 떨어진 낱알을 찾는지 울어대는 소리가 들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발치까지 들려왔다.
저녁 무렵이면 휴가를 나오는 군인들을 실고 전라도 광주로 내려가는 군용여객 열차가 마을 앞을 스치듯이 지났다. 그리고 기차는 채운역을 향해 마을 옆 철교 위를 세차게 달려갔다.
둥구나무 밑에서는 용꽃마을 신부댁에 전해 줄 함을 지고 가려는가? 동근이 아버지와 경수아저씨가 떠나실 채비를 서두시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 성격이 좀 자상하신 기수 아저씨 어머니가 사돈댁에 신경이 많이 쓰이시는지 두 분들 앞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말씀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냇둑에는 하루 종일 매어놓았던 염소를 끌고 가시는 순아네 할아버지 모습도 보였다.
읍내 봉화재 마루에 머무는 구름자락이 노을빛에 불그레하게 물들려했다. 산 밑이라 그런지 어둠살이 마을보다 먼저 찾아드는 작은 초가집 지붕 굴뚝에도 검은 연기가 나지막하게 피어올랐다.
저녁 예배시간을 알리는 면소재지 교회의 종소리가 마을을 거쳐 들녘 너머로 잔잔하게 들려왔다. 종일토록 다랭이밭에 총총걸음 하던 까마귀들도 잠자리를 찾아 어디론가 떼를 지어 ‘까악 까악 까악’ 울면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울타리 싸리나무 가지 위에 놀던 참새들도 지붕 섶 밑으로 날아들려는지 가지에서 가지 사이로 쉴 새 없이 몸을 촐싹거렸다.
그때쯤이면 강경 읍내를 출발한 색 바랜 저녁 마지막 버스가 눈앞에 보였다. 울퉁불퉁한 신작로를 달려 부연 먼지 속에 주막집 정류장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니 마중을 나가려고 아주머니와 함께 어스름한 밭길을 걸어 마른 억새 가득 찬 둔덕을 넘었다. 시린 초저녁달이 창백한 얼굴로 홀로 떠 있는 뒷산 벼랑골로부터 불어오는 늦저녁 바람이 제법 싸늘하기만 했다. 더불어 짙게 묻어오는 골 깊은 황토 냄새가 코끝에 물씬 와 닿았다.
하나둘씩 앞 다퉈 전등불빛이 켜지는 화산리 동네 앞 건널목을 건너오시는 어머니를 기다리느라 벼랑바위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싸늘한 밤바람에 몸 움츠린 샛별 하나가 초췌하게 왕 소나무 우듬지에 보일락 말락 하게 머물고 있었다. 흐릿한 달빛 아래 면소재지 나들목 앞에 어머니의 모습이 어둑하게 보였다.
머리에 이고 계시던 젓갈동이의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으시고 앞을 서 걸어가셨고 뒤를 따라가던 내가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렸다.
“엄니 오늘 낮에 기수 아저씨 낼 장가간다구 삼식이네 집에서 돼지 잡었는디 구경 좀 헐려구 한께 경수 아저씨랑 기성이 성이 하두 쎄게 몰아붙여서 제대루 보지두 못하구 그냥 돌아왔어.”
앞을 서 가시던 어머니가 몸을 뒤로 돌리시고 나를 바라보시며 말을 이으셨다.
“맞네, 그러구 보닌게 낼이 그 총각 장가가는 날이네 그냥 있을 수는 없구 들여다보구 부조라두 좀 혀야 되닌께 욕 안 먹을 만큼은 넣어야 될 껀디 을마를 넣어야 헌다냐? 서둘러 밥 먹구 그기부터 가 봐야 쓰긋네.”
구름 사이 어렵사리 비추는 흐릿한 달빛에 내보이는 어둑한 밭길을 걸어가시면서 걱정스러우신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다.
“그건 그렇구, 날씨는 하루하루가 달르게 추워지는디 올 시한 넘길려면 아무리 작게 잡어두 쌀 두가마니허구 밥에다가 섞어 먹을 요량허구 고구마 한 가마니랑 그리구 애기두 있으닌게 군불이라두 따습게 때구 살라면 볏짚두 나소 있어야 쓸 건디 큰 일이다”
어머니께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래 몸뻬바지 주머니에서 종이에 싼 노란 고무로 된 젖꼭지를 꺼내어 등 뒤에 업힌 아기의 입에 물려주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아이구 내 새끼, 얼뚱애기 우리새끼 에미랑 잘 놀았어?”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부대껴 ‘사악 사악’ 작은 소리를 내는 억새풀이 긴 목을 쳐들고 있는 둔덕 너머 언덕배기에 올랐다. 그러자 언제 알아차리고 달려왔는지 검둥이가 어머니 주위를 정신없이 뱅글뱅글 돌면서 꼬리를 마구 흔들어 반겨 주었다.
석유 등잔불 가물거리는 불빛 흐린 방 안에서 개다리소반을 가운데 놓고 서로 머릴 마주하고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 밥숟가락을 드시던 어머니가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시며 겉저고리 속에서 하얀 문종이 한 장을 꺼내시며 말씀하셨다.
“저 어린것두 모진 세상 살아 보겠다구 태어 났는디, 이름 석자는 지어 줘야 쓸 것 같아 내가 잘 아는 스님에게 부탁을 혀서 이름을 받아 왔는디 아주 좋은 이름이란다. 우리 애기가 너무 착하고 순하닌게 순할 순(順)자에 앞으로 세상 살아가면서 크게 덕을 쌓고 좋은 일 많이 허구 살으라구, 클 덕(德)자를 써서 순덕이라구 이름을 지었다. 그라닌께 앞으루 우리 애기는 순덕이다.”
어머니는 방바닥에 누워 고무젖꼭지를 물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시며 웃고 계셨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내가 어머니에게 말을 했다.
“엄니 이름이 뭐 그래 순덕이가 뭐야 차라리 쑥떡이라구 혀.그게 훨씬 낫겠다.”
내가 하는 말에 어머니도 따라서 웃고 말았다. 그리고 아주머니도 ‘순덕’ 이라는 이름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시며 마음에 들으셨는지 덩달아 함께 웃으셨다. 방에 누워 있던 아기도 입에 젖꼭지를 문 채 두 손을 흔들며 옹알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