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로 얻어진 평온함이 내 작은 초가집에도 충만하게 깃들었다. 해맑고 다스한 햇살에 봉창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버름한 벽 틈새로 새어나오는 밥 짓는 연기가 이젠 몸에 밸대로 배어 친숙하게 받아들여졌다.
잠에서 덜 깬 듯싶은데 어디선가 ‘또로로록, 또로로록, 또로로록’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떠 보았다. 아주머니께서 방 아랫목에 놓여 있는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고 있었다. 순덕이는 나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난 듯싶었다. 젖꼭지를 입에 물고 두 팔을 가볍게 움직여 방 천장을 바라보며 천진난만하게 옹알거리고 있었다.
도랑가에 세수를 하러 가려고 마당을 내려서며 얼핏 뒷간 옆자리 두엄자리를 바라보니 희끔희끔하게 서릿발이 뻗쳐 있었다. 울타리에 엮어놓은 마른 싸리나무 가지마다 희뿌옇게 달라붙어 있는 서리가 참으로 을씨년스러웠다. 아침햇살이 성글지 못해 쉽사리 녹아내릴 것 같지 않아 추위가 한걸음 바짝 다가서는 것 같았다.
개울가에 세수를 하려고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오는 텃밭을 내려섰다. 밭에는 연초록빛의 꽉 찬 속살을 탐스레 드러내보이는 배추들이 알차게 줄지어 서 있었다. 싸늘한 날씨에 한참을 멈짓거리다 도랑물에 손을 담그니 손이 제법 시려왔다. 끝 모르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시냇물도 더욱 맑게 보여 차갑게만 느껴졌다
그저 담담하게 맞이하는 계절의 변화 같지만 직접 피부로 느껴지는 한기가 초겨울이 입목에 다가왔음을 실감나게 했다.
학교에 가려고 조금은 서두는 듯싶게 아침밥을 먹고 사립문을 나섰다. 제멋대로 구부러진 밭둑 사잇길을 걸어 개울에 띄엄띄엄 놓인 징검다리를 건넜다. 까칠하게 불어오는 들녘 바람이 차갑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는 철로길 건널목에서 ‘팅클팅클, 리틀스타’ 노래를 더듬더듬 부르며 옥순이를 기다렸다.
대여섯 번 정도 노래를 반복해서 불렀을 즈음. 옥순이가 오목조목하게 생긴 작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지으며 내 앞에 다가섰다. 칸나 꽃잎처럼 생긴 검붉은 헝겊 천 조각을 머리에 묶어 매어 달아 느실거리는 긴 머리가 한결 돋보였다.
“상민아 이거 석류인디. 쪼끔 신맛은 나두 먹을 만은 허닌게 먹어 봐.”
옥순이가 책보자기에 작은 손을 비스듬히 넣었다. 그리고 붉다 못해 거무스레하게 색 바랜 석류 알 하나를 내 손에 건네주었다. 원래 신맛에 그리 숙달되지 못한 나는 건네주는 석류를 먹지 않고 아랫바지 주머니 속에 슬쩍 넣었다. 그러자 옥순이가 작은 눈망울로 나를 빤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왜? 먹기 싫으냐? 나는 그래두 널 생각허구 일부러 한 개 더 가지구 온 건디.”
조금은 서운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미안스런 마음이 들어 얼버무리듯 말을 하고 말았다.
“아니여, 그게 아니구. 우리 엄니가 신 걸 무지허게 좋아해서 우리 엄마한티 줄라구.”
그러자 그 때서야 내 말을 믿는 듯 마는 듯싶은 표정으로 옆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옥순이의 그런 모습에 조금은 멋쩍기에 냇둑을 바라보았다.
“야, 옥순아! 날씨가 싸늘한 거 보닌께 증말루 겨울이 올라구 그러는 거 같다, 그 많던 잠자리들두 다 어디루 가번지구, 뚝에 그렇게 많이 폈던 코스모스가 한 개두 안 보인다.”
옥순이가 손에 들고 가는 책보자기가 무거운지 작은 키에 한쪽 어깨가 기우는 모습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야, 지금이 어느 땐데 잠자리를 들먹거리구 있냐. 참, 그나저나 너 코스모스 꽃잎이 몇 개인줄이나 알어?”
아래로 내려오는 책보자기를 위로 추켜올리면서 말을 하여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음, 잘 모르것는디. 한 여섯 개 정두 되냐?”
그러자 옥순이가 틀렸다는 듯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들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니가 그런 걸 자세히 보기나 했것냐? 그냥 건성으로 보구 다녔지. 코스모스는 꽃잎이 여덟 개야, 알았냐?”
으쓱대는 얼굴로 웃고 있었고 나도 함께 따라서 피씩 웃고 말았다.
오목하게 자리 잡은 비석골 앞 비알진 밭에서 두 내외분이 둔덕 너머 다랑이 밭에 볏짚으로 배추 포기를 야무지게 묶어주고 있었다. 높다란 측백나무 학교 울타리 너머로 운동장에서 저마다 떠들어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니 여자 아이들이 양지 바른쪽에서 서로 편을 갈라 팔짝팔짝 뛰면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창고에서는 소사 일 하시는 양씨 아저씨가 각 학급 교실마다 난로를 나눠주고 계셨다.
교실에서는 면소재지에 사시는 함석 일 하시는 아저씨가 한쪽 귀에 연필을 꽂으시고 연통을 손질해 주셨다. 관리가 잘못되어 찌그러진 함석 연통을 바로잡아 펴고 철사 줄로 연통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모두들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을 생각에 좋아하며 마루바닥이 차거워 걸상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날씨가 싸늘하다고 유리창문들을 모두 닿아 놓았다. 그래서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도시락 반찬냄새가 조금 심하게 펴져나는 점심시간이 끝났다.
오후 첫 번째 수업시간이 되자 아침나절보다는 유리 창가에 약하게라도 햇살이 따스하게 비쳤다. 그늘진 복도 쪽으로 자리를 잡은 아이들은 교실의 찬기와 마룻바닥 틈새에서 올라오는 찬바람이 무척이나 싫었다. 그래서 발바닥이 닿는 지점에 책보자기를 접어 발바닥을 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시던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야, 이놈들아, 이 정도 날씨에 뭐가 춥다고들 난리들이냐, 이보다 몇 배나 훨씬 추운 영하의 날씨에 전방 휴전선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국군 아저씨들도 있는데.”
혀를 끌끌 차시며 알이 두꺼운 검정 안경테를 눈 위로 추켜올리고 교단에 오르셨다.
“오늘 사회 시간에는 대원군의 섭정과 쇄국정책에 대하여 공부를 하기로 한다. 지금 배우는 것은 오늘 시험에 반영하여 시험 성적 결과를 보고나서 자리배치를 할 것인데, 성적이 좋은 사람 순서부터 난로 옆에 앉게 할 것이니 절대로 졸지 말고 내 설명을 잘 듣기 바란다.”
칠판 위에 ‘척화비’, ‘병인양요’, ‘신미양요’ 라고 쓰시고 나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대원군은 조선의 왕족 혈통으로 본명은 ‘이하응’이다,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안동 김씨 세력들이 자기네 쪽에 반대하는 왕족들을 제거하려 하자, 이를 미리 알아차린 이하응은 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온갖 기이한 행동을 일부러 하여 온갖 수모와 멸시를 받으며 울분을 삭이고 살았다. 그러던 중에 조선 제25대 임금인 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대를 이을 자식이 없어 왕족인 자기의 둘째 아들인 ‘이명복’이 대를 잇게 되었다. 이명복은 12살에 어린 나이로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으로 즉위를 했다. 어린 나이 탓에 경험이 부족하여 정치를 할 수 없게 되자 궁중의 어른격인 ‘조대비’가 여자의 몸으로 수렴청정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라의 중차대한 일은 고종의 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앞에 나섰다. 정권을 잡은 대원군은 실추된 왕권을 튼튼하게 다지고 나라를 굳건하게 지키려고 개혁적인 정치를 과감하게 시행하여 오랫동안 세도정치를 하였던 안동 김씨 세력들을 완전히 제거했다. 그리고 당파 싸움을 부채질했던 서원과 유생들에 대하여 대대적인 정비를 강행했다. 또한 ‘서양 오랑캐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고 싸우려 하지 않는 자는 오랑캐를 돕는 일’이라는 내용의 글귀를 담은 ‘척화비’를 전국 곳곳에 세워 더욱 쇄국정책을 강화했다. 실추된 왕권과 대내외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높이 세우려고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소실된 옛 경복궁 터에 경복궁을 복원시키기 위한 공사를 강행했다. 그로 인해 위용을 당당하게 나타내는 경복궁이 다시 세워진 것이다.”
힘들여 설명하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말을 멈추시고 교실 맨 끝줄의 성태를 가리키셨다.
“오성태! 저놈 좀 봐라, 세상 편하게 졸고 있네. 너 어젯밤에 잠 안 자고 뭐했는데? 야 이 놈아. 학교에 공부하러 왔지 잠자려고 왔냐? 암튼 큰일이다. 그래 가지고 내년에 어떻게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겠니?”
성태 앞에 다가서 성태의 한쪽 귀를 잡고 두어 차례 흔드신 후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천주교 교인들과 신부들을 탄압한 '대원군'이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조선에 몰래 잠입한 프랑스 신부들을 사형시켰다. 그것을 문제 삼아 프랑스 해군 제독 로즈가 군함을 이끌고 와서 강화도를 점령하고 전투를 벌였지만, 조선 군사에게 크게 패하여 물러갔다. 이것을 ‘병인양요’라고 한다. 그러던 중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에 정박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통상을 요구하면서 대포로 화력을 과시하여 민가를 습격하여 온갖 만행을 부렸다. 그러자 성난 백성들이 셔먼호에 불을 질러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을 모두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후 얼마쯤 지나 또다시 로저스 제독이 군함을 거느리고 남양만으로 들어왔다. 그로 인해 강화의 조선 수비대와 양측 간에 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졌다. 그 전쟁에서 심한 타격을 받은 미국측이 많은 피해를 입고 퇴각하고 말았다. 이것을 ‘신미양요’라고 한다. 그 뒤로 오랜 세월동안 섭정을 하여 쇄국정책을 감행하던 대원군이, 고종 10년 1월에 섭정에서 완전히 물러나 고종이 직접 정치를 도맡게 되었다. 대원군은 모든 정권을 내놓고 정치 일선에서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결국 대원군의 이런 쇄국 정책은 우리나라가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는 길을 가로막아 나라의 발전을 크게 뒤지게 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교단 위에 서 계시던 선생님이 오랫동안의 장황한 설명을 마치셨다. 교무실에서 수업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학교 운동장으로 울려 퍼졌다.
느릿걸음 하는 오후 해는 측백나무 울타리에 천연덕스럽게 걸터앉아 교실 쪽을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불어오는 찬바람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던 누릇누릇하게 색 바랜 플라타너스 잎들이 몸을 일으키려 버스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