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버릇처럼 겪는 일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난스레 배가 더 고팠다. 허기를 달래며 주위가 점점 어둑어둑해져 더욱 고적하게 보이는 학교 뒷산 언덕배기에 올라섰다. 산자락을 훑고 내려온 차가운 밤바람이 눅눅한 흙냄새를 물씬 풍기며 얼굴을 싸하게 스쳐 지났다.
언덕 아래로 펼쳐지는 서쪽 읍내의 야경이 아주 멀찍하게 내다보였다. 유독 눈에 띠는 읍내의 야경은 마치 개똥벌레 꼬리 끝처럼 가느스름한 불빛들이 영롱하게 줄지어 띠를 이뤘다. 그리고 읍네로 이어진 신작로엔 산짐승의 눈알처럼 불그무레 불을 밝힌 차량들이 여유롭게 거리를 유지하여 서로 비켜 가고 있었다.
으슬으슬 불어오는 산바람에 땅바닥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렸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꺼림칙하게 음울한 상엿집 앞에 닿았다. 지레 겁을 잔뜩 먹은 옥순이는 무서운 만큼이나 내 곁에 바싹 달라붙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무섭기는 나도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 가급적이면 빠른 걸음으로 상엿집을 비켜나고 싶었다. 그리라도 해야만 온몸에 엄습해오는 두려움으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벗어날 것만 같았다.
밤하늘엔 작은 샛별하나가 처연하게 떠 있고 그 주위를 일그러진 조각달이 시린 얼굴로 오도카니 머물고 있었다. 어스름하게 바라보이는 동네의 기수 아저씨네 집에는 신혼 잔치를 치르느라 마당에 켜놓은 석유등 불들이 어둠속에 가물가물하게 보였다. 잔칫집답게 흥을 한껏 돋우려는지 장구소리가 떠들썩한 노랫소리와 한데 어울려 멀리까지 들려왔다.
“야, 옥순아. 너 우리 애기 이름진 거 몰르지? 뭐라구 진 줄 아냐? 너 절대루 웃지 말어라.글쌔 울 엄니가 어떤 스님헌티 부탁을 해 가지구 ‘순덕’이라구 이름을 져 왔는디, 내가 우리 엄니한티 차라리 쑥떡이라구 부르자 했더니, 울 엄마허구 아줌니가 배꼽을 잡고 을매나 웃었는지 몰러.”
“참, 상민아. 어제저녁에 니네 엄니가 기수 아저씨네 집에 부조하러 왔다가 우리 집에 잠깐 들렀는디. 니네 엄니가 우리 엄니한티 돈 주고 쌀 한 가마니 샀어. 아마 낼 밤에는 니네 집에 기성이 오빠가 쌀 한 가마니 지게에 지구 갈 꺼야. 그런디 니가 밥을 많이 먹어서 그러는지. 니네 엄니가 시한을 날라면 쌀을 더 사야 헌다구 하면서 걱정을 무지허게 하더라.”
그리고는 나를 놀려대는 듯싶은 얼굴로 실실 웃으며 한두 걸음 앞서 걸어갔다.
화산리 산모롱이를 휘어지는 듯 벗어나 남쪽으로 향하는 밤 열차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다. 기차의 앞머리에 대낮처럼 불빛을 훤하게 밝혀 ‘타다당 타다당, 타다당 타다당’ 요란스레 소리를 남겼다.
그런데 건널목 너머에는 옥순이 어머니의 모습만 보이고 어머니 모습은 보이질 않아 조금은 이상했다. 옥순이 어머니께서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옥순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나를 향해 말씀하셨다.
“상민아, 올 시한 넘길라구 양식 구하러 댕기면서 애 쓰는 니 엄니 생각혀서 참말루 효도혀야 된다. 니 엄니만 보면 안쓰러 죽것다,그리구 니 엄니는 고구마 사는 거 땜시 기성이 엄니 만나러 갔다.그래서 그냥 나 혼자서 니들 마중 나왔으닌게, 얼른 집에다 책 보따리 갖다 놓구 잔칫집으로 오거라 가서 국시라두 한 그릇씩 먹게, 니 엄니두 그리루 올꺼닌께.”
겨울을 날 양식을 구하려고 동분서주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자꾸만 몸과 마음이 무거워져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둔덕 너머 흙먼지 푸석이는 밭둑길을 가로질러 졸졸졸 간지럽게 물소리가 나는 도랑가에 닿았다. 어느 사이 도랑까지 달려 나온 검둥이가 징검다리 디딤돌 앞에서 머뭇거려 검둥이 머릴 쓰다듬어 주고 함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주머니에게 동네 끝머리 집 불빛 밝은 쪽을 가리키며 말과 손짓으로 설명을 해드렸다. 악착같이 뒤를 따라오려는 검둥이를 몇 차례 소리를 쳐서 겨우 떼어놓았다. 아주머니 혼자만 집에 남겨 놓고 가려니 그도 마음이 쓰였다.
고고한 달빛에 은파가 번득이는 방죽가를 지나 동네 고샅길로 접어들어 기수 아저씨네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부엌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웃음이 그치질 않게 이야기를 나누시며 부엌일을 하시고 옥순이 어머니와 어머니 얼굴도 보였다. 안방에서는 기현이 할아버지가 진식이 할아버지와 함께 기남이 형 아버지 하고 술잔을 주고받으시며 이야기를 나누셨다.
흥겨운 잔칫날이라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데 종구네 아버지와 종구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정희누나 문제로 동네 사람들 이목이 부담스러웠는지 아니면 눈에 거슬리는 기성이 형이 마당에서 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마당 한쪽 잔칫상에는 동네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국수와 돼지고기 그리고 떡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는 동네 이장님이 우현이 아버지와 함께 음식을 드시고 계셨다. 잔칫날 분위기를 띄우려고 가지고 온 축음기를 만지고 계신 영택이 아버지를 동근이 아버지께서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인제는 저 축음기가 왔으닌게 장구는 그만들 치구, 영택이 애비, 그 머시냐, 좀 빨르구 신바람 나는 걸루 한 곡조 틀어 보더라구.”
축음기에 바늘을 끼우고 계시던 영택이 아버지가 동근이 아버지 말씀에 대답을 하셨다.
“네, 성님 안 그래두 시방 뭘 틀어 볼까 허구 축음기판을 골르구 있는 중이구먼유.”
동그란 철판 위에 돌가루를 곱게 빻아 만들었다는 묵직한 축음기판을 올려놓으셨다. 바늘을 끼운 구부러진 쇠뭉치를 판 가장자리 홈에 올려놓자 빠르고 흥겨운 유행가 노랫소리가 온 집안으로 울려 퍼졌다. 동네 아이들은 그 소리가 마냥 신기한 듯 축음기 옆으로 몰려들었다.
흐릿한 석유 등불이 걸려있는 나무기둥 밑에 앉아 계시던 병수 아버지와 경수 아저씨가 자리를 잡고 앉아 말씀을 나누셨다.
“그나저나 용꽃 동네 사람들이 좀 별나서 자기네 동네 처녀 데리구 간다구 기수가 애를 먹을 것 같은디 어쩔랑가 모르것네 그려.”
“허긴 그 동네가 우리들 어렸을 적에 짚불놀이 하면서 동네 패싸움을 혀 봐두 유독스럽게 텃세가 좀 쎈 동네라서 어짤란가 모르것네유, 그래서 어저께 밤에 지가 함 들일 때두 신랑 생각을 혀서 별루 애 안 먹이구 수월하게 해 줬는디.”
두 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던 용만이 형이 납작한 접시 위에 먹음직스럽게 얇게 썰어 놓은 돼지고기를 한 점 집어 막장에 꾹 찍어 커다란 입에 넣고 씹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뭐시나 지 놈들두 사람인디. 설마헌들 사람을 죽이기야 할라구유, 그리구 이쁜 새각씨랑 꿀맛같은 첫날밤 치루면서 그 정두 고생은 각오혀야지유, 각시만 얻을 수 있으면 지는 백번이라두 허긋네유.”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기성이 형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용만이 형을 바라보았다.
“뭐시라구유? 성님이 박달나무 방망이루 발바닥에 매를 백대를 맞는다구유. 어림 반 푼 어치두 없는 소리지. 성님은유, 이불 호청 발목에다가 묶어서 어깨에 바싹 걸치기만 혀두 나 죽는다구 엄살 부릴꺼구먼유.”
“참 그나저나 일만 잘 풀리며는, 기성이 자네는 동네 장가드닌게 새신랑 다룰 매 걱정은 안혀두 쓰것구먼 그려.”
그런 말을 듣고 있기에 거북했는지 기성이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바람을 쏘이려 나갔다.
자발스럽게 불어오는 밤바람에 기둥에 걸어 놓은 등불들이 바람결 따라 자꾸만 힘없이 거물거렸다. 그리고 텃밭 옆 상수리나무 밑자락엔 밤바람에 나뒹구는 마른 나뭇잎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평소 술을 별로 즐겨 하시지 않는 동근이 아버지가 영택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웃으면서 말을 건네셨다.
“그나저나 영택이 에비는 새장가를 들었으면 동네에다가 국시라두 내야지 그냥 입 싹 딱구 말라는 기여.”
축음기 옆에 앉아 계시던 영택이 아버지가 쑥스러우신 듯 한차례 헛기침을 하셨다.
“국시는 무신 국시랍니까, 뭐 내놓구 자랑할 일이라구, 집에 커나가는 애들 눈두 있구 혀서, 그저 간단허게 다수성례(酌水成禮)나 올리구 살려구 그러네유.”
경수 아저씨가 영택이 아버지의 처해진 입장을 이해하시는 것처럼 말을 거드셨다.
“허긴 성님 말두 맞는 말인 것 같네유. 애들이 나이가 어리다면 몰라두, 이제 알 것 다 알 나이인께.”
언제나 앞으로 불쑥 나서 실없는 말을 곧잘 하는 용만이 형이 또다시 푼수를 떨었다.
“아이구 이놈의 팔자는 언제나 짝을 한번 만나 볼려나? 그런 날이 한번이라두 와 봤으면 증말루 좋것네유. 아무리 혀봐두 않되닌께 이참에 어디 큰디루 가서 한번 딩굴어 봐야 쓸 것 같네유.”
삼식이 아버지가 염색한 군복 겉주머니에서 궐연 한 개비를 꺼내 물으시며 용만이 형를 향해 말씀하셨다.
“방귀가 잦으면 뭐시 나온다구. 아래께 상민이네 집 지붕 일할 때두 그런 말허구 그러더니, 이사람 자꾸 간다는 소리허는거 보닌께 증말루 동네를 떠날 모양이네 그려.”
술상 가장자리에 앉아 계시던 몸이 불편하신 방앗간 일하시는 순태 아저씨가 역시 용만이 형처럼 촐싹거리시며 말씀을 하셨다.
“어이. 용만이 어디 갈디는 정해 놨는감. 좋은 디 있으면 나두 함께 데리구 가게나 나두 이참에 홀아비 신세 좀 면해 볼 랑께.”
말씀을 마치신 순태 아저씨가 껄껄대시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러자 자리에서 술을 들고 계시던 병수 아버지가 홍어무침을 젓가락으로 집으시면서 말씀을 하셨다.
“암튼 좋은 절기네 그려. 인제 쪼매만 있으면 이 겨울 가기 전에는 종금이두 시집을 갈 꺼구, 다들 순번대루 제짝들 찾아가는구먼 그려.”
옆에 있는 용만이가 마음에 걸렸는지 용만이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셨다. 그러자 용만이 형이 종금이 누나 이야기에 별로 기분이 안 좋은 듯 얼굴을 붉히며 유난스레 큼직한 코끝을 매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아, 인제는유. 지 앞에서 종금이 얘길랑은 허지들 마시유. 다 잊어버렸으닌께유. 참말루 이런 소리허는거 듣기 싫어서라두 후딱 떠날라구 허네유.”
용만이 형이 영 떨떠름한 얼굴로 삼식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머니가 장사 때문에 동네 아주머니들 보다 먼저 부엌에서 나오시기에 사립짝 밖으로 먼저 나와 어머니를 기다렸다.
원목다리 옆 철교 위를 지나 달려오는 서울행 완행열차가 밤에 정적을 깨려는 듯 기적소리를 크게 울리며 마을 앞을 지나고 있었다. 장가라는 이야기가 귀에 거슬려 밖으로 나와 있던 기성이 형이 밖으로 소피를 보시러 나온 경수 아저씨와 함께 달리는 밤 열차를 바라보며 말을 나눴다.
“성님, 저것 좀 봐유. 뭐시 먹을 것이 그리 많다구 기차 칸마다 허벌나게 많이 타구서 올라가네유. 시방 올라가면 낼 이른 아침이나 되야 서울역인가에 닿는다구 허든디.”
그러자 아랫바지 끈을 풀어 내리시고 남새밭에다 소피를 시원스레 보시던 경수 아저씨가 말을 했다.
“그러게나 말일세. 허기는 가을일 다 끝났것다. 사랑방에 군불이나 때구 궁딩이 지지면서 새끼줄 꼴 일 밖에 더 있는감. 그러니 내년 봄 날라구 한 푼이라두 벌어 없는 살림에 보태 볼 맘으루 다들 올라가것지 뭐.” “참, 다덜 기차 올라가는 거 보닌께. 갑자기 서울루 올라간 주현네 아버지 생각이 나네유. 날 한질라 자꾸 추워지는디. 잘 계시기나 하는가 걱정이 되네유. 이런 날 그 어른이 계시면 육자배기 한 자락 구성지게 뽑아 버리면 다덜 좋아헐 건디.”
철로길 건너 큰 동네 용꽃마을에도 동네에 잔치 집이 있어 그런지 불빛이 유난스레 더욱 밝게 비쳤다. 아마 그 동네 신부네 집에서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놀고 있는 듯해 보였다.
밤하늘엔 밝은 달빛 속에 기러기가 떼를 지어 날고 있었다. 맨 앞에 선 우두머리가 ‘꺼어억, 꺼어억’ 울어댔다. 그 울음소리에 뒤를 따라가는 기러기들이 화답을 하는 듯 ‘꺼어억, 꺼어억’ 함께 울며 먼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