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한복판쯤에 두 그루 가죽나무가 민출하게 솟아올라 하늘을 높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죽나무 우듬지엔 희끔희끔한 구름들이 저마다 꼬리를 늘어트리고 있었다.
방앗간 옆 민균이네 집에는 해마다 늦은 봄부터 한여름 내 담장 울타리에 가지가 휘어 내리도록 찔레꽃이 피었다. 민균이네 집 마루에는 종열이 형 어머니와 인삼을 팔러 오신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인삼을 파시는 광다리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방아를 찧으러 오신 종열이 형 어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나누고 계셨다.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도 병역을 기피하여 타관 객지로 도망을 쳐 고생하고 다니는 종열이 형에 관한 이야기인 듯싶었다. 함께 떠난 인삼장수 아주머니 딸에 대하여 혹시라도 무슨 기별이 있었는가 싶어 서로 말씀을 나누고 계신 듯했다.
그때 민균이 어머니께서 ‘삐그덕’ 소리를 내며 광문을 여시고 잘 말려놓은 마늘 꾸러미를 두어 접 정도를 손에 들고 나오셨다. 아마도 마늘로 인삼을 사려는 듯해 보였다.
마루 밑 토방 한쪽 귀퉁이에선 민균이 아버지가 넙적한 돌 위에 앉아 계셨다. 그리고 담배 종이에 풍년초 가루담배를 얹어 돌돌 말아 혀끝으로 가볍게 침을 발라 입에 무시고 성냥갑을 찾아 불을 붙이셨다.
담배 종이에 커다랗게 벌불이 붙자 얼른 입으로 불어 불을 끄셨다. 그런 다음 두 볼이 움푹 들어가게 한 모금 깊숙이 빨아들여 담배연기를 밖으로 부옇게 내뿜으셨다. 그리고 두 발로 힘을 잔뜩 주어 톱을 똑바로 세우고 강한 철로 만든 줄로 톱날을 하나하나씩 공을 들여 갈고 계셨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시는 민균이 아버지 모습에 민균이 어머니가 웃음이 나오시는지 피식 웃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아, 그놈에 담밸랑은 그만 끊으라구 그리 성화를 대두 들은 척두 안허구. 저리 손톱 끝이 누렇게 다 끄실리구 담뱃불에 입술 디는 줄두 몰르구 피워대는지 모르것네. 옷에서는 온통 담배내가 쩌들어 난리구먼 그려. 어디 나를 그렇게 입술이 디도록 좋아 혀 보지.”
그러자 옆에서 심각하게 말을 나누시던 종열이 형 어머니와 인삼 장사 아주머니가 민균이 어머니 말씀에 함께 따라 웃으셨다. 민균이 아버지가 종이가 타들어 가는 담배 연기에 눈이 따가우신 듯 얼굴을 가볍게 찡그리시며 말대꾸를 하셨다.
“아, 싸구려 하급초를 종이데기루 말어 피닌께 눈이 매워 그렇지. 그런 꼴 보기 싫거들랑, 어디 이참에 궐연 담배 한 보루 사 줘 봐. 그럼 나 그 인삼 안 먹어두 쓰닌께.” “참, 꿈두 저리 야무지실까? 떡 줄 놈헌티 말두 안 물어보구 김칫국부터 마실라구 그러네. 이거 비싼 돈 주구 인삼 사서 당신 줄라구 그러는 줄 아는가 보네. 참말루 아예, 꿈두 꾸지 마시유. 우리 큰 아들놈 먹일라구 그러닌께.”
그러자 마당가에 서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시던 종열이 형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구 민균이 엄니 당췌 그런 말 허지 말드라구. 자식새끼 그거 다 쓰잘때기 없더라구.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죽도록 키워 놔 봐야 다 즈그들 힘으루 큰 줄 알더라구. 그리구 우리 종열이처럼 속이나 썩히는 그런 자식 열 있으면 뭐 헐 끼여. 그래도 뭐니 뭐니 혀두 늘그막에 등이라두 긁어줄 서방이 낫지. 에휴, 내가 괜한 말을 했는감?”
벼 방아를 다 찧었는지 방앗간에서 발동기 소리가 멈추자 종열이 형 어머니께서 서두시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인삼장사 아주머니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대문을 나서 방앗간으로 가셨다.
인삼장수 아주머니가 아주 작고 예쁘장하게 생긴 손저울에 인삼을 한 뿌리씩 올려놓으셨다. 그러자 민균이 어머니께서 저울 눈금을 보시려고 얼굴을 바짝 들어대셨다
동네에서 종구네 집 다음으로 마당이 넓은 집이 순아네 집이었다. 어미 소가 아침 일찍 논산 읍내 농 공장에 영택이네 자개농을 실으러 가서 외양간에 송아지만 홀로 남아 있었다. 마루에는 할머니께서 순아의 머리를 곱게 빗질을 하고 순아네 어머니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전쟁의 참화는 순아네 집인들 예외일 수가 없었다. 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순아네 아버지가 국가의 부름으로 군에 나가셨다. 그리고 전란 중에 행방불명이 되어 아직까지도 생사여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 노인 분은 물론이려니와 홀로된 순아 어머니 그리고 철모르는 순아까지 온 집안 식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런 참담한 모습에 동네 사람들은 어린 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순아네 아버지가 돌아가셔 순아를 ‘유복자’ 라고 불렀다.
순아네는 들녘에 농사지을 논이라도 조금은 있어 살아가는 데는 별 걱정이 없었다. 그리고 솜씨가 좋으신 순아네 할머니가 겨울철에는 꼭 두부를 만드셨다. 손수 만드신 두부를 동네는 물론 이웃 동네까지 내다 파셔 그리 옹색함은 면하고 살았다.
순아네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행방불명이 된지도 벌써 수해가 지났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은 전사한 것으로 믿고 이미 제사를 지낸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그동안 순아네 할아버지께서 순아네 어머니에게 몇 차례 개가를 권했다고 했다. 그러나 순이네 어머니는 순아네 아버지가 꼭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하며 그런 권유를 한사코 뿌리쳤다. 그리고 두 노인들을 모시고 어린 자식 데리고 살겠다고 하는 순아 어머니를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효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순아 할아버지께서는 순아가 중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면 읍내에 집 한 칸이라도 마련해 주시려고 한 푼 두 푼 알뜰하게 모우셨다. 나이가 드신 몸으로 소달구지를 몰아 온 동네 짐 나르시는 일은 가리시질 않고 하시는 순아네 할아버지에게 동네 사람들은 늘 존경했다.
연자방앗간 공터에는 뻥튀기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짤막한 쇠꼬챙이를 들고 뻥튀기 기계 앞머리에 끼우고 있었다. 철망을 바싹 가져다 대고 큰소리로 ‘뻥 이요!’ 하고 외친 후 쇠꼬챙이를 누르자 ‘펑!’ 하고 아주 큰소리가 고샅길 안으로 울려 퍼졌다. 단내가 나는 누런 보리쌀튀밥이 허연 김을 부옇게 내며 철망 안으로 가득하게 들어찼다.
종구네 거위가 뻥 소리에 놀란 듯 ‘꺼억꺼억, 꺼억꺼억’ 요란스레 울어대는 소리가 담 너머로 들려왔다. 그러자 앞집 이장댁 할머니가 급히 달려오셔 영 못마땅하신 얼굴로 뻥튀기 아저씨에게 말씀하셨다.
“아니, 둥구나무 밑도 널찍허게 자리가 있는디, 하필이면 요기서 소리를 큼지막하게 내는지 모르것네. 우리 집 돼지가 새끼를 배서 오늘 낼 허는디, 놀래가지구 만약에 하나라두 잘못되면 으쩔려구 그러는지 모르것네. 오늘따라 우리 아들이 집에 없으니 망정이지. 집에 있었으면 그냥 안 놔둘 건디.”
동네 고샅길을 벗어나 둥구나무 앞에 이르렀다. 용만이 형이 기성이 형에게 종구네 강아지가 독일 사람들이 키우는 영리한 개라고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 옆에는 허름한 중절모를 깊숙이 눌러쓴 논산 읍내에서 뱀탕집을 한다는 아저씨의 모습도 보였다. 군복 기지로 만든 자루를 어깨에 둘러메고 한 손엔 가위처럼 나무로 만든 집게를 들고서 용만이 형이 늘어놓는 자랑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아지가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 뒷다리를 구부려 궁둥이를 뒤로 쑥 내밀었다.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며 몇 차례 주위를 빙빙 돌더니 땅에 앉자마자 ‘픽’ 소리를 내며 누런 물똥 설사를 쌌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기성이 형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뭔 놈에 족보가 있구 그렇게 비싸다구 허는 개가 똥질이나 하고 있네. 에이구, 우리 집 메리는 똥개라두 똥질은 안허는디. 종자가 별로인가 보구먼.”
그러자 용만이 형이 조금은 무안스러운지 강아지 목에 줄을 얼른 끌어당겼다.
“거참 이상허네. 아까까장은 아무렇지두 않었는디. 뭘 잘못 먹었는가? 똥질을 다 허네. 암튼 냄새는 좀 독허구먼.”
동네 앞 냇가 나무다리 위에는 우현이와 진식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랫도리 바지를 훌떡 까 내리고 오줌을 누워 오줌줄기가 멀리 나가기 시합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의 고추를 바라보며 철없이 웃고 있었다.
냉기서린 바람이 불어오는 철길 건너 언덕배기엔 마름모꼴의 가오리연을 동네에서는 기현이가 제일 먼저 날리고 있었다.
종구 말대로 두 귀가 안 섰고 족보도 없지만 마냥 귀엽기만 한 검둥이가 텅 빈 밭고랑을 가로질러 힘껏 달려 내 앞으로 다가왔다. 검둥이가 앞을 서고 자꾸만 출렁거리는 물지게를 지고 힘들게 사립짝 앞에 닿았다.
부엌에서는 아주머니가 점심밥을 하시는지 볏짚 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순덕이 어머니께서 아침에 먹다 남긴 콩나물을 섞은 밥에 물을 더 붓고 죽을 끓이고 있었다. 그리고 담군지 얼마 안 된 김치와 양념간장 종지를 개다리소반에 올려놓으시며 방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셨다.
순덕이가 방문 여는 소리에 머리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옹알거려 두 손으로 일으켜 세워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줬다.
비록 희멀건 콩나물죽이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게 하여 주신 어머니께 고마움을 느꼈다. 아주머니가 자꾸만 자기 그릇 속에 있는 죽을 덜어 주시려고 하셨다. 아주머니 손을 밀쳐 내려다 그만 방바닥에 한 숟갈이 떨어져 얼른 걸레로 훔치며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