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사연이 서려진 때 묻은 삶의 흔적인양 나지막한 방 천장에 석유 등잔불 그슬림이 거무튀튀하게 묻어나 있었다.
질이 잘나 반들거리는 갈자리(삿자리)가 깔린 방바닥에 누워있던 순덕이가 무엇이 못마땅한지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기를 달래려고 얼른 끌어안아 보듬어 주었다. 그런데 아기의 엉덩이 부분에 닿은 내 손바닥의 촉감이 눅눅하고 뜨뜻해졌다. 조금 이상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내 시쿰한 냄새가 코끝에 배어났다. 그래서 노란 고무줄로 눌려 있는 엉덩이 부분을 감싼 광목천 기저귀를 살짝 들춰 살펴보았다. 아기가 변을 누워 양쪽 엉덩이에 잔뜩 묻어나 옆으로 삐져나오려 했다.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당황스러워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싸리 광주리 안에 있는 기저귀를 꺼내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갈아 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때 시루에서 콩나물을 뽑으려고 바가지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시던 아주머니가 그 모습을 보시고 황급하게 다가와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셨다. 그리고는 그런 모습이 자꾸만 미안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셨다. 그런 아주머니를 위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조금은 억지스럽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시쿰한 냄새가 다소 거북했지만 그다지 싫지 않게 느껴짐은 그만큼 어린 아기와 끈끈한 정이 남모르게 두터워져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내 모습에 마음이 놓였는지 아주머니도 함께 따라 웃으셨다. 그리고 나를 의식하시는 듯 슬며시 옆으로 돌아앉아 저고리 앞자락을 들추시고 젖꼭지를 아기 입에 물려주셨다. 검은 끄름 속에 흔들리며 너울대는 희미한 등잔불에 비춰 바라보이는 그런 모습 하나까지도 더없이 포근하게만 느껴졌다.
한적한 시골마을 늦저녁의 정적을 깨뜨리듯 밤 예배 시작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어둑하게 느껴지는 방안까지 낭랑하게 들려왔다. 눅눅하게 내려앉는 젖빛 연무 속으로 교회의 종소리가 잔잔한 여음을 남겨 마당에 내려서는 마음이 더욱 가뿐해졌다.
희멀건 달이 여유만만하게 산릉선에 구무럭거리고 있었다. 산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오는 밭두렁을 돌아 장사를 끝내시고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마중 나갔다 둔덕너머 희미한 전등 불빛이 거무스름한 지서 건물 사각 유리창 밖으로 새어 나왔다. 지서 울타리 돌담장을 따라 이어진 골목길엔 교회로 가는 교인들의 모습이 하나 둘씩 어스름하게 보였다.
들녘 논배미를 가로지르는 나무 전봇대 머리 위에 정결하고 선한 영혼처럼 샛별 하나가 새침하게 떠올라 있었다. 둔덕마루에 늘어선 잔솔 나뭇가지 사이로 내보이는 건넛마을 흐린 불빛들이 왠지 모르게 고적해 보였다. 낮 동안 그리도 요란스레 지저귀던 뭇 새들의 울음소리마저 뚝 멈춘 인적 드문 산길을 걸었다. 무딘 발길에 밟혀 바스락 소릴 내는 낙엽을 밟으며 그리 가파르지 않은 둔덕을 넘어섰다. 허연 억새 머리 위로 찬연하게 비추는 달빛에 싸리나무 숲을 헤쳐 나온 스산한 바람소리도 함께 스러지고 있었다.
입동을 훨씬 지나 계절이 겨울의 초입으로 접어들자 해가 점차 짧아지는 듯했다. 그런 탓인지 서편에 해가 기울면 어둠살은 기다렸다는 듯이 성급하게 온 산에 가득 드리웠다.
어둑한 신작로 길을 헤집고 누렇게 불 밝혀 달려온 저녁 막차가 주막집 앞에 멈춰 섰다. 내리는 사람 겨우 두 사람, 그중에 어머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쩌면 그리도 민감한지 나보다 앞을 서 걸어가던 검둥이가 뒤도 돌아보질 않고 벼랑바위 앞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나 또한 그 뒤를 따라 풋풋한 흙냄새 속에 완연하게 비춰 내리는 보름 달빛을 온몸에 받으며 검둥이 뒤를 따라 발걸음을 서둘렀다.
벼랑바위 앞에 나보다 한참을 앞서 간 검둥이가 철로 건널목에 오르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리고 뒤따라 밭둑길로 걸어가는 내 모습을 뒤돌아 바라보며 잠시 주춤거렸다.
젓갈동이를 머리에 이신 어머니가 건널목을 내려서 벼랑바위 앞에 닿으셨다. 검둥이는 무척이나 반가운지 어머니 곁을 빙빙 돌고 어머니께서 한 손에 드신 봉지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그거 털실하구 뜨개바늘이닌께 안 빠지게 잘 들고 가거라. 날은 점점 추워지는디, 다 큰 어른이라면 몰라두 어린 것이 달랑 홑겹 옷 하나 입구 있는 거 보닌께 내 맘이 영 그렇더라. 그래서 우리 애기 위아래 털실루 옷 한 벌 짜주려구 큰 맘먹구서 사 온 거여.”
어머니께서 하루 해 다 지도록 내 얼굴이 보고 싶으셨는지 달빛 사이로 빤하게 바라보셨다. 나도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엄니. 종구네 집 용만이 형 있지? 낼 우리 동네를 아주 떠난다구 허면서 엄니 장사 나가면 못 보고 간다구 꼭 안부 전해 달라구 했어.” “왜? 또 그 양반이 승질을 부렸는가? 갑자기 동네를 떠난다구 헌다냐? 어차피 우리네처럼 죽으나 사나 한곳에 뿌릴 박고 살 사람두 아니구 언젠가는 자기 갈 길로 갈 사람이지만서루 막상 떠난다는 소릴 들으닌게 좀 서운허기두 허다. 암튼 그 많은 농삿일 인제 누가 다 할려구 그런는지 모르것다. 그저 웬만허면 서루 좋게 지내지 못허구서, 에휴.”
남의 집 일이지만 조금은 걱정스러우신 듯 말씀을 하시는데 큰길가에서 사람 인기척이 들려 돌아보았다. 마을 일을 보시는 이장님이 오랜만에 술을 좀 드셨는지 차가운 밤공기 속에 막걸리 특유의 단내를 풍기시며 벼랑바위 앞으로 다가오셨다.
“안녕하세유? 누군가 했더니 상민이 엄니네유. 그나저나 어린 것허구 살려구 고생이 많으시네유. 지가 술을 통 못허는디, 오늘은 면사무소 호적계 일 보는 정주사네 모친 칠순잔치라구 하두 술을 권해서 한두 잔씩 받어먹다 보니 술이 좀 된 것 같아 미안허네유. 그럼 늦어서 집식구들 기다릴까 봐 저 이만 먼저 가볼래유.” “네, 밤길 어두운디 조심해서 살펴 가세유.”
동네 앞 나무다리 위에는 이장님댁 아주머니의 모습이 게슴츠레하게 보였다. 해가 떨어져 날이 다 저물고 밤이 되어도 집에 안 돌아오시는 이장님이 걱정되었는지 기다리고 계셨다.
하얗게 떠 있는 보름달이 억새풀 머리 위에 함초롬하게 비춰 유난스레 정겨워 보이는 둔덕길을 넘어섰다.
“엄니, 아까 낮에 보닌께 민균이네 집에 인삼장사 아줌니가 왔던디. 그 인삼 먹으면 몸두 좋아지구 힘두 쎄진다구 허닌께. 내가 돈만 있으면 꼭 사서 엄니헌티 주고 싶더라. 그럼 엄니가 하루종일 걸어 댕기는디 발두 덜 아풀 껀디.”
마음뿐이지 이룰 수 없는 일이기에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말끝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머리 위에 동이를 이시고 남은 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내가 한 말이 그리도 기특하게 들렸는지 내 손을 부여잡으신 어머니의 손끝이 떨려왔다.
“아이구, 우리 아들이 그런 생각두 허구 인제 다 컸네 그려. 상민아, 에미는 그런 거 안 먹어두 니 말만 들어두 이렇게 힘이 불뚝 솟아난다.”
지친 몸에도 일부러 발끝에 힘을 주셔 힘차게 밭둑길을 걸으시며 웃으셨다. 산모퉁이를 휘어 도니 왕 소나무 앞 나지막한 초가지붕 밑 방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등잔 불빛이 마냥 살갑게만 느껴져 한시라도 빨리 가고만 싶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밤 부엉이 소리가 주위의 어두움과 더불어 처연하게 들려왔다.
멀리 훈련소 사격장에서 야간 사격을 하는지 총소리가 대낮보다 더 크고 가깝게 들려왔다. 그리고 신호탄 한 발이 밤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라 우산 모양처럼 하얀빛으로 곱게 퍼져났다.
마을 앞을 가로 지르는 철롯길엔 이런저런 꿈들을 저마다 가득 안고 고향을 떠나는 서울행 완행열차가 앞머리에 대낮같이 불을 환히 밝혀 세차게 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내일 고향인 들메 마을을 떠나 또다시 객지로 떠나는 용만이 형도 저 기차에 몸을 실고 떠날 것만 같았다.
뒷산 마루 하늘에는 은구슬처럼 작게만 보이는 한자리 별 무리들이 보였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달빛을 머리에 이고 밭둑길을 걸어가시는 어머니와 내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