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인 방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온기가 가득 밴 이부자리를 개키고 일어서기가 조금은 꿉꿉했다. 뒤뜰엔 추위도 아랑곳없이 부지런 떠는 참새들이 대추나무 앙상한 가지 사이로 촐랑대며 아침을 부르고 있었다. 벽 틈새로 스며드는 밥 끓는 냄새와 뒤섞인 콩나물국의 특유한 비릿한 냄새도 내 삶의 일부분인 듯싶어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겨울양식을 장만하는 김장철이 목전에 다가오자 동네 집집마다 필요한 만큼의 젓갈을 구하려고 했다. 어머니께서 젓갈 장사를 시작하신 뒤로는 온 동네에 필요한 젓갈을 어머니께서 도맡아 공급하셨다. 그렇게 젓갈 장사로 일이 바쁘신 어머니께서는 부엌에서 밥을 대충 드셨는지 울타리를 돌아 개울 앞 둔덕에 오르고 있었다.
철로길 건너 달구지 길에는 소달구지 위에 동네 이장님과 순아네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면사무소에 밀가루 배급 수령을 가시려는지 벼랑바위 앞으로 가고 있었다. 그 뒤를 바짝 뒤따라 읍내 중학교 졸업반인 종기 형이 자전거를 타고 뒤따르는 모습도 보였다.
동구 밖 둥구나무 앞에는 종구네 아버지와 고샅길 첫머리 집 우현이 아버지가 용만이 형과 함께 서 있었다. 아마도 용만이 형이 마을을 떠나려는 것처럼 보였다.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아침식사를 하고 도시락을 챙겨 도랑가 징검다리를 건넜다. 개울 둑 가장자리에 뾰족하게 서릿발이 보여 왠지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철로길 건널목에는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 중에 양쪽으로 머리를 곱게 땋은 옥순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추위에 얼굴이 불그레해져 두 손에 털실로 짠 벙어리장갑을 끼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상민아, 용만이가 오늘 동네를 떠나서 다른 디루 간다구. 여기저기 돌아 댕기면서 동네 사람들헌티 인사를 허구 우리 집에두 왔던디. 넌 알고 있냐?" “응 엊저녁 늦게 종구네 쎄빠또 죽은 거 산에 묻으러 가면서 잠깐 우리 집에 들러서 자기는 딴디루 살러 간다구 하면서 나보고 잘 있으라구 허드라.” “음, 그랬구나. 그래서 그동안 종구네 집에서 머슴 일한 세경을 받아갈려구. 오늘 종구네 아버지랑 같이 읍내 조흥은행에 간다구 허드니. 좀 전에 오다 보닌께 종구네 아부지랑 같이 읍내 갈라구 그런는가? 둥구나무 밑에 둘이서 서있더라.”
동구 밖을 바라보니 종구네 아버지가 용만이와 같이 읍내에 가려는지 들 주막을 향해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잠시 말을 멈췄던 옥순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참말루 앞으루 누가 그 많은 논배미 농사를 다 질 건지 그 집두 걱정이것다. 시방까지는 그래두 힘쎈 용만이가 황소처럼 그 많은 일을 다 했는디. 인제는 헐 수 없이 종구네 아버지가 농사짓는 것두 그렇구 소깔 베고 여물 주고 마당 쓰는 일두 직접 해야 쓰겄네.” “야, 뭘 그렇게 신경 쓰냐? 니네 집 일두 아닌디. 글구 종구 아버지가 다 그만한 대책이 있으닌께 배짱을 부리고 용만이 형을 내쫓았것지 뭐, 안 그러냐?”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개울 둑길을 걸어 비석골 앞 수문에 닿았다. 며칠 전 둥구나무 밑에서 본 적이 있는 읍내에서 생사탕 집을 한다는 아저씨 모습이 보였다. 허름한 중절모를 눌러 쓰고 까맣게 염색을 한 군복 차림이었다. 어제 저녁 늦게 쳐둔 그물에 걸린 뱀을 잡으려 아침 일찍 산에 다녀왔는지 이슬에 흠뻑 젖은 군화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쉬어 가시려는지 껄끄러운 얼굴로 수문 턱에 걸터앉아 궐연을 피우셨다. 아저씨 앞에는 두툼한 군복 천으로 만든 자루에 무엇이 꿈틀거려 동네 아이들과 더불어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뱀장수 아저씨께서 어린 너희들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하시며 서둘러 학교에 가라고 재촉했다.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그 자루 속에 어떻게 생긴 뱀들이 얼마만큼 들어 있는지 자못 궁금했다. 동네 어른들의 말씀대로 산에서 겨울잠을 자려고 움직이다 그물에 걸려 뭉쳐 있는 뱀들을 잡아넣으신 것 같았다.
학교 뒷산 언덕배기를 넘어서려니 싸늘한 바람이 얼굴에 스쳐 으스스했다. 모두들 아랫주머니와 윗주머니에 손을 넣고 언덕배기를 내려서 학교 교문 앞으로 걸었다.
새로 생긴 이발소가 집수리가 끝나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함석을 구부려 만든 연통으로 장작을 태우는 연기가 모락모락 새어 나왔다. 가계 앞에는 샛터 마을 동네 분들이 개업을 축하해주려는 듯 한바탕 흥겹게 풍물을 치고 있었다. 추녀 끝 따라 오색 색종이 테이프로 길게 줄을 늘어뜨리고 현관 앞에는 두꺼운 골판지 위에 붓글씨로 ‘축 개업(祝 開業)’이라고 써 놓은 글씨가 보였다. 새터마을 동네 분들이 축하를 해주는 듯이 자리에 앉아 떡과 돼지고기를 막걸리와 곁들여 드시면서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같은 동네에 산다고 그러는지 아주머니 한 분이 새터마을 아이들에게만 절편을 두서너 개씩 나눠주셨다. 오랜만에 떡을 보니 무척이나 먹고 싶었는데 야박하게 대하는 그 아주머니가 얄밉기만 했다.
학교 운동장 한쪽 창고 앞에는 각반 당번들이 땔감을 타려고 땔감 통을 손에 들고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일 하시는 소사 아저씨가 아침 일찍이 피워 놨는지 교무실 난로 연통에서는 연기가 밖으로 소옴소옴 피어났다.
그날 당번이 불쏘시개로 타 온 솔방울에 불을 붙이느라 온 교실 안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 했다. 난롯불이 서서히 달아오르자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난로 연통을 매만지면서 난롯가에 모여 들었다.
아침 조회시간이 되었다. 곤색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매시고 턱밑에 거뭇거뭇했던 수염도 말끔하게 깎으신 담임선생님이 교단 위에 오르셨다.
“오늘은 우리 학교의 분교인 이화 국민학교가 개교하는 날이다. 그래서 행사준비 관계로 선생님이 참석해야 되기 때문에 너희들과 오늘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은 다른 선생님과 오전 수업만 할 것이니 내가 있을 때보다 더 조용히 수업을 해야 한다.”
서둘러 출석부를 드시고 교무실로 가시려 교실 문을 열고 나가기 무섭게 앞을 다퉈 우르르 난롯가에 모여들었다. 지루한 온종일 수업이 오전만 한다는 말씀에 모두들 신바람이 났다. ‘따그닥 따그닥’ 소릴 내시며 복도를 걸어가시는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느라 히뜩히뜩 바라보며 모두 웃고 있었다.
면내에서 변두리에 위치한 부락에 사는 학생들이 본교인 채운 국민학교까지 오려면 참으로 고생이 심했다. 아침 일찍부터 어림잡아 십리가 족히 되는 거리를 걸어서 와야만 했다. 그래서 나이가 어린 저학년들은 비가 오거나 추위에는 등교하기에 퍽이나 힘이 들었다. 그런 사유로 몇 해 동안 그곳에 사시는 모든 학부형들이 손도장을 찍어 문교부 장관에게 탄원서를 냈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져 분교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정부에서 올해 늦봄부터 공사를 하여 연무대로 향하는 철로길 옆 ‘배꽃마을’에 ‘이화분교’를 개교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예산이 적어 겨우 목조건물인 교실 세 칸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교실 수가 턱없이 부족하여 우선 저학년인 삼학년까지만 그곳 분교에 다니게 되었다.
오전 마지막 수업 시간이 되자 난로 위에는 두 줄도 모자라 석 줄까지 도시락을 올려놓았다. 도시락 밖으로 새어 나오는 김칫국물 냄새가 온 교실 안으로 가득 퍼져났다.
3학년 1반 담임선생님이 칠판 위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고 큼직하게 쓰셨다. 그리고 아주 차분하게 목소리를 낮춰 말씀하시고 우리들은 좀 지루한 얼굴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땡땡땡’ 울려 퍼지는 종소리도 날씨 탓인지 차갑고 냉랭하게만 들려왔다. 수업이 끝나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여시기도 전에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시끄럽게 소릴 내어 난로 앞으로 모여 들었다. 그러자 뒤를 힐끔 돌아보시던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교무실로 가셨다.
도시락이 뜨거워 책보자기로 감싸 책상 위에 올려놓고 끼리끼리 모여앉아 서둘러 점심을 먹었다. 청소 당번들만 교실에 남고 하나둘씩 교실 문을 나서, 오후 들어 햇살이 조금 다스하게 퍼지기 시작하는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부반장인 영선이는 책임감이 강해 보였다. 난롯불을 점검하여 교실 문을 잠그고 열쇠를 교무실에 갖다 주려는 듯 난롯가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와 옥순이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잘 가라는 듯이 가볍게 웃어 주었다.